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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눅 1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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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언의 말씀으로 성령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의 하나인 것입니다. 왜 성령을 구하라고 했겠습니까? 신앙생활을 인력으로는 지탱해 나가기가 어려운고로 구하라고 하셨으며, 인생은 성령으로 다시 나야 하겠기에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어떠한 분이기에 구하라고 하였겠습니까? 성경은 성령을 불에 비유했습니다. 불은 뜨거워서 찬 것을 더웁게 하며, 어두운 것을 밝게 하며, 단단한 것을 무르게 하며, 가치없는 것을 가치있게 하며, 못 쓸 것을 태워버리기도 합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냉냉한 신앙에 열의를 줍니다. 우리의 어두운 심령을 밝힙니다. 단단한 우리 심령을 완화시켜 줍니다. 우리의 가치없는 죄악을 태워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친구의 우정보다도 강하므로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문을 열어 영접하십니다. 간절한 간구는 사랑이 부족한 친구도 감동시킬 수가 있습니다.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은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사회 질서에 있어 깊은 밤입니다.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깊은 밤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깊은 밤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육신이 호흡을 통해서 대기를 접촉함으로써 그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같이 우리 영혼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접촉함으로써 그 생명이 보존되는 것입니다. 호흡은 몇 분만 그쳐도 살기 어렵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기도생활도 그치면 우리의 영혼이 건강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을 보면 “천사가 금대접에 향을 가득히 담아서 하나님 보좌에 올렸는데 그 향은 곧 성도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도의 기도는 향연과 같이 보좌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도란 귀한 것입니다. 또한 이 기도야말로 하나님 자녀에게만 특별히 부여된 귀중한 특권인 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에 모든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을 자격과 공로가 없으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밑에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2) 둘째는 우리 뜻이 아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요 15:7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정신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에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구하라”는 말은 말로써 구한다는 말입니다. “찾는다”는 말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도에 응답받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내 중심과 입으로 하나님 앞에 간구할 뿐더러 내가 내 기도에 응답받기 위해서 내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라”는 말은 우리 기도가 즉시 응답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라는 말씀으로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밤중에 친구가 왔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를 대접할 떡이 없었습니다. 그는 옆집에 가서 떡을 좀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옆집 사람은 “지금 다 문이 닫혔고 아이들이 나하고 자리에 누웠는데 이제 어떻게 일어나 줄 수가 있습니까?”라고 처음에는 거절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아무래도 내 친구가 왔는데 내게 없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무래도 꼭 좀 주세요”라고 계속해서 부르짖었습니다. 그 옆집 사람은 그가 그렇게 계속해서 간청을 하니까 일어나서 주었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구하여야 할 것이고, 찾아야할 것이며, 문을 두드려야 할 것입니다. 불의한 법관의 비유로도 예수님께서 이 뜻을 가르쳤습니다. 억울함을 당한 과부가 불의한 법관에게 가서 신원해 주기를 구했습니다. 이 불의한 법관은 하나님도 모르고, 사람의 인륜도 모르는 사람으로 처음에 불쌍한 과부의 서러운 사정도 듣기를 원치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구하자 불의한 법관도 과부를 신원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불의한 법관도 과부가 이렇게 계속해서 구할 때에 신원해 주었거든 하물며 사랑의 근본이 되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믿는 자들이 계속해서 기도할 때에 응답하여 주시지 않겠느냐”고 주님은 우리에게 반문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하다가 곧 답되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기도를 할 때 꼭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고 기다리라 그러면 이루어 주실 것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더 큰 은혜를 받기 위하여, 성령을 충만히 받기 위하여 간구하고, 찾고, 계속 문을 두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그대로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고기를 달라면 뱀을 줄 자가 어디 있느냐 하물며 하나님 앞에 구하면 더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우리에게 그 사실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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