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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을 즐거워하라 (롬 0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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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일 우리를 역동적인 예배, 살아있는 예배에 우리를 참석하게 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저는 복음을 즐거워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요즘 간절한 기도제목중 하나는 주님! 내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선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저의 기도의 간절한 소망중 하나인데, 여러분! 저희 교회는 신학적 바탕이 복음주의, 혹은 장로 개혁주의 바탕에 서 있습니다. 이 복음주의 바탕에 서서 사역을 하노라면 가끔 저희들이 비난에 직면하곤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구원받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 복음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 우리는 영원한 보증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쵸 근데 이제 그렇게 하다 보니까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죄를 짓도록 안주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복음주의가 개인주의적인 이기주의의 복음주의가 되어가지고 사회적인 정치적 구조에 대해서 말도 못하고 그냥 개인적으로만 끝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대해서 우려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또 어떤 시각들은 제가 보니까 이런 시각들도 있습니다. 은혜를 너무 강조하다보니까 그 은혜가 값싼 복음이 되어서 거룩한 삶에 대한 수고와 애씀을 망가뜨리는 것 아닌가 죄악을 묵과하는 것이 아닌가 뭐 그런 비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 중에 일리가 있겠습니다만은 그러나 저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과 복음의 능력이 그렇게 약하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정 복음의 비밀과 복음의 은혜를 깨달았다면, 복음의 능력을 소유했다면 얕은 물가에서 헤엄치는 정도가 아니라 복음의 깊고 깊은 바다에서 목욕할 수만 있다면 저는 사람들이 달라지고 새로운 영적인 체험이 넘쳐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확신합니다. 요즘 저희 새벽부흥회에 영적인 역량이 넘치는 것입니다. 어제 제가 이메일을 받았는데요, 요즘 새벽부흥회에 와서 본당에 들어올려면 새벽 2시 반 3시에는 주차를 해야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티켓을 받습니다. 티켓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올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2시 반 3시에 이 근처에 술집에 뭐 주차를 하는데 요즘 저희들은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강남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클린 강남 클린 소사이어티 제목을 가지고 요즘 저희들 기도하고 있는데 밑에 주차를 하니까 아마 거기 술 먹고 나오는 검은 옷을 입은 검은 아저씨들 알죠 전폭이 아니라 뭐뭐라는 것 있지 않습니까 그분들이 나오면서 야 요새 왜 이리 난리냐 그러면서 얘기를 하더래요. 요새 왜 이리 난리냐 하면서 얘기를 하더래요. 옆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깍두기 아저씨가 뭐라고 그러냐면 18일 날 끝난대. 아-제가 그 예배를 보고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요. 정말. 아니 깍두기 아저씨들도 18일 날 끝나는걸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복음의 능력이 그렇게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회가 어려울수록, 저희들이 14일 대학생들 전도 집회를 앞에 놓았습니다만은 제가 오늘 대학생 전도 집회를 위해서만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사회가 어려울수록 정말 흔들림이 많을수록 여러분 영적으로 기본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운동하는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은 그 역기라든지 벤치 프레스 올리는 분들 얘기를 한 번 들어보십시오, 저도 한 번씩 들어보면은요, 무거운 물건을 올리면서 몸에 힘이 들고 그럴수록 꼼수를 쓰면 안 됩니다. 이거 올리시는 분들 오히려 힘든 물건을 올릴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정자세로 돌아가야 됩니다. 반듯해야 합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다고 몸을 비틀다보면 근육이 무리가 갈수도 있고, 어렵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회가 힘들어 질수록 정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기본의 능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사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하여튼 저는 저의 부친이 저와 나이차가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장남이니까요. 