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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과 행동의 일치 (약 0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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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소견으로볼 때, 미국인과 한국인의 신앙 형태는 한 마디로 말 해서 신앙의 생활화에서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 람들은 신앙의 열심은 있으나 신앙의 생활화가 잘 안 되어 있습니 다. 반면 미국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 신앙이 없는 것 같으나 삶 속에 신앙의 자세가 배어 있습니다. 요즘 한국 교계에서는 우 리 나라 인구의 25%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합니다. 그 그리스 도인들이 이 사회의 중심이 된다면, 좀더 나은 국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이란 말로만 예수 믿는다 고 하고 교회만 오가는 사람이 아니라 신앙이 생활화된 진정한 신 자를 지칭합니다. 생활 자체가 신앙화된 그리스도인이 이 나라 인 구의 25%를 차지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희망적입니다.

 <> 믿음의 의미 구분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 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당신은 이 구절을 읽으면서 좀 혼란을 일으켰을지도 모릅니다. 우 리는 지금까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고 배웠는데, 야고보는 행위 없는 믿음은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고 단언합니다.

 믿음과 행함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동전의 앞뒷면이 불 가분의 관계인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과 행함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된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르고 행함의 바탕에는 믿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믿음과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를 확 실히 구분 지어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구원받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분만을 의존해야 한다는 의미의 믿음입니다.

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의 영광에 도저히 이를 수 없다. 구원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 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논리의 믿음입니다. 구원받는 데는 인 간의 행위가 필요치 않습니다.

야고보가 본문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고는 있으나 그분을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가운데 모시지는 않은 머리에만 머문 믿음입니다.

 <> 행함이 없는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의 특성을 세 가지로 살펴봅시다.

 첫째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무익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19절).

하나님에 대한 지적(知的)인 동의뿐인 믿음입니다. 개중에는 이렇 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는 믿지 못하겠습니다.그러나 어쨌든 신(神)의 존재는 믿습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는 것만 가지고는 신앙이라고 이야기하지 않 습니다. 그것은 아주 무익한 믿음입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 로는 믿지 않기 때문에, 그 삶은 하나님 앞에 헌신되지 않은 상 태입니다.

 사단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아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사 단은 타락하기 이전에 천사였고, 천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 시기 전부터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역사(役事)하 심을 직접 목격하였으므로, 말씀만 가지고 그분을 믿는 우리 인간 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을 잘 압니다. 인간은 하나님 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사단은 하 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떨 만큼 하나님을 잘 압니다. 사단은 하나님과 대면하여 논쟁하기까지 했습니다(욥 1:6-12 참조). 이렇듯 사단은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분께 순종하는 믿음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귀신들린 사람 하나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주님을 알아보았 습니다(눅 4:34 참조). 하지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는 것이 그에게는 전혀 쓸모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지적 인지(知的認知) 정도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 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17절 ).

생명이 있는 것에는 반드시 움직임이 있습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 자 울기 시작합니다. 손과 발을 움직이며 살아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사산(死産)된 아이는 똑같이 눈 코 입이 있고 똑같이 손과 발이 있는데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 은 것입니다.

 15절 말씀에 죽은 믿음의 모습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 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 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참된 신 앙을 가진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서슴지 않고 도와줍니다.

불우한 이웃을 돕고 교도소를 방문하고 고아원과 양로원을 찾아 갑니다. 무의촌 지역에 가서 의료 봉사를 합니다. 졸지에 어려움 을 당한 사람이 있을 때, 그를 돕는 헌금을 합니다. 네 이웃 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실천합니다.

 행함이 없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이웃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을 때에도 무감각하게 있습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 내고 자신의 안락만을 생각합니다. 그런 신앙은 무익하고 죽은 신 앙입니다. 참된 신앙에는 반드시 선한 행동이 따릅니다.

 셋째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리석습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 느냐(20절).

허탄한 사람이란 어리석은 사람, 어리석은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야고보는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무익하고 죽은 것일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믿음이라고 선언했습니다.

 <> 참된 믿음의 본보기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 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21,2 2절).

아브라함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대단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는 말로만 전능하신 하나님 을 믿는다고 떠벌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능력을 믿 고 말씀에 순종하는 실천적인 믿음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머리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서 믿음을 실천할 때 그 신앙은 성장합니다. 22절의 온전케 되었다는 말씀이 바로 믿음이 완성되어 간다, 성숙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신앙은 조그마 한 부분부터 실천하고 생활화할 때 성장하고 깊어집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 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실천해 보십시오. 부부 사이가 달라집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눅 6:35)고 했습니다. 당신이 미워하고 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를 용납하고 사랑하십시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실 천하고자 할 때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할 때 당신의 신앙이 성숙합니다.

 아들을 하나님께 바친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정탐꾼들을 숨겨 준 라합도 실천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使者)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 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25절).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사람이나 라합은 이방 여자였습니다. 아브라함 은 부자이나 라합은 가난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라합은 기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든지 라합이든지 간에 믿음을 행동으로 옮긴 데는 둘 다 똑같이 훌륭한 신앙을 드러내 었습니다. 결국 라합은 아브라함과 함께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이 되었습니다(마 1:5).

 우리는 본문 말씀에 힘입어 사소한 일이라도 신앙을 행동으로 옮기 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살아 있다는 것을 나타내 십시오. 믿음이 생활화된, 순종하는 삶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지 속적으로 발전하기를 원합니다. 당신도 성숙한 신앙인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사람 앞에 존경받는 자가 되십시오. 예수 믿는 사 람들이 이 나라를 안정되고 균형잡힌 국가로 만들 수 있도록 당신 자신부터 생활화된 믿음을 소유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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