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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길을 예비하라 (사 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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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유대인이 바벨론 생활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 주어진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유대는 바벨론의 압정에 의해서 실의에 빠져 있었을때 이사야 선지자가 기쁨의 소식을 전해 주며 그들에게 소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 기쁨의 소식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써 심판의 소식이 아니라 위로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돌연한 소식을 들은 유대인들은 삶의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 거룩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없으며, 하나님을 본 자는 다 죽는다고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멀리서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우러러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이 땅에 우시겠다는 광야의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그 길을 그의 백성인 유대인이 예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에게는 큰 두려움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지상에 내려올 하나님은 그들에게 심판 대신에 위로를, 정죄 대신에 용서를 주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므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으며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왕이 행차할 때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은 길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왕의 행차가 평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좁은 길을 넓혀야 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바르게 해야 하며, 험한 길은 평탄케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디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외치는 자의 소리는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칩니다. 일찍이 세례 요한은 메시야 되신 예수님의 사역에 앞서서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마 3:1에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는니라 하였으며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하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오실 메시야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습니까

1. 골짜기를 돋우어야 합니다 4절에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라고 했습니다. 깊은 골짜기들이 돋우어져야 길이 평탄하게 되어집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골짜기들이 있습니다. 일년 내내 햇빛 한 번 비치지 않은 깊은 골짜기처럼 그늘과 응달에 살고 있는 인간의 골짜기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어둡고 침침한 생활에서 사랑이 그리워 울고 있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어둡고 무서운 인생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골목 골목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골짜기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들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앙생활에도 욕심의 골짜기, 원망의 골짜기들이 있습니다. 욕심의 골짜기는 허락받을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합니다. 소원은 크면 클수록 좋기는 하지만, 그러나 가질 수 없는 것을 죄를 범해서도 가지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은 땅보다 두텁고 하늘보다 높습니다. 욕심의 골짜기는 말이 없는 무저갱입니다. 그래서 한없이 들어 갑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우면 인정도, 사정도, 신앙도, 민족도, 양심도 , 하나님까지도 다 팔아 먹고 맙니다. 이 무서운 욕심의 골짜기를 돋은 다음에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욕심의 골짜기가 돋우어져야 앞길이 열리고 재림 주 예수를 마중 나갈 수 있습니다. 욕심의 골짜기를 돋우어야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골짜기는 예수님의 오심 앞에서 돋우어져야 합니다. 빛되신 예수님,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 앞에서 모든 인생은 노출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의 사망의 음침한 인생의 골짜기를 찬양과 감사의 골짜기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거닐 때 우리 주님의 찬란한 햇빛을 즐거워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헤어날 수 없는 생의 깊은 골짜기들을 메꾸시고 우리로 평탄한 대로를 거닐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2. 산은 낮추어야 합니다 4절에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라고 했습니다. 산을 네 가지로 설명한다면 첫째는 교만이요, 둘째는 거만이요, 셋째는 오만이요, 넷째는 설만입니다. 교만은 있는 것을 가지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지식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날뛰는 인간들도 그리스도의 오심 앞에서 낮아져야 합니다. 신앙의 교만도 낮아져야 합니다. 교만한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지 않으신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보게 됩니다. 교만보다 더 높은 산은 거만입니다. 거만은 아무 것도 없으면서도 제가 잘 났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만보다 더 높은 산은 오만입니다. 오만은 반역입니다. 부모를 거역하고, 하나님의 사자를 거역하고, 나라를 거역하고, 웃사람에게 순종할 줄을 모르는 것이 오만입니다. 오만보다 더 높은 산은 설만입니다. 설만은 하나님께서 함부로 망령된 말을 하는 자입니다. 이렇게 설만하고, 오만하고, 거만하고, 교만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주님 재림시에 마중하러 나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함부로 망령된 말을 하는 것은 가장 무섭고 높은 산을 하나님과 나 사이에 놓은 것입니다. 성경은 교만한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거절하였으나, 겸손한 세리의 기도는 응답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 51:7에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절대로 멸시하시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3. 고르지 않은 곳을 평탄케해야 합니다 4절에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고르지 않다는 말은 꼬불꼬불 하다는 것으로 외식하고 간사한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간사한 자는 중심이 없어서 이 사람에게는 이 말을 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 말을 하며 잘 치우칩니다. 마음에 중심이 없으므로 기분 좋을 때는 제 살도 다 베어 줄듯 하다가 돌아서면 원수가 됩니다. 마음이 고르지 못한 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험한 곳이란 혈기쟁이, 고집쟁이, 완고하고 완패한 마음을 가진 자 등 서너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노하기를 잘 하는 자에게서 하나님의 은혜는 떠나고 맙니다. 완패한 자는 자신이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이겨 보겠다는 것으로 반역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앞에서 골짜기는 돋우어져야 합니다. 숨겨져 있는 죄들은 드러나야 합니다. 산들은 낮아져야 합니다. 교만은 포기 되어져야 합니다. 고르지 않은 곳은 평평해져야 합니다. 편견과 아집은 사라져야 합니다. 참으로 이 모든 것은 그의 오심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5절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 자에게는 영광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주십니다. 여호와의 영광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습니다(요 1:14, 히 1:3). 이런 영광을 모든 육체가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 마중 나온 사람은 여호와의 영광을 볼 것이요, 영광의 하나님을 뵈올 수 없는 사람은 심판대 앞에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영광 중에 나타나실 예수님을 마중 나갈 준비를 하지 못하면 “언덕아 산아 나를 가리워라”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광야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님 만날 준비를 한 자는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흐르게 하시는 감격적인 삶의 변화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회개와 참회와 고백과 경건한 삶으로 주님 오심을 준비하는 복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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