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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뻐하고 기뻐하라 (빌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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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와 이스라엘을 다녀온 후로 우리 나라의 산을 보면 “야 우리 산이 저렇게도 푸르를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나라의 산은 너무도 프르고 아름다움 산입니다. 우리 산들이 수 천년간 푸르르고 아름다움 것이였지만 그동안 저는 푸르름에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었다가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사막과 벌거벗은 돌 산들을 보고 와서는 우리 나라의 푸른산의 아름다움을 새삼느끼고 오늘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름이 시작되였습니다. 날씨가 점점 무더워지고 조금있으면 긴 장마가 시작될 것입니다. 7월 말이나 8월 초에는 열대야 현상으로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무더위에 잠을 못이루기도 하는 여름입니다. 이 여름에 우리가 잊어버리기 쉬운 것이 감사하는 마음과 기쁨하는 마음입니다.

더우기 현대처럼 바쁘고 분주한 시대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기 보다는 무엇에 쫒기듯이 조급하고 분주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기뻐하고 감사하기 보다는 화를 잘 내고 불평을 하고 짜증을 내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을 보면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하셨고 재차 말씀하시기를 “기뻐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의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입니다. 바울은 세번에 걸쳐서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이방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여 세웠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여러 교회들에게 모금을 하여 예루살렘에 돌아 왔다가 유대인들에게 성전을 소란케 하는 이라는 죄목으로 잡혀서 예루살렘 서쪽에 있는 지중해 항구 가이사랴에서 2년간 감옥살이를 하시고 다시 로마로 호송이 되여서 로마 감옥에서 갇혀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황을 볼 때 바울은 기뻐할 일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수 년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많은 고통을 당하고 매를 맞고 쫒겨다니며 죽을 고비를 수 없이 넘기면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의 마지막 댓가는 감옥에 갇히는 것이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스스로 기뻐했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라고 권고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삶의 기쁨을 세상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기쁨을 찾은 것이기에 감옥의 고통속에서도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주 안에서 얻은 기쁨이 무엇이겄습니까

1. 구원의 기쁨입니다.
구원의 기쁨이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된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흘리신 보혈의 피로 구원을 얻었다는 믿음에서 오는 기쁨을 바울은 체험한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예수님을 피박한 피박자였습니다. 이러한 자신을 부르셔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신 것을 생각할 때에 너무나 기뻐서 그 많은 고난도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큰 기쁨 하나는 작은 염려를 모두 이기게 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이 구원의 큰 기쁨 하나만으로 자신에게 오는 여러가지 고통을 작은 것으로 생각하고 이긴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바울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작은 염려와 고통을 구원의 큰 기쁨으로 이기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2. 자신을 사도로 세우시고 늘 동행하시며 함께하시는 은혜에 기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가르켜서 죄인중에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예수님과 원수요 피박자이며 행악자였습니다. 이러한 자신을 사도로 불러서 세운 것을 늘 감사하며 기뻐한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과 늘 동행하시고 함께하시는 것을 바울은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바울에게 큰 기쁨 속에서 살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늘 나와 동행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롬8:35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보십시요 보모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기에 그 아이들은 염려하지 않고 기쁘게 뛰어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늘 동행하시고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에게도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3. 미래에 대한 약속 즉 소망이 있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소망은 우리에게 잔잔한 기쁨을 주고 또한 소망은 우리에게 큰 감동의 기쁨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날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있다면 염려가 없어집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왜 보험을 들게 됩니까 앞날의 보장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보험 또는 교육보험등 많은 보험을 들고 있는 것이며 보험회사들이 불황을 모르고 장사가 잘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의 앞날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장래를 보증해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믿을 만하고 귀한 약속된 보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고하고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하며 감옥에 갇히는 환난을 통하여 더 큰 상급이 있다는 것을 믿기에 바울은 기뻐한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우리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땀을 흘리고 일하며 수고와 고통을 당하는 것을 괴롭다고 생각하지 않고 기쁨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아들이 막차를 놓쳐서 먼길을 터벅 터벅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그 길이 고통과 괴로움의 길이 아닐 것입니다. 그 반대로 몇분만 지나면 사랑하는 부모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의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한 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위하여 당하는 수고와 헌신이 기쁨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고난을 당하고 감옥에 갇힌 일을 도리어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위하여 나 자신이 고난을 맏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기뻐한 사람이 바로 바울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바울의 기뻐하는 신앙을 통하여 우리들도 바울과 같은 기쁨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기쁨을 소유했습니다. 하나님게서 나와 함게하시고 동행함을 맏고 장래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수고와 헌신이 헛된 것이 아니며 영광된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기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는 관용하라 하셨고 또한 염렴하지 말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을 유지하는 길은 관용하는 것이며 염려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 주안에서 기쁨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관용을 가져라 하였습니다.
주안에서 얻은 기쁨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관용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먼저 가슴에 와 닫는 것은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날이 멀지 않은 이 때에 관용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초대교회중에 가장 아름다운 교회였지만 이 교회 안에도 작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여자 성도들 중에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4: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하셨습니다. 이들은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의 사람들이였는데 마음이 같지 않다고 한 것을 보면 서로 분열이 있었던 것입니다.

행16장을 보면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한 내용이 기록되여 있는데 빌립보에거 첫번째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자주장사 루디아였습니다. 그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되였고 그 감옥에서 극적으로 간수가 예수를 영접하기 됩니다. 이와같이 빌립보 교회는 여성들을 주축으로 세워진 교회이며 또한 유오디아라는 여인은 간수의 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오디아나 수두게는 교회의 중요한 인물인데 서로 마음에 다르고 분열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서로 한 마음을 품으라고 권고 하셨으며. 4:4절에서는 서로 관용을 가지라고 하신 것입니다.

