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아브라함의 실수 (창 20:1-18)

첨부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말씀을 쫓아 사느라 정처 없이 나그네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방 그랄에 살게 되었는데 여기서 또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12:12,13)이라고 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지켜 주시고 그를 선지자로 세워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거듭되는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연약하여 실수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이 친히 감당해 주시고 세상 권세 잡은 자들 위에 아브라함처럼 높이 세워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의 실수라기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복음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Ⅰ.다시 실수하는 아브라함(1-)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 살다가(18:1) 남쪽(south country)으로 이사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남쪽으로 이주해서 살게 된 것은 ① 더 좋은 목장을 찾기 위해서요 ② 또, 하나님의 축복으로 갑작스런 풍요를 누렸기 때문에 원주민의 시기를 받아 그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남쪽으로 이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렇게 이사를 하여서 가데스(kadesh)와 술(shur)사이 그랄(Gerar)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랄(Gerar)이란 “거처”라는 뜻으로 팔레스틴 남부, 사해 서쪽에 위치한 조그마한 성읍입니다.(10:19)
여기에 우거하면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소개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먼저는 20년 전에 기근으로 인해서 12:10-20절에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 왕에게 자기 아내를 동생이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이겠습니다.
그랄 사람들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사라를 동생으로 소개받았으므로 그렇게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비멜렉이 그를 취하게 됩니다. 원래 사래는 아리땁고 그야말로 잘생긴 미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아비멜렉 왕에게 숙청 들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왕들은 결혼하지 않은 여인들을 자기 내실로 데려 갈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하시며 현몽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첫 번째 애굽에 내려가서도 아내를 자기 동생이라고 속였을 때 애굽 왕 바로가 모르고 사라를 취해 숙청 들도록 한 그날 밤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12:7) 그래서 바로가 사래를 범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보면 아비멜렉이 사라를 범하지 못합니다. 아비멜렉이 사라를 가까이 아니했다고 했습니다.(4) 또한 대답하기를 “아브라함이 나에게 이복동생이라 하였고 또 그 여인 사라도 오라비라고 해서 왕궁으로 불러 들였지 나는 깨끗합니다(5) 나는 그가 남의 아내인 줄도 몰랐습니다” 합니다.
6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비멜렉을 일찍 자도록 한 것 같습니다. 아비멜렉은 자기 계획을 달리 세우고 일찍 잠을 잤는데 하나님이 현몽 하시고 사라를 범하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현몽하시며 말씀하시자 그는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주여 죄 없는 의로운 백성도 멸하십니까(4) 아브라함도 사라를 동생이라고 하였고, 사라도 아브라함을 오빠라고 했습니다.(5) 그래서 왕궁으로 불러들인 것이지 고의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하자,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네가 온전한 마음(깨끗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알고 너를 막아 내게 범죄 하지 않게 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람은 남의 아내이므로 그 사람을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先知者)니라 하십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하셨습니다.(7)

분명히 아브라함이 속이고 아브라함이 잘못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징계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이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 때문입니다.
① 창세기 12:2절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한 언약 때문입니다.
만약 사라가 그날 밤에 숙청을 들었다면, 그 “씨”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하는 약속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 약속 때문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② 또, 창세기 12: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하는 말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을 타인이 해(害)하면 하나님이 그 타인을 해하시겠다는 그 약속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이 있는 자가 누구냐 돈이 많다고 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서 공부를 많이 한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좋은 부모를 만난 것이나 좋은 신랑을 만나는 것은 육신적으로는 복이나 진정한 복은 하나님의 성도가 되었다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도가 되고 자녀가 된 자에게는 1요 5: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할지니라” 했습니다.
요한 복음 10:28,29절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산 성도가 비록 실수를 하고 때론 잘못을 해도 하나님은 성도 편이시오,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지켜 환난을 면케 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날 밤을 보내고 아비멜렉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신복(신하)을 불러 간밤에 된 일을 일일이 다 이야기하여 주니 듣는 사람이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8)
또,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불러서 말하기를 “당신은 어째서 우리에게 이리 했소! 내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소, 당신이 내게 합당치 않은 일을 했소. 도대체 당신이 이렇게 한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니요 그 이유가 무엇이요”(10) 하며 아비멜렉은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물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비멜렉이란 말은 “아버지”란 뜻인 히브리어 <아브>와 “왕”이란 뜻인 <멜레크>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아비멜렉이란 “아버지 왕” 즉 “왕은 그 나라의 아버지”란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훗일 블레셋 왕들의 칭호가 되었습니다.(21:22, 26:1) “바로”가 애굽의 칭호가 되듯이 아비멜렉이 블레셋의 칭호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 대왕(大王)이 지금 하나님의 볼품없는 유목민에게 벌벌 떨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현몽하시고 하나님 때문에 겁이 나서 이러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어째서 아내를 동생이라고 해서 나를 속이고 아내를 주어 나로 범죄케 할 뻔하였소! 그 이유가 무엇이요 했을 때,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이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고 합니다.(11)
아브라함의 아내가 대단히 잘난 인물이었던 모양입니다. 그야말로 요사이 말로 이국적으로 생긴 국제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2:14-15절 아브라함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아리따움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또 바로의 대신들도 보고 야! 잘생겼다 미인다 국제적인 인물이다 자랑을 하니 바로가 사래를 궁으로 취하여 들인 것입니다. 이번에는 그랄에 가니 그랄 사람들도 야! 잘났다 하여 아비멜렉도 바로처럼 궁으로 취한 것이겠습니다.

