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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라 (사 40:1-11, 막 01:1-8, 벧후 03:8-15)

첨부 1


저는 지난 시간에 ‘인생은 기다림’이라 정의한 후에, 우리 기독교인은 공통적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려면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인이 지켜 행해야 할 본분을 잊지 않고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명의식을 잘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입니다. 막연하나마 좋은 미래가 열렸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살지만, 그 좋은 내일을 위해 오늘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그 사명을 잘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외면하고 있습니다. 즉 성도의 본분을 망각하고 살면서 천국에만 가려는 몰염치한 분들이 있습니다.
한 사나이가 사막을 여행하던 중에 길을 잃었습니다. 그는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한 채 사막 한 가운데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마침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넥타이 장사꾼이었습니다. 그는 “넥타이 하나 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나이는 “뭐라고요 당신 지금 제 정신입니까 목말라 죽게 된 사람에게 넥타이를 사라니”하면서 따지듯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사나이에게 “넥타이가 당신에게 꼭 필요할 겁니다. 넥타이를 하나 사십시오”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나이는 화가 나서 “집어치워요! 그리고 당장 꺼져버리시오! 지금 나에겐 시원한 냉수 한 사발이 최고야! 내게 지금 넥타이는 아무 소용없어!”하고 소리쳤습니다. 넥타이 장사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다음의 말 한마디를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후회하게 될 텐데…”
그는 갈증을 참으며 앞으로 더 걸어갔습니다. 저녁나절에 되었을 때쯤, 그는 커다란 식당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주차장에는 고급 승용차가 죽 늘어서 있었고,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사나이는 급히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외쳤습니다. “제게 우선 마실 물 좀 주십시오. 그리고,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먹을 음식도 좀 주십시오!”
그러나, 사나이는 영문도 모른 채 종업원들에게 쫓겨나야 했습니다. 사나이는 항변했습니다. “아니,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왜 이러십니까” 그러자, 종업원들은 말없이 식당 문밖에 세워둔 팻말을 가리켰습니다. ‘정장 차림이 아닌 분은 입장할 수 없습니다.’ 그 사나이는 결국 물도 음식도 먹지 못한 채 식당 앞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넥타이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머지않아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하라!’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사막에서 넥타이를 사라’는 것처럼 아주 쓸데없고 무익한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지, 주께서 언제 오신다고 그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것인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우리에게 ‘항상 깨어 기도하라’니, 무슨 정신 없는 소리인가! 이렇게 항변하고 싶은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그렇지만, 이사야의 말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그는 ‘모든 인간은 풀 포기처럼 허무하고, 인간의 모든 영화와 권세도 들의 꽃과 다른 게 없다(사40:6)’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이처럼 ‘한 포기 풀과 같은 인생은 곧 마르고 시들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영원하다(8)’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지금 갖가지 일들로 인해서 바쁘게 살고 있지만 머지않아 죽게 된 운명인 것입니다.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 그리고 멋 부리고 뽐내며 출세하는 일 등, 이런 모든 일들이 한 순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미래를 바로 내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설계(設計)가 되어 있어야, 오늘을 올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래에 대한 바른 전망(비전)을 가져야,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바로 알고 바로 선택을 하며, 그 결과로 올바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현실문제에 급급해하거나 안주합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 어느 정도는 짐작하면서도, 미래에 되어질 일들을 애써 모른 체 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자신에게 닥쳐올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미처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 잘 살면 된다’는 식으로 하나님의 길을 외면한 채 세상 길로만 빠져들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인생을 가리켜 ‘거친 사막’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생이 사는 세상도 ‘거친 사막’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어느 길로 가야 살길인지, 그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과 그런 사람들에게는 ‘항상 깨어있어 주님 맞을 준비를 하라’는 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합니다. 그야말로, ‘광야에서 넥타이를 사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1.그런 사람들이 주님께서 찾아오실 길을 예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세례 받고자 온 사람들에게 ‘너희는 주께서 가실 길을 광야에 뚫어놔라. 거친 사막을 평평하게 다듬어, 주께서 통과하실 큰길을 닦아라(막1:3)’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회개하고 세례 받아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요컨대, 세례 요한은 ‘아무런 준비 없이 주님을 맞이할 수 없다. 그러니,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자기 생각과 세상 욕심에 묶여 살았던, 그 옳지 못한 생활태도를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고 있는지요
①거칠고 고집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고집스런 마음을 버리지 않고 살다가 결국 멸망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한참동안 고난 당하면서도 그 잘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사야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백성을 구원하러 오실 것이니, 주님 맞을 준비하라’고 말입니다.
