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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히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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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변은 청중에서 오고 좋은 경기는 관중세 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장차 나타날 영광과 스타디움을 메운 관중들보다 더 무수한 증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다면 우리는 보다 더 신앙의 경주를 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할 때 열(熱)을 잃기 쉽고, 자세가 흐트러지기 쉽고, 정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우기 자신의 하는 일에 시련이 오고 확신이 없을 때 낙심하며 흔들리기 쉽지 않습니까 히브리기자는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힘과 용기와 위로와 격려와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이러므로…란 11장에서 열거된 믿음이 선진(先進)들의 발자취를 의미하는데, 하늘을 꽉 메운 구름처럼 무수한 증인들이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었으니 훌륭한 경주자와 같이 신앙의 경주를 경주하라는 뜻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훌륭한 신앙의 경주를 경주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과 더불어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첫째,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은' 우리의 육체와 생활과 세상에 대한 과한 애정과 집착과 염려를 의미하고, '얽매이기 쉬운 죄'란 경과 습관과 친구나 이웃들에 의하여 쉽게 죄에 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욕심에 이끌려 소돔성 가까이 나아 갔습니다. 후에는 소돔성안에 들어가 아예 그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영적 도덕적 가치가 전혀 고려되 않았습니다. 결국 소돔성이 불탈 때 모든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롯의 아내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뒤돌아 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고, 두 딸들은 소돔성에서 보고 배운대로 아비에게 술을 먹이고 차례로 동침하여 모압과 밴암미를 낳아 부끄럽게도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창 19:).
성도 여러분 우리를 붙들고 있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들이 무엇입니까 명예와 권력과 돈에 대한 지나친 애착염려욕심, 세상의 사치와 허영과 향락의 추구, 절제하지 못하는 TV주초각종 오락성적쾌락의 추구, 미움혈기다툼험담불평의 습관과음과식신앙의 안일 등등, 이와같은 것들이 아닙니까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너는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하십니다.
충남 홍성에 의사 장로님이 계시는데 이분이 기도하다가 신령한 세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안내자의 뒤를 따라 가는데 넓은 길과 좁은 길이 나타났는데 자세히 보니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은 많고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적고 드물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유유히 활보하고 걸어 가는데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은 전부 보따리를 들었거나 메고 애를 쓰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짐인가 보았더니 돈을 가지고 가느라 그러 하더랍니다. 의사 장로님은 사람이 지옥가는 것은 돈 때문에 어렵구나 하고 그후부터는 돈을 귀하게 썼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원하십니까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죄의 짐을 벗어 버리십시요. 걷는 자는 뛸 것이요, 뛰는 자는 달려갈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며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라(사 40:31)하셨습니다.

둘째,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 말씀합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10자녀를 잃고 양과 소며 나귀와 약대가 심히 많고 종도 많았으나 천화(天火)로 소멸되고, 갈대아 스바사람에게 노략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부인은 도망가버리고 욥 자신은 악창이 나서 가장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하고 이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욥은 이전보다 갑절의 복을 받고 140년을 살며 아들 손자 4대를 보았습니다(욥 42:12).
성경은, 보라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하여기시는 자니라(약 5:11) 하셨습니다.
아람왕이 군대장관 나아만은 엘리사의 말대로 요단강에서 그 몸을 일곱번 잠그었을 때 깨끗함을 얻었고,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일곱번 기도하였을 때 3년 반만에 하늘은 비를 주었습니다.
만약에 저들이 인내하지 않았다며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로 보건대 그리스도인들이 인내할 이유는, 인내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축복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내함으로 치료와 응답을, 온전한 믿음과 영원한 소망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웹스터는 그의 사전을 만들기 위해 36년을, 시세로는 완벽한 웅변술을 위하여 30년동안을 매일 친구들 앞에서 연습을 했고, 깁본(Gibbon)은 '로마제국의 멸망'을 쓰기 위해 26년간을 일했습니다. 그들이 세상에 잠시 있는 어떤 것들을 위하여 어떻게 인내하였다면 우리의 구원과 영원한 소망을 위하여는 얼마나 더 인내하여야 하겠습니까
후진보행(後進步行)이라는 경기가 있습니다. 뒤로 걷는 경기인데 지금까지 가장 끈기있게 걸은 선수는 미국 텍사스주 아빌린 출신의 브레니L. 윙고.(1895.1. 24일생)입니다. 그는 1931.4. 15-1932. 10. 24 일에 걸쳐 켈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로부터 터어키의 이스탄불까지 8000mile(12895km)을 뒷걸음으로 걸었습니다.
후진보행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있습니다. 왜나혐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떠한 장애물이나 고난이 있던지간에 인내로 참고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뒷걸음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뒷걸음치는 것은 30cm 뒷걸음이 아니라 지옥을 향하여 수천 수만 km 물러가는 엄청난 뒷걸음 입니다. 성경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하십니다.

세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라 하십니다.
'바라보라'는 뜻은 옆눈을 팔지 않고 한 촛점을 향해 주의 깊게 응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울 여의도에 있는 63빌딩은 동양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데 이 건물은 철골 구조물로서 큰 철주를 가로 세로 나사로 조립해 올라갔다 합니다. 이 일을 담당한 비계공은 수십수백미터나 되는 고층건물을 올라가 나사를 조이고 용접을 합니다. 현장을 방문한 한 사람이 비계공에게 무섭지 않습니까하고 묻자, 우리도 인간입니다. 왜 무섭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겐 단지 비결이 있을 따름이지요. 그 비결은 아래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토록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두려운 나머지 심장마비를 일으키듯이, 현기증이 나서 떨어지든지, 고공공포증에 의하여 손이 떨려 작업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람소리와 파도를 보고 물속에 빠져 갔고(마 14), 아담은 하나님께 따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바라보고 따 먹더니 죄의 사람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골리앗을 보고 겁에 질린 나머지 전의를 상실하고 뒤로 물러갔으며, 다윗은 목욕하는 여인을 바라보다가 범죄하여 일생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 보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의 차이만큼이나 큰 차이를 가져 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같이 하늘나라 사다리를 오르고 있습니다. 만약 세상을 바라보고 땅의 것들만 바라 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풍파속에 빠지고, 범죄하고, 실패하고, 종내는 멸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신앙의 비결은 다른 것들로부터 눈을 돌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온전케 하시며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승리와 축복과 영원한 상급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입니다.
성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하면 훌륭한 신앙의 경주를 경주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지켜보며 끊임없는 위로와 격려를 보내느 무수한 증인들을 기억합시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들을 벗어 버립시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 합시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봅시다.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義)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운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 고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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