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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경 중에도의 찬송한 결과 (행 16: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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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예컨데 거대한 성이 하루 아침에 무너 지기도 하고, 하늘에서 뜨거운 유황불이 떨어지기도 하고, 강이나 바다가 일순간에 갈라지기도 하고, 반석에서 시원한 샘물이 쏟아져 나오기도 기도 하고, 사람이 불마차를 타고 하늘을 날아 오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3:16-17에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고 올라 오실때에 하늘이 여리고 성령이 하늘로부터 비둘기 같이 내려오는 것이 보여 졌으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신비한 일이 있기도 했으며,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 께서도 공생애 기간에 기적과 이적을 많이 행 하셨습니다. 수많은 불치의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며, 죽은 자를 무덤에서까지 다시 일르켜 소생 시키시기도하고, 또 어떤 때는 물고기 두마리 보리떡 다섯개로 5천명의 무리를 배불리 먹이시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물위를 걷기도 하시고, 거대한 풍랑을 말씀 한마디로 잠잠케 하시는 등등 샐수 없는 기적이 많습니다.
사도행전3장 1절이하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 갈때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걷게 하신 기적이 있었고, 사도행정 9:34에서는 중풍병자 애니아가 베드로의 능력으로 일으킨 기적이 있었고, 사도행전 9:3 이하에 보면 다메섹 도상의 사울이 하늘에서 빛이 비취면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독교인이 되는 기적이 있었고, 사울의 상역의 현장에서도 많은 기적과 이적이 있었으며 바울 자신이 독사에 물리고도 죽지않는 기적 등등 초대교회 이후에 교회의 역사에서도 수많은 이적과 기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때 기독교는 한마디로 기적과 이적이 있는 신비적인 종교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신비주의와는 엄격히 구별됩니다.
신비주의란 쉽게 말해 신비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예수믿는 목적이 마치, 어떤 신비나 기적을 체험하는 것에나 있는 것처럼,혹은 무슨 병고침이나 희한한 은사를 받아야만 다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런 것은 '신비주의'에 속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비주의'는 우리가 엄히 경계하고, 또 매우 삼가해야할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깨 하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우리에게 놀란 만한 기적의 사건을 보여 주실 수도 있다는 것을 믿는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을 향해 소망하고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마7: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7: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요15: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6:24)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오늘의 본문 에서도 아주 놀라운, 그리고 신기한 기적을 또한 목격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여러 가지 드라마틱한 기적의 사건이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중에도 본문의 이 기적은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감동적인 기적에 속합니다.
본문에서 보는 대로 바울과 실라는 깜깜한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죄 없는 사람에게 죄목을 씌워서 감옥에 집어 넣은 것입니다.
귀신들려 고통 당하는 한 여자를 고쳐준 것인데, 그로 인해 고소를 당하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억울하고도 모순적인 일이 어디 있습니까
마땅히 상을 받고, 칭찬을 받아야 할 일을 하고서도, 반대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억울함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멋진 기적을 그들 가운데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은 홀연히 큰 지진이 나고, 옥문이 터지면서. 그들을 꽁꽁 묵었던 모든 쇠사슬이 저절로 풀어지는 기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마치 무슨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것과도 같은 통쾌한 해피 엔딩의 장면을, 목격하면서, 오늘 우리는 바로 이 기적이 어떻게 하여 일어날 수 있었으며, 나아가서 오늘 우리의삶 가운데 우리가 실현해 가야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신앙적 요소는 어떠한 것이 되겠는가를 잠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선한 행위의 결과는 기적이 온다는 것 입니다.
바울과 실라의 선행은 이렇습니다.
사도행전 16:16-18 이하에
(행16: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행16:17)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행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바로 이와같은 이유로 바울과 실라는 고난의 역경속으로 빠져 들게 됩니다.
이것이 죄 입니까
선한 일 중에 선한 일이 아닙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지고의 선한 일은 죄인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바울 일행은 마귀의 억압에 눌려 고통 당하는 한 사람을 구출한 것입니다.
