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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롭고 산길 (히 10: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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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2천여 년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주변에서 놀라운 기적( 이적, 이변)들이 여럿 일어났습니다. 분명히 한낮(정오-오후3시)인데도 사방이 칠 흑같이 어두워진 일(정확하게 말하면 해가 빛을 잃은 것, 눅24:44), 예수님이 운명 하실 때 큰 지진이 일어난 일, 여러 무덤들이 터지고 그 속에서 시체들이 살아난 일, 등등 ... 이런 기적들은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을 위해 발생되었습니다.(이적)

첫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형수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의 죽음과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 광경을 통해서 예수님은 평범한 사형수가 아니라, 당신이 평소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형집행관이었던 백부장 등이 그 광경을 다 지켜본 후 뭐라고 고백했습니 까 마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둘째로,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설명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 하면,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왜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피흘려 죽었는가 그 이유를 밝혀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칠흑같은 어둠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의 심각성을 상징합니다. 즉 예수님이 죽음은 그 심각한 죄와 저주를 대신 짊어지신 대속의 죽음임을 상징합니다.

 이런 여러 기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예, 그렇습니다. 성전의 휘장(커텐)이 순식간에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진 사건입니다. 마27:50-51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

 이해를 돕기 위해서 구약 시대의 성막, 성전의 구조를 잠시 설명드립니다.

동쪽으로 문이 하나 나 있습니다. 그 둘레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습니다. 문을 통과 해 들어가면 뜰 안에 번제단, 그 다음에 물두멍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두 칸으로 된 장막이 서 있습니다. 첫째 휘장을 열고 들어 가면 성소(聖所), 둘째 휘장을 열고 들어가면 지성소(至聖所)입니다. 즉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쳐져 있었습니다(출26:33). 성소에는 정면에 분향단, 왼쪽에 등대, 오른 쪽에 떡상이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법궤(언약궤,증거궤)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만나가 든 항아리, 십계명이 적힌 돌판,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뚜껑은 속죄소(혹은 施恩座)라고 부릅니다. 그위로 정금으로 만들어진 그룹 천사 모형이 있습니다. 그래서 속죄소와 그룹 천사 사이에서 하나님이 만나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성막)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 상징물이므로 가장 중요한 데가 지성소요, 그 중에서도 속죄소입니다. 그 중요한 지성소를 가리우고 있던 휘장이 찢어진 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아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던 날이 유월절이었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굉음과 함께 휘장이 찢어졌던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우리의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우선, 휘장의 높이는 10m도 넘었습니다. 두께도 어른 손바닥 두께만큼 됐습니다. 더욱이 당시 사람들에게 그 휘장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휘장은 항상 드리워져 지성소를 가리우고 있었는데, 1년에 단 한번 대속죄일(유대력 7월 10일)에만 열렸습니다. 게다가 아무나 열고 들어가는 게 아니고, 선택된 대제사장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함부로 들어가면 죽는다고 했습니다(레16:2). 그날에 짐승의 피를 갖고 들어갑니다. 자기와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무서운 것은 대제사장이 그렇게 제사를 드린다 하여도 까딱 잘못하면 그 사람도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출28:34-35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방울 한 석류 한 금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갈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러니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어쩌면 순간적으로 지성소 안쪽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가리면서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나중에 이런 기적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순간과 일치하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그들은 한층 더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기적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혀 줍니다. 20절.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살이 찢기시고, 피 흘려 죽은 것을 가리켜 휘장이 찢어진 것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새롭고 산 길이 열렸습니다. 그 길을 따라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럴 수 있습니까 19절. 형제들아 우리가 ... 즉 구약 시대의 제사장 같은 특수 계층의 사람들이 아니라, 누구라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이면 다 이 길을 따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입니까

[1]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이란 사실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닮았을 뿐 아 니라, 하나님과 만나며, 대화하고 교제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거기에 인간의 참된 행복이 있고, 그것을 가리켜 성경은 생명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에서는 생물학적인 생명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생명은 동물적인 육체의 생명 이전에 영혼의 생명이라는 겁니다. 이런한 영적 생명이 없으면 인생은 그어떤 것을 소유해도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육체적인 죽음 이후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영혼이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죽음은 이사가는 것이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어디로 이사가느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막연하게 내세가 있다 해도 나 정도는 선하게 사니까 봐 주겠지 ...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착각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마음 깊은 곳까지 살펴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다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렘17:9-10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예> 어떤 사람이 꿈 가운데 하늘 나라에 가 보았답니다(우화). 하늘 나라에 가보니 천사가 큰 책을 그의 앞에 갔다 놓습니다. 이것이 무슨 책이냐고 물어 보니까 그 책 가운데는 당신이 세상에 있을 때 행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고 대 답했습니다. 첫 장을 들추니까 잔 글자로 가득 씌어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게 무요하고 물으니까, 천사가 대답하기를 당신이 세상에 살 때 행동으로 지은 죄요라고 합니다. 그 다음 둘째 장을 들쳐 보았읍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첫 장보다 더 잔글씨로 가득 씌어져 있었습니다. 이건 또 뭐요 물어 보니까 천사가 대답하기를 이것은 당신이 세상에 살 때 말로 지은 죄들입니다라고 합니다. 말로 지은 죄는 행동으로 지은 죄보다 더 많은 모양입니다. 그 다음 세째 장을 들여다 보니까, 둘째 장보다 더 잔 글씨로 더 많이 기록해 놓았읍니다. 이것은 무슨 기록이요 하고 물으니까 천사의 대답이 이것은 당신이 마음 가운데서 생각으로 지은 죄요라고 했습니다. 생각으로 지은 죄는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장을 또 들춰 보니 이번엔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고 새까맣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니까 이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라고 천사가 대답했답니다.

