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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 136: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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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6편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장입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 다.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26번이나 계속해서 말씀하시면서 감사에 대한 특 별한 말씀으리 우리에게 하시고 계십니다.

 감사가 없으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감사가 없으면 하나님 께 원망과 불평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26가지의 감사의 내용은 본문을 여 러번 읽으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는 참으로 알기 어렵고 이 속에 그것 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저희 중에서 인도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하신 말씀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악의 세력과 세상의 이런 저런 권세들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통치하셔서 참으로 우리를 해하는 악의 세력은 것 같 으나 실제로는 우리의 구원을 잘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그런 세력은 하 나님이 멸하지 않으시고 잘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는 말씀입니 다.

 우리가 단단히 기억할 것은 주님이 없는 가운데 내게 주신 것을 주의 것으 로알지 못하고 내 것으로 착각해서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하는 그 마음이 자기를 죽이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잘못 된 생각을 꺾고 바로 고치는 것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기억할 것은 사람들은 사람이 높고 존귀해지면 가치를 알고 대우도하고 환영도 하지만 낮고 천해 지면 버리고 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말할 수 없이 비참하게 천해졌고 죄와 사망으로 인 해서 영원한 죽음 가운데 처했을 때 우리 주님이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 를 구출하신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한분 께 전 소망을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이 주면 있고 안 주면 전혀 없습니다.

없는 가운데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 있는 것을 없애는 것은 잠깐 입니다.

 한 순간에 없앨 수도 있고 줄 수도 있는 그 분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되어 주셨고 능력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어서 확실 히 믿어지는 이 믿음을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심히 어렵습니다. 그 러나 우리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주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은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36편에 기록되어 있는 이 계약은 너무 범위가 넓고 크고 영원하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의 마음 속에는 다 담지를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 령이 감화 감동의 충만한 은혜를 받지 않으면 감당하지 못하는 광대한 하나 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이 하나님의 영감은 감동을 받지 아니하 고서는 이 큰 계약의 사실이 믿어지지 아니하고 또 이 계약대로 살기는 심 히 어렵습니다.

 1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라.

'그는 선하시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하신 계약은 자존자요, 완전자 요, 대 주재자요, 주권자가 하신 계약으로서 이 계약은 완전계약이다'하는 말씀입니다. 만일 이 계약이 완전자를 중심으로 하지 아니한 계약이라면 그 계약은 언젠가 완전한 것이 올 때에는 완전치 못한 것은 변동되고 쇠퇴해지 고 맙니다.

 힘과 힘은 대결해서 싸우는 것이 필연이요. 작은 힘은 큰 힘에게 삼키워져 서 예속되기 마련입니다. 장차는 천상 천하에 제일 큰 힘만 존재하고 그 이 하의 힘은 전부 복종을 당합니다. 천상 천하에 하나님보다 더 완전하시고 위대하신 분이 없기 때문에 그분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통일되고마는 것입 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을 똑똑히 가르쳤으니 이것을 우리는 믿어 야 합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는 말씀은 세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째가 사랑의 의미요, 둘째는 아낌의 의미요, 세째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말합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뜻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지극히 아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고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뜻을 가르쳐서 '인자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인자함에 대한 그림자를 찾을 수가 있는데 그것은 모성애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불쌍히 여겨서 사랑하는 것이 아 닙니다. 좋고 기쁘고 좋아 못견디어 사랑하는 것입니다. 좋아 못견디기 때 문에 자기보다 아끼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희생을 하고도 마음에 만족이 되지를 않고 부족을 느끼는 그것이 인자함입니다. 이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인자하심을 다소라도 표현한 것일 수 있습니다.

 여호와게 감사하라.하는 말씀은 하나님이 자존하신 하나님으로만 계시면 우리는 그분을 두려워하거나 감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혹 어떤 사람은 자기 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없는 가운데서 지음을 받았으니까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지음을 받은 것만 가지고는 감사할 이유가 못됩니다. 왜 냐하면 인생은 죄로 인하여 타락했기 때문에 인생으로 나지 아니한 것이 행 복합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모른다면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한 것이 더 불행하고 비참합니다. 짐승으로 난 것보다 사람으로 난 것 이 더 비참합니다. 짐승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그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인 영이라는 실존이 없고 본능만 가지고 있기 때문 에 살다가 죽으면 원소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고통도 근심 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생은 한번 태어나면 다시는 없어질 수는 없는 불멸의 존재로서 영원히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자하심을 받지 못하면 비참하고 차라리 세상에 나지 아니하였으면 좋을 뻔한 사람으로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무엇이 감사하며 무엇이 기쁜 일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주님의 대속공로로 인해서 기쁘고 감사한 것입 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좀 깊게 생각해 보면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없으면 만물중에 인생이 제일 비참한 것입니다. 다른 짐승에게는 물 한방울의 자유 가 없는 불꽃 가운데서 영원히 타야 될 형벌을 주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는 이 비밀을 깨닫고 자기가 인생 된 것이 하도 불 쌍해서 몇 일 동안이나 울고 울면서 고행을 하면서 금욕생활을 하면 인생이 속죄될까 영원한 형벌을 면죄 받을까하여 고행위주의 금욕생활을 했지만 이것은 전부 다 헛일입니다.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면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분으로만 나타난다고 하면 우리가 기절할 만큼 두렵고 떨리기만 할 뿐이지 감사가 없을 것입니다. 그 러나 신.구약성경에 계약을 선포하시고 신실히 이행하시는 그 하나님이 독 생자를 보내어 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영원한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주님이 대신 받으신 그 형벌이 대형의 대속입니다. 우리는 속죄를 입었습니 다. 내가 행하지 못한 것을 주님이 다 행하셔서 우리를 의롭게한 그것이 칭 의를 입혀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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