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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의 모습 (합 03:17-19,살전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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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이런 글이 실려 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것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배우는 사람이다. 참으로 강한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자신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면 정말 부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것은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정말 부자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우리의 삶이 감사가 넘쳐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살펴보면 감사를 잃어버린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기계문명의 발달로 물질이 풍부해지고 생활환경은 안락해졌어도, 인간의 심성은 메마르고 감사의 기쁨은 없어진 지 이미 오래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고침받은 열 명의 문둥병자 중 아홉 사람이 예수님께 감사드리지 않았던 사건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되고만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가 아무리 감사를 잃어버렸으며, 감사에 대해 무감각한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감사의 생활은 결코 포기해서는 안되는 삶의 원칙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감사의 생활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원하시는 섭리이며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잃어버렸던 감사를 되찾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요, 책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되찾아야 할 감사의 모습들은 어떠한 것입니까

데살로니가 전서 5:18의 말씀을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전재동이라는 시인은 감사라는 자신의 시에서 전쟁과 사고와 살해와 음모하며, 죽음의 사자가 주린 사자같이 날뛰는 인생에서 생존은 기적이 되고...그 생존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면서 무릎꿇고 떨리는 가슴으로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이 시인은 자신이 현재 살아 움직이고 숨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며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러한 삶의 모습이 범사에 감사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감사의 모습들은 사도 바울에게서도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는 삶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바울로 변화된 뒤부터, 그는 늘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고린도 후서 9:15에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데살로니가 전서 3:9에서는 능히 어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빌립보서 1:3에서는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사도 바울의 삶을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그리 감사드릴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가정도 없는 떠돌이이며, 높은 학식과 집안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 때문에 옥에 갇히며, 매를 맞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사도로 일할 수 있게 하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에 아름다운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성숙하고 아름다운 감사의 모습은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 하박국 3:17-19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의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너무도 놀라운 한 신앙인의 고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그야말로 위대한 신앙이며 감사의 모습입니다. 남들이 나의 삶을 보기에는 아무런 감사할 조건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를 구원하시고 나의 여호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이로 인하여 기뻐 감사한다는 고백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져도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소망과 기쁨이 넘친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박국 선진자의 고백은 동방의 의인이었던 욥의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욥은 온갖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오직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거두시는 자도 여호와이시라.는 신앙의 고백을 드립니다. 이러한 욥의 신앙고백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맡기며 살아가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결국 하박국 선지자나 욥이나 바울 사도가 소유하고 있는 삶의 유형은 조금씩 달라 보여도, 자신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평안하거나 환난 가운데 있거나 모든 삶 가운데 감사하며 사는 삶이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도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박국 3:19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 되시고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실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이러한 하박국 선지자의 기록은 세상적이고 인간적으로 보기에는 단 하나도 감사할 조건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믿음을 가진 신앙인의 눈으로 삶을 조명해 보면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며 인도해 주시고 힘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항상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임을 선포하는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는 정말로 얼만 많은 감사가 넘쳐나고 있는지요 내가 오늘도 살아서 이 자리에 나와 하나님께 경배드릴 수 있다는 것을 비롯해 서,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이 감사드릴 조건들임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사의 모습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삶의 주위들을 조용히 돌이켜 봅시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감사하며 사는 법을 잃어버렸습니다. 내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너무도 당연하게 감사하는 마음 없이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어려운 일들이 닥치거나 고통이 오면 너무도 쉽게 힘들어하고 불평이 터져 나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모습은 결코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모습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배들, 신앙의 선배들의 고백을 기억해 보십시오. 하박국 선지자처럼 아무런 소출이 우리에게 없을지라도, 욥처럼 내가 깊은 환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를 위해 더 많은 것들을 준비해 두고 계획해 두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면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 보십시오. 이렇게 될 때에 우리의 생명을 영원한 죽음 가운데서 건지시고 생명으로 옮기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과 함께 동행하시며 능력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남들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신앙의 눈으로 우리 삶의 주위를 둘러봅시다. 얼마나 많은 감사의 조건들이 있는지요 스펄젼 목사님은 우리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는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신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서 감사할 것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들의 삶 가운데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는지 찾아보십시오. 그렇게 될 때에 감사로 제사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감사의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아름다운 예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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