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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 (롬 08: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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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롬8:26-28)우리 그리도스인들은 삶이 어려울때마다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합니다.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기도를 통해서 만이 반드시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에 영혼의 호흡이고 하나님과에 만남이고 하나님을 대하는 대화요, 하나님에 능력을 힘입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도를 포기합니까? 기도를 하고 지내지도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른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땅히 빌어야 할것을 빌지 못하고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사랑하는 여러분!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마땅히 빌어야 할것을 빌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기도는 해야합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26절에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빌바를 빌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아주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우리에겐 영적인 침체가 옵니다. 결국은 신앙생활 멈추어 질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우에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는지 모릅니다.왜 기도를 쉴까? 왜 기도를 하지 않을까? 빌바를 마땅히 하나님앞에 빌지를 못하고 살까? 몇가지 이유를 찾아보겠습니다.첫째, 육신에 연약함 때문입니다.기도를 해야하는걸 알면서도 우리는 연약해서 기도를 못할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에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고민하며 하나님앞에 간절하게 기도했던 예수님은 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부탁했지만 제자들은 그만 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왜 잤을까요? 예수님을 그것을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 제자들 조차도 육신에 연약함 때문에 기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하루를 살기 위해서 숨을 쉬고 밥을 먹는것 처럼 마땅히 해야 할 기도를 그들은 피곤하기에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세상일에 바쁘고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기도할 시간조차 낼수 없었던 연약한 우리들에 모습이 아니겠습니까!둘째,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무엇을 구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우리에 기도를 보면 하나님에 뜻에 따라 기도하기 보단 내 욕심에 따라 할때가 많습니다.마태복음2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계시는데 그때 예수님에 제자 가운데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옆에서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기도는 하고 있는데 마땅히 구해야 할것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주님에 뜻과는 상관없이 오직 자기자신에 유익과 가치관에 판단에 따라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내욕심대로 기도하기 쉬운 연약함을 갖고 있습니다. 셋째, 응답에 지연입니다.빨리 응답되지 않고 지연되는것입니다. 오랜시간동안 기도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그렇게 응답이 없으십니까?그래서 '혹시 하나님께서는 나를 떠나 계신것은 아니신가?'라고 의심을 해보기도 합니다. 이른바 기도에 한계성을 갖게 됩니다.오늘 본문은 이와같은 기도에 한계와 좌절을 가르켜서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한다 라고 규명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아무리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간절하다고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우리에 기도는 한계가 있고 불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우리는 많은 기도를 합니다,그러나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못된것을 드리는 기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정욕대로 잘못 구할때가 많더라는 겁니다.그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탄식하면서 기도를 포기할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순간마다 경험하고 있는 기도에 한계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를 그쳐서는 안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빌바를 잘몰라서 잘못 기도할수 있고 계속 기도하기가 어렵다는걸 우리가 경험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계속 기도해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에 기도를 도우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26절에 보면 "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는 연약함으로 마땅히 빌바를 잃어버리지만 기도할수 있는 축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에 간절하신 탄식에 중보기도가 있기때문입니다.오히려 나보다 더 나에 문제로 인해서 더 탄식하시고 눈물을 흘리시고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나에 연약함을 도우실뿐 아니라 나와 함께 간구해 주시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진실로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것은 기도자인 내가 기도할수 없는 연약함 가운데 있고 또한 기도한다 해도 정욕가 욕심으로 잘못 구하고 있는 나이지만 성령님께서는 먼저 나에 문제를 나보다도 먼저 안타깝게 여기시고 기도하고 계시더라는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지 않고 살아갈수 있습니까? 잘못 구하고 있어서 응답 받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은혜가운데 예배를 드리고 있는것은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성령이십니다.성령에 감동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에 가슴을 움직이고 삶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에 역사가 있다는것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27절을 보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분명한것은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빌바를 알지 못할때 내가 헤매고 있을때 하나님에 뜻대로 대신 기도도 해주시고 내 마음을 감동시켜서 하나님에 뜻대로 기도하게 하시더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내 옆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성령님이 의지하며 하나님에 뜻에 맞는 기도하는 축복에 사람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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