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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의 아덴 전도 (행 17: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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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뢰아에서 갈라디아에서 원정온 유대주의자들의 훼방을 피하여 아덴으로 온 바울 은 여기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덴은 당시 로마 제국 시대에 있어서 여러가지 의미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 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덴은 군사 문화적인 측면에서 로마의 중심이 되는 도시 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특히, 아레오바고에서 행한 바울의 설교는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참신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1.우상이 가득한 아덴 1)의분이 일어난 바울

아덴에는 그리이스의 모든 지방의 우상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우상이 있었으며 무엇이든지 새롭고 신비한 것이 전파되면 아덴인들은 그 신을 위해 사원이나 제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바울은 아덴에서 전도하기에 앞서 뒤따라오는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고 있 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주변에 음란하고 우매한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우상들과 거기에 절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행동에 대한 의분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셨을 때에 예루살렘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것을 보고 분노하셨던것과 같은 의분이었습니다.

 2)아덴의 역사

아덴은 미노타우를 죽이고 아마존을 정복한 아타카의 영웅 데시우스에 의해 건 설되었으며 그 이름은 아데나 여신을 기념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아덴은 페리클레 스(B.C495-439)새대에 이르러 황금기를 맞이했고 파르텐노 신전과 수많은 사원들 및 여러 웅대한 건물들의 건축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문학, 철학, 과학 및 수사학이 꽃을 피웠으며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펠로폰네수스(B .C431-404)전쟁으로 인해 아덴은 몰락의 길을 걷게되었습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나 지적인 면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르스, 제논 등의 등장 으로 그 명성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B.C338년 아덴은 마게도냐의 필립 2세 에 의해 정복 당하였지만 그 정복은 단지 아덴의 문화와 학문을 그의 아들인 알렉산 더를 통해 전세계에 퍼뜨리는 결과를 초래하였을 뿐이었습니다. B.C146년에는 로마 가 아덴을 정복하였지만 로마인들은 그리이스의 모든 문물을 애호하였기 때문에 아 덴은 그들의 지배하에서도 계속해서 세계의 모든 문화적,지적인 중심지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도 아덴을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2.바울의 복음 전도와 설교 1)회당과 저자에서 전도하는 바울

아덴인들이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있는 모습을 보고서 그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회당에서는 안식일에 유대인들과 경건한 사람들에게 전도하였으며, 평일에는 아덴 사람들의 생활과 활동의 중심지인 아고라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참신이신 것을 증거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변론하였습니다.

 2)바울의 증거 내용

(1)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24) (2)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재이시다(24) (3)그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보호자이시다(25) (4)그는 모든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드셨으며, 그의 섭리대로 시간과 장소도 주 관하시는 절대적 치리자이시다(27) (5)그는 우리에게서 멀리 계신 분이 아니시다(27) 이렇게 복음을 전한 바울은 결론적으로 과거에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였을 때는 우상을 섬기듯 하나님을 섬겨도 허물치 아니하셨지만, 이제는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므로 회개하고 믿어야 한다고 강력한 도전을 주었습니다.

 3)지금 믿지 않으면 안될 이유

(1)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고 (2)심판날은 이미 정하셨기 때문이고 (3)하나님께서는 공의에 따라 심판하시며 (4)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예수님을 통하여 하시고 (5)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은 그가 세상을 심판하시기 시작하셨다는 증거가 된다

<결론>

이렇게 복음을 전한 결과 34절에 나타난 바대로 숫적으로는 그리 큰 성공이라고 할 수 없었을지는 모르나, 이후에 아덴의 감독이 될 디오누시오와 같은 사람이 결실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 전파에는 듣고 결신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기롱하고 반대하며 핍박하는 자들도 있고, 많이 결신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적게 결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적게 결신하더라도 거기에 더 큰 하나님의 섭리가 포함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복음을 전하되 그 열매나 결신의 숫자에 연연해 하지말고 사명에 충성을 다하여야 할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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