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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사 4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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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절대 주권 고레스를 세우시는 하나님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기 위해서 이방 나라와 이방 왕까지 사용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은 고레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네 오른 손을 잡고 민족들을 네게 굴복시키고 왕들을 무장해제 시키겠다. 네 앞에 있는 성문을 활짝 열어 줘서 성문들이 다시는 닫히지 않게 하겠다.”여기 나오는 고레스 왕은 바벨론제국을 무너뜨렸던 페르시아의 왕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하나님의 이름도 모르는,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 고레스 왕을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에게 기름을 부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좀 당황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했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이방 나라의 왕 고레스를 사랑하고 축복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보면 흥망성쇠가 있습니다. 한 나라가 일어서면 한 나라는 망하고, 한 문명이 일어서면 한 문명은 사라집니다. 역사상 영원한 나라도 없고 영원한 문명도 없습니다. 역사의 흥망성쇠는 우연일까요? 아닙니다. 냉철한 눈으로 역사를 살펴보면 역사의 배후에는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전수전을 겪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철없이 ‘내 인생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일들을 겪게 되면 ‘내 인생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구나’라며 창조주 앞에 겸허히 자신의 삶을 의탁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역사의 주관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누가 역사의 주관자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역사의 참 주관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삶은 당시 강대국과 관련이 있습니다. 특별히 요셉을 보면 애굽이라는 강대국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켰습니다. 남유다는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70년 동안이나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이 포로생활을 하면서 하나님보다 바벨론이 더 커 보이지 않았을까요? 온 세상을 바벨론이 통치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모택동 치하에 있었던 중국인들, 김일성 치하에 있었던 북한 백성들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 우리는 자유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지, 왜 이렇게 죽어야하는지, 특히 크리스천들은 토굴에 지하실에 숨어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런 기도를 몇 십 년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포로생활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 거대한 바벨론 제국을 과연 누가 무너뜨릴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제국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구원하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하나님을 믿지도 않지만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를 세워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1절의 말씀입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은 고레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왕이나 예언자나 제사장의 기름 부음과는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방 왕 고레스에게도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바벨론을 멸망시키도록 했습니다. “네 앞에 있는 성문을 활짝 열어 줘서 성문들이 다시는 닫히지 않게 하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어느 누구도 손댈 수 없고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바벨론의 세력을 고레스를 통해 제거하고 바벨론에서 신음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는 말입니다. 무너진 이스라엘 성벽을 다시 쌓고 다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믿는 자가 사는 법 이런 역사적 상황은 구약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요셉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것을 기억하십니까? 애굽은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아닙니다. 바로 왕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셉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애굽이라는 나라에서 바로 왕 밑에서 총리대신까지 했습니다. 참 독특하지 않습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속에서, 예수를 믿지 않는 권력 앞에서 크리스천이 어떻게 존재해야하는가 하는 모델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거대한 제국이 아니요 약하고 보잘것 없고 부족한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나라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다가 사자 굴에도 들어가고 불속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서 다니엘의 리더십과 정치력과 지혜와 능력을 인정받아서 최고의 통치자의 밑에까지 갑니다. 성경에 보면 다니엘은 세 왕을 섬깁니다. 느부갓네살 왕, 그 아들 벨사살 왕, 다리오 왕을 섬깁니다. 왕들은 다 죽었지만 다니엘은 끝까지 남아서 섬깁니다. 여러분 이것이 불신자들이 가득하고 하나님이 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주변 국가와 주변 사람들의 의미를 재해석해야합니다. 북한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일본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강대국들은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지금 한국과 미국이 FTA협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영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경제적으로, 하나의 비즈니스로 해석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 주권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것이 영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가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께서는 2-3절에서 고레스 왕을 통해 하시려는 일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산들을 평평하게 밀어 버리겠다. 내가 청동 성문들을 부수고 철 빗장들을 끊어버리겠다. 내가 어두운 곳에 감춰 둔 보물과 비밀스러운 곳에 보관된 재물들을 네게 주면 내가 바로 네 이름으로 불러 낸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다.”우리는 여기서 2천 년의 기독교역사 속에 있었던 사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로마제국은 사도행전을 이루기 위한 도구였다고 합니다. 설명이 잘 안되는 부분이지만 엄청난 로마제국의 멸망은 하나의 사도행전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중세의 그 어두웠던 시기도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을 위한 도구였다는 것입니다. 18-19세기에 있었던 인본주의와 계몽주의와 이성주의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참패하고 인간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것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맞는 비극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왜 1차,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까? 인간이 하나님보다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세계는 수많은 사건을 겪었습니다. 