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참된 예배와 거짓된 예배 (창 4,3-8)

첨부 1


1,가인과 아벨의 유사성 2,제물의 열납은 예배의 결과이다 3,두 예배의 결과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

엘리의 가족, 사울왕의 말로와 아브라함과 다윗의 생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때를 무어라고들 말하는가 말세 ! 그렇다 성경의 모든 징조는 한결같이 지금의 때를 말세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 본문 3절이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세월이 지난 후에" 얼마의 세월이 지난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의 일임을 알 수 있다.

그 때에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형제가 제사 즉 예배를 드렸는데 동생인 아벨의 제사는 열납이 되었고 형인 가인의 제사는 열납되지 못하였었다.

 그 때 그들이 예배를 드렸던 때를 성경이 기록하고 있음이 중요하다.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표현이다.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세월의 끝난"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한 주일의 마지막일 수도 있고, 한 달의 마지막일 수도 있고, 한 해의 마지막일 수도 있고, 세상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말이다.

 고로 이 말은 역사속에 두고두고 적용할 수 있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은 역사속에 두고두고 예배를 드리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더 적합하다.

 우리들은 역사의 마지막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들이 드리고 있는 이 예배가 곧 마지막에 드려지는 예배라는 뜻이라는 말이다

정말 우리들의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거절되고 있는데도 하나도 깨닫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들이 드리고 있는 이 예배가 신령과 진정의 예배인가, 아니면 형식적인 가증 된 예인가를 분명히 할 필료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 두 사람이 드린 에배를 보면서 우리들이 들이고 있는 마지막 예배를 점검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1,가인과 아벨의 유사성

먼저 그 대에 예배를 드렸던 두 사람의 유사성을 찾아보자.

두 사람은 같은 분모의 자손 즉 형제지간 이었다.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은 다 같은 시대에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멀지 않은 같은 장소에서 제단을 쌓으면서 살았었다.

 두 사름은 다 각기 나름대로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가인은 농사일 아벨은 목축업

두 사람은 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면서 산 사람이었다.

이는 다 저들이 타락한 인간임을 알고 살았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두사람의 유사성은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교훈해 주고 있다.

 우리가 다 같이 영적인 한 형제지간을 말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어떤면에서는 가인과 아벨처럼 그렇게 멀지 않는 같은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들도 각기 나름대로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저들처럼 우리들도 각기 다른 직업에 있는 이들이 매우 많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다 한결같이 말세라는 것을 함께 느끼면서 살고 있다는 것도 유사한 점이다.

 역사의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가인과 아벨에게서처럼 유사한 점이 참으로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유사점이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가인과 아벨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유사한점이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이 되고 있느냐 아니면 가인의 예배처럼 버려지고 있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우리들이 지금 드리고 있는 이 예배는 참으로 귀중한 것이다.

이 예배에 삼위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2,예물의 열납은 예배의 결과이다 가인과 아벨은 각기 자기의 소산을 가지고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다.

소산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이 주신 것으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4-5절을 같이 읽자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였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아멘!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한가지 그것은 사람들이 드리고 있는 예배가 다 열납되 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래서 여기에서 어떤 사람들은 가인의 제사는 피가 없었고 아벨의 제사는 피가 있는 제사였기에 하나님께서 열납을 했다는 주장을 하시는 것을 보았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믿었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의 말씀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데 무었인가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이되었고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되지 못하였다.

 여기서 우리들이 분명히 하고 지나가야할 것이 있다.

4절과 5절에서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벨과 그 제물, 가인과 그 제물" 즉 예배자와 예물을 함께함과 동시에 예물보다는 예배자가 앞서 있음을 지적하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누구의 예물은 받았는데 누구의 예물을 받지 않았다는 그런 말이 아니다.

 본문의 요지는 예물을 열납하기는 하되 받친자와 함께 열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말은 제물도 귀중하지만 누가 그 제물을 드리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임을 밝히고 있는 말씀이다.

 우리 모두는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배와 함께 예물도 함께 드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러분은 예배자와 예물 중에 어디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가 중세시대에 예배자보다 예물을 더 강조하다가 생겨진 것이 연옥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도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강조하고 있는 교회도 있다.

 가인의 제사와 제물이 열납되지 못하고 아벨의 제사와 제물이 열납되게 되었던 것을 히11:4절이 잘 설명을 해 주시고 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낳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두 사람의 예배의 차이는 믿음의 차이였다.

아벨은 믿음으로 예배를 드렸고 아벨은 믿음 없이 예배를 드렸었던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 예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믿는가)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아벨은 예물을 드릴때에도 믿음으로 드렸었다.

 믿음의 예배 믿음의 예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3,두 예배의 결과는

이제 두 사람이 드린 에배의 결과가 어떻게 발전하는가를 보자.

6-8절을 같이 보자.

"여호와게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 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가인의 예배에는 믿음도 없었거니와 선함으로도 하지 않았다.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에 가인의 안색이 어떤 안색있었나 안색이 변했다고 했다.

분을 내었다고 했다.

낮을 들지 못했다고 했다.

 하나님께 참된 예배 즉 믿음의 예배를 드린자라면 그 드린자의 얼굴에서 참된 예 배를 드린 의로운 증거가 나타난다는 말씀이다.

 예배를 드린자의 심령은 기쁨으로 충만해 있어야 한다.

아 ! 나 같은게 하나님께 드려지다니...

예배를 드린자의 심령은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예배를 드린자의 일상생활에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 충만 또 충만해 있어야 한다.

 가인은 참된 예배 즉 믿음의 예배를 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성령으로 충만해야할 그의 심령은 분으로 가득차 있었기에 그의 얼굴은 변색이 되어 있었다.

 변색된 얼굴의 표정은 끝내 아벨을 시기했고 또 죽이고 마는 살인자가 되었다.

 예배드리는 시간을 참으로 귀중한 시간이다.

에배시간은 마음을 비우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드려야한다.

가인은 예배를 드린 후 살인자가 되고 말았다.

 예수님은 마5;21-22절에 말씀하시기를 살인하는자와 형제를 향하여 노하는자를 같은 유형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말씀을 하시고 나서 예배를 드리는 자는 어떤 자세가 되어야하는지를 23-26절까지 소상히 밝히고 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드리라."고 했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예배이다.

아벨처럼 참된 예배 믿음의 예배 열납되는 예배를 드리셔야 한다.

예배 후 아벨에게서처럼 의롭다는 증거가 함께하는 기쁨의 예배와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생활의 산 예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