제가 첫 울음을 울어 부칠 때 우리 아버지가 20대 후반이라고 하면 말 다했지요. 그런데 그러니까 저를 완전히 스파르타식으로 교육을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어릴 때 저한테 성경 안 읽으면 아침 없다. 저는 노바이블 노 블랙퍼스트라는 말을 영어는 아니었지만 그때 제가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어릴 때 성경을 은혜로도 읽었지만 저는 성경을 생존의 문제로 읽었습니다. 성경 아주 익숙했고, 제가 초등학교 6학년 졸업할 때 주일 학교 열심히 했다고 교회에서 저에게 상을 주었는데 무슨 상을 주었느냐 하면은 웨스트민스터 대 소요리 문답서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이것은 장로교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하튼 제가 어릴 때 예수를 믿었지만 제가 이제 서울 와서 공부를 하면서 스무 살쯤 되었을 때 제가 섬기는 대학부에 막 열심히 해도 뭔가 마음에 이렇게 영적인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요즘말로 하면 쉽게 말하면 대학부에 와서 월례회나 총회를 하고 이렇게 열심히 활동도 하는데 제자 훈련을 통한 영적 재생산의 구조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성경을 매일 읽어도 말씀과 교제를 통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스무 살 때 쯤 그때 제 친구 하나가 이화여대 안에 가면은 다락방이 있는데 거기에 주일 오후에 성경 공부하러 가자고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좋다! 가자 그래서 제가 가서 늦봄과 초여름 사이었는데 가서 막 가 가지고 한 8명쯤 되어서 소그룹으로 성경을 공부하는데 첫 시간을 제가 잊을 수가 없어요. 정현형제. 그 리더가 저한테. 네! 혹시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그렇게 묻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제가 스무 살 그럴 때 내 나이보다 성경을 많이 읽었고 성경에 대해서 외우는 부분도 많았고 성경에 대해서 익숙했고,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웨스트민스터 문답서를 받았으니까. 어쨌든 간에. 그런데 그때 제가 구원의 확신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래서 없다 할라니까 너무 존심이 상해가지고 있다고 그랬어요. 있다고 그러니까 그러면 어떤 말씀이 근거가 되어서 구원의 확신을 하게 되었냐고. 그때 제가 성경을 많이 읽었고, 많이 익숙했고, 성경고사, 퀴즈에 익숙했지만, 어떤 말씀이 근거가 되어서 구원의 확신이 되었냐고 물었을 때 할 말이 없었어요. 여러분! 그해 여름은 괴로웠네. 그래서 막 성경공부하면서 떼굴떼굴 구르면서 그해 여름에요. 제가 오늘 본문 롬5:1-11절까지 이 본문을 내가 나중에 깨달으면서요. 너무너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어요. 비 오는 날 밤에 삼각산에 올라가서 미친 사람처럼. 남이 보면 완전히 미쳤지요.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매우 귀중한 피로다. 이 복음에 은혜를 눈을 연 다음 너무너무 좋아가지고. 그래서 그때 내가 깨달은게 뭐냐면 나는 지금까지 복음의 형식과 껍데기는 있었는데 복음의 내용과 질에는 눈이 열리지 못했구나! 나는 교리는 잘 알았지만, 소위 말하면 교리적인 복음주의자였기는 하지만, 내가 생명의 능력을 가진 복음주의자는 아니였구나! 소위 생명의 능력으로 고백하는 그런 복음주의자는 아니였구나! 그걸 깨닫고 정말 그래서 롬 5:1-11절 말씀을 가지고 얼마나 감사가 되던지. 그래서 제가 다는 아니지만 제가 받은 은혜 다는 아니지만 조그마한 한 조각이라도 같이 나누면서 오늘 성령이 주시는 복음의 즐거움을 주시는 저와 여러분이 회복될 수 있는 축복주시기를 바랍니다. 롬5:1-1절까지 이 헬라어는 한 본문에 한 패시즈가 있습니다. 10여절 되는 동그라미에서 동그라미까지 한 본문을 선택할 때 마다 그 본문에 제일 키가 되는 동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롬 5:1-11절까지 가장 핵심이 되는 동사가 뭐냐하면 11절입니다. 11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5장 11절입니다. 같이 합독하겠습니다.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뭐하느니라 즐거워하느니라!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또한 뭐하느니라 즐거워하느니라! 즐거워 한다는 말에 줄을 그으시기 바랍니다. 즐거워 하느니라! 그 즐거워한다는 말이 오늘 11절 전체의 핵심 동사입니다. 이것을 받쳐주는 도와주는 것이 2절 보니까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어떻게 합니까 즐거워하느니라! 3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옵니까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즐거워하나니. 그러니까 복음을 깨달았는가 복음의 능력을 아는가 그러면 즐거움이 따라올 것이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즐거움이 따라 올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왜 복음 안에서 즐거워 할 수 있는가 그 이유를 구원의 참 의미를 깨달으면, 구원이 무엇인가 구원의 참 의미를 깨달으면 복음 안에서 계속 즐거워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 구원은 어떤 측면이 있는가 하면은 우리 롬 5장 1절을 보겠습니다. 