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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 의지하는 자의 복 (시 8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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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대작곡가였습니다. 그의 많은 작품중에서도 '천지창조'는 하이든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1808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죽기 1년 전의 일입니다. 비엔나 음악대극장에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연주되었습니다. 연주가 끝난 다음에 청중들은 기립해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때 노령의 하이든이 휠체어에 실려서 무대위에 나타났습니다. 이를 본 청중들은 반사적으로 더욱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하이든은 있는 힘을 다해 휠체어에서 일어나 손을 옆으로 저으며 대답했습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자 청중이 잠시 조용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아닙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이든은 주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84편은 지은이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다윗의 시"라고 보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시편은 옛날에 성전에서 성가대가 부르던 "찬양의 시"로서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성전을 사모하는 신앙고백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주를 의지하는 자는 주님 전(殿)에 거하는 기쁨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주의 성전을 지극히 사모한 사람으로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다윗과 같이, 주님 전에 거하는 기쁨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과 하나님 전에 거하는 것을 최대의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서 천 날을 사는 것보다 하나님 계신곳에서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르고 잘사는 것보다 주님을 알고 거지로 사는 것이 더 기쁘다는 것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찬송가 495장의 내용이 바로 이러한 신앙고백일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대표적 인물이 모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애굽나라 왕궁에서 왕자로서, 호화롭게 살 수 있었고 장차 왕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종의 신분으로 있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사는 것을 더욱 큰 기쁨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신약에서도 사도 바울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이 부귀 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예수님 안에서 고난을 택하였습니다. 다음의 말씀은 이러한 결심을 위한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0-21)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
참된 신앙인은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복이 있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어느날 루즈벨트 대통령이 참석하는 워싱턴 교회 목사 사무실에 전화가 울렸습니다. "대통령께서 오늘 교회에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까"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가 교회를 나오기를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해야 되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1) 사람은 예배를 필요로 하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교회에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2)우리의 신앙의 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규칙적인 예배 참여자입니다.
3) 예배는 사랑과 열정을 북돋아 줍니다.
4) 우리는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5) 하나님은 믿음의 공적 표현을 요구하십니다.
6) 교회의 빈 좌석은 비어 있는 마음과 가정에 참종교가 비어 있어 있음을 의미하며, 주일 날을 속되게 하며 결과적으로 영적인 파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2.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축복을 주십니까
첫째,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습니다.
본문 5절의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는 말씀이 공동번역에 보면 "주께 힘을 얻은 후에 순례의 길을 떠나는 사람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다 순례의 길을 떠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힘이 필요합니다. 나그네의 길의 특징은 어떠합니까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이 순간, 순간을 발생하는 험난한 길입니다. 굶주릴 수도 있습니다. 병이 들어서 기력이 쇠할 수도 있습니다. 대인관계의 어려움도 당합니다. 갈림길에서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고민도 하게 됩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나그네의 길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어야지 살 수 있습니다. 이 힘은 세상의 힘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며, 권세의 힘, 체력의 힘, 물질의 힘도 아닙니다. 이 힘은 하나님의 힘이며, 주님으로부터 얻는 힘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 강사 윌버 챠만 목사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80세가 넘은 윌리암 부스 목사를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윌리암 부스 목사는 구세군의 창시자이며, 영국의 빈민 사회층을 위해서 헌신한 영국의 성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챠만 목사가 노령의 부스 목사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부스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한평생을 변함없이 성직을 잘 감당하셨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셨습니까"
한참동안 천정을 바라보던 부스 목사님의 대답이 "제가 비결을 말씀드리지요. 하나님께서 저의 전체를 소유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저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기회가 주어진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소유하시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부분을 다 소유하도록 내어맡긴 것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맡긴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힘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권세의 힘, 물질의 힘이 아무리 강하여도 한계가 있습니다. 씨름계를 주림잡던 이봉걸, 이만기 같은 천하장사도 이제는 후배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를 하여 우리의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정치계를 주름잡던 사람들도, 경제계의 거물들도 세월이 지나면 권력도 금력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은 무한합니다. 인간의 힘은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힘은 한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이러한 신앙공식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승리하며, 자기 힘을 의지하는 자는 실패합니다.