 여러분! 이게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육체적인 죽음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죄로 인한 영적 죽음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비참한 운명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이 세상에서 대충 편안하게 살면 그만인 것처럼 오해합니다. 그런 상태가 완전한 만족도 아니지만, 설사 그렇다 하여도 그게 얼마나 지속됩니까 잠깐일 뿐입니다. 자신의 영혼의 문제, 그리고 내세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려고 합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를 구석에 처박아 놓고 불안한 상태로 지내는 것과 같습니다.

 예> 빠스칼의 빵세를 보면, 디베르띠스망(divertissement)이란 말이 나옵니다. '오락'이란 뜻. 본래 divertir(외면하다, 못본 척하다, 잊어버리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인간이 자기 존재의 비참함을 일부러 외면하고 다른 데 몰두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술을 먹고 잊으려고 합니다. 그런다고 현실이 달라지나요 아니죠. 잠시 잊어버릴 뿐입니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더 비참해질 뿐입니다.

모든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데, 그것이 영생이요, 그것이 참 기쁨과 만족인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엉뚱한 데 집착을 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구원한 길이 아닙니다. 오직 구원은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위해 영생과 축복, 천국을 준비해 두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2] 바로 예수님의 대속의 피로 새로운 길(유일한 길), 산 길(생명의 길)을 열 었습니다. 그 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휘장을 찢듯이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찢으시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 셨습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도 없다고 했습니다(히9:22). 피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피흘림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죄인인 내가 피흘려 죽어야 하는데, 대신 예수님이 죽은 것입니다. 모든 죄 문제를 청산해 주셧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죄사함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당당하게! 19절의 '담력'이란 말은 '발언권'을 갖고 ..

구약의 제사장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지성소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믿는 성도들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말 합니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줍니다. 롬8:15-16.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신분을 뭐라고 말씀합니까 벧전2:9 왕같은 제사장! 그냥 제사장이 아니라, 왕같은 제사장! 또 인간 조건에 따라 차별하는 게 아니고, 누구라도 믿는 자는 다 제사장! 만인제사장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고 자유스럽고 복된 제사장이란 말씀입니다. 사실 그렇죠. 구약 제사장은 1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벌벌 떨면서. 또 짐승을 도살하고, 피를 뿌리는 등 아주 복잡하고 번거롭게 ... 그러나 우리는 어떻죠 항상 마음만 먹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아무런 거추장스러운 절차없이 이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마치 아들이 아버지에게 구하는 것처럼 기도하고 간구할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풍성함에 참여하게 됩니다.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월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성도들마저 이 놀라운 특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데서 행복을 구합니다. 즐거움을 구합니다. 예> 이솝 우화-서로 놀렸지만 파리는 꿀 단지에 빠져 날개 쭉지에 꿀범벅되어 죽어감. 하루살이는 둥불 주위를 돌다가 타서 죽어감.

 아무쪼록 우리들은 영적인 일-기도와 말씀 묵상, 성도의 교제 등-에 힘써서 진정한 기쁨과 영혼의 만족을 누리며 살아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을 삼으셨습니다. 새롭고 산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만 우리만을 위한 게 아니란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왕은 어떤 사람입니까 백성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개인적으로도 하나님께 나아가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자의 역할도 합니다. 중보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양편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즉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들의 중간에 서서 양쪽을 유익하게 합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 대신하여 일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사람을 대신하여 일합니다. 그것은 각각 무엇입니까

① 하나님(예수님)을 대신하여 사람에게 하는 일:전도, 사랑의 실천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새로 열어 놓으신 생명의 길로 많은 사람들이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많은 사람을 인도하는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고후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손을 대신하여 구제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②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하는 일:중보 기도(용서, 축복) 하나님을 이 세상을 향해 진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봐도 엉망인데,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면 오죽하겠습니까 당장이라도 이 세상을 심판하실 마음이실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사장으로 중간에서 중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하나님이 비록 죄인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자비와 축복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예>아브라함(창18:-롯을 구함), 모세(출32:)

부디 예수님의 피로 열려진 새롭고 산 길로 담대히 나아가 영생의 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제사장적 사명을 깨달아 복음을 전하고, 사랑으로 섬기고, 우리의 형제들과 세상 사람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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