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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합의 죽음 (왕상 2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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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하고 사악했던 아합 왕의 죽음이 본장의 주제이다. 이스라엘과 아람간의 3차 전쟁을 배경으로 하여 전개되는 본장의 내용은 아합 왕의 비극적인 종말을 하나님의 예언대로 잘 묘사하고 있다. 왕비 이세벨과 합심하여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의 종교 전통과 규례들을 짓밟는 데 주저치 않았던 아합은 선지자가 예언한 바대로 그 말로는 극히 비참하였다. 예언의 일점 일획이 빗나가지 않고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1. 거짓 선지자를 따른 아합

아합은 유다 왕 여호사밧과 함께 아람과 싸워 길르앗 라못을 정복할 것을 계획하고 이를 선지자들에게 묻는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참된 선지자와 거짖 선지자가 각각 있었다. 400명이나 되는 왕정 선지자 외에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바로 그였다. 미가야 선지자는 오직 여호와의 관찰에 따라 바른 말만을 하였다. 그래서 아합은 미가야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에게 개인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의 전망에 관하여 스스로 만족하고자, 바른 말을 하는 미가야보다는 아첨을 하는 거짓 선지자의 무리의 말을 따랐다. 더구나 아합의 신앙관은 사술적인 요소가 다분하였다.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의 서릿발과 같이 날카로왔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왕과 다른 선지자들을 격노케 하였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을 대표하여서 시드기야라는 선지자가 나와서 그의 뺨을 치며 말하였다(24).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 하더냐” 시드기야는 거짓 영이 자기에게 다가와서 꾀이고 주관하고 있었으나(22) 이를 깨닫지도 못한 영적 소경이었다.
아합은 바른 선지자인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고 혹독한 고생을 시키도록 명하였다(27). 그리고는 거짓 선지자들의 듣기 좋은 예언을 다랐다.

2. 아합의 전사

아합 왕은 아람과의 3차 전쟁에서 결국 죽고 말았다. 두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아람 군대를 물리친 것과는 대조적으로 3차 전쟁에서는 남유다 왕국과 연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디없이 꺽이고 말았다. 이 전쟁은 아벡의 조약이 파기된 것에서 비롯하였다. 이스라엘은 아벡 조약으로 인하여 다메섹 교역권을 확보하였고 경제, 군사의 요충지인 길르앗 라못을 할당 받았었다. 그러나 위기에서 벗어난 아람 왕 벤하닷은 이 조약을 파기하였으며 이에 남북 연합군을 형성한 아합이 자신감을 가지고 3차 전쟁에 임하였던 것이다. 아합은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 전쟁에서 죽고 만다. 그것도 구체적인 예언대로 성취된다. 아람 병사의 우연히 당긴 화살에 병사들 속에 변장한 아합 왕이 맞은 것이다.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이 여기서 또 한번 입증되고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서도 살아 남을 자는 아무도 없다.

3. 여호사밧의 통치(41-44)
1) 부모의 아름다운 신앙의 본을 받았다.

그 부친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함으로 올바른 신앙의 길로 행하였다. 대부분 경건한 부모의 올바른 신앙의 행위는 그 자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

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인생에 대한 최종 평가는 하나님께서 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요, 잘 사는 사람인 것이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므로 칭찬을 받았다. 우리는 하루하루가 그 분 앞에 있음을 명심하고 인정받는 삶을 살도록 힘쓰자

3) 이스라엘 왕으로 더불어 평화함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는 평화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대로 모든 사람과 평화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평화는 타협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용납하고 화해하여 다툼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도록 힘써야 되겠다.

4. 아하시야의 통치(51-53)
1)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게 행함

아하시야는 짧은 기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면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게 행하였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그의 다른 모든 업적들을 상쵀해 버린다. 악을 뿌리는 사람이 거두게 되는 것은 죄앙 뿐이다(잠22:8).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대로 거두게 하시되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들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게 하신다. 그러므로 즐겨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없으며, 성도는 악과 불의를 철저히 멀리하도록 해야 한다(롬2:6-11, 살전5:22).

2) 바알을 섬겨 우상숭배에 앞장섰다.

아하시야의 가장 큰 악은 우상숭배이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보다 더 귀히 여기는 그 어떤 것도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3) 아비 아합의 비참한 종말을 목도했으면서도 그 전철을 밟았다.

부모의 좋은 모본을 따르되 악은 버리는 것이 합당하다. 때문에 성도는 모든 일을 잘 분별하여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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