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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질서 (고전 14: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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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기본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만일 설계 없이 건물을 짖게 된다면 모든일이 뒤죽박죽이 되고 말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있어서도 설계와 계획에 의한 질서가 없다면 혼란과 문제와 분열 의 장소가 되고 말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특별한 문제중 하나는 공예배시의 무질서였습니다(1 1:17-23). 왜 그러한 무질서가 일어났느냐 하면 성도들이 은사를 받아 그 은사를 사용함에 있어서 교회를 세우고 형제들을 돕는데 사용하지 않고 자기만족을 위해서 만 사용하는데 있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과시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예배에 기여하는 바가 다른 형제보다 더 중요하다 고 스스로 생각이 된다면 다른 형제의 맡은 직분을 다 할때 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중간에서 가로막고 무시하는가 하면 또, 자유분방한 여자들의 언행심사가 고린도교 회의 문제를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특히 방언을 말하는 자들이 적절 하게 절제하지 못하고 감정적인 체험을 그대로 표출하므로 혼란을 가중시켰던 것입 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고린도 교회의 혼란과 무질서에 대하여 책망하며 교훈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바르게 유지되고 성도들의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질서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교회의 질서에 관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예배의 질서(26-28절).1)예배의 질서는 모임에서 부터 시작됩니다(26절).

본문 26절에 너희가 모일 때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다 하나 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예배와 개인적인 찬송, 그리 고 개인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 습니다. 그러한 예배는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주며 고요한 묵상 속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해줍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개인적인 예배 뿐만 아니라마음을 합하는 공적인 예배 도 요구 하십니다. 마음을 합한 열심있는 기도, 온 정성으로 영광 돌리는 찬양, 그 리고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아낌없이 바치는 성도들의 헌금을 기뻐하시고 요 구 하십니다. 이렇게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주님께서는 함께 하시며 친 히 역사 하십 니다.

이스라엘이 법궤를 빼앗기고 제사장 마저 잃어버린 암단한 시절에 이스라엘 백성 들이 미스바에 모두 모여 회개하며 기도하였을 때에 다시 블레셋을 물리치고 구원 받는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삼상7:5-11).

또한,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가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합심하 여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에 놀라운 성령강림의 역사가 나타났으며(행2:1-4), 다시 모여서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하여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에 옥문이 열 리고 베드로가 기적적으로 구출되는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행12:1-19).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개인적인 예배는 자신과 하나님 과의 바른 관계의 정립에 유익을 주지만 합심하여 모여서 드리는 예배는 타인을 향하여 구원을 비밀을 전파하는 능동적인 자세와 능력을 갖게해 줍니다. 활활 타오 르는 불이라 할지라도 흩어 놓으면 곧 식어 버리지만 꺼져가는 불씨도 한데 모으면 다시 크게 일어나는 법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성령의 불길과 은혜의 불길이 임합니다. 사탄의 세력을 깨뜨리는 권세가 모이는 곳에 임하는 것입 니다.

2)성도의 모임은 질서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26-28절).

(1)각각 받은 은사가 다르기 때문에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26절).

본문 26절에 각각 찬송 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은사는 어느것 하나 소홀히 여기 거나 무시될 수 없는 중요한 것들입니다. 모두가 다 주님께로 부터 받은 은사들로 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은사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각양 다른 은사 들이 온전히 조화를 이루며 고루 활용되기 위해서는 무었보다도 질서가 요구 됩니 다. 혼란 속에서는 창조적인 역사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질서 있는 사역 안 에서 비로소 모든 은사들이 제 기능을 발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에는 적당한 순서가 있으며 그 순서를 따라서 겸손히 자신의 은사를 타나 낼때에 하나님 의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2)질서있는 예배는 타인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27절).

본문 27절에서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사람이 차 서를 따라 하고하였습니다. 이것은 타인을 인정하는 겸손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 기가 생각하는 것만이 진리이고 자신의 받은 은사만이 최고이며 최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교만과 아집으로는 어떠한 조화도 질서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자는 도리어 질서를 해치며 다른 성도들을 좌절케 만들 뿐입니다. 그러므로 질서있는 예 배를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제일이라는 편협된 아집과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 고 자신의 마음을 열고 타인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와 생 각들을 인정하고 겸손히 받아들일 때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질서의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3)질서있는 예배는 자신을 죽이는 인내와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28절).

본문 28절에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나 반드시 해야할 말 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고, 교회의 유익이 되지 않을 때에는 참고 인내하며 절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내와 희생과 절제 없이는 교회의 질서가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자 신의 때를 기다리며 타인을 앞세우는 인내심이 없이는 교회의 질서를 이룰 수가 없 습니다.

 2.은사의 질서-덕으로 세울 것(29-33절).