늦게나마 이 말씀을 깨달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릇된 과거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진심으로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서 종살이하면서도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만 원망하던 사람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까닭에 고향에 돌아갈 꿈을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타향에서 종살이하다가 이국에서 한 줌의 흙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 중에서도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사는 불행한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꿈을 저버린 채 살고 있습니다. 즉 예수를 믿는 이유와 목적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그냥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②그러기에,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 믿기 이전과 다름없이 원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기보다는 자기 고집에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자기 의(義)가 강해서 타인의 말은 잘 듣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만이 옳고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려먹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들은 특히 자신의 허물을 거의 발견하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이 무슨 잘못을 범할 때에 그걸 잘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늘 평안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항상 불평불만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은 거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비타협적이고 비협조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③그러기에, 그런 사람들의 인생은 사막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속한 세상도 자연히 사막과 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허물과 잘못을 범하게 마련인데, 그걸 용납하지 못할 경우, 그런 사람이 있을 곳은 이 세상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그런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 틀려먹은 세상인 것입니다.
그처럼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정직하게 살아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타인의 잘못을 문제삼으며 세상 탓만 하다가, 바로 자기 자신이 지탄받아야 할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이 오셔서 이루시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하나님께 그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받게 될 경우, 그런 사람은 남의 허물을 좀처럼 들춰내거나 문제삼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면을 발견하려고 애쓰면서, 그 부족한 점을 고쳐 살고자 하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애써야 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고 있으면서 제 역할을 잘 감당치 못할 경우, 그런 사람은 자신만 불완전한 신앙생활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 때문에 나 자신이 신앙생활을 온전하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스승이신 주님만을 바라보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실망을 주 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①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 핑계 댈 게 아니라,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진실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이루면, 우리는 세상을 다시 보게 됩니다. 비록 겉보기에는 악인들이 이 세상을 주도하는 것 같지만, 정작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주의 뜻에 따라 살려고 애쓰는 다수의 의인들이 보이지 않게 선한 삶을 살고 있는 까닭에, 이 세상은 존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이 바로 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엉터리로 한다고 해서 분개하거나 불평한 일이 아닙니다. 먼저 내 속에 있는 거칠고 고집스런 마음을 제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겸손히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성실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라’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좌절하거나 실망하는 일없이
②주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첫째 단계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항상 나를 앞세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앞서 진행하기 전까지, 우리는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다가, 주님께서 앞서 가시면 우리는 겸손히 그의 뒤만 따라가야 합니다.
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두 번째 단계는, 자신이 죄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자기를 항상 돌아봐야 합니다. 남이 잘못하는 것 가지고 문제삼으려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그 허물과 잘못을 고쳐 가는 일에만 전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타인이 잘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입니다.
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세 번째 단계는 이웃과 평화롭게 사는 일입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될 때에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각자 자기 생각과 주장을 버리고, 말씀 중심으로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이런 단계를 거쳐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다 보면, 천국은 이미 우리 가운데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가운데 오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만나뵙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의 오심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주님 맞이할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③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고집에 따라 살 경우에는 실패와 허무만이 가득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기쁨과 평화가 가득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주님의 뜻에 따라 의견의 일치를 이루어 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40장 11절 말씀에 ‘목자가 자기 양떼를 돌보듯이,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먹이시고 그 품에 안아주신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말씀을 믿고 주님을 따르게 된다면, 어찌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겠습니까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산다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따뜻한 사랑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교회가 먼저 이런 천국이 되도록 합시다. 아니, 그 이전에 우리의 가정이 이런 천국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아니, 그 이전에 우리 마음에 이런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남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우리 모두가 함께 맞이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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