아무튼 사라는 인물이 잘 나고, 그 미모가 국제적이어서 남자들이 보면 탐내는 그런 훌륭한 여성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는 곳곳마다 이 아내 때문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내 때문에 자신이 죽을까 봐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애굽에 가도(12:12) 그랄에 가도 사라를 아내라 그러면 자기는 죽이고 사라는 빼앗아 갈까 봐서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불러 두루 돌아다니게 할 때에”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에게 말합니다. “가는 곳곳마다 그대는 나를 오라비라 하시오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입니다” 라고 합니다.

인물도 너무 잘나면 걱정입니다. 또, 우리 교회 남자 청년들에게 부탁합니다. 너무 잘생긴 여자에게 장가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관리하기 힘듭니다. 자매님들도 너무 잘난 총각 고르지 마십시오. 평생 속 상합니다. 적당한 사람에게 가십시오. 아브라함이 가는 곳곳마다 걱정되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이 잘난 것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동생이라고 속인 것은,
① 어디서나 동행 하시며 지켜 주시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요,
② 세상이 하도 험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고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③ 또,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동생이라고 한 것은 전혀 터무니 없는 거짓말은 아닙니다. 사라는 사실 상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에게서 난 이복 누이 동생입니다.(12) 그러나 분명히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입니다. 아무튼 아브라함은 믿음이 연약해져서 자기가 살아남기 위하여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아브라함의 실수라기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복음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Ⅱ.아브라함을 선지자로 세우신 하나님(7, 14-18)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 해 주시고 사라를 취한 아비멜렉을 막아 범죄치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를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7)
1) 7절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실 때 “그는 선지자니라” 하셨습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백성에게 알리는 성경 선생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이방 선지자로 세우심으로 그로 통해 당신의 뜻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은 선지자요 하나님의 종인 것을 하나님이 친히 알리십니다.

2) 또, 7절에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하십니다. 돌려보내야 “네가 살고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죽을 줄 알지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약점을 담당하시고 그를 지켜 주십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노비를 취하여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 아내 사라도 아브라함에게 돌려 보냈습니다.(14)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당신이 좋다고 싶은 땅 어디서나 택해서 사십시오” 이제 아브라함은 마음대로 좋은 땅을 골라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사라에게는 아비멜렉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 오빠에게 은 천개를 주어 그것으로 당신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당신이 깨끗하다는 증거로 삼겠소. 사람들은 당신이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요” 하며 은 1,000개를 주었습니다.

지난 번 기근으로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도 하나님이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고 올라 올 때는 12:16절 바로가 아브라함을 후대하므로 아브라함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습니다 하여튼 육축과 은금이 풍부히 받아서 올라왔습니다.(13:2)
오늘 본문에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성도들이 실수하고 잘못해도 그것을 친히 다 담당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로마서 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한 자에게 이렇게 하신다고 고의로 적을 범하면 큰일입니다. 바라기는 은혜 베풀 때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합니다.

또, 7절을 보십시오.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셔서 아비멜렉 위에 두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도해야 아비멜렉이 살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권위를 세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17,18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했습니다.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해 드린 사건으로 아비멜렉의 가정에 불임(不姙)의 화가 미친 것입니다. 모든 태(胎)의 문이 막힌 것입니다.
아브람함이 이제 기도하므로 이 불임이 제거되고 죽음이 물러 간 것입니다. 이런 이 사건을 통해서 아비멜렉 왕은 아브라함은 선지자요,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종이요,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는 종임을 알게 되었고, 또 아브라함이 기도하면 하지 못할 것이 없음을 아비멜렉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胎)의 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치료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왕보다 높이 세우셨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연약하여 쉬 넘어지며 실수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믿음만 있다면 하나님은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막으시고 감당해 주십니다.
그리고 세상 권세 잡은 자들 위에 높이 높이 올려 세워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찬양 찬양 찬양합니다.

1996.

5. 1

9. 주일 낮 예배 설교.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