당시 고린도 교회는 초대교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특정한 예배 순서가 없었기 때 문에 무질서를 초래할 위험성이 많았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질서 의 하나님이요, 화평의 하나님임을 들어 교회의 질서와 덕 세우기를 가르쳤습니다.1)교회에 덕이 되는 은사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신앙의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마르다와 아리아의 행동에 서 나타난 것처럼 어떤 사람은 봉사에 중점 을 두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집회나 기 도에 중점을 두기도 합니다(눅10:38-42).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기의 신앙의 방법이 최고이고 전부인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신앙의 방식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다 같은 동역자요, 형제로 인정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항상 말씀에 의지해서 말씀데로 사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언제나 질서 속에서 덕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교회에 덕이 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지적되고 있는 은사는 방언과 예언의 은사로서 말에 관계된 은사들입 니다. 말은 혀를 사용하는 것으로서 작은 것이지만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지체 중의 하나입니다. 그 작은 혀가 그 사람의 인격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말에 실수가 없다 면 온 몸에도 굴레를 씌울 수 있다고 한 야고보의 말씀과 같이(약3:2) 말에 진실하 고 덕이 있으면 그는 현명하고 온유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에 덕이 없으면 그는 경솔하고 박덕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성도는 말에 덕 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말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고 선한 말만 해야 할 것 입니다. 예언하는 자도 방언하는 자도 그 혀를 잘 통제하여 성도들의 심령을 살리 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므로 덕을 세울진대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며 위화감 을 조성하며 거만을 드러낸다면 아무런 덕도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3.남녀의 질서-여성의 처신(34-36절).

초대교회 당시 일반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매우 비천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음 이 전파 되고 교회가 세워 지면서 차츰 여성들도 남성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진리의 교훈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각종 행사와 활동에 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고전11:1-6). 그러나, 엄격한 가부장제에 익숙해 있던 유 대인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교회의 질서를 혼잡케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여성들은 공적인 예배에 있 어서 잠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교회의 어떤 활동에서 조심해야 하는 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1)여성은 교회의 공적 예배시에 잠잠해야 합니다(34절).

본문 34절에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가 여성들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뜻으로 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성이나 여성의 구별이 없이 다 하나입니다(갈3:28). 그래서 여성도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예언이나 방언을 할 수 있었습니다(고전11:5). 행21:9절에 보면 빌립의 네 딸들도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문 가운데서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의미는 교회의 공중 예배 때에 여성들이 공적인 발언을 통하여 남성들을 가르치고 주관하는 것을 금한 것입니다. 이것은 딤전2:11절의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 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라는 바 울의 가르침과 그 맥을 같이합니다.

이것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절대적인 우위나 여성에 대한 인간적인 무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예배의 질서를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교훈인 것입니다. 그러 나, 바울의 이러한 권면이 공중 예배에 국한 된 것이지 그 외 시간에서의 활동까지 를 무조건 제한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는 남편 이 아내에게 신앙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답변해 주고있는 실 정입니다. 이것은 여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배우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 지만 이것이 자칫 남편을 앞에서 조종하는 빌미가 된다면 창조의 질서를 망각한 행 동이 되어 그 가정은 곧 불화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말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로서 혹시 남자보다 더 많이 알고있는 어떤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앞에서 드러내지 말고 뒤에서 나타나지 않고 도와주는 조력자가 될때에 참 다운 질서와 화평이 정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공적인 자리에서 여성이 교 회의 활동에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보편적인 일로 되어 버렸을 때에 창조질 서적인 차원에서 여러가지 부작용이 야기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여사 사가 있었던 것처럼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지도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경우도 있다 볼 수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공중 예배에서 여자가 잠잠해야 하는 것은 보편적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2)여성은 남성에 복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34절).

본문 34절 하반절에서 오직 복종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창3:16절에서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고전11:4절에 남자 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해서 복종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가 그러하며 창조의 순서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딤전2:13-14). 이러한 복종에 대하여 남성은 여성을 희생적으로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복종은 여성 이 남성에게 손해보고 밑지는 행동을 감수해야 한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남성과 여 성의 관계를 대립의 관계로 이해하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 지지 않는 것입 니다. 여자의 의무는 남편에 복종하는 것이이며, 남자의 의무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건부적인 다시말해 상대방이 그 의무를 다할 때에 비로소 자기 의 의무도 다하는 상대적인 관계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이 명령과 법은 사람이 세운 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법이기 때문에 남편이 무지 막지하고 아 내가 이기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입 니다. 각자의 의무의 잘잘못과 칭찬과 보상을 상대방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께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선 여성으로서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권 신장 운동가들은 쟁취하여서 여성의 권리를 찾으려 하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권 위로 주어지는 의무와 권리가 없으므로 여성 스스로가 모든 것에 책임지고 스스로 의 활로를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거기에는 진정한 쉼이 없으며 끝이없는 투쟁의 연속일 뿐입니다. 투쟁으로 상대방을 일시적으로 굴복시키는 것은 가능할 지 모르나, 그것은 태풍 전야의 고요함일 뿐입니다. 진정한 권리와 평등과 평화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나 여자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합 니다.

<결론>(37-40절) 교회는 질서가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교회의 직분에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직분 에 대한 존중이 있고 그 한계가 명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때에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질서의 하나님으로무터 이루어 질 것입니다.

또한, 은사에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은사는 개인의 만족이나 자랑이나 과시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각 성도들을 섬김으로 유익과 덕을 끼쳐 성도들의 신앙을 성숙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만일 은사 를 받은 자들이 그것을 겸손한 마음으로 선용하지 못한다면 도리어 책망과 징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본문 40절 말씀처럼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해 야합니다. 교회가 질서 유지가 잘 되어질 때에 각 지체들이 균형있게 발전하게 되 는 것입니다.

사랑을 따라 은사를 행하고 질서따라 직분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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