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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상한 감정의 치유 (엡 04: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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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감정이 상할 때 터뜨 리는 분노가 있습니다. 그래서 분노 는 우리 속에 타고 있는 불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길이 탈 때 잘 연소되면 빛이 되고 열을 내어서 폭 발적인 힘을 갖습니다. 그러나 잘못 타면 연기만 나서 다른 사람 눈에서 눈물을 내고 주변을 어둡게 하고 주 변을 불살라버립니다. 그래서 인간 이 가지고 있는 감정 가운데 분노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26-27절)
오늘 이 말씀을 세 가지로 나누 면 첫째는 '분을 내어도' 이것은 인 간은 어쩔 수 없이 분을 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죄를 짓지 말며' 분을 내어도 죄는 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안지을 수도 있고 지을 수도 있는데 죄짓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마귀로 틈타지 못하도록 자기가 치유를 해 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분노하는 인간성은 누구에 게나 있습니다. 분노는 하나의 감정 입니다. 분노 자체는 선한 것도 악 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내 속에 타오르고 있는 인간의 감정입니다. 분노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그래서 이 분노가 악한 동기에서 나 오는 분노가 있고 선한 동기에서 나 오는 분노가 있는데 선한 동기는 하 나님에게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 인을 볼 때 진노하십니다. 이것은 선한 분노입니다. 또 하나 불의한 것을 보았을 때 우리 속에 타오르는 분노는 선한 동기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선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 로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분노는 대개 욕구 불만에서 옵니다. 그래서 내 속에 욕구가 불만될 때 표출되는 울화라든지 고뇌, 불쾌, 긴장, 이런 모든 상태가 곧 분노의 상태인데 우 리나라는 대체적으로 이것을 '화'라 고 말합니다. '화'는 불이기 때문에 내 속에 있는 불만이 내면화될 때 화병이 됩니다. 이런 분노를 일으키 는 요인이 가중될 때 분노가 격노로 변해서 살인까지 하게 됩니다.
분노는 그것의 표현이나 작용하 는 대상에 따라 자학적 분노와 타학 적 분노가 있습니다. 자학적 분노는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행동이나, 원 인이나, 책임을 자기에게 돌리는 것 입니다. 그래서 분이 나면 머리를 쥐어뜯는다든지, 가슴을 친다든지, 통곡을 합니다. 이것은 분노를 자기 가 책임을 지고 학대하는 것입니다. 격한 감정이나 행동을 밖으로 나타 내지 않고 마음속에서 억누르면서 참고 인내하는 내성적인 상태입니 다. 성숙한 인격자일수록 평범한 요 인에 의한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 드 물지만 혹 일어난다 할지라도 드러 내지 않고 발을 구른다든지 혼자 탄 식한다든지 하면서 분노를 삭입니 다.
그런데 일반적인 분노는 타학적 입니다. 분노의 책임을 전적으로 타 인에게 돌리고 격한 감정을 다른 사 람에게 드러냅니다. 그래서 물건을 던진다든지, 문을 쾅 닫는다든지, 사 람을 때린다든지, 욕설을 한다든지, 멱살을 잡고 죽인다든지 이런 이런 지경까지 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분노의 폭발을 밖으로 터뜨리면서 다른 사람을 학 대하는데 그러지 않고 내면화할 때 는 이런 징조로 나타납니다. 말을 하지 않습니다. 부부간에 싸우면 분 노를 침묵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 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1년동 안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밖에 초조, 원한, 비통, 증오, 이를 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분노가 어떤 일을 통해서 나타 날 때는 과속을 한다든지, 직장에서 권위에 도전한다든지, 근무를 의식 적으로 태만하게 한다든지, 대개 이 런 것으로 나타납니다. 화가 났을 때 주먹으로 손을 때리면서 '나 화 안났어' 그럽니다. 이것은 화는 났는 데 자기는 모르는 것이죠. 일반적으 로 용납하는 분노가 있는데 운동선 수들이 분노가 나면 그 분노를 운동 경기로 표출하기 때문에 이깁니다. 한국은 축구할 때 일본 사람만 만나 면 이깁니다. 다른 나라와 하면 지 는데 일본하고만 하면 이깁니다. 그 것은 일본은 감정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같은 축구를 하더라도 일본만 하면 밤새도록 악 을 씁니다. 속에 있는 분노를 터뜨 리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받을 때 화가 난 주부는 남편에게 대들지 못하니까 남편이 출근한 후 에 집안 청소를 합니다. 그리고 설 거지를 세게 합니다. 그리고 빨래를 해가지고 남편의 옷을 털 때도 세게 텁니다. 또 옷을 다릴 때도 세게 누 르니까 주름이 칼처럼 잡힙니다.또 어떤 날 남편이 화를 내고 가면 세 탁이 잘 됩니다. 화풀이로 세탁을 하기 때문입니다.
