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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마샤의 종말 (왕하 14: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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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짧은 귀절 속에서 세 사람의 왕이 무덤으로 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죽음(15-16절) 그의 장례식 이야기는 이미 나왔었습니다(13:12-13). 그러나 요아스의 생애와 활동을 더 자세히 언급해야 될 경우가 생겼기 때문에 성경 기사는 그의 죽음과 장례를 언급한 것입니다. 2. 유다 왕 아마샤의 죽음 (1) 아마샤는 자기를 정복한 왕보다도 15년이나 더 살았습니다(17절). 어떤 사람들은 치욕을 겪으면서도 완전히 죽지 않고 오래 살게 되는데 그것은 그들로 굴욕을 당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그의 정치를 증오하던 자기의 신복에 의해서 살해되었습니다(19절). 예루살렘은 그에게 반역했습니다. 그가 어리석었고 허세를 부렸던 연고로 수치스런 폐허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라기스로 도망갔습니다. 그가 얼마나 오래 숨어 살 수 있겠습니까? 그는 마침내 라기스에서 살해 되었습니다(19절). 그 반역노들의 분노는 더 이상 연장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시체를 수레에 태워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왕실 묘소에다 장례 지냈기 때문입니다. (2) 여기 아마샤의 비극은 어떤 학술적 의미의 비극도 아니요 그저 사람의 일상의 삶 속에서 평범하게 저지르고 있고 또 저지를 수 있는 사건이 었습니다. 아마샤는 주전 797-779년의 약 25년간 유다를 다스린 9대 임금이었습니다. 이 때는 주변에 앗수르나 바벨론 등 대제국이 융성하기 전이고, 비교적 약소한 국가들만이 있었기 때문에 유다와 북조 이스라엘은 평화를 누릴 수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로 나누어진 같은 민족끼리의 싸움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아마샤의 부칠은 요아스 왕이었는데 이 분은 당시의 유명한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영향을 받아 성전을 수리하고 율법을 가르친 자요, 그 모친도 제사장의 교훈을 받은 비교적 경건한 자였습니다. 때문에 아마샤 역시 유다 임금 중에 훌륭한 임금으로 성경에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샤에게도 한 가지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조상 다윗과 같지 않고 그 아비 요사스를 따라 우상을 섬기는 산당을 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성전에 가서 하나님만 섬겨야 될 유다 민족이 산에 가서 우상들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는 비교적 정직히 행했지만, 종교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순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아마샤가 임금이 된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3) 아마샤가 임금이 된 동기와 아비의 원수를 갚음 그 아비 요아스가 신하들의 반란으로 인하여 피살되자 25세 된 아마샤는 당시의 전례에 따라서 새 임금으로 등극하기는 했지만, 사실상의 실권은 없는 연약한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나 몇년 후에 왕권을 다시 찾은 후 맨처음 한 일이 자기 부친의 원수를 갚았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억울하게 피살된 부친의 원수를 갚는 것은 당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볼 때 아마샤가 그 부친의 원수를 갚는 살인을 한 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부친의 원수를 갚는 상황 속에서도 아마샤가 모세의 율법을 기억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모세가 명한 율법 증에 아비의 잘못 때문에 그 자식을 죽이지 말라는 말을 기억하고 그 원수의 자손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아마샤라는 인간의 솔직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극단적으로 악하지도 않고, 극단적으로 선하지도 않은 우리들의 평범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이 생각됩니다. 우리들 모두는 때때로 본능적으로 악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선에 귀를 기울이는 양면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4) 아마샤의 긍정적인 면 아마샤는 힘이 왕성해지자 그는 그의 눈을 다른 곳에 돌렸는데, 특별히 이스라엘 남쪽에 있는 “에돔”을 정복하고자 했습니다. 역대하서에 보면 그가 자기 나라 군인을 30만이나 모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30만이라고 하면 굉장한 숫자의 군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견고한 요새인 에돔을 점령하기 위해 북조 이스라엘에 돈을 주고(은 100달란트) 용병 10만을 샀습니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의 선지자가 와서 북조 이스라엘의 용병을 산 것에 대해서 책망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북조 이스라엘의 용병 10만을 산 것은 사람의 힘을 의지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지 않는 불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 아마샤는 그 선지자의 충고를 좇아서 이스라엘의 용병과 은 100달란트를 포기했습니다. 이것은 아마샤의 또 하나의 훌륭한 점입니다. 전쟁을 위한 군대와 엄청난 금액의 돈을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 그는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사실상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때로 우리의 재물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마샤처럼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이것을 볼 때 아마샤의 결단력 있는 태도는 그의 신앙적인 좋은 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5) 아마샤의 부정적인 면 아마샤의 행동은 또한 부정적인 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가 세일 자손 약 1만을 죽인 뒤에 포로가 된 자 1만을 또 바위 위로 끌고 가서 떨어뜨려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구약시대에 나오는 전쟁을 사회 구조상 또는 윤리상으로 볼 때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포로된자 1만을 바위 위에서 떨어뜨려 죽인 행동은 도무지 용납 될 수 없는 잘못된 일입니다. 