1절을 보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뭐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다. 구원의 첫 번째 측면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면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원래 절망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소망이 없었던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의 부끄러운 수치의 빚쟁이 장부가 이제는 예수님께로 이전되었다는 것이에요. 우리들 앞에 있는 모든 부채 항목이 예수님께로 전가되었다는 것에요. 그것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모든 생명의 능력, 권세, 놀라운 축복들도 우리에게 전가되었다 이 말이에요. 할렐루야! 그런데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이 말이 조금 추상적입니다. 이 추상적인 용어를 조금 더 구체화 시킨 것이 오늘 본문 롬9절입니다. 오늘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말을 이와 같이 대구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5장 9절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그랬습니다. 똑같이 구조가 같지요 1절에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 9절을 보니까 그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말을 쉽게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피는 레위기 17장에 보니까 생명입니다. 피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왜 이 생명인 피가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우리가 모든 사람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그랬습니다. 죄의 값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생명의 문제가 우리에게 다가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에 보면요 누구든지 예수의 피가 생명이기 때문에 피의 생명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 내용들이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말을 좀 쉽게 설명을 하면은 예수의 피가 우리를 덮어주어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그냥 우리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를 통하여 우리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것입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출애굽 할 때에 마지막 재앙이 애굽의 장자 죽음이었습니다. 천사가 죽음의 칼을 들고 집안에 장자들을 죽음을, 생명을 앗아 갔습니다. 그랬는데 이스라엘 민족들은 모두가 다. 뭐지요 문설주에다가 문 입구 대문이 있는 문설주에다가 뭘 발랐습니까 양의 피를 발랐습니다. 양의 피를 보는 그 순간 칼을 든 죽음의 천사가 그 피를 보면서 그 집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지 아니하고 피를 보는 순간 넘어갔다. 그래서 그 절기가 무슨 절기지요 유월절. 유월이라는 말은 passover 넘어갔다라는 말입니다. 이것들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가지고 한 그 상징적인, 혹은 실질적인 그 의미가 무엇인가 그 안에 도덕적으로 애굽사람보다 더 못 되먹은 사람도 있고, 그 안에 애굽사람보다 더 인격적으로 문제되는 자식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양의 피 때문에 천사가 넘어갔다 이 말이에요. 오늘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서 변하지 않은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예수의 피를 덮어서 구원하실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이 피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피가 가져다 준 엄청난 효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롬 8장 1절을 보면 이렇게 나와 있지요.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무엇이 없느니라고요 정죄함이 없나니. 우리가 잘 알지요. 무죄선언입니다. 그 다음에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능력이, 생명의 성령의 법이 뭐냐 그게 바로 피의 법이예요. 예수님께서 히브리서 10장에 보니까 한 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려주셔서 더 이상 인간의 피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 제가 인도의 켈커타에 갔을 때 마더 테레사가 운영하는 자비의 집에 가보고 싶었어요. 가는데 마침 그 200M 앞에 뭐가 있냐면 흰두 사원이 있었습니다. 인도 캘커타에 있는 힌두사원은 유명한 사원입니다. 그래서 제가 갔는데요. 그 시간에도 뭐가 있는가하면 아침에 수십 마리의 염소와 양의 목을 쳐가지고 하여튼 힌두성전 옆이 피로 흥건한 거예요.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보니까 악령의 세력이 꽉 잡아 가고 있었어요. 