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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라 (잠 22: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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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라(잠언 22:17-29)

그 동안 우리가 잠언을 생각하는 중에 10장부터 22장 16절까지는 일정한 문장의 연관이 없이 한 구절씩 서로 다른 뜻을 가진 잠언들로써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읽어가는 동안에 발견한 것은 같은 뜻의 잠언이 여기저기 헤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한데 모아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잠언을 생각하면서 피부로 느끼는 것은 정말 우리의 일상생활에 아니 좀더 나아가서 우리 인간 생활에 있어서 정말 필요한 실제적인 말씀들인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저녁 읽은 잠언 22장 17절부터는 필체를 완전히 바꿔서 서로 문맥이 통하는 문단의 잠언으로 구성된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17-21절까지의 말씀은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라”고 권면합니다.

자, 그러면 여기 지혜있는 자가 누굴까요? 물론 하나님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은 지혜의 근본이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1장 2절에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 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하였습니다.

그러면 오늘 지혜있는 자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신 이 성경을 통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퀘커파에서는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모여서는 인도하는 사람도 따로 없이 그저 묵묵히 앉아서 묵상하며 영감을 기다리다가 누구든지 영감이나 계시가 오는 사람이 있으면 벌떡 일어나서 자기가 받은 영감대로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믿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말씀해 주신 성경이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하신대로 “이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디모데후서 3:15)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요사이도 간혹 어떤 사람은 내가 산에서 특별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불러 주어서 쓴 것인데 이것은 성경보다 더 중요한 것이고 아주 긴급한 사실을 적은 것이라고 강조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인데 이런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기록된 성경 외에 우리가 구원받고 신앙 생활하는데 더 필요한 말씀이 있을까요? 요한복음 20장 30-31절을 보십시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한 곳을 봅시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였습니다.

정말 이 성경책은 이상한 책입니다. 아무리 잘 팔리는 책이라고 해도 한 10여년이 지나면 그 책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근 2,000년 전에 쓰인 책인데도 지금까지 베스트셀러로 제일 많이 팔리는 책이니 말입니다.

더구나 이 성경책은 옛날부터 오늘까지 많은 비난과 박해를 받아 온 책입니다. 옛날 셀서스라고 하는 사람을 비롯해서 18세기의 볼테어같은 사람, 20세기에 와서 공산당에 이르기까지 항상 공격과 박해의 대상이 된 책입니다. 옛날 로마 시대에 교회를 핍박할 때는 예수 믿는 사람만 잡아다가 죽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책도 찾는대로 모아다가 불살라 버렸습니다.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16세기에 윌리암 틴데일 같은 사람이 처음으로 성경을 영국 말로 번역하였다고 그것을 죄로 여겨 화형을 집행했습니다. 영국왕 헨리 8세 같은 사람은 누구든지 새 번역 성경을 읽는 사람은 한달 이상 금고에 처한다는 포고를 내렸던 것이 있습니다. 옛날만 아닙니다. 오늘날도 저 공산권에서는 성경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이 성경책은 세계에서 제일 많은 방언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아마 지금 1,300여 방언으로 번역된 줄 생각합니다.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학생도, 군인도, 철학자도, 정치가도, 실업가도, 남자도, 여자도, 노년도, 청년도 읽습니다.

왜요? 이 성경은 지혜를 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4장 7절에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고 하였습니다. 8장 11절에는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하였습니다. 지혜가 귀합니다. 지혜라는 말은 지식이라는 말과 그 뜻이 좀 다릅니다. 지식이라는 말은 아는 것의 총칭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지식을 바로 쓰며 범사에 바른 길을 택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보면 지식은 많지마는 미련한 사람이 있고, 지식은 좀 부족하지마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20세기는 지식의 세기입니다. 그 어느 세기보다도 지식이 팽창한 세기입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우리 인간이 원자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비밀을 탐색하게 되었습니다. 달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가 추석으로 가을 하늘의 달을 구경하였습니다. 전에는 당에 그저 옥토끼가 있는 줄로만 알아 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우리 인간이 직접 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20세기에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또한 많이 하였습니까? 1914년의 세계 제 1차대전 소련의 공산당 혁명, 독일의 나치스 운동, 세계 제 2차대전으로 얼마나 많은 인명과 재산이 파괴되었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미련한 세기라고 역사가들이 기록할 것입니다.

여러분!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식을 바로 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경제가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돈을 바로 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권세를 잘못 쓰므로 자기 자신과 나라를 망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왜요? 지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능도 그렇습니다. 기회도 그렇습니다. 젊음도 그러합니다. 바로 쓸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이 이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고 그대로 살면 이 지혜가 있게 됩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우리 원로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어 왔습니다. 아마 오랜 목회 경험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학교를 졸업 못한 사람이라도 10년 동안만 교회에 잘 다니며 성경을 배우면 대학 졸업한 사람보다 그 지혜가 낫다”고. 거참 뜻이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 청년 여러분! 분명히 들으세요. 박사학위만으론 부족합니다. 그 지식을 바로 쓸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지혜를 어디서 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가운데서 얻습니다.

전에 어거스틴 같은 사람이 지식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대로 그 많은 지식과 훌륭한 웅변술로 소위 인기있는 생활을 하여서 음란과 방탕에 빠져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청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런 더러운 청년이 변해서 성 어거스틴이 되고 유럽의 1,000년 동안의 사상을 지배한 위대한 사상가가 된 것입니다. 그 성경 구절을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로마서 13장 12-14절입니다.

그러면 지혜의 말씀을 들으므로 어떤 지혜를 얻습니까?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인간은 세 가지 방면에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1. 죄에서 구원 얻어야 합니다(요 1 1:10).
2. 공포와 불안에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요 14:1).
3. 허무감에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고후 4:16).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 모든 것에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한다고요? 본문 19절에 “내가 너로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지혜의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을 의뢰하게 되고, 예수를 믿게 되고, 죄에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제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기억하시지요?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모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은 의뢰하는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공포와 불안에서 해방을 받습니다. 왜요? 예수 믿어 죄사함 받은 사람하고는 주님께서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거짓말하지 아니하십니다. 주님과 동행할 때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됩니다. 그러므로 불안과 공포가 없어집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지요?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주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였습니다. 이 세상이 위험하나 주안에 사는 사람들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 뿐입니까?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허무감에서 구원을 얻습니다. 왜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사는 생명을 얻습니다. 이런 생명을 얻는 사람은 허무감이 없어집니다. 그 까닭은 죽음이 최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영생에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여러분, 지혜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까? 들을 마음의 준비가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합니까? 그래서 죄에서, 불안과 공포에서, 허무감에서 해방되었습니까? 되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세요. 전에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요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사다 두기는 하지만 읽지를 않아서 성경 위에 먼지가 많이 쌓여 있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하는 말이 만일에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의 성경 위에 있는 먼지를 한꺼번에 헐어 버린다고 하면 먼지가 너무 많아서 3,4일은 해가 어두워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성경은 어떻습니까? 내내 그냥 두었다가 예배당 오실 때만 가지고 오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제가 감격할 일 가운데 하나는 우리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우리 교회가 희망있는 증거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금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표어 밑에 성경 공부하는 일을 힘쓰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구역에서, 교회에서 할 수 있는대로 성경을 잘 배우고 힘써 생활할 때 복 있는 인간의 생을 영위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시편 1편에 복있는 사람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자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사는 사람을 지혜 있는 건축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박조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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