냉전, 최근에 일어난 9.11테러사건,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등을 겪었습니다. 지금 당장 TV를 켜면 우리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와 무차별한 전쟁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맞는지, 헤즈볼라가 맞는지 우리는 혼란스럽습니다. 국내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 신앙적 해석이 없으면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분명한 관점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 성경이 보는 관점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의 미사일이나 핵문제는 결론적으로 볼 때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핵과 미사일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겁을 줘도 핵과 미사일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이런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작은 사건 앞에서 우리는 기가 죽고 방향을 잃고 당황하고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성경적인 확신을 갖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있으면 어떤 역사적인 상황에 놓이더라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전쟁과 평화의 통치자 하나님은 왜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는 페르시아 제국과 고레스 왕을 사용하셨을까요? 4-6절입니다. “내 종 야곱을 돕고 내가 선택한 이스라엘을 도우라고 네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네가 나를 알지 못했지만 내가 네게 칭호를 준 것이다. 나는 여호와며 다른 신은 없다. 나밖에 다른 신은 없다. 비록 네가 나를 알지 못하더라도 내가 네게 능력을 주어서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 사람들이 나 말고는 다른 신이 없음을 알게 하겠다. 나는 여호와며 다른 신은 없다.”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고레스 왕을 세워서 천하를 통일시킨 이유가 4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축복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원자탄과 미사일을 없애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의 포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고레스를 세워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그들을 구원했습니다. 이 말씀의 초점은 고레스 왕이 아닙니다. 고레스 왕을 부흥시키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초점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역사의 흥망성쇠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강대국도 없애실 수 있고, 반대로 촛불 같고 갈대 같이 연약한 이스라엘도 다시 세워 역사의 주인공으로 삼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놀라우신 분이시요,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분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7절입니다. “나는 빛도 지었고 어둠도 만들었으며 평화도 만들었고 재앙도 창조했다. 나 여호와가 이 모든 일을 한다.” 하나님은 빛을 지으셨고 어둠도 만드셨습니다. 어둠을 만드셨다는 것은 어두움도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평화를 만드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전쟁도 통치하십니다. 전쟁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십니다. 따라서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분에게 영광을 돌릴 때 역사가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역사 해석의 네 가지 중심 8절입니다. “하늘아, 위에서부터 떨어뜨리라. 정의를 이슬처럼 내리게 하라. 땅이 입을 벌려 구원이 열매 맺고 정의가 싹트게 하라. 나 여호와가 이것을 창조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과 역사를 해석할 때 네 가지 중심으로 해석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 중심입니다. 모든 역사와 인생에 대한 해석의 기본은 하나님 중심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십시오. 둘째 예수님 중심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선포하십시오. 셋째 성령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십시오. 마지막으로 교회중심입니다. 공동체의 능력을 선포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가정도 있고 직장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교회의 제도나 교파를 만들지 마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다른 조직과 똑같아집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영적 유기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는 정의하는 순간 교회의 내용이 사라집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교회는 이런 영적 조직입니다. 영적 공동체입니다. 우리에게는 가정, 직장, 학교 등의 공동체가 있지만 교회를 그것 중의 하나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생각한다면 교회는 매일 싸우고 분열하고 헤어지고 냄새나는 일밖에 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교회를 만들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중심, 예수님중심, 성령님중심, 교회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9-10절을 보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 너희에게 재앙이 있을 것이다. 바닥에 뒹구는 질그릇들 가운데 하나인 주제에 자기를 만드신 분과 다투는 자야!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무엇을 만드느냐?’하고 묻겠느냐? 작품이 작가에게 ‘이 사람은 도대체 손도 없느냐?’ 하고 말하겠느냐? 아! 너희에게 재앙이 있을 것이다. 자기 아버지에게, ‘도대체 무엇을 낳았느냐?’하고 말하거나, 자기 어미에게, ‘도대체 무엇을 낳느라고 그 고생을 했느냐?’ 하고 말하는 사람아!”끊임없이 부모의 사랑을 왜곡하고 자신을 낳은 부모를 원망하는 자녀가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자녀입니까. 작품이 작가에게 어떻게 항의를 하겠습니까. 토기가 질그릇에게 어떻게 항의를 하겠습니까. 11-13절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곧 이스라엘을 만드신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자식의 일로 감히 내게 묻고 있느냐, 아니면 내 손으로 만든 작품에 대해 내게 명령하느냐?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인류를 창조한 것은 바로 나다. 내가 손수 하늘을 펼쳐냈고 모든 별들에게 명령했다. 내가 정의를 세우기 위해 고레스를 일으켰으니 그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겠다. 그가 내 성읍을 재건하고 포로 된 내 백성을 해방시키겠지만 어떤 대가도, 보상도 없을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13절을 보면 하나님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 고레스 왕을 일으켰다고 하십니다. 고레스를 축복한 것도, 바벨론을 제거한 것도, 이스라엘을 회복시킨 것도 하나님의 정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고, 성읍을 재건하시고, 포로 된 백성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중요한 말이 그 다음에 나옵니다. ‘대가도 보상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포로를 풀어주면 보상이나 대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면서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냥 거저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 섭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암, 위기, 재앙을 만나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전쟁이 나도 겁내지 마십시오. 미사일을 쏘아대도 겁내지 마십시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고 이끌어 가십니다. 때로는 세우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승리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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