제가 가기 며칠 전에 미국에서 온 선교사님들이 집차를 타고 온 가족들이 있었는데 그의 피에 잘못된 , 오늘날 이 시대의 양들의 피를 가지고 이방신을 하는 그 사람들이 정신이 나가가지고 아마 악령의 영향을 받았겠지요. 그래서 밤에 집차 안에 있는 선교사 가정들을 불을 질러서 선교사 가정을 죽였습니다. 그것이 외교문제로 비화할 정도로.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이방신의 무지몽매한 이방신의 동물들의 피가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 번 만에 드린 예수그리스도의 영원한 피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는 더 이상 세상적인 동물의 피를 드리지 않아도 될 만큼 능력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뭡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피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몇 년 전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제가 섬겼던 교회에 제가 주일 3부 예배를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가는데 갑자기 옆에서 고등부 전도사님이 쫓아 올라와가지고. 목사님. 목사님! 왜 큰일 났습니다. 뭐가 큰일 났습니까 뭐가 큰일 났습니까 지금 어떤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인데 엄마 아빠가 갑자기 이혼하는 바람에 정신적이 충격을 받아가지고 그냥 정신병이 아니라 그냥 귀신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애가 거품을 물고 난리를 치고 그렇게 하니까 옆에 고 3아이 친구가 교회 다니는 아이인데 너무너무 불쌍해 가지고 차에 싣고 교회에 왔는데 고등부 예배에 예배드리러 왔는데 그런데 얘가 교회에 처음 오니까 귀신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얘가 막 요동을 치고 막 그런 거예요. 그래서 애들을 울면서 어쩔 수 없이 전도사님이 예배를 드리다 쫓아 내려가 가지고 애를 위해서 막 기도를 해 준거예요. 주님! 귀신이 쫓겨나게 하옵소서! 여러분! 귀신들린 사람 알지요 쫓겨나게 해 달라고 막 기도를 하는데 이 귀신들린 아이가 전도사님을 딱 쳐다보면서 너는 안 돼. 그러더래요. 전도사님이 진짜 가슴이 철렁해 가지고 내한테 쫓아와 가지고 목사님! 나는 안 된다고 하는데 어쩝니까 목사님! 대신 가서 어떻게 좀 해달라고. 그래서 내가 지금 3부 예배 사람들 많이 계시는데 그러면 내가 설교안하고 거기 가서 그거 해야 되겠나 어떻게 하면 좋지 야! 나 어떡하면 좋아 그러면서 속으로 나도 안 된다고 하면 어쩌냐 완전히 담임목사! 능력이 다 날아가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전도사님!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어떻게 할까요 목사님! 그 순간 넌 안 돼. 그러는 순간 그래 나는 안 돼. 그래서 예수의 피가 필요하다. 어쩔래. 와! 그래서 내가 예수의 피가 필요하다. 어쩔래. 와! 그러라고 그랬어요. 그 다음에 이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음이라. 선포하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예배 마치고 내려왔더니 전도사님이 쫓아와가지고 목사님! 목사님! 왜 나갔어요. 나갔어요. 나갔어요. 그 이후로 몇 달간 고등부가 100여명 모이다가 몇백명 모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능력입니다. 다시 한 번 한국교회에 예수의 피의 복음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이 피의 복음의 능력이 있으면 우리 부패한 심성을 새롭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그렇게 무능한 종교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구원의 참 의미, 예수의 피로 참 의미를 깨달을 때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밝고 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구원에 어떤 측면이 있는가. 1절 뒷부분에 이렇게 나와 있지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뭘 누리자고요 화평을 누리자. 그러니까 하나님과 나와 화평케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안에서 평강을 누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평강, 평안을 누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왜 이 하나님과의 화평과 평화의 관계가 중요하냐면 5장 10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0절이 9절과 똑같은 부연설명과 대구를 이루고 있는데 10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함께 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화목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써는 더욱 그의 살아계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아멘. 왜 하나님과의 평화가 필요합니까 10절에 보니까 하나님과 우리가 뭐가 되었다고요 원수가 된 거에요. 하나님과 우리가 원수가 되었기 때문에 복음의 은혜를 깨달으면 그 원수 된 자리에서 하나님의 화목 사상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peace we got.