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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계시된 하나님의 은혜 (벧전 0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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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이 구원의 경이로움을 강조합니다. 그는 그의 독자들이 더 큰 고난을 받게 될 것을 예견하고 이를 대비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지자들이 주님의 크신 구원을 가르쳤고, 그후 사도들이 이 복음의 축복들을 강론했으며 천사들도 이 축복들을 알기를 원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에 따른 영광들을 터어키 북부 지방에서 핍박을 당하던 그의 독자들에게 언급하였습니다.
“영광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이다. 우리들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따라간다. 그리스도는 먼저 고난을 당하신 후에 영광으로 들어가셨다. 우리들도 마땅히 이 순서를 밟아야 한다”(크라우니).
베드로는 이 구원을 가리켜 “너희에게 임할 은혜”(1:10)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복된 선물입니다. 은혜란 자격이 없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거저주시는 선물입니다. 구원은 우리들의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고 거저받는 선물입니다. 구원은 내가 벌 수 있는 자격이 있어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보상을 해 주어야 할 의무가 전혀 없는 분이십니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은혜
“너희에게 임한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 베드로가 말하는 이 선지자들은 누구일까요 물론 본문에는 그들의 이름이 명기되지 않았지만 예수께서 엠마오 도상에서 그의 두 제자들에게 언급하셨던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성경이 말한 것을 설명하실 때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눅24:27)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부터 말라기까지의 모든 구약의 선지자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 본문의 바로 앞 절들을 보면 주님의 고난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눅24: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눅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베드로는 이와 동일한 주제들을 그의 첫 서신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즉, 고난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영광이 온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구원의 은혜가 다른 세대의 사람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이 은혜를 간구했지만, 그 은혜는 그들의 때에 계시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 은혜를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1:10) 알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이 은혜가 드러나게 될 것인지를 알려고 힘썼습니다.
이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구약은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비록 ‘예수’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구약에 나타나 있는 것은 부인 못할 사실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가 받을 고난과 그 후에 이를 영광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때로는 이 두 측면들이 겹쳐져 있기도 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메시야)의 영광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장차 오셔서 백성들을 해방시키고 이스라엘의 왕국을 재건하셔서 다윗 왕국과 같은 영원한 왕국으로 세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마치 에디오피아의 내시처럼 고난의문제를 놓고 때때로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내시처럼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행8:34) 라고 묻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구약의 예언 속에는 유대인들에게 하나의 신비로 여겨지는 어떤 인물과 관련된 고난이 자주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인물은 다름 아닌 메시야입니다. 시편22편을 실례로 들어 봅시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시편22:6-8)

이사야 53:3절도 잘 알려진 예입니다.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구약 선지자들은 스스로 예언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들 속에 있던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서 메시야의 고난과 영광들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려지셨을 때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들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예수님이 지상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성령의 권능으로 갈리리에 돌아”(눅4:14)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눅4:18)다는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셨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셨고 그분을 통해서 사역하셨기 때문에 본 단락은 신격의 일치뿐만 아니라, 성경의 신령한 영감도 지적해 줍니다. 신구약은 통일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상경의 예언들을 기록하게 하였으며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에 대한 이러한 예언들은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교회들에 보이신 계시들은 서로 완전히 일치한다. 선지자들의 교리와 사도들의 교리가 정확하게 일치되는 것은 하나님의 동일한 영의 인도로 나온 가르침들이기 때문이다”(멘튜헬리)
구약 선지자들은 자기 시대를 위해 예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물론 자기 시대의 백성들을 행해서 능력있게 예언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수백 년 후에 살게 될 사람들을 위해 예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12절에서 이 점을 더욱 명백하게 지적하였습니다.
(벧전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사도들이 강론한 은혜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1:12)
본문의 ‘이것’이란 선지자들이 과거에 전했던 구원의 은혜(10절)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는 훝어져 있던 베드로전서의 독자들에게 하늘로부터 직접 내려운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메시지는 선지자들이 훨씬 옛날부터 전파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동일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메시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 메시지는 그후 이천 년 동안 전파되어온 복음의 메시지와도 동일한 것입니다. 이 메시지는 다음 성경 구절들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3:18)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베드로는 예수께서 심문을 받고 십자가형을 당하시는 고난을 목격한지 30년이 지난 후에 우리 주께서는 영광을 누리시기 전에 먼저 고난을 받으셨다고 선언합니다. 이 순서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 다음에 영광이 오는 법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읊었습니다.
(시30:5)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이 원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자들에게도 항상 해당됩니다. 우리들이 죄인들임을 아는 때는 괴롭고 슬프지만 이 슬픔의 기간 다음에는 영광의 시간들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이 세상에서 겪은 후, 다가오는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골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천사들도 경탄하는 은혜
베드로는 천사들도 이 경이로운 구원의 은혜를 보기를 원한다고 말하였습니다(12절). 이것은 천사들이 하늘의 가장자리에서 땅 밑을 내려다 보는 장면을 연상시켜 줍니다. 본문에서 ‘살펴본다’는 단어는 베드로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빈 무덤을 ‘구푸려’ 보았다는 표현과 동일한 단어입니다(요20:5, 11).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그러면 왜 천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복음의 영광들을 살펴보면서 경이로워하였을까요 그 까닭은 천사들도 그처럼 큰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죄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구원의 긍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루시펴라는 별명을 가진 천사가 하늘에서 타락한 이후로 천사들은 죄의 유혹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떠나 방황하는 삶을 살지 않았으므로 구속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본문에서 천사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탄하며 주목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같은 은혜를 우리 인간들에게 알리셨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들은 지옥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지만, 그리스도의 피로써 구속되었습니다. 복으므이 메시지의 경이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조용히 찬양해 보십시오.
1777뇬 헌 복음 잡지에 다음과 같은 작자 미상의 시 한편이 실렸습니다.
내 영혼아 멈추어 경탄하라! 내 영혼아 고용히 물어보라!
‘어찌하여 나를 이처럼 사랑하시나요’ 은혜로써 하늘 가족 되게 하셨으니
할렐루야, 감사하세! 영원하신 사랑의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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