분노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이렇게 드러내는 경우가 있는 데 위장 된 감정들이 많이 있습니 다. '화내는 것은 나쁜 것이야, 무조 건 참아야 돼' 그러면서 참는 것은 위장된 분노입니다. 분노가 위장으 로 감추어져 있을 뿐이지 속에서는 상처가 깊어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 로 위장된 분노는 꼭 우표를 수집하 는 것처럼 수집해서 쌓다가 마지막 한 장이 오면 팔아 넘기는 것처럼 분노가 쌓이다가 어느 사소한 것이 하나 걸리면 그 쌓였던 모든 것이 폭발하게 됩니다. 침묵하는 위장이 있습니다. 화가 났지만 전혀 말을 안합니다. 또 냉소나 비판적인 분노 의 적대감으로 위장합니다. 눈을 흘 긴다든지, 비웃는다든지 하면서 분 노를 위장합니다.
수동적 공격성으로 토라진다든 지, 고집을 피운다든지, 약속을 어긴 다든지, 남의 의견에 무조건 반대하 는 것으로 표출하는 분노가 있습니 다. 분노의 감정은 에너지처럼 축적 되거나 변형되어 존재합니다. 분노 의 감정은 억악하고 그 존재는 부정 해도 용해되지 않는 응어리로 쌓이 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체 내에 지방이 쌓이듯이 분노가 어디 든지 풀지 아니하면 내 속에 쌓여서 자기를 위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축적된 분노가 결국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 게 죄를 짓습니다. 자기 속에 축적 할 때는 병으로 나타납니다.
미국의 권위있는 심리학자 헨리 브랜튼은 모든 비정상적인 사람의 상담을 분노에서 80-90%를 보고 있 습니다.
병이 든다는 것은 무서운 것인 데 제가 관악교회에서 저를 이해하 지 못하는 교인들이 나를 억울하게 할 때 병이 터지는데 치질로 터졌습 니다. 변비가 생기면서 한달만에 치 질이 생겨가지고 병원에 가서 수술 을 받았습니다. 분노가 내 속에 쌓 일 때 어떤 면으로든지 터져야 되는 데 병으로 터졌습니다.
노르만 D교수는 억압된 분노는 당신에게 심한 두통, 여러 가지 병 을 주는데 목이 굳어진다든지, 구토, 위궤양, 설사, 궤양성 대장염, 가려 움증, 피부질환, 천식, 호흡장애, 동 맥, 혈정증, 중풍, 이것이 다 분노에 서 온다는 것입니다. 화를 내든 안 내든 이것이 쌓이든지 표출되든지 이 속에 분노가 생겨서 병을 가져온 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존 헌터라는 생리학자는 이 분은 연구 발표에 늘 이런 말을 했습니다.
화 내면 화 내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
이것이 이 분의 명강 의로 유명한 것인데 마침 그날 따라 강의를 하는데 앞의 사람이 일어서 더니 헌터씨에게 반박을 합니다. 그 런데 헌터씨가 갑자기 분노하면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자 기가 강의한대로 화내는 자가 먼저 죽는다는 것을 임상실험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미움과, 분노를 울화로 터뜨릴 때 뇌출혈, 고혈압, 대뇌동맥경화증, 뇌졸중, 중풍으로 나타납니다. 화내 면 시력이 나빠집니다. 그리고 억압 된 분노는 사고형이 됩니다. 문을 쾅 닫다가 제 손가락이 다친다든지, 기분 나빠서 운전하다가 자기가 사 고낸다든지, 하기 싫은 망치질을 하 다가 자기 손을 친다든지, 이것이 억압된 분노로 인해 자기가 당하는 사고입니다.
