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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눅 0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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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죄 많은 여인의 죄를 사해 주신 사건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었고, 오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리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하면서도 도무지 변화와 성장이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리는 마음의 자세가 나쁘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말씀을 받는 올바른 마음의 자세를 가져 신앙에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자기들의 소유로 섬기는 자매들(1-3)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죄많은 여인의 죄를 사해 주신 후에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를 반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사해 주시고 모든 두려움과 절망, 죽음과 악령의 권세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이렇게 하나님이 구원자로 보내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실 때, 열 두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이들은 사도로 세움을 받았으나(6:13) 아직 어린 제자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과 함께 전도하심으로 이들에게 실제적인 교육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교육을 하고 있을 때 2,3절에 여인 몇이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고 있었습니다.
전자는 남(男) 제자들이라면 후자는 여(女) 제자들이겠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하였습니다.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는 갈릴리 바다의 서해안과 가버나움 남쪽에 위치한 작은 성읍 막달라 출신의 여인을 가리킵니다. 이가 일곱 귀신이 들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비참한 상태에 있던 여인인데 예수님께서 그녀를 고쳐 주심으로 인해서 일생을 예수님께 헌신한 여인이겠습니다.
① 그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현장까지 따라갔고(마27:55,56 막15:40, 요19:25)
② 예수님의 시체가 무덤에 놓여 있는 곳을 본 여인 이였으며(23:55, 마27:61, 막15:47)
③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시체에 기름을 바르러 갔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최초로 보게 되었습니다.(막16:9, 요20:1-18)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는 막달라 마리아와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최초로 전해들은 여종의 한사람입니다.(24:10) 그녀의 남편 구사는 헤롯의 재산 관리자로서 대단히 큰 부자였습니다. Godet란 신학자는 이 부인이 요4:46이하에 나오는 예수님이 고쳐주신 왕의 신하의 아이의 어미라고 합니다. 만일 이러한 견해를 받아 드린다면 요안나가 예수님께 헌신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수산나라고 하는 여인과 다른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 소유로 저희를 섬겼습니다.
헤롯의 청지기(epitropos)하면 막강한 재력이 있습니다.
당시 왕들은 많은 임시 수입과 사재(私財)를 가지고 있는데 청지기란 왕의 재정적인 문제를 돌보는 직책입니다. 로마제국에서는 원로원에서 임명한 총독이 다스리는 관할 구역이라 하더라도 황제는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자신의 청지기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보다 더 신뢰받고 또한 중요한 직책을 가진 재력 있는 분의 아내가 예수님을 믿고 여제자가 되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여성도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종종 “여자가 뭐, 무슨 일을 해” 하며 무시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이들이 예수의 구속 역사에 귀중한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어떤 이들입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인이요, 죄 많은 어두운 과거를 가진 여인 이였습니다. 그러나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는 궁정의 숙녀입니다. 이들은 도저히 어울릴래야 어울릴 수 없는 사이인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어 합심하여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꾸준히 저희를 섬겼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모든 소유로 저희를 섬겼습니다. 제자들이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그들의 옷을 빨고, 또 선교비를 마련하고, 전도 사업에 필요한 모든 일과 궂은 일을 담당했습니다. 사실 교회는 소리 없이 여성도들이 더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초신자가 들어오면 타올, 요람, 찬송가, 달력 그리고 제가 지은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 책자를 선물로 드리고 차도 대접을 합니다. 이 일을 수 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10년이 넘도록 하면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몇몇 여성도들이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목사님, 목사님이 지은 책 그것을 제가 10권 혹은 20권 맡을께요. 그리고 또 책을 내서 성도들에게 주어서 신앙이 자라도록 하지요”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의자며 강대상이며 스크린이며 떡상이며 필경대며 주보장, 십자가며 종이며 T.V이며 여러 가지가 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여러분의 소유로 섬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믿기는 초대 교회 막달라 마리아나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나 수산나 그리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여인들이나 또 우리 교회를 짓느라 그리고 선교 사역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기들의 소유(所有)로 섬긴 이들은 주님의 약속대로 상급이 있을 줄을 확신합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동전에 녹스는 것)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태6:19,20)