이 보다 더 큰 선한 일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바울 일행은 그것이 죄가 되어 감옥에 같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주님을 찬양하고 기도 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개입 하신 것 입니다.
하나님은 이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한 것을 그냥 내 버려 두지를 않았습니다.
기적을 일으켜 주신 것 입니다.
만일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힌것과 매를 맞은 것이, 마땅히 받아야 할 죄에 대한 벌 때문에 옥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면, 결코 하나님은 그들에게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베푸시시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역을 수행 하다가, 곧 선을 행하다가,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만날 때에, 하나님은 그 사정을 감찰하시고, 기적을 배푸셔서, 억울하고 답답한 사연을 한 순간에 풀어 주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 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것은 오직 선을 행하는 그 곳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살후3: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엡3:13)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갈6: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가 죄를 짓다가, 혹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다가, 어떤 못된 짓을 하다가 답답한 일을 당하고, 옥에 갇히거나, 죽을 병에 걸렸다고 한다면 결코 하나님의 기적을 바랄수는 없습니다.
혹시, 우리의 생활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고, 하나님이 꼭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오직 열심을 다해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선한 일이 무엇 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의 일이고 주님은 그 일을 기뻐 하십니다.
그 일이 무엇 입니까
바로 영혼을 구 하는 일입니다.
이 일들을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주변에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까
나아가서, 과연 나의 하는 일들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 이었던가를, 겸손히 생각 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적의 능하신 손을 펴 주실것입니다.

2.역경 중에도 기도와 찬양은 기적을 일으킨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6장 22-25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행16: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행16: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행16:24)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행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자 여러분!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찬미할 수 있었던 조건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믿고 의지 하면서 기도하고 찬양을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과연 이러한 순간에도 기도가 그리고 찬양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우리가 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었더라면 원망과 불평으로, 절망과 한숨 속에 빠져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하나님을 향하여 반항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하나님, 도대체 선한 일을 하는 것도 죄가 되나요
불쌍한 귀신 들린 여자 고쳐준것도 죄가 됩니까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취급하십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한다면, 어찌 이러실 수가 있는 것입니까 라고 했을직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의 지난 날을 돌이켜 볼때에, 바로 이러한 원망과 불평을 많이 했을 것 입니다.
결코 떳떳한 일을 한 것도 아니면서도, 작은 억울함이나, 고통을 당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며, 혹씨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것은 아니냐고 대들기도 했던, 우리의 옅은 신앙이 아니었던가를 돌이켜 볼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한 신앙 으로서는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모든일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그러한 절망적인 순간에도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찬송 했던 것 처럼, 우리도 그러한 자리에 오를때에 바로 거기에 하나님은 기적으로 응답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옥문이 터지고, 메였던 쇠사슬이 풀어지는 놀라운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것입니다.
여러분! 또다른 기적은 여기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옥문이 터지고 쇠사슬이 풀리는 이 기적보다 더 큰 내면적인 기적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무엇 입니까
그것은 바로 바울과 실라가 그들의 깊은 내면속에 이루어진 심령의 기적입니다.
바로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 인 것입니다.
(고전15:58)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히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바울과 실라는 원망할 시간에 감사했고, 슬퍼해야할 시간에 기뻐했고, 절망할 시간에 감사찬송 부를 수가 있었으니, 이것이야 견고한 믿음이 아닙니까
이것이 기적중의 기적인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 꽁꽁 얽어매는 고통이 있습니까
혹은 칠흙같이 어두움에 같힌 것 처럼 답답한일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께서 옥문을 열어주시며, 나를 얽어매고 있는 사슬을 끊게 하는 놀라운 기적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의 확실한 증거를 지니시기를 바랍니다.
그와같은 비결이 무엇 입니까
그 비결은 역경 중에도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처럼, 그 어더한 절망적인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을 할 수 있을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가운데 기적으로 응답해 주실것을 굳게 믿으시길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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