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예배에 나온 저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평화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과의 평강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본래 우리가 어떻게 됩니까 허물과 죄로 죽어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원래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밑천은 하나님과의 원수입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역적질한 역적집안의 자녀가 영문도 모르게 유배당해 가가지고 계속 역적의 자손으로 남는 것과 똑같습니다. 박씨의 자식은 박씨가 되는 것입니다. 원래 박씨로 소명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원래 그러니까 그런 겁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 밑천인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은혜를 통하여 원수 된 자리에서 새로워지게 하시고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우리가 갖는 한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적으로 골프를 치고 무슨 드라이브를 하고 샤워를 하고 좋은 집을 사고 뭐 여러분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어 보십시오. 아무리 애를 써도 인간이 갖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때문에 갖는 불화 때문에 생긴 몇 가지 한계를 결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불화관계 때문에 생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죄 문제 해결할 수 없고, 허무 문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허무 때문에 찾아온 공포의 문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작심삼일의 문제, 여러분 며칠은 하지만 작심삼일, 인간은 대개 부패한 인간의 본성 때문에 잘 안 되는 것이에요. 물론 우리교회는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 40일은 가는 것이겠습니다만은 해결이 안 됩니다. 죽을동 살동 노력해가지고 하여튼 공부 열심히 해가지고 명문대학 나오고 애를 쓰고 일가를 이루고 또 여러분 정말 고생고생고생 해서 사업을 일구어서 삶의 정상으로 올라가 보십시오. 거기에 뭐가 있는지. 인생에 애를 쓰고 수고하고 고생하고, 고생하고 해가지고 삶의 정상으로 올라가면 우리가 기대했던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꼭대기에 올라가면 허무한 것입니다. 누가 거기에 배설물을 쌓아 놓았습니다. 아직 이해가 안가시죠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진정 소중한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평화인 것입니다. 이 평안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제가 영국 가서 영국 사람들 보고 당신네 나라 언제 제일 좋았냐 언제가 제일 귀했냐고 하니까 처칠과 함께 2차 세계대전 마지막 종 딱 치고 이제 2차 세계대전 평화의 소리가 울렸다. 이제 평화다. 다 끝났다고 곳곳마다 사원에서 교회에서 종소리 날 때 평화 종소리가 날 때 영국이 제일 좋았대요. 옛날 어른들 우리 일제시대 때 대동아 전쟁하면서 공출하라는 것 놋그릇 받치라고 하고 쇠그릇 받히라고 하는 것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저는 그런 것도 다 압니다. 일제시대 말기에 공출하라고 할 때 쇠붙이 받히라고 했을 때 저희 할아버지 세대에 있는 분들 가운데 교회 종도 다 받히라고 해 가지고 근데 종을 안 받히고 다른데 숨겨 놓았다가

8.15 해방되는 날 삼천리금수강산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도다. 그 종 두드릴 때 최고였다는 거예요. 그분이 누구라고 꼭 말씀 드리지는 않겠어요. 하나님 오늘도 복음의 능력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들 삶에 평화의 종소리를 울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하나님과 나와의 은밀한 비밀의 언어가 될 수가 있습니다. 평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평화의 종소리가 우리 맘속을 울리게 되면 이 땅의 있는 더 좋은 것 갖는 것도 좋지만 더 소중한건 주님과의 더 나은 관계가 내 삶에서 더 소중하다고 믿고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구원의 참 의미는 2절에 이와 같이 나와 있습니다. 2절!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어디에 들어감을 입었으며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습니다.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습니다. 구원의 세 번째 참의미는 무어냐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는 측면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가는 측면을 얻는다. 말이 조금 어렵습니다. 영어로 하면 조금 쉬운데요. We are standing in grace. 이렇게 되있습니다. 우리가 서있는데 어디에 서 있냐 은혜 밑에 서있다 이 말이에요. 할레루야! 우리 모두가 은혜 밑에 서있다 이 말이에요. 저는 오늘 예배오신 여러분의 삶의 배경을 다 모릅니다. 