Ⅱ.씨 뿌리는 자의 비유(4-21)

4절을 보십시오.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 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란 어원적으로 “옆으로 던진다” 혹은 “곁으로 던진다”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우리가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현세 우리 눈에 보이는 사물을 들어서 설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설교하실 때마다 비유를 많이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5-8절을 보십시오.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씨를 뿌렸습니다. 팔레스틴에서는 씨를 뿌릴 때, 적어도 두서너 가지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① 호미나 발로 땅을 헤치고 씨앗을 넣어 심는 방법이 있고 ② 다른 하나는 씨앗을 손에 쥐고 훨훨 뿌리는 방법과 ③ 당나귀 등에 씨앗 자루를 얻고 구멍을 내서 짐승이 움직이는 대로 씨앗이 떨어지게 하는 경우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번째나 세번째에 해당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씨앗을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이 씨는 사람들에게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습니다.
또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졌습니다 성지에는 석회암반(石灰岩盤)이 많습니다. 이 암반 위에 흙이 얇게 덮여 있습니다. 그 위에 씨앗이 떨어지면 곧 촉이 트고 싹이 나옵니다. 그러나 흙이 깊지 않고 태양이 떠오를 때 습기가 없으므로 말라 죽고 맙니다.
더러는 가시 떨기 속에 떨어졌습니다. 가시 떨기 속에 떨어져 자라는데 잡초가 더 무성하고 생명력이 있어 영양분을 다 빼앗기고 그늘을 지워서 자라긴 자라지만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백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씨앗에는 생명력이 있어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씨는 작고 모양은 없지만 생명력이 있어서 이 씨가 옥토에만 떨어지면 촉이 트고, 싹이 나고 움이 자라서 줄기가 힘차게 뻗어 나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을 드린 세 밭에 떨어진 씨는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씨앗은 같지만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런 이야기는 이스라엘에서는 아주 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하셨습니다.
여기서 씨 뿌리는 자는 예수님 당신 자신이고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씨앗이 떨어진 네 종류의 밭은 복음을 받아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시는 비유의 말씀을 다 듣고 그 뜻을 잘 몰라서 예수님께 그 뜻을 풀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9절)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 뜻을 묻는 제자들을 예수님은 심히 만족하셨던 것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얼른 이 비유를 풀어 주셨습니다. 이런 이 과정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알고자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어떤 모양으로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사모하며 경외함이 먼저 간절해야 하겠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이 비유는 이러하니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님은 이 “씨”를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셨습니다. 이 씨앗과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까 조금마한 씨앗 속에는 생명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완전한 생명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생명력이 있다는 것입니다.(히4;12) 씨앗은 적당한 환경이 주어지면 싹이 트고 움이 돋아 자라서 100배의 결실을 맺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옥토 같은 마음에만 떨어지면 100배의 결실을 할 수 있다고 하시는 비유의 말씀이십니다. 내 마음의 자세에 따라서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맺지 못할 수 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귀 기우려 잘 듣고 우리의 마음을 옥토로 만들어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1) 그러면 씨앗이 길가에 떨어졌다는 것은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그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농토란 것은 우리 나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이랑 한 이랑으로 해 둔 것이 아니고 망으로 해 둔 밭이겠습니다. 이 망과 저 망 사이에는 농로를 만들어 사람들이 다니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여기에 농부가 씨앗을 훨훨 뿌렸을 때,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딱딱한 농로에 떨어져 씨앗이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밟히고 마태복음 대로는 새가 먹어 버립니다. 오늘 본문에는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 아니고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그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아 가는 것이요 라고 예수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길가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듣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귀 있는 자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귀너머 듣는 자들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요 생명의 말씀인데 순종하면 그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건성으로 듣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마냥 늘 읽고 듣던 말씀이라 하여 건성으로 들어 넘기는 이가 길가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말씀을 잘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이 믿음에서 구원을 받고 열매를 맺습니다. 사단, 마귀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 대한 불신을 심어 말씀이 내 귀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또는 말씀을 들었는데 불신 친구들이나 좋지 못한 사람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받은 은혜를 쏟아 버립니다. 이것이 말씀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빼앗아 가는 마귀의 역사도 경계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너무 시원하니까 잘려고 준비하지 마십시오. 마귀는 말씀을 못 듣도록 자꾸 자거라 자거라 합니다. 깨어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다.

