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 (마 03:13-17)

첨부 1


지금부터 2,000년전 이스라엘의 요단강에는 갈릴리에서 온 한 사람의 세례받는 문제를 놓고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세례를 베푸는 세례요한은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라고 의아해 합 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받은 사람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대답합 니다.

결국은 세례를 받는것으로 되어지고 역사속에서 두번 다시 있을수 없는 세례식이 거행 됩니다.

성도 여러분 ! 이 역사속에서 두번 다시 있을수 없는 세례식은 누구의 세례식입니까 바로 우리 예수님의 세례식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늘 보좌를 떠나 이 땅위에 오신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의 세례식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례식은 어떤 세례식이었기에 세례요한이 그토록 완강하게 거부를 했고 역사이래 두번 다시 있을 수 없는 그런 세례식이었겠습니까

4가지의 특징이 그 세례식에 있었습니다.

 1.원래 세례라고 하는것은 죄인이 세례를 받음으로서 죄 씻음을 받는 것인데 전혀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요.

 2. 이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3. 이 세례를 통해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출발을 했다는 것이요.

 4. 종합적으로는 이 세례에 성삼위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첫번째로 세례는 죄인이 세례를 받는것인데 왜 죄가 없으신 우리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겠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주석가는 말하기를 '이해하기 어려운 예수의 수세'라고 말했습니 다. 옳습니다.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세례요한의 말대로 세례를 베풀어야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그당시 이방인들이 유대교롤 들어올때 받게되는 세례를 받으셨겠습니 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친히 죄인들의 동류가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보다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은 자신을 종의 형체로 비우사 철저히 낮아진 위대한 겸손을 보여주기 위함인것 입니다.

빌 2:6-8의 말씀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줍니다.

2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 가에 죽으심이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인 신분으로서 아니 하나님의 신분으로서 죄인과 같이 철저하게 낮아시셨고 그 낮아지심으로 말미암아 죄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인간들 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 이런 예수님의 낮아지심이 쉽게 이해가 되어집니까 이 부분은 그렇게 쉽게는 이해가 되어지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민을 하다가 정원을 산책했습니다.

마침 정원 한 모퉁이에서 개미들이 저들의 양식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앞에 큰 산맥이 가로막혀서 도저히 저들의 그 양식을 옮기지를 못하고 있 었습니다. 물론 그 신학자가 보기에는 전혀 무시해도될 그런 흙이 약간 높게 싸여져 있는 것이였는데 개미들에게는 난공불락의 성과 같았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있던 그 신학자는 개미들이 측은하고 불쌍해서 허리를 굽혀서 개미들의 양식을 그 산맥너머로 옮겨주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개미들은 혼비백산이 되어서 다 뿔뿔이 흩어져 버렸던 것입니다.

도와주려던 것이 개미들에게는 더 큰 재앙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던 신학자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개미를 진정 도와주기를 원한다면 내가 개미가 되어서 저들과 함께 동거동락을 하는것이 최선의 방법이겠구나 그리고 그 신학자는 이런 상황속에서 왜 예수님께서 굳이 인간의 몸으로 이땅에 오시 고 인간들과 더불어 생활을 하시고 결국에는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끝에 운명하셨는가 를 일부나마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받으심 바로 이런 맥락속에서 우리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그것도 최고 밑바닥까지 낮아지셔서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저들이 의인이랍시고 세례받기를 거부했던 그 죄인만이 받던 세례를 우리 주님께서는 받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낮아지심의 여러 모양중에서 한가지가 바로 죄인들이 받아야만 했던 세례였던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모든 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의는 무엇입니까 모든 옳은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든 행위를 두고 일컫는 말인것입니다.

물론 성도 여러분은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하나님이신데 순종할것이 있겠느냐고 반론 을 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 자신이 하나님이시면서도 완전한 인간이셨기에 그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희생적인 순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순종하심으로 동정녀인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세례를 받으신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운명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순종하셨습니까 오직 죄인들을 구원하세겠다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인간이셨기에 때로는 순종하는 그 자체가 힘들었을때 도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때 어떤 기도를 하셨습니까 마 26:37-39의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시면서 고민하고 슬퍼했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민하고 슬퍼하는 상태에서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 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우리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죽는것이 그 순종하는 죽음이 그렇게 쉽지 않았던 것입 니다.

그래서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와 동시에 우리 예수님께서는 나의 원대로가 아닌 아버지의 원대로 하여 달라는 100의 순종심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순종하는 모습이 바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는 그 싯점으로 부터 시작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의는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면서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완전히 100로의 순종하심으로 인한 의가 이룩되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세례는 순종함으로 인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뜻이 포함되어져 있는것입니다.

 3. 이 세례를 통해 우리 역시도 진정한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졌습 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물위에 올라왔을때 일어났던 일들이 이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16,17절 말씀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고 하늘로서 소리가 들리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런 세가지의 현상은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입증해주는것이고 동시에 그런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역시도 천국의 백성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어떠한 존재입니까 죄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 아닙니까 그 결과 우리가 낙원으로 가는길은 막혀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문이 열리고 우리는 천국의 백성이 된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거룩하고 깨끗한 세례가 하나님과 이런 회복의 관계가 이루어 지도록 하게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말합니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누구와 한몸이 되었다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만 됩니다.

닫혀있었던 하늘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하심에 따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열려져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세례가 의미하는 것은 하늘의 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백성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바울 신학에서는 세례는 앞으로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신부로서 예수와 약혼식을 갖는것이 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은 곧 앞으로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인침을 받는 시간이 곧 세례라고 말 할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비자를 받는것이 세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에 입국을 하려면은 반드시 그 나라의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야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격심사를 거쳐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 심사에 통과가되고 비자를 받으면은 언제라고 자기가 원하는 그 나라에 입국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례를 받는것은 하늘나라의 대사관격인 교회가 비자를 발급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인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는 종말론적인 한 신앙의 모습이라고 정의를 내릴수도 있는 것입니 다.

