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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레미야의 수난과 바스훌에 대한 예언 (렘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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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에 대한 공공연한 박해는 그가 착고에 채워졌을 때 비로소 나타났습니다. 성전의 감독이었던 제사장 바스훌은 성전 뜰에서 예레미야의 선언을 들었을 때 그를 구속하였는데(19:14-15), 바스훌은 그가 시작한 일을 도중에서 그만 두는 성격이 아닌 사람이이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를 이 신성한 구역에서의 치안 방해자로서, 아니 그보다 도 이 도시에 대한 협박자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예레미야를 때리고 벌 로써 여호와의 집 북쪽문(윗문)에 있는 착고에 채웠습니다. 이것은 성전의 문인데 같은 이름의 도시의 문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주간에는 예레미 야가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받았고 구경군들로부터 굴욕과 조소와 수모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다음날 밤에도 역시 계속해서 착고에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육체적인 고통은 심적 그리고 정신적 고통과 함께 그를 더욱 괴롭게 하였던 것입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예레미야가 착고에 채워졌던 다음날 아침 바스훌에게 말한 것이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바스훌이라는 말은 보통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인 것 같습니다. 바스훌이 예언자를 착고의 고통스러운 감금으로부터 해방시켰을 때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새 이름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바스훌은 주의를 요하는 인물이 되었고 그가 어디를 가든지 "사망의 공포"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장차 임할 모든 사건들은 예언자가 말하는 여호와의 선언에 대한 놀랄만한 확인이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거룩한 도성에 대한 심판을 집행할 것입니다. 바벨론 왕은 예루살렘 모든 보물과 재산을 전리품으로, 그리고 바스훌과 그의 모든 집안을 포함한 그 백성을 포로로 취해 갈 것입니다.

1. 예레미야에게 대한 바스훌의 부당한 반감과 노여음의 결과 1-2절에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여호와의 집 유사장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에 바스홀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에 있는 착고에 채웠더니"라고 했습니다. 바스훌은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레미야를 보호했어야 마 땅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자신의 반열에 속했고 그와 꼭같이 제사장이었던 때문입니다. 바스훌은 여호와의 사자들을 보호하고 제사장들의 유익을 도모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직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스훌은 자기가 응당 애호해야 할 사람의 박해자가 되었습니다. 바스훌은 성전의 유사장으로 아마 그는 짧은 기간 동안만 유사장이었을 것입니다. 즉 자기가 대표하고 있는 반차의 봉직 기간 동안에만 성전의 유사장 노릇을 했을 것입니다.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스훌이 자기가 유사장으로 있는 여호와의 집 뜰에서 예레미야가 감히 자 기 허락도 없이 설교를 했다는 것이 바스훌로서는 견딜 수가 없는 노릇이 었습니다.

(1) 바스훌은 격분하여 예레미야를 때렸습니다. 그는 손바닥이나 권세의 지팡이로 예레미야를 쳤습니다. 이렇게 친 것 은 아마 대제사장이 바울을 치라고 명령했던 것과 같이 마찬가지로 단지 예레미야를 망신시키려는데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는 예레미 야를 해칠 심산으로 많이 때렸을지도 모릅니다. 바스훌은 불법을 행하는 자입니다.

(2) 바스훌은 예레미야를 착고에 채웠습니다. 혹자는 이 착고를 유폐 장소로만 파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바 싹 조이는 기구로써 그에게 고통과 망신을 주기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혹 자는 이것을 목과 팔에 최우는 칼로 생각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이것을 그의 다리에 채우는 한 벌의 착고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떤 기구든지간에 예레미야는 그 착고를 차고 밤새도록 베냐민의 윗문에 머물렀습니다. 아마 그 곳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 사이를 드나 드는 통용문이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여러 사람이 다니는 곳에서 착고를 차고 밤새도록 있은 셈입니다. 바스훌은 이런 식으로 예레미야를 징계하여 예언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바스훌이 이같이 예레미야로 경멸받도록 보이도록한 것은 그가 예언을 하더라도 존중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와 같이 극히 선한 자라도 이 각박하고 은혜를 모르는 세상에서는 최악의 형편에 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시대의 최대 축복이 만물의 찌거기로 간주되었습니다. 바스훌 같은 자가 재판석에 앉아있고, 예레미야 같은 사람이 착고에 채워진 유대 사회 이니 어찌 하나님이 노하신 심판이 임하지 않겠습니까?

2. 바스훌에 대한 하나님의 지당하신 노여움

(1)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3절에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신다고 예 레미야는 선언했습니다. "마골밋사빕"은 "두려움 속에 갇힌 자"라는 의미 입니다.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의 운명을 그의 이름과 함께 바꾸신 것입 니다. "권세를 확장하는 자"에서 "두려워하는 자"로 떨어뜨려 버리신 것 입 니다.

(2) 이름대로 갚으셨습니다. 4절에 "보라 내가 너로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라고 하셨듯, 바스훌은 그의 새로운 이름 즉 "두려움 속에 갇힌 자"라는 운명을 자신이 당할 뿐만 아니라 그 두려운 환란의 원인을 제공한 자로써 패역한 백성 목전에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핍박과 악행마저도 "말씀의 도구"로 이용하실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결코 인간들의 사슬에 메이는 법이 없습니다.

3. 타락한 바스훌의 운명을 예언함 5절에 "내가 또 이 성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물과 유대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며 바벨론으로 가져 가리라"고 했습니다. 바벨론 왕은 예루살렘 성을 약탈할 것이며 그 안에 있는 귀중품은 전부 다 바벨론으로 가져갈 것입니다.

(1) 느브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의 무기고와 군수 창고를 점령하여 모 두 착취할 것이며, 그것을 가지고 오히려 예루살렘 성을 파괴하는 무기로 이용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2) 느브갓네살 왕은 유대 백성의 모든 상품, 즉 잡화와 교역품을 다 가져갈 것입니다.

(3) 느브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의 아름다운 주택과 값비싼 가구들을 약탈할 것입니다.

(4) 느브갓네살 왕은 국고를 샅샅이 뒤져서 왕관의 보석들과 유대 왕들의 모든 보물들을 가져갈 것입니다. 이 실례는 누구보다 먼저 히스기야에게 경고된 재난이었습니다. 히스기 야는 오래 전에 바벨론 왕의 사신들에게 자기 보물들을 보여 주었는데 그 에 대한 벌로 이 재난을 경고받았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보물이 자기들 을 방어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기대도 허무한 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보물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적의 손쉬운 먹이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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