2) 13절 입니다.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석회석 반석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런 이 반석 위에 흙이 얇게 덮여 있는데 그 위에 씨앗이 떨어지면 밑에는 따뜻한 반석이 있습니다. 위에서 태양이 적당히 비춰 주면 씨앗은 곧 촉을 틔우고 움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조금만 성장하면 더 이상 뿌리를 내릴 수 없고 그 위에다 뜨거운 태양과 40℃를 오르내리는 더위에는 말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두번째 마음 밭을 가진 자는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받아 드리고 말씀에 대한 나쁜 선입견도 없습니다. 마음이 교만하지도 않고 순수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눈물도 흘립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오래 지속시키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13절에 보면 “처음에는 기쁨으로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한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시험이란 하나님의 Test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의 믿음이 자랐나 Test를 하십니다.
요즘 각 학교에서는 방학을 하기 전에 시험을 칩니다. 한 학기 동안 얼마나 배웠는지 Test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시험하십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은 욥이나 아브라함을 시험(Test)하셨습니다. 욥에게는 건강을 치심으로 그의 믿음을 시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사랑하는 외아들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시험하셨습니다. 그랬을 때, 욥이나 아브라함은 이 Test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다가 건강을 잃으면 주를 배반하고 혹은 하나님께서 너 아끼는 것 하나님께 드리라 하면 그만 아까워서 주를 배반하고 순종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순종하면 100배의 결실을 맺고 아브라함같이 하나님이 준비 해 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13절을 중간에 보면 “뿌리가 없기 때문에” 시험을 받을 때 넘어간다고 했습니다. 뿌리를 내려야 타지지 않습니다. 신앙의 뿌리는 순종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뿌리가 내려집니다. 나무가 튼튼하려면 바람이 불어야 하고 그 바람으로 뿌리가 점점 더 깊게 내리는 법입니다. 실로 두번째 마음 밭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도 절대 순종심이 없으므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Test를 할 때 순종하지 못해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3) 셋째 씨앗은 가시밭에 떨어졌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가시 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했습니다.
이런 마음 밭을 가진 자는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는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는 것은 열매를 거두기 위함인데 열매를 맺지 못하면 어떻하겠습니까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3가지 이유에서 라고 예수님이 밝혀 주십니다.
①첫째는 이생의 염려(life's worris)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생의 염려란 온갖 인생살이에 대한 염려입니다. 특히 어떤 분은 장래 문제를 염려합니다. 염려 한다고 안될 일이 됩니까 예수님께서도 장래 문제를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염려하므로 너희 키를 한자나 더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마6:27)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하셨습니다. 내 인생은 어떠하며 장래는 어떻게 될까 하는 염려로 시간을 빼앗기고 거기에 기운이 다 빼앗겨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이혼을 당할 것을 미리 염려 하여 시집을 가지 않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참으로 구더기 두려워 장 못 담그는 여인과 같습니다.
또 무엇을 입을까 염려합니다. 입을 옷이 없어 염려하는 것이 아니고 옷이 많아서 어떤 옷을 입을까 하는 괜한 염려를 한다고 하셨습니다. 복에 겨운 염려지요. 쓸데없는 염려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②둘째는 재리(財利)의 염려 때문입니다.
재리(richs)는 더 가지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말씀을 듣긴 들었는데 세상 재물을 더 모으는 욕심 때문에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절에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였고, 디모데서전서 6:9,10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 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더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고 했습니다. 재리에 말려든 사람은 돈을 벌 생각 밖에 하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마음을 꽉 지배하고 있으므로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마치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 같이 영생은 얻고 싶으나 “그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나를 쫓으라 하니 이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 가니라”고 했습니다.
③셋째는 일락(pleasures) 때문입니다.
일락 때문에 결실을 맺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일락이란 세상 즐거움입니다. 육신의 쾌락을 쫓는 마음입니다.
20세기를 3S시대라고 합니다. SEX, SPORTS, SCREEN 시대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즐기고 여기에 빠져 신앙생활을 바로하지 못해서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야구를 시켜야 된다고 야단을 하더니, 요사이는 World Cup 축구가 있고 나서는 골목마다 축구를 하고 자녀들에게 공을 사주기가 바쁘답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떠났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세상 쾌락으로 음란 비디오나 속된 책 속으로 빠져들기 쉽습니다. 설교 교시간에는 꾸벅꾸벅 졸다가 찬송 부르는 시간에는 시끄러워 잠이 깨서 입만 달삭달삭 하다가 노래방에 가서는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목청껏 목이 터져라 신나게 부릅니다. 이렇게 세상 일락을 좋아하니까 신앙에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 시간 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발견하고 마음에 돋아난 가시들을 하나하나 뽑아 냅시다. 신앙에 기운을 뻬는 잡초들을 하나하나 뽑아 냅시다. 내게는 어떤 잡초가 있어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까 기운을 뺍니까 이 시간 생각날 것입니다. 그것을 뽑읍시다.