분열이 있고 싸움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집안에 싸움이 있으면 그 가정에는 기쁨이 사라집니다. 직장에도 다툼이 일어나면 기쁨이 사라지고 교회도 분열이 있으면 기쁨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미움이 있고 다툼이 있으며 분열이 있는 것은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이얼게 잃어버린 기쁨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비결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관용입니다.

관용이란 너그럽게 받아드리고 용서하는 것을 말하는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서로 용서하는 마음을 소유한 다면 분열이나 싸움은 없을 것이며 늘 기쁨이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언제인가 말씀을 드린 기억이 있지만 암이라는 무서운 병이 있습니다. 암이라는 병은 어느 한 부위의 세포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병입니다. 그래서 위암이라고 하면 위가 딱딱하게 굳어져서 위으로서의 일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음식을 소화를 못시키고 먹지 못하여 사람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사람의 마음에도 암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미움으로 미움은 마음의 암입니다. 사람을 용서하자 못하는 사람은 마음에 암에 걸린 사람입니다. 마음에 암이 있는 사람은 육신도 병에 걸리는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의 집사인 며느리가 병든 시어머니가 눈에 거슬리고 미워지기 시작합니다. 젊었을 때는 죽도록 시집살이를 시키고 늙어서는 중풍에 걸려서 똥 오줌을 받아내니 얼마나 미웁겠습니까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병간호를 하던 며느리도 병이 들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좋은 약을 써보아도 차도가 없습니다. 병원에서 차도가 없으니 오산리 기도원에 들어 갔지만 기도를 해도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금식을 해도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곰곰히 원인을 생각해 보니 자신의 마음속에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미움이 가득한 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워서 시어머니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옛날에 가난하게 살면서 고생 고생을 한 시어머니. 청산과부가 되여 아들 하나를 키우느나 고생한 시어머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길 것 같아서 자신을 시집살이를 시킨 시어머니를 생각하니 불생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어머니를 미워한 것을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눈물로 기도하고 나니 어머니가 사랑스러워 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병도 차츰 회복이되고 건강을 얻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관용은 기적을 이르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관용의 사람은 요셉입니다. 저는 요셉이 국무총리가 된 것도 중요하고 훌륭한 사람이라 할 수 있지만 그가 가장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자기를 죽이려했고 자기를 애굽의 종으로 팔아버린 형들을 눈물로 용서하고 그들을 받아드려 애굽의 고샌 땅에서 살게 해준 일입니다.

또한 사울과 다윗을 통하여 관용의 중요함을 자시 찾아보게 됩니다. 사울은 관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다윗이 인기가 올라가고 사람들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다윗을 미워하고 그를 죽이려 했고 자신의 아들에게도 화를 자주 냈습니다. 놉땅의 제사장들이 다윗을 도와 주었다고 85명이나 되는 사람을 무고하게 죽였습니다. 관용이 없는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이렇게 무서운 일을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끝까지 쫒아다니는 사울을 용서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여러번 살려주었고 그와 아들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웃을 찢고 저녁 때까지 울며 금식했다고 하였습니다. 다윗과 사울의 사람됨의 차이가 얼마나 큰 가를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우리들이 기뻐하며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우리들이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염려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6절에서 사도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 기쁨을 빼앗아가는 원인중의 하나는 염려함입니다. 염려는 우리 마음을 불안하고 마음속에 감사를 빠앗아 가고 우리들의 여유를 빼앗아가며 우리들의 삶을 병들게 하여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의 집에 사는 사람중에서가장 행복한 사람은 동인이라고 생가합니다. 왜냐면 염려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른 들은 늘 염려가 있습니다. 큰 아이인 동진이도 학교 공부와 시험 때문에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인이는 그러한 염려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닌가 생가합니다. 사람이란 나이가 먹으면 먹을 수록 염려하는 것이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노인들이 잠을 많이 못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시대에는 잠을 못자고 먹어도 소화가 안되는 염려속에 사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염려와 근심 때문에 이유없는 두통을 앓고 이유없는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가장 쉽게 하는 말이 신경성이라는 말입니다. 신경성 두통 신경성 소화불량을 앓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 나라 민간요법에 웬만한 두통은 무우즙을 짜셔 곳구멍에 너으면 두통이 사라진다고 하지만 우리가 무우즙통을 날마다 들고 나니며 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염려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앞날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대신 현재의 일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믿는 성도는 믿지않는 사람보다 정신적인 면에서 강한 면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정신적인 힘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며 믿음은 기도를 통하여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방인의 땅에서 나그네로 살던 아브라함은 염려하는 대신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기도하였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소리를 듣고 백성들이 화가나서 자기를 치려할 때에 두려워 숨거나 도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감옥 안에서 찬송을 부리며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감옥 문이 열리고 그를 지키던 간수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이 염려를 이기게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이유없는 두통을 앓고 이유없는 소화불량에 걸린 사람은 힘차게 찬송을 하고 힘차게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이 땅에서 기뻐하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염려 속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요. 환난을 당할 때에도 감사함으로 기도하십시요. 하나님께서 평안을 허락하실 것이며 기쁨을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기쁨이 있을 때 건강할 것입니다. 기쁠 때에 창조의 힘이 있고 기쁠 때에 일의 능률이 있으며 기쁠 때에 능력이 나타나고 기쁠 때에 화평이 있으며 기블 때에 삶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기쁨이 없는 사람은 출세를 했어도 불행한 사람이요 재산이 많아도 염려가 가득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주안에서 기뻐하십시요. 분노하지 말고 관용을 가지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현재 일에 감사하시며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삶에 기븜이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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