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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배우자 선택 (시 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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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배우자 선택, 남편 또는 아내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른 무엇보다도 많은 지도를 필요로 합니다. 믿는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문제에 있어서 (신앙) 일치할 수 없는 사람과 맺어지는 것은 실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실로 뼈아픈 실례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소명에 부르심 받아 주의 사업에 착수하고자 하나 주의 사업에 동참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는 특히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배우자가 주의 일을 원치 않기 때문에 때로는 생활이 하나님의 뜻에서 완전히 떠나버리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성경에 삼손의 예가 있습니다. 이 젊은 사사 삼손은 데릴라에게 빠져 악녀의 억제하기 어려운 애착 때문에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잃어버리고 그의 만년을 비참과 절망 속에 보내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1. 배우자에 관해서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에게 맡겨야 합니다 (1) 시 37:35에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저가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주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약속은 그리스도인의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하여 한 말이지만 우리가 배우자(협력자)를 택할 경우에 적용되는 좋은 약속입니다. 만약 아내 또는 남편의 문제에 관하여 하나님을 의뢰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적당한 사람을 예비해 주실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유일한 소원과 기쁨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되게 하고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주실 것입니다. 천성 그대로의 애정이라든가 열정 때문에 기도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구하는 일 없이 성급하게 자기 마음에 든 사람과 결혼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2) 결혼은 일생의 문제이며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기까지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혼은 신자 사이에는 입에도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처음부터 바른 결혼을 한다면 이혼 같은 것은 생각할 기회도 없을 것입니다. 이혼은 문제의 바른 해결이 아닙니다. 보다 새로운 문제를 빚어내는 일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결혼은 여러분이 서느냐 넘어지느냐의 갈림길입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에 의해 그 생을 실패하는 자가 있고, 어떤 사람은 결혼으로 인해 좋은 배우자를 만나 서로 돕고 의지하며 서 있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2. 우리들의 마음가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과 결혼해야 할 것입니까? (1) 우리가 결혼해야 할 대상은 신자가 아니면 안 됩니다. 아무리 근사하게 외모가 아름답다 하더라도 그리고 장래가 촉망된다 해도 신자가 아닌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고후 6:14에 “너희는 믿지 않은 사람과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다면 얼마 안가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정이라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구혼을 한다든지 구혼을 받았을 때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 위에 결혼이 맺어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결혼하기 위해서 거짓 신앙고백을 하여 며칠 교회 다녀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가 앞으로 예수를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를 분명히 알고 택해야 할 것입니다. 결혼 전애 함께 기도할 수없는 그런 입장의 사람과는 결코 결혼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신조에 따라 결혼을 하면 후회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2) 우리가 결혼하는 사람은 우리와 같은 인생길을 걷도록 인도되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상대가 아무리 신자일지라도 동일한 길을 택하여 걷지 않으려는 사람과는 결혼하면 비극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목사로서 부르심을 입은 남자가 설교자의 아내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 여자와 결혼한다면 그는 곤경의 일생을 걷게 됩니다. 만약 선교사의 아내로 부르심을 입은 여자가 실업가의 아내가 된다면 돈을 많이 만질 수 있을런지 모르나 그 여자는 슬픈 일생을 보내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종류의 주의 사업에 또는 성역에 부르심을 입었다면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입은 사람과 결혼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3) 일상적인 일에 있어서 생각이 같아야 합니다. 1) 생활 사고가 정반대이며 조화가 되지 못한다면 그 결혼은 행복한 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일에 있어서 상대방과 공통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 합니다. 특별히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교회 생활에서나 신앙생활에 공동이어야 합니다. 신앙인이라 하여도 남편은 교회에 나가고 부인은 전도관에 열심이라면 그 가정은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 것보다 더 무서운 투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같은 교회에 나가서 신앙생활을 할 것을 다짐해 두는 것도 필요합니다. 2) 정당한 결혼은 바로 구혼의 결과입니다. 구혼이 기도 중에 행해진다면 그릇된 결혼을 초월하는 예는 적습니다. 청년 남녀 두 사람이 도덕적으로 사귀면서 미래의 생활에 관하여 서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면 하나님은 두 사람이 결혼의 대상인지 가부를 지시해 주실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신자라면 결혼 전에 배우자가 자기 약혼녀에게 추잡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약혼 여성은 유혹이나 욕정을 일으킬 몸가짐은 피해야 하며 자기의 사랑을 약혼자에게 독립되도록 신앙으로 대하여야 하고 약혼자가 다른 여성이나 추한 여자에게 빠지지 않도록 자신의 몸가짐을 깨끗하게 가져야 할 것입니다. 3) 구혼기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행동에 주의하고 몸을 지켜야 합니다. 결혼 전의 성행위는 어떤 사정이 있다 할지라도 이것은 죄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서 음행이라 합니다. 이러한 행위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결혼 후 부부간에 있어야 할 애정과 존경과 신의를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결혼의 신성이 보존되는 그 가정의 기쁨과 감격은 가정의 출발이 축복이요, 그 한평생을 축복과 기쁨과 신의를 인정받으며 생활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있어서 같은 생각과 같은 소명을 받은 두 사람의 청년 신자가 서로깨끗하고 완전하게 결혼하기 위해 결혼식의 밤을 맞은 것만큼 감미롭고 깨끗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결혼 전의 부당한 관계로 서로 몸을 더럽혔을 때만큼 불신과 비통을 초래하기 쉬운 것은 없습니다. 4) 젊은 여성들에게 한마을 덧붙여 말하고자 합니다. 여성들은 결혼하는 것을 너무나도 갈망하는 나머지 말만 있으면 그 누구에게나 결혼을 허락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주시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결혼 후 하나님께서 그 남편과 바른 관계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도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남편을 주실 것입니다. 5) 결혼 실패는 무엇보다도 조급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은 생활의 반려자를 구할 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 악인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또는 얻는 남자를 실족케 하지 않기 위하여, 믿는 여성들에게 정절과 신앙을 성실로써 지키고,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린다면 평화와 축복 속에서 살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축복된 결혼과 그 가정은 천국의 축복이 임할 것이되 불행한 결혼은 그 가정에 지옥의 전조가 임합니다. 신앙을 첫째로 하는 가정, 서로 같은 뜻을 가지고 사는 가정, 정절과 신의와 사랑과 존경을 귀하게 여기는 가정은 가정의 신성함을 보존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축복받는 가정이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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