4)옥토 밭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 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어떤 마음이 옥토 같은 마음 밭입니까
①첫째,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마음입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이란 a noble and good heart입니다. “noble heart”는 사도행전17:11 뵈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할 때, noble heart를 썼습니다. 시기심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히 받아 드릴 때 좋은 마음 밭이라, 옥토라 했습니다
②둘째, 들은 말씀을 지켜야 옥토라 했습니다.
들은 말씀을 그대로 지킬 때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생명이 있어 열매를 맺습니다. 순종한 만큼 열매를 맺습니다.
③셋째, 인내해야 결실 한다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해 두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내한다는 말은 “Persevere”로서 “참다”,“견디다”, “버티다” 는 뜻입니다. 씨앗을 심어 두면 금방 싹이 납니까 시간이 지나야 촉이 틉니다. 씨앗을 묻어 두었으면 적어도 며칠은 기다려야 하는데 지겨워서 파 보고, 묻어 두고, 또 파서 보고 묻어 두고 하면 촉이 틉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었으면 기다려야 합니다. 때가 되면 촉이 나고 싹이 돋아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30배, 60배, 100배로 맺을 것입니다. 옥토 같은 마음은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을 지키고, 지켜 둔 것은 언젠가 열매를 맺을 줄 믿고 인내해야 합니다. 갈4:19절 사도 바울은 양 떼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했다고 했습니다.

Ⅲ.등불 비유(16-18)

예수님은 16-18절에 등불 비유를 말씀하심으로서 다시 한 번 말씀을 받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는 사람은 없다고 하십니다. 여기서도 등불이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시109:105) 또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 속에 담으신 것은 감추시기 위함이 아니십니다. 드러내시고, 나타내시고자 하시기 위함입니다.(17)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그 말씀을 묵상하므로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의 동생과 모친들이 왔다고 하였을 때, 한 번 더 말씀을 받고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요 옥토인 것을 가르쳐 줍니다.
19-2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모친과 동생들이 왔으나 가까이 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고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199

4.

7. 10.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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