우리는 분노가 저지르는 무서운 질병, 악, 죄, 이런 것들을 다 알아 야 됩니다. 성경의 분노가 곧 죄의 출발입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 벨이 분노로 살인이 시작됩니다. 최 초의 범죄가 창세기 4장에서 나옵니 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제 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서 아벨의 것은 열납하시고 가인의 것은 거절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 께서 자기의 것은 거절당하고 아벨 의 것은 열납되니까 얼굴색이 변하 면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들 가운데서 동생을 쳐 죽입니다. 이것이 분노가 저지르는 최초의 죄 악이었습니다.
분노라는 것은 자체는 죄가 아 닌데 이것이 이기적인 미움과, 원한 과, 보복으로 드러날 때 무서운 죄 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 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 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말합니다.
분노는 죄 된 생각이나 행동으 로 발전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 노가 악이 없더라도 해가 지도록 품 으면 결국은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 니다.
악의가 없는 분노, 가령 불의한 것을 보았을 때 분노가 나면 그것으 로 끝나야지 '자기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나쁜놈 같으니라고' 하면서 다음날까지 그 마음을 품고 있으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를 헤치거나 모욕을 줄 때, 돈을 떼었다든지 할 때 속에서 증오심이 타오릅니다. 보 증을 서 주었더니 집까지 날라버렸 어, 직장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퇴출시켜버렸어 그럴 때 분노와 원 한이 사무칠 때 이것을 승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을 잘 조절하지 아니하 면 자기가 결국은 죄를 짓고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 분노를 많이 터뜨 린 인물이 모세입니다. 모세는 세 번 크게 분노를 더뜨립니다. 한번은 청년시대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어서 궁궐에 있을 때 자기 백성들 이 일하는데 애굽인이 와가지고 자 기 백성을 마구 때려요. 그때 민족 적 의분심에서 애굽인을 쳐서 죽입 니다. 그리고 모레 속에 묻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탄로되어서 드디어 모세가 도망을 칩니다. 미디안 광야 에서 40년동안 연단을 받습니다. 그 는 의분심에서 죽였을지라도 그의 분노였습니다.
또 하나는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동안 금식기도 하고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습니다.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는데 밑에서 황금 우 상을 만들어가지고 춤을 추면서 노 래를 합니다. 그때 속에 분노가 치 민 모세가 십계명 석판을 던집니다. 그리고 금송아지를 부셔서 가루로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마시우게 합니 다. 모세가 한 일이 정의로운 의분 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분이 나도 석판을 옆에 내려놓고 '그럴 수 있느냐'고 하면서 발로 차든지 했어야 할 것인데 십계명을 부쉈다 는 것은 모세가 큰 실수를 한 것입 니다.
세 번째는 그가 므리바에서 자 기 백성들이 목말라 죽는다고 원망 할 때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 세에게 이르시되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 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 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민 20: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명령대로 모세가 지팡이를 잡고 반석 위에 섰 습니다. 백성을 보니까 모세의 마음 속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내가 너 희를 위해서 수십년 이렇게 이끌어 왔는데 너희가 끝까지 나를 원망할 수 있느냐' 하는 마음이 들면서 순 간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습니 다. 그래서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쳤 습니다. 반석이 깨지면서 물이 솟아 올라서 백성들이 물은 마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 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 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 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 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
모세는 이것으로서 분노한 대가 를 지불하게 됩니다. 위대한 하나님 의 사람으로서의 축복은 하나님의 거두지 않았습니다. 단 한가지 가나 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드디어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손 들 었습니다. 그리고 느보산에서 죽었 습니다.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한 모세는 결국 그 대가를 받았습니다.
저는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모세가 왜 그렇게 분노가 있었을까 물론 성격상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 질이 있습니다. 모세는 다혈질이었 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성장 과정에 서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왕이 히브리인들이 애굽인의 학대를 받으면서도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까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산파들에 게 히브리 여인들이 출산할 때 여자 면 살려주고 남자면 다 죽이라고 명 을 내립니다. 그런데 산파들이 하나 님을 두려워하여 바로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주었습니 다. 그때 바로 왕이 모든 신민에게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출 1:22) 하고 명령하였습니다.
