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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은 유익인가 손해인가 (히 0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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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리 중에는 나면서 부터 타의에 의해 교회 출석을 하고 신앙을 대물림한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전도를 통하여 주님을 알게되었을 것이다. 신앙을 알고보니 당연한 일인줄 알고 열심히 전도를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좌절을 한다.

 2.사람들이 전도에 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그 일이 얼마나 자신에게 유익이 있는지의 득실을 따지게 되는데, 이익이 된다면 선택하지만 유익이 안될 것 같으면 물러서고 만다.

 3.그러면 신앙생활이 왜 손해라고 느껴지는 것일까 한마디로 “해서는 안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재와 간섭이 뒤따르고 때로는 고통도 따르기 때문이다. 바로 고난이 문제다.

 4.우리는 모두 고통의 순례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고난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어떤 사람은 고난을 증오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것을 즐거움으로 견디어 낸다. 그렇게 해서 순교의 영광을 누리기도 하는 것이다.

 5.히브리서가 쓰여질 당시의 교인들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을 겪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더 이상을 “주님을 따를 수 없다”라고 선언을 하기도 했다.6.그래서 이 성경을 쓰신 분은 “왜 인간이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밝히기로 했다.그것은 한마디로 “죄 때문”이다.

 7.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굳게 서 있을때, 우리는 어떤 고난도 이겨 낼 수 있다.

I.예수님은 고난의 선구자 이시다(9-10).

A.죽음으로 자신을 주셨다.

 1.구원 자체가 고난을 통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의 성숙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신자에게 고통은 적이 아니고 “친구”다.

 2.“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즉 예수를 보니”라고 하였다.에수를 본다는 이 주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예수를 떠나서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 또다른 칭호를 쓰고 있는데, 구원의 주라고 불렀다.

 3.“주”라는 말의 실제의미는 “선구자”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이 따라 올 수 있도록 길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신자들을 향하여 자신이 잇는 곳으로 오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4.혹자는 예수님이야 타고나신 분이시니까 그렇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처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지니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고픔과 추위와 유혹이라는 환경적인 제약을 느끼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극복하지 못하기에 문제다.

 B.우리를 온전케 하신다.

 1.10절에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중생을 경험한 그리스도인 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한 “고난”이라는 문을 통과하는 것은 당연하는 말씀이다.

 2.온전케 한다는 말은 “완전하게 한다. 완전하게 만들다. 또는 완료시키다”라는 개념이 포함된다. 사람이 사람다워 지려면 반드시 “온전케 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 과정에 고난과 고통이 따르는 것이다.

 II.신앙의 길은 고난의 길이다(11-18).

A.하나되기 위한 고통이다(11-14).

 1.예수님을 인간과 동일하게 만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난이다. 즉,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이 그분이 틀림없는 인간이었다는 증거가 된다는 말이다. 만일 예수님이 고난을 겪지 않으셨다면 결코 인간을 이해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2.바울의 서신에는 에수님의 고난을 언급하는 중요한 두 부분이 있다. 빌립보 3:10에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라는 말씀과 “그의 고난에 참여함”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죽음은 인간이 겪는 것이지 하나님이 겪는 것이 아니다. 고난도 그렇다. 죄지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고난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모든 것을 격으셨다.

 3.또한 바울의 서신 골로새 1:24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다.

 4.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요 구세주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과 주님을 동일화 한다는 고백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받은 고난을 나도 받겟다는 각오가 포함된 것이다. 그리고 성경 어디에도 예수를 믿으면 고난에서 면제된다는 부분이 없다.

 5.고난은 또다른 유익이 있다. 그것은 고난을 통하여 주님과의 교제를 나누기 때문이다. 고난은 우리에게 두가지의 일을 해주는데, 우리로 하여금 주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도록 도와주는 일과, 우리 자신들로 하여금 자신이 인간이라는 한계를 깨닫고 더 이상의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새하늘과 새 땅의 출연을 기다리게(계21:4)하는 것이다.

 B.종노릇함의 고통이다(14-15).

 1.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없었을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단 한가지가 있는데,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마귀에게 종노릇하며 살아왔다.

 2.그런데 주님을 영접한 지금은 어떤가 주님은 마귀를 제거한 것이 아니다. 다만 마귀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주셨다.

 3.그런데 때때로 죄의식을 느낄 때가 있고 지난날의 마귀에게 종노릇할 때의 영향이 우리에게 나타나질 때가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주었던 상처들, 그리고 슬픔들이 우리로 하여금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C.실패의 고통이다(17).

 1.실패하면 당연히 고통을 받는다. 실패는 실로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를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우리의 관심을 예수님께로 돌리고 있다.

 2.죄를 범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까 엄격하고 용서가 없는 율법의 제사장인가 아니면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는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를 발견한다. 그 주님은 이해가 많은신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를 감싸실 준비가 되어 있다.

 D.시험의 고통이다(18).

 1.그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는 항목이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도 그

런 시험과 고난을 겪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시험에 고통당하는 자들의 도움이 되실 수 있다는 점이다.

 2. 18절을 직역하면 “그는 부르짖는 자에게로 달려갈 수 있다”가 된다. 시험받는다고 생각될 때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오직 주님께 부르짖는 것 뿐이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의 고통을 아시기 때문이다.

 III.고통에는 영광이 따른다(적용:롬 8:23참조).

A.우리의 고난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한다.

B.우리의 고난은 더욱 주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도록 만든다.

C.우리의 고난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닮은 삶을 살고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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