어떤 분은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분도 있을 거고 어떤 분은 최근에 예수님을 만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새벽 부흥회의 능력 때문에 아내에게 잡혀가지고 오신 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많이 소유한 분들도 계시고 경제적으로 힘든 분도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많이 그런 분도 있을테고 그렇지 않으신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자리는 건강이 참 좋으신 분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건강이 힘든 분들도 계신지 모르겠어요. 남녀노소, 빈부귀천, 유무식을 막론하고 제가 하나 아는 것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 배경을 다 모르지만 우리 모두가 공감대 형성하는게 있습니다. 그것이 뭔지 압니까 우리가 어떤 배경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할 형벌이 면제되는 것입니다. 사형선고가 면제되는 것입니다. 마땅히 받아야할 형벌이 중지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지요.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의 비유 아시죠 돌탕 들어보셨습니까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 돌아온 탕자가 자기가 아버님 주신 돈을 완전히 낭비하고 허랑방탕해서 엉망으로 살다가 마지막에 돼지하고 같이 주염 열매를 먹으면서 인간이 내려갈 수 있는 마지막 자리에까지 내려갔습니다. 근데 갑자기 하늘의 별을 보면서 생각을 하다가 내가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아니 차라리 우리 아버지 집에 돌아가서 일꾼으로, 품꾼으로 쓰임 받는 것이, 머슴으로 있는 것이 더 낫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자기의 몸을 추슬러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서 자기가 품꾼으로 쓰임 받게 해달라고 하려고 돌아가는데 아버지가 멀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 아들을 보면서 쫒아 나와 가지고 입을 맞추고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 안아주면서 아들아, 아들아 죽었던 내 아들이 살아서 돌아왔구나. 그럴 때 아들이 뭐라고 했어요 아버지 난 이런 대우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난 차라리 일꾼으로만 써줘도 만족합니다. 아버지 난 괜찮습니다. 그럴 때 무슨 말 하느냐 너는 내 아들이라. 죽었다 살아난 내 아들이야. 그러면서 그 아들의 몸을 씻겨주고, 새 옷을 입혀주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내 아들이 돌아왔으니 집안에서 잔치를 하자. 송아지를 잡아라. 살찐 소를 잡아라. 은혜가 무엇입니까 그 아들이 잠깐 동안이라도 화장실에 들어갔다던지 조용한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정말 자기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막 죽고 싶었을 거예요. 돌아오기 전에는 돼지 주염 열매로 배를 채우면서 그때도 죽고 싶었을 거예요. 그 때는 진짜 죽고 싶었을 거고, 지금 아버지가 자기를 그렇게 대우해 주는 순간 아-탁 죽고 싶은데 그 죽고 싶은 건 뭐냐 좋아서 죽고 싶었을 거예요. 죽고 싶은 수준이 다른 거예요. 은혜가 무엇입니까 돌아와서 잔치 하면서 자기는 자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자기를 그렇게 대우해 주는 것이 너무 좋아서 아버지 나 죽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은혜인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정말 알 사람만 알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5장은 하나님의 은혜가 영광스럽게 펼쳐진 장인데요, 냉정하게 따지면 돌아온 탕자가 주인공이 아니라 은혜주시기 위하여 상거가 먼데 동거 밖에서 그 자식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그 기다리는 아버지가 누가복음 15장의 복음의 핵심입니다. 자격 없는데도 불구하고 기다려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던지 모두가 다 받아 누린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아주 잘 설명하는 곳이 로마서 4장 4절 말씀부터 8절 말씀입니다. 로마서 4장 4절로 8절. 여러분 4장 찾는데 힘드시지 않죠 다 찾겠습니다. 옛날에는 장수도 없었죠. 다 붙어있었는데, 로마서 4장 4절로 8절 말씀 다같이 또박또박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함께요.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라. 일을 아니 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7절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8절,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함과 같으니라. 아멘. 4절 보니까 일하는 자에게는 열심히 일해가지고 삯을 받는 사람은 그걸 은혜로 안 여긴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내가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6절에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김을 받는 사람의 행복, 이것이 뭐예요 이것이 은혜에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로부터 의로 여김을 받는 자가 갖는 행복, 이것이 은혜에요. 