애굽의 바로왕이 종으로 부리는 한 사람인 모세에게 항복을 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는 모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모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권세와 권능때문이었습니다. 자그만한 다윗이 거인이며 완전무장한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다윗이 하나님의 힘을 전적으로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힘을 절대적으로 믿었던 나폴레옹이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고 외쳤지만 그가 세인트 헤레나 섬에 유배되어 죽게 되었을 때, "예수여 당신이 승리하셨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위로부터 힘을 얻어야 합니다. 이 힘은 세상의 어떤 권세자도, 악한 영도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서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앙망하는 자만이 새 힘을 얻을 수 있고,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믿음의 힘, 영적인 힘을 공급받아야 순례의 길을 떠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 6절에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가는 나그네 길은 눈물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는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사막을 지나던 순례의 길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눈물의 골짜기도 지나야 합니다. 세상은 사막과 같습니다. 그러나 주께 힘을 얻는 자는 메마른 골짜기, 사막을 지날때에 생수를 만나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요셉, 사도바울 등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항상 기쁨의 샘이 있었고, 생수가 흘러내렸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과 돌보심의 축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욥을 생각하면서 힘을 얻게 됩니다. 욥처럼 그렇게 고통스러운 눈물의 골짜기를 경험해본 이가 있을까요 욥은 엄청난 고난중에서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겠습니까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힘을 얻어 눈물의 골짜기를 축복의 골짜기로 바꿀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주의전에 나와 주님께 힘을 얻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자기 자신의 문제를 간구하고 해결을 받습니다.
본문 8절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의 사정을 아뢰고 해결을 받는 것입니다. 성전은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곳입니다.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는 구도의 얼굴, 이는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을 핏방울처럼 흘리시면서 간절히 기도하시던 주님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사무엘을 낳기 전, 자식을 달라고 성전에 올라가 기도를 하였는데 얼마나 그 소원이 간절하고 뜨거웠으면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알았을까요
여러분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지금 은혜를 사모하는지 아니면 건성으로 습관적으로 나와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어떤 얼굴을 보여 주시기 원하십니까 주님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얼굴, 간구하는 얼굴, 갈망하는 얼굴을 주님께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심프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나와 대화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인생을 강하고 참신하게 살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하나님을 만나시고 기도의 대화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너는 네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세번째,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좋은 것을 받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입니다"라는 11절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의 해요 방패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해는 어두움을 몰아내줍니다. 해는 모든 만물을 소생케 합니다. 해는 우리의 갈길을 인도합니다. 또한, 방패는 우리를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은혜와 영화를 주십니다. 하나님앞에 나와서 여러분은 구속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즉, 은혜란 값없이 주시는 구원을 말합니다. 구원받을 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건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허락하여 주신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엡2:8-9).
영화(榮華)는 신분의 변화를 말합니다. 옛날 프랑스 군대 사열식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황제가 말을 타고 열병식을 거행하는데 갑자기 말이 난폭하게 달려 황제가 다칠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병사중 하나가 옆에서 뛰어 나오더니 말을 붙잡아 안정시켰습니다. 황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고맙네, 대위" 그러자 재빨리 그 사병이 물었습니다. "그럼 저는 어느 연대 소속입니까 각하!", "나의 친위대일세." 일개 사병이었던 그 군인은 황제가 무의식적으로 붙여준 '대위'란 칭호를 그대로 믿고 받아들여 한 순간에 장교 신분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분 상승도 대단한 일이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변하게 된 것은 감히 견줄바가 아닙니다. "영화를 주셨다"는 말씀이 영어성경에는 "새로운 왕관를 씌워 주셨도다"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에게 왕자의 관을 씌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십니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가장 복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십니까1)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복 있는 사람, 세상에서 참으로 성공한 사람, 승리한 사람은 성전을 사모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는 자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가지고 나그네 길,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 생수를 공급받는 자입니다.
3)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기 사정을 그대로 간구하고 해결받는 사람입니다.
4) 하나님께로부터 구원과 은혜와 영화와 각양 좋은 것을 받아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가장 복있는 사람이요. 지혜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은 오늘 주님께 힘을 얻고 응답을 받아서, 욥과 바울과 같이 눈물의 골짜기를 축복의 골짜기로 변화시키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까지 참된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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