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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본질과 가치 (고전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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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신령한 은사에 대한 그릇된 이해와 태도에서 야기된 고린도 교회 의 분쟁과 오해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한가지 원리를 본문 가운데서 가 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을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모든 은사의 바른 사용은 그 은사를 통하여 사랑을 이루게될 때에 있습니 다. 성령의 은사를 자랑하면서도 온갖 개인의 범죄와 분쟁을 일삼는 것은 공허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무서운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중요한 사랑의 가치와 본질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사랑의 가치성(1-3절).

1)사랑이 없으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도 가치가 없어집니다(1절).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 모두가 신기한 언어임에 틀림이없습니다. 그 런데도 고린도 교회가 시끄럽게 된 원인은 바로 방언의 언사를 자랑하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방언과 달변은 이교도들이 우상 경배 시에 사용한 주문과 꽹과리같은 공허한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2)사랑이 없으면 예언과 하나님의 비밀과 지식을 가졌더라도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2절)

성경을 많이 알고, 신학의 지식에 능통하고, 기도를 하면 즉각 어떤 능 력이 나타나는 역사를 일으킬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그 희생적이고 봉사적인 사랑이 없다면 그 모든 것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진다는 것입니 다. 심지어 성 프란치스코처럼 자기의 전 재산을 내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 고 크고 아름다운 교회당을 짓고, 사역자들을 위해 집도 사주고 자동차도 사주고 온갖 편의를 제공하였다고 할지라도 그 행위들이 사랑으로 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3)사랑이 없으면 산을 옮길 만한 믿음도 아무런 거치가 없습니다(2절).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우리에게 는 믿음이 최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 본문에서는 믿 음보다도 더 우월한 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사 랑을 떠나서 능력을 행하고, 지식을 가지고, 예언을 행하고, 충성을 행하 였을 때에는 모든 것이 다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믿음을 가집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서 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4)사랑이 없으면 순교의 희생도 나무런 가치가 없어집니다(3절).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아닌 순교는 자기의 믿음과 열정에 대한 자기 만 족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자존심과 자긍심을 충족키 위한 엄밀 분석해 보면 영적 교만과 영적 자존심이라는 이중적인 껍질로 장식된 모조 순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어떤 은사나 희생 보다도 더 중요한 것입니다.

 2.사랑의 본질(4절).

1)사랑의 본질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래 참음의 의미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고난을 당해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참는 의미의 말이며 둘째로, 농부가 씨를 뿌리고 추 수 때를 기다림같이 조급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시간과 관련된 의미 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 사랑의 은사를 가진 자는 애매히 고난을 당해도 불평하지 않 습니다. 또한, 장기간의 연속적인 환란을 겪는다고 하여도 그로 인하여 좌 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더딘 신앙 성장이나 이웃의 실수와 잘못에 대하여 쉽게 노하지 않습니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 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출34:6)을 본받아 시기가 무르익고, 이웃 의 신앙이 성장 성숙될 때까지 여유있는 모습으로 기다릴 수 있는 것이 사 랑의 은사의 참 모습입니다.

 2)사랑의 본질은 온유합니다.

 온유함은 헬라어에서 겸손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비천함'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은 온유하며"라는 말은 자기의 주권이 있지만 사랑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떳떳하고 당당하게 그 주권을 행사하기 보다 주님의 영광과 교회의 건덕을 위해 그것을 포기 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모습을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더욱 분명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빌2:6-7절에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 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 들과 같이 되"셨던 것입니다.

 3)사랑의 본질은 투기하지 않습니다.

 투기란 질투를 말합니다. 즉, 타인의 소유나 재능이나, 그 형통함에 대 하여 부러워하고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러한 마음이 우리의 근면심과 노력과 성실성을 자극하게 된다면 우리에 게 매우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늘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기가 일수 입니다. 다시말해 이웃의 소유나 재능 을 보고 스스로 영적 각성이나 분발심을 촉발시키기 보다는 이웃을 헐뜯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를 시정해야 합니다.

이웃의 축복된 일에 함께 기뻐하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자의 모습이요 사랑의 은사를 받은 자의 모습입 니다.

 4)사랑의 본질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랑은 투기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즉 투기가 이웃과 비교하여 자신 이 열등하다고 판단될 때에 일어나는 감정이라면 자랑은 이웃과 비교하여 자신이 우월하다고 판단될 때에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자랑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연약하고 불우한 이웃에게 깊은 좌절감과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높은 장벽을 쌓는 계기가 되어 다시 메꿀수 없는 거리감을 형성해 버리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 러므로참되고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이웃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 는 자랑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깊이 인 식하여 늘 겸손의 자세를 잃지 않습니다.

 5)사랑의 본질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자랑과 교만은 어느정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고, 자아의 의식이 강하다는 면에서 비슷합니다. 그러나 다른 면도 있습 니다. 즉, 자랑은 자기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것에 반해 교만은 타인을 무 시합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들은 주위 사람들을 실족시키는 결과 만이 아 니라 거기에다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다툼과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교만한 자들은 한 생명의 소증함과 인격의 절대적인 가치를 모르므로 이웃 을 매우 가볍게 취급합니다. 이웃이 상처를 입는다든지 모욕적인 감정을 느낀다든지 하는 점들을 전혀 고려치 않고 쉽게 이웃을 무시하는 말을 내 뱉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는 성도들은 한 생명의 소중성을 그리고 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자세를 가집니다. 그래서 늘 겸손하고 정중한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친절히 대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너무도 알맹이와 내용과 중심 보다도 외형과 형식과 격식과 같치 레와 무가치한 껍데기에 너무 집착해 있습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가치있는 봉사, 가치있는 충성, 가치있는 은사의 사용, 가치있는 직 분 감당을 하도록 하십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해야 합 니다. 이 사랑을 더욱더 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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