우리는 이러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 복음의 피의 은혜의 능력을 우리가 얻을 만큼 자격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복음의 깊은 신비에 들어가 보면 나는 정말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 여기셨을 때 7절과 8절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려주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8절 너무 중요하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시는 그 사람은 참으로 복되도다. 오늘 이 자리에 주님은 모두를 위하여 선언하십니다. 내가 예수의 피 때문에 너희의 죄를 인정치 아니한다. 내가 너희의 죄를 동에서 서까지 다 날려버리겠다. 너를 의인으로 인정해 주겠다. 오늘 그것 때문에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대해서 구약적인 놀라움과 신명기 33장 찾아보시겠습니까 제가 가진 성경 318면 319면인데 신명기 33장 29절에 이와 같이 나와 있습니다. 구약성경 318면 319면에 신명기 33장 29절 다같이 또박또박 읽어보겠습니다. 시작-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아멘. 여러분 우리가 이러한 행복한 사람 된 줄로 확신 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어디 있느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로다. 구원의 진리와 복음의 깊은 의미를 깨닫는 사람마다 하나님 우리를 어떻게 하시느냐 우리를 방패로서 도와주신다는 거예요. 우리에게 영광의 칼이 되어주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대적이 복종하게 하시고 내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하나님 오늘 여러분들에게 방패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막을 괴롭히는 모든 대적들에게 영광의 칼로써 막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있는 것처럼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것은 말로다 할 수 없는 하늘의 신비한 것입니다. 이 복음의 깊은 것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세상적으로 유치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삶을 더 이상 살지 아니하고 주님과 나만이 아는 비밀하고 은밀한 영적으로 약독하고 기적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깨고 저녁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도 얼마나 감사한지. 여러분 주일날이 안식인줄 믿습니다. 그쵸 요새는 주일날만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시죠 새벽에 2시 3시에 일어나는 분들 주일날은 할렐루야-오늘은 즐겁게 안식 할라고 그래요. 할렐루야. 안식을 주셨도다. 여러분들 오늘 아침에도 샤워를 하면서 딱 주기도문 송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는 샤워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찬물로 하거든요. 그때는 주의 나라 주의 권세 하는데 너무 길어 가지고 주의 영광 빨리 하고 빨리 마쳤어요. 그래도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얼굴이 환하네. 여러분 제가요, 지난 한 주간 동안새벽에 3시간씩 말씀 전하고 그 다음에 기도하고 찬양하고 그래도 오늘 이와 같은 얼굴로 선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복음 안에서 즐거워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로마 교회 이렇게 복음을 선명하게 선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1장에 보면 로마교회 성도들이여 너희들이 다시 한 번 복음을 들어야 된다. 왜 이미 복음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로마교회 교인들이 다시 한 번 복음을 들어야할 것인가 왜 우리는 대학생들 전도 집회를 하면서 이렇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새 신자들에 대해서 소원하면서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절절한 심정으로 매달리는 것인가 로마서 1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무엇이 된다고요 능력이 됨이라. 다시 한 번 이미 복음을 알고 복음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이 복음을 들을 때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오늘 이 능력의 주인공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여 사회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고 세상이 우리를 대적할 때 복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방패를 가지고 막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광의 칼의 능력을 보호하시는 것을 체험함을 말미암아 다시 한 번 우뚝 서서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겨주심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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