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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 충만 (겔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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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도들이 신앙 생활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3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말씀충만, 성령충만, 사랑충만한 생활인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먼저 말씀충만이 있어야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너는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고 말씀하셨고, 또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과 같이 갈급히 사모한다”고 하였으며, 또 다윗 왕은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모하며 꿀송이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점에 빵을 찾기 전에, 마실 물을 찾기 전에 먼저 말씀을 찾아야 하겠고, 또 우리는 저들에게 빵 문제나 상수도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던져주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말씀을 토대로 하여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중심하는 교회이며 말씀으로만 성장되었고 말씀으로만 승리하였고 또 말씀으로만 윤택해졌던 교회입니다. 그런고로 교회의 생명은 말씀입니다. 교회의 본질도 말씀이니 말씀이 없는 교회는 생명잃은 교회가 될 수밖에 없고 말씀없는 교회는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단사설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근거하지 않은 신앙입니다. 이단사설에 유혹당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말씀에 근거없는 자입니다. 적 그리스도에게 넘어가는 자가 누구입니까? 말씀을 모르는 자입니다. 즉 신앙 중심 세월은 말씀 중심 생활이어야 합니다. 기도도 말씀 중심 기도라야 합니다. 설교도 말씀에 근거한 설교라야 합니다. 찬송도 말씀 토대로 한 것이어야 합니다. 전도를 하여도 말씀을 중심으로 한 전도라야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신자중 말씀에 대해서 매우 등한히 하고 어떤 신비의 능력을 받아 남이 할 수 없는 어떤 기이한 것을 해보려 애쓰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룡산에 유명한 사람이 나타났다 하면 그리로 보따리를 짊어져 찾아가고, 용문산에 능력있는 사람이 나타났다하면 거기로 가고, 삼각산에 이상한 것이 나타났다하면 거기 찾아가고 하다가 거기에 빠져 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학교를 비유하면 유치원과 국민학교에 지나지 않은 은혜인 것입니다.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보면 젖을 먹는 어린아이의 신앙생활에 정도입니다. 이런 어린 아이 신앙가진 성도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신비한 체험만 가지게 되면 이것을 잘 받아 활용할 도리는 없고 그만 딴 방향으로 비뚜러져서 그 자신이 망하게 되고 그 이웃과 교우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되고 교회에 큰 손해를 주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증거로는 한국 교계에 잘못된 이단들이 많이 지나갔습니다. 김장호, 황국주, 이용도, 박태선, 문선명, 박철수, 양도천, 용문산 무리들 그외 많은 사람들이 참패한 신앙 생활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지켜보고 알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 근거에 잘 아는 자는 따라가지 아니했지만 말씀에 부족한 사람은 비판도 해보지 못하고 덮어놓고 쫓다가 가산망신 신앙타락하여, 저들은 소경이 되어 이단들이 끌려가는 데로 끌려가 별별 농락을 다 당하고 영혼이 멸망하고 마침내 사탄의 종들이 되는 것을 봅니다.

1.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그러기에 금보다 더 귀하다고 했습니다. 금을 주고 살 수 없는 생명을 이 말씀으로는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 19:7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죽었던 영혼을 살려서 생명 있게 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런고로 아무리 중한 죄를 짓고 죽었던 영혼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들어가 작용할 때에는 다시 살아나서 생명이 약동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힘있는 활동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말씀이 임할 때 다시 생명이 생겨서 군대를 이룬 것처럼 죽었던 영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게 될 때 새 생명이 약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영혼에게 새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금보다도 정금보다도 귀하다고 한 것입니다.

2. 성경 말씀은 사람에게 참 지혜를 줍니다 시 19:8에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하며”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지혜는 어떤 것을 가르쳤습니까? 지혜란 악과 재앙을 피하여 선과 축복을 얻게 하는 지혜입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서 죄를 용납하지 않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와 율례를 잘 순종하고 지켜서 마치 지혜로운 건축자가 그 집을 만세 반석 위에 세우는 것처럼 그 생활을 아름답게 하므로 아무리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서 집을 흔들지라도 무너지지 않는 생활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또 지혜로운 다섯처녀가 등과 기름을 잘 준비함과 같이 주님 맞이할 모든 신앙을 갖추었다가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재 강림하실 때 부끄러움이 없이 주를 영접할 수 있도록 함은 성경을 읽고 말씀으로만 사는 자에게 얻을 수 있으니, 이것이 참된 지혜가 아닌가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잠언서에서 가르치기를 잠 1:7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3. 말씀은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줍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금보다도 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 19:8에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위로와 기쁨을 얻어 보려고 동분서주 합니다. 극장에서 하는 연극에서 기쁨을 얻어보려고 하고, 청루주사로 가서 한잔 술로 기쁨을 얻어보려고 하며, 춤을 추므로 기쁨을 얻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통하여 얻어지는 기쁨이란 정말 순간적인 것이고 야비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순간적인 기쁨이 지나간 후에 오는 고민은 한층 더 커질 뿐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하여 얻어진 그 기쁨은 참되고 영원하여서 어떤 환란이나 핍박도 이것을 빼앗을 수가 없으며 또한 없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사형형장에 가면서 그 얼굴에는 근심하는 빛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그 육체는 죽일 수 있어도 그 마음에 있는 소망과 기쁨은 빼앗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형장에서 사형 집행시 때도 그 평안의 얼굴과 기쁨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말씀이 그로 하여금 이와 같은 고통 중에도 기뻐할 수 있도록 힘을 주었던 것입니다. 말씀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평안하고 풍부하고 영광스러워도 참된 기쁨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말씀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은 그가 비록 옥중에 있을지라도 사형장으로 끌려갈지라도 스데반과 같이 기쁨이 충만하여 찬송을 부르면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말씀은 우리에게 영안을 밝게해 주므로 금보다 더 귀하다는 것 입니다 시 19:8에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보지 않는 사람은 눈이 어두워서 우리 자신의 죄를 발견할 수 없고 우리의 무능을 인식할 수가 없으며, 하나님을 앙망할 수가 없으며 천국과 지옥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은 자기를 깨닫고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자기의 부족을 깨닫고 더 큰 은혜를 사모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지옥 형편을 보고 악한 생활을 용납할 수가 없고 천당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천신만고를 능히 이기고 용왕매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스데반이 죽으면서도 기뻐한 것은 그가 눈이 밝아서 저 천국문이 열리고 천사들이 손짓하여 부르는 것을 발견한 때문입니다. 바울이 옥중에서 찬송을 부른 것은 저 3층천의 영광을 항상 앙망하였기 때문이였습니다. 말씀을 항상 사모하고 말씀을 통하여 충만한데 이른 사람들은 이와 같이 남이 볼 수 없는 영계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기도의 제목 중에 하나를 정하고 늘 기도하는 것은 “주여 내 마음눈을 밝게 하시사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천국과 지옥을 볼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나만 하지 않고 여러분들도 다 같이 하시는 줄 압니다. 그러나 이 기도의 대답을 받는 비결은 말씀을 많이 보고 이 말씀을 통하여 깊은 은혜의 자리에 들어갈 때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금보다도 정금보다도 더 귀히 여길 수밖에 없으며, 꿀보다도 송이꿀보다도 달게 여겨 사모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은 속에 말씀이 충만하여 항상 깊은 은혜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축복속에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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