그 명령이 떨어지고 얼마 안있 다가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그의 용모가 너무 준수한 지라 3개월동안 숨겨두고 있다가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 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그때 마침 바로 왕의 딸이 하수에 목욕하러 갔 다가 모세를 발견하고 궁으로 데리 고 왔는데 보니까 히브리인이라 그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모세의 여동 생 미리암이 얼른 바로 왕의 딸에게 가서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 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출 2:7)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의 유모가 되어서 모 세를 기르게 됩니다. 모세의 어머니 는 모세를 기르면서 말도 하지 못하 는 아이에게 눈을 맞출 때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모세야, 너는 애굽인이 아니다. 천덕꾸러기 인 이 백성의 한맺힌 소리를 들어라 이 백성의 눈물을 닦아야 한다. 너 는 아브라함의 피묻은 자손이다. 네 피속에는 선민의 피가 흐른다.

이런 분노에 찬 모세의 어머니 의 마음이 모세를 만지고 젖을 먹일 때 흘러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 는 어렸을 때부터 분노가 그 속에 잠재되어서 그런 분노를 유발시키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우리는 분노 가 나에게 잠재될 때 죄도, 질병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무서운 결 과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분노가 승화되면 인 격을 폭발적으로 위대한 일을 해내 는 건설적인 힘이 됩니다. 마치 홍 수가 내려서 도시를 쓸어버리면 도 시가 다 파괴되지만 이것을 잘 조절 해서 댐으로 흘러내리면 수력발전이 되어서 수많은 어두운 땅을 환하게 하는 빛이 되고 힘이 되는 것과 같 은 것입니다.
저는 지난 화요일에 순장공부를 하면서 몹시 화를 냈습니다. 화낼 일도 아닌데 화를 냈습니다. 화를 내고 제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습 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원에 들어가 서 잠잠히 묵상하는데 그 묵상하는 동안 성령께서 계속 울게 하셨습니 다. 길을 걸어도, 앉아도, 사람 만나 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왜 이렇 게 눈물이 나올까 무슨 큰 죄를 지 은 것도 아닌데...' 그때 저는 내 속 에 있는 성인된 아동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잠잠 히 주님께 이 자존감의 상처를 치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저는 성령께서 저를 데리고 어린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너 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네 감정의 표 출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알아야 한 다.' 그래서 제 병의 뿌리를 주님께 서 찾아주셨습니다.
저는 어린시절부터 참으로 온순 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번도 부모님 뜻에 불순종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절대 순종입니다. 반항이 없습니다. 형제간에도 다툰 일이 없고 친구들 과도 싸운 일이 없습니다. 군생활 하면서, 또 제가 결혼해서 저희 집 사람과 싸운 일이 없습니다. 가끔 한번씩 있기는 있지만 시시한 다툼 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회하면서 저에게 감추어진 분노가 표출되는데 그것이 꼭 목사와 전도사에게만 표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사와 전도사들에게 말할 때 꼭 화난 음성 으로 말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돌 아서면서 속으로 '내가 사랑하고 같 이 일하는 사람들인데 왜 말을 퉁명 스럽게 할까' 그럽니다. 퉁명스럽게 말해도 그 속에 악의는 없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또 만나서 회의를 하 면 또 퉁명스러운 말투가 나갑니다. 이런 말투가 두 군데에서 나타나는 데 또 한 군데는 우리 아이에게서 나타났습니다.
제가 이번에 기도원에 있는 동 안 그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제가 어린시절을 회상할 때 내 속에 잠재 되어 분노하고 있는 성인 아동이 있 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린시절부 터 잠재된 감정이 의식 속에 쌓여서 그렇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습니 다. 제가 성장과정에서 우리 아버님 은 어른이시고 나는 아이였는데 우 리 아버님이 저에게 그렇게 하셨습 니다.