 4. 종합적으로 볼때 이 세례식에는 성삼위 하나님께서 직접 참여하시고 역사하셨습니 다.

 에수님게서 세례를 받으실때의 상황을 살펴보면 아들 하나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셔서 직접 물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 하나님은 그 세례 현장에 비둘기같이 임하셨고 아버지 하나님은 하늘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요 한편 완전한 인간이시요 또한 하나님의 독생자이심 을 우리 인간들의 구원자이심을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삼위의 하나님이 예수님의 세례에 동참하게 된것은 영원한 신비에 속하는 문제이고 우리는 오직 겸손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될 계시인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성삼위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축복속에서 몸소 세례를 받으신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몸소 낮아지시고 겸손해지신 가운데서 세례를 받으신 에수님은 이 땅위 에서의 모든 공생애를 다 마치시고 승천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28: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어서 매년 두번씩 교회에서 세례식을 가지고 있는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깊은 의미가 담겨져있는 세례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드리고 있습니까 이미 세례를 받은 성도들은 세례식 자체가 이제는 자신과는 관게가없는것으로 생각하 고 세례식을 강건너 불보듯합니다.

또 많은 경우의 성도들은 형식적으로 어떤 신앙의 깊은 결단이 없이 그저 세례를 받는 그런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은 군이라는 특수한 집단적인 사회속에서 가장 세례를 많이 받은 사람이 8번 받았다는 그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왜 8번이나 세례를 받습니까 세례를 받는 개인으로 볼때는 세례를 받을때마다 선물도 받고 그 시간에 훈련에서 제외가 되어 쉴수도 있기때문에 세례식이 있을때마다 세례를 받다보니 8번씩이나 세례 를 받게 된것입니다.

세례를 베푸는 쪽에서는 어떻습니까 물론 알고서야 한 사람에게 8번씩이나 세례를 줄수야 없겠지만 세례받은 사람이 많아 야만 저들의 실적이 올라가니까 어떤 엄격한 사전 교육이나 점검이 없이 무대포로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시중에 나오는 책중에서 "어느 이슬람 여인의 회심"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빌퀴스 쉬이크"라고 하는 한 이슬람 여인의 간증문인데 그녀는 파키스탄의 내무부장관의 부인이었는데 그 나라 정책상 공식적으로 전도를 받지 못하고 꿈에서 예수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가운데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전도를 받고 파란만장한 개인적인 경로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신분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 거의 혼자서 성경을 통해 혹은 꿈 과 환상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던중 그녀는 말씀을 통해 세례를 받아야된다는 강한 동기부여를 받게 됩니다.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슬람국가인 파키스탄에서 그것도 내무부장관의 부인이 세례를 받는다는것은 불가능한것이었습니다.

고민끝에 그녀는 하인을 시켜서 물탱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속에 들어가서 자기 손을 머리에 얹고 큰 소리로 선포했습니다.

"빌퀴스,네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고 하면서 머리에 엊은 손으로 머리를 눌려서 물속에 잠기게 했습니다.

그 뒤 물속에서 그녀가 일어났을때 그녀의 영혼은 기쁨과 찬송으로 가득찼다고 간증하 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 볼때 그녀의 세례는 신학적인 문제가 있었고 그로 인해 그 세례에 대한 정당성의 문제가 논의될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애타게 세례를 받고자하는 그녀의 행동에 그 누구가 정죄의 돌을 던질 수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신학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가 그 세례를 받고자하는 그 열정과 순수한 마음을 본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으 여인은 그후에 선교사로부터 음밀하게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속에서 세레를 받 고 지금은 미국에 정치적(종교적)인 망명을 해서 미국에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습니 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 모두다는 이미 세례를 받았거나 앞으로 받을 사람들입니다.

세례는 한 번에 족합니다.

그 어떠한 동기이던지간에 두번 이상의 세례는 불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례식이 있을때마다 우리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던 그 상황을 기억 에 떠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세례와 나와 무슨 관게가 이쓴지에 대해 점검해 보아 야만 합니다.

그래서 단순한 세례식이 아니라 형식적인 세례식이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의 축복속에 서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되어지는 그런 뜻깊은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 자신을 돌아보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갈 3:27-28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너희는 유대 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 이니라" 이것이 바로 세례의 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것이 세례의 힘입니다.

또한 세례는 새로운 생명과 삶을 가져다 줍니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 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제 세례와 관련된 두사람의 말을 소개함으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한국교회 초대 부흥사였던 김 익두 목사의 이야기 입니다.

김목사님은 세례를 받을 일자를 앞두고 많은 금식을 했다고 합니다.

한달동안을 안방에서 잠자지 않고 한달동안 산에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되 신약성경을 백독이나 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우리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나 앞으로 받을 사람들에게 큰 모범을 보여주 는 어른이었습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의 경우는 세례가 어떠한 역사를 하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3가지로 말했습니다.

 1. 죄를 사하는 효력이 있다.(행 2:38)

2. 사망과 마귀에게서 구출하여 내는 효력이 있다.(롬 6:3)

3. 영원한 구원을 얻는 효력이 있다.(막 16:16) 성도 여러분 ! 이런 놀라운 역사가 있는 뜻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세례식이 2주후에 거행 되어집 니다.

우리는 이 세례식을 위해 더욱더 엄숙한 마음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하여야 할것입 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다가 다시 한번 더 에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백 성이 되어서 놀라운 새 생명과 새 삶의 인생을 사는 모두다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