과거나 현재를 통해 인간의 양심은 이미 싸울 의사가 없는 항복군이나 민같인을 처형하는 것을 살인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마샤는 때때로 실수를 저질렀고 또한 때때로 그 실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근본적인 아마샤의 실수는 이 에돔과의 전쟁에서 가져온 승리가 그를 교만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북조 이스라엘의 도움없이 자신의 군대만 가지고도 에돔을 정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한없이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이와 같은 자신감은 마침내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감사보다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교만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현재 위치가 자신의 지혜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잊었던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아마샤의 결정적인 비극은 시작됩니다. 그는 단순히 승리에 도취된 교만에 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이방 에돔 족속의 우상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선지자가 다시 그에게 경고를 합니다. 대하 24:15에 “저 백성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아마샤의 대답은 이미 교만의 도를 넘어서서 그의 도움이요, 힘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절망의 상태에 와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6) 아마샤의 비극 16절에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고 했습니다. 이제 아마샤는 하나님의 음성도 두려워 할 줄 모르게 되었으며,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신의 능력을 더 의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샤는 하나님의 선지의 경고를 무시한 채 그만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엉뚱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북조 이스라엘의 왕에게 편지를 내서 서로 대결해 보자고 도전을 하였습니다. 그 때 북조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백향목과 가시나무의 비유를 들어서 경고함으로 아마샤의 분수를 기억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침내 전쟁을 일으켰고, 그 전쟁은 그 자신과 백성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아마샤에게 준 경고는 대단히 모독적이었고 그대로 받기에는 어려운 것으로 감정을 촉발시킨 저주였습니다. 그러나 좀 더 신중하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었습니다. 할 수 있으면 며칠의 여유를 두고 자신의 감정을 극복하고 그것을 판단해야 되었는데, 그렇지를 못하였습니다. 결국 전쟁에 의하여 아마샤는 원수의 손에 이끌려 그가 다스리는 예루살렘에 포로가 되어 돌아왔고, 비록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남은 생애는 모든 권위가 무시당하는 명목상의 왕으로 불쌍한 생을 보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교만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무시에 상응하는 처절한 보상이요, 비극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샤의 최후 역시 모반한 신하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7) 아마샤의 삶과 비극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성경은 언제나 우리에게 경고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조심할 때는 가장 잘 된다고 생각할 때요, 모든 사람이 칭찬하고 높임으로 말미암아 교만해질 때라고 합니다. 사실상 우리의 삶은 언제나 우리들 자신을 점검해 볼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솔직히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요, 크리스찬의 특권인 것입니다.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엎드려서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이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이요, 명령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나의 성공과 형통이 나의 유능함 때문이라고 생각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아 그 문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는 것 자체가 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세하에서만 우리의 모든 삶과 자신을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공평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아사랴가 아마샤의 뒤를 이었습니다 아마샤계 여로보암 15년에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사랴는 아마샤가 죽은지 12년 만에야 왕이 된 것입니다. 즉 아사랴는 여로보암 2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통치권을 잡았던 것입니다. 아사랴는 그의 아버지가 죽을 때에 겨우 4살이었습니다. 따라서 12년간, 즉 그가 16세가 되기까지는 정권이 그의 보호자들의 손에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치세에 대한 이야기는 껑충 뛰어서 생략되어 버렸습니다. 단지 22절에 “아마샤가 그 열조와 함에 잔 후에 그는 엘닷을 세웠다”고 말했습니다. 아사랴의 치적 중에는 그 사건이 언급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사실이란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죽자 곧 엘닷 성읍을 건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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