우리 아버님은 도박을 즐기셨습 니다. 제가 어머니와 함께 여러 번 아버지를 찾으러 밤에 도박장에 간 일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도박 은 잘 하셨지만 따지는 못하고 잃기 만 하셨습니다. 그것도 맑은 정신으 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술만 드시면 도박을 하시기 때문에 우리 아버님 주위를 항상 도박꾼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렇게 도박을 여러 번 했지만 한번도 돈 따 가지고 왔다는 말을 못 들어봤습니다. 도박을 했다 하면 전부 다 잃는데 술이 깨면 돈 을 다 잃어버린 감정이 얼마나 상하 겠습니까 그러니까 속에서 상한 감 정이 자식들에게 화난 음성으로 표 출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 속에 잠재되어 갔습 니다. 그 음성을 듣고 자랐으니까요. 제가 그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제가 화를 낼만한 사람도 아닌데 제 속에 있는 어린아이의 상한 감정이 잠재 되어 있다가 표출되는 것을 알았습 니다.
제가 제 아들에게 공부 못한다 고 세차게 혼만 냈던 것을 기억하고 영국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습 니다.
아이야, 지난날로 돌아가자 혹시 네 아버지가 너에게 언어상 상 처를 준 일이 있으면 용서하고 잊어 다오. 내가 어린시절로 돌아가보니 잠재된 성인아동이 있어서 그런 것 이었더구나. 용서해라. 그리고 우리 이제 새 출발 하자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술 취하시고 길에 누워계시는 아버 님을 등에 업고 오면서 아버지에게 는
아버지, 술 취하시면 안되옵니 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옵 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나 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하는 분노가 타오르는 것입니다. 지금도 혼자 길을 걸어가면서 속으로 '인생 은 이래서는 안돼' 그럽니다.
이 분노가 목사와 전도사에게 일어나고 또 교단을 향해서 일어납 니다. '똑같은 신학을 나왔는데 왜 우리 교단은 안되나' 그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교단이 안되는 것에 대 한 안타까운 마음 때문입니다.
제가 1976년 4월 지금부터 23년 전입니다. 제가 관악교회에 왔는데 교인들이 저를 몰라주었습니다. 그 리고 계속 불평하고 불만하고 심지 어 중학생, 주일학생까지 불평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 말이 그들에게 먹혀 들어가겠습 니까 한번은 제가 밤예배 설교를 하 는데 그 분이 성가대에 앉아 있어 요. 거기 앉아서 제가 설교하는 동 안 계속 뭐라고 불평을 해요. 그래 서 제가 강대상 위에 있던 성경을 들어서 그 사람에게 던졌습니다. 그 때는 제 마음속에 참을 수 없는 분 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때 제가 아무 리 잘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서 목 사로서 제 인생은 끝났습니다. 그래 서 교회를 사임하고 청계산에 가서 6개월동안 기도했습니다.
그 후에 한신교회를 개척하고 12년이 흘렀습니다. 제가 혼자 사는 것이 불쌍하다고 시골에서부터 데리 고 온 집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분이랑 같이 15년동안 있었는데 얼 마나 속을 불편하게 하는지 제가 편 할 날이 없었습니다. 게으르죠, 말도 잘 안듣죠, 사명감도 없죠, 그래서 우리 식구는 데리고 오지 말자고 했 는데 제가 불쌍하다고 데리고 왔습 니다. 제가 받는 스트레스란 말로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한 날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제가 계단을 내려오는데 이 집사가 백지를 휴지통에 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서 달려가서 그 분의 뺨 을 때리고 발로 찼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수술하고 얼마 안되어서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수술한 부 위에 압박감이 오면서 수술한 부위 가 터지려고 하면서 손이 마비가 오 는데 큰일났어요. 그래서 제가 우리 식구에게
나 혼자 어디 좀 가야 되 겠다고 말하고는 한탄강에 있는 대 한 수도원 절벽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가 나를 불편하게 해서 내가 화 를 냈지만 이것은 내 문제다.' 하고 는 하나님 앞에 통곡하면서 기도했 습니다.
주여, 나를 용서하소서.
하고 기도를 내려오는데 마음은 통 곡하면서 눈물로 기도해서 어느 정 도 풀었지만 평안함은 없었습니다. 제가 내려오는데 밑에 집사 하나가 저를 보더니
목사님이십니까
그 래요. 그래서 그렇다고 했더니 안수 해달라고 그래요. 그래서 안수 기도 를 해 주었습니다.
주여, 이 여종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하면서 간절히 기도했더니 그 분이 방언이 터지면 서 통변을 하고 예언기도를 하는데 그 예언기도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사랑하는 종이십니다. 주님이 아끼는 종이십 니다.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말 씀의 종으로 세우셨습니다. 주님께 서 '담석증이 나았으니 안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분이 예언기도가 다 끝난 다 음에 저에게 그래요.
목사님, 섭섭 하게 생각하지 말고 잘 들으세요. 목사님, 주님께서 회개하라고 하십 니다. 회개하셔야 됩니다.
제가 그 말을 들으니까 겁이 나요. 제가 무 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회개 하라고 하니까 겁이 났습니다.
무 슨 일인데요

주님께서 화내지 말라고 그럽니다. 목사님 화내면 명 대로 못삽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다시 올라가서 간절히 기도하고 내 려왔습니다.
'성인 아동이 네 안에서 울고 있다.' 제 눈에서 눈물이 수없이 흘 러나오고 또 나옵니다. 울어야 할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단 하나 '네 속에 있는 성인 아동이 울고 있 다.' 여기에서부터 치유를 해야 한다 는 것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뭘 해 달라고 기도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 다.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왔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잠잠히 십자 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죽었노니 내가 너의 것을 다 치유했다. 다만 너는 믿고 하나님께 간구해라'
우리는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고 주님께서 친히 바울을 통해서 감동 하신 것과 같이 우리는 분을 내어도 죄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더 크게 확대하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분노의 감정이 악 의에서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고 기 도해야 됩니다. 잠언 16:32절에서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제 십자가로 가십시다. 주님 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을 보십시 다. 주님께서 자기를 해치는 자에게 는 분을 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과 무리들에게는 진노하셨습니다. 그리 고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짐승을 사 고 팔 때 채찍을 드시고 진노하셨습 니다. 그러나 자기를 괴롭히는 자에 게는 분을 내지 않습니다. 보통 사 람들은 자기를 해치는 자에게 분을 내고 공의로운 일은 내버려둡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를 해치는 자, 못박는 무리들에게는 아무런 분도 내지 아니하고 용서하십니다. 그래 서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분노의 대가를 지불합니다. 십자가에 죽으 면서 대가를 지불합니다. 내 속에 있는 남을 향한 분노, 증오심, 이것 은 악한 것인데 이것을 극복하기 위 해서는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 다. 이것이 별세의 치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죽으시 면서 죄인들을 용서하십니다. 예수 님이 십자가에 달려있는 그 모습으 로 우리가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스 데반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유대인들 을 향해서
목이 곧고 할례받지 못 한 자들아
하면서 책망할 때 저들 이 이를 갈고 달려들면서 스데반을 돌로 칠 때 스데반은 인자 예수를 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봅니 다. 그리고 그들을 용서하고 그 용 서로 분노하는 무리들의 대가를 지 불합니다. 만약에 분노의 대가를 보 복으로 한다면 같이 던져서 같이 죽 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죽으면 서 그 대가를 자기가 지불합니다. 용서의 주님을 봅니다. 십자가에 달 리신 주님을 봅니다.
우리 속에 타오르는 모든 분노 와 감정을 치유하는 길은 십자가에 달린 주님 속으로 우리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의 분노 의 대가를 지불하시고 '내가 너를 위해서 네 대가를 지불하고 죽나니 내 안에서 살아라'하실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 서 사신 것이라

혹시 여러분 속에 분노가 탈 때 기도하시고 십자가로 달려가 주님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혹시 이기지 못 하는 분노, 화가 있으면 그 출처를 밝혀내십시오. 그래서 그것을 가지 고 주님께로 올라가십시오. 우리 주 님은 이 종의 어린시절의 것을 가지 고 나를 붙들어 십자가에 매달린다 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은혜가 성 도들에게 임하셔서 분을 내어도 죄 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 지 말며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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