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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물 떠온 하인들만 알더라 (요 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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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첫 번째 일으킨 기적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베푸신 기적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기적은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인위적이거나 기적을 위한 기적을 베푸신 적이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먹을 것을 만드셨고 포도주가 떨어졌기 때문에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외로운 것은 너무나 인위적이기 때문입니다. 부부생활, 자녀교육도 어떤 목적을 두고 하다보니 갈등이 생겨납니다. 사랑이나 기적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두 번째는 이런 기적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과시하듯이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나 나사렛에서 베풀지 않고 사람들이 많지 않은 평범한 마을 결혼식장에서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신앙도 과시적이거나 형식적인 모습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따뜻하고 개인적인 사랑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봉사와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는 지혜있고 영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을 통해 예수님의 기적이 베풀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잔치에 시종을 드는 종들이 영적인 감각과 지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이 여러분을 통해 일어나길 바랍니다. 우리의 순수함, 헌신, 지혜, 간절한 마음을 통해 모든 병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기적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기적에서 배우는 것은 관계와 때입니다. 우리는 기적만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관계를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했는데 이 말은 나와 먼저 관계를 맺고 난 후에야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했는데 ‘당신이 원하는 때가 아니라 내가 원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적에는 언제나 ‘상관관계’와 ‘때’가 중요합니다.

믿음을 통해 일어나는 기적
예수님의 어머니가 포도주가 부족하다고 예수님께 얘기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이 말에 마리아는 노여워하거나 섭섭해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리아는 그 말을 거절로 생각하지 않고 응락한 것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신앙은 해석입니다. 해석을 잘하면 인생이 즐겁습니다. 그 사건에 의미가 있으면 모든 곳에 축복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나의 믿음을 요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즉시 종들에게 얼굴을 돌렸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시니라

보십시오. 마리아는 종들에게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부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중요한 기적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기적은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실 때 ‘네 믿음대로 되리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예수님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자에게는 능치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 기적을 베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에 기적을 베풀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할 때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싶다면 당신의 생각이나 철학, 상상력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내 사상, 묵상, 생각에는 기적이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의 철학이나 사상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허무하게 됩니다. 당신이 따라다니는 지도자, 사상은 당신을 실망시킬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보고 묵상하십시오. 말씀이 시키는 대로 행하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데는 기적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내 생각이나 사상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6-7절을 보십시오.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또 한 가지 배우는 것은 기적에는 재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기합 소리로 허공에서 포도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술사가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보면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인 것을 보시고, 그 재료를 보시고 기적을 베풀 것을 생각하십니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고, 공중 나는 새를 보고 설교 재료를 삼으십니다.
5천 명이 배고플 때 어린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사용하셨습니다. 엘리사는 가난한 과부가 굶주렸을 때 빈 기름병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헌금이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드린 헌금으로 엄청난 세계선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여러분의 작은 은사를 바치면 하나님은 그것을 극대화 시켜 큰 축복의 그릇으로 삼으십니다.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예수님께서 돌항아리 여섯 통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시자 종들이 항아리 아구까지 물을 채웁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그렇게 합니다. 종들은 ‘어떻게 물을 채울까요’라든지 ‘왜, 언제, 어떤 물을 채우라는 겁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작은 봉사를 하면서도 너무 많은 말을 합니다. 자신의 봉사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따지고 묻습니다. 하인들에게서 배울 점은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알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구까지 물을 채웠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의 따뜻한 믿음도 보지만 하인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믿음도 봅니다. ‘물 채우라’는 말에 아구까지 채우는 것을 저는 ‘충만한 믿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말이 제게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요즘 사람들은 너무 삭막하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계산합니다. 일하는데 여유가 없고 각박하고 살벌합니다. 집에서도, 교회에서도, 세상에서도 경험합니다.

우리에게 물을 채우라고 한다면 할 수 있는 반응이 세 가지 정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눈에 보기에 좋을 정도로만 적당히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기적도 적당히 일어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는 척만 할 뿐입니다. 물통을 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일을 다하는 척하지만 정작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조용히 물을 아구까지 채웁니다. 충만한 사람, 충만한 믿음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물을 채우라는 말씀에 아구까지 채우는 믿음을 보여 준 하인들은 이제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했을 때 갈등 없이 떠다 주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작은 순종에 주시는 큰 축복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심도있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을 항아리에 채우는 것은 그저 물을 채우는 것이기에 갈등하지 않고 누구라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말은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물을 발씻고 손 씻는 데 갖다 주라면 그것은 상식이기 때문에 별로 갈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회장에게 갖다주라는 말은 그 물이 ‘술’이라는 뜻입니다. 물을 술인줄 믿고 갖다 주라는 말은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그때 사람은 갈등하게 됩니다. 내 이성과 상식과 경험에 맞지 않는 말에 갈등하고 따지게 됩니다. 의심하고 주저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봉사하다가 주저앉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 종의 위대함은 그 맹물을 갖다 줬다는데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맹물을 떠다 주는 믿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키는 일들이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인의 정서와 맞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은 인간이 경험하는 작은 세계 안에 속하지 않습니다. 저는 16년 전 횃불회관에 12가정이 모여 시작한 우리 교회가 이렇게 큰 교회가 된 기적과 역사를 뭐라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물떠온 하인처럼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이성에 맞지 않아도 순종할 뿐입니다. 기적은 그분이 베푸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에도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찬란하고 복된 미래가 여러분 앞에 전개돼 있음을 믿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 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연회장은 포도주 맛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가 하인들이 갖다 준 물을 먹고 자신이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향긋하고 신선한 포도주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본문에는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은 이것이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했고 물떠온 하인들은 알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기적은 당신이 믿고 순종하는 순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맹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준 순간까지도 그 물은 맹물이었습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예수님은 포도주를 갖다 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물을 도로 퍼다 줄 바에야 왜 항아리에 넣었다 퍼내겠습니까? 이것이 믿음의 과정입니다. 맹물을 들고 하인들이 연회장앞에 갔는데 그 과정은 잘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연회장이 그 물을 먹는 순간 그것은 향긋한 포도주였습니다. 그러면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언제 였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적은 이렇게 여러분이 알 수 없는 시간에 이루어집니다. 기적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과정입니다. 겨울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면 온 천지에 하얀 눈이 덮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눈은 아침에 한꺼번에 온 것이 아니라 밤새 내린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기적의 연속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기적이고 축복이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을 보면서 우리는 구원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는 말은 나쁜 물이 좋은 물이 되었다거나 물의 악취가 제거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분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본질적 변화입니다. 내 인격의 성숙이나 양심이 청결하고, 도덕성이 좋아진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 의인이 된 것입니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를 나와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은 죄인이 의인이 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본질적 탄생의 의미입니다.
물 떠온 하인의 사건을 통해 두 번째 배우는 것은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은 그 비밀을 알지 못했지만 물 떠온 하인들은 그 비밀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받은 자만이 압니다. 옆에서 구원받은 사람을 아무리 구경해도 알 수 없습니다.

승리하게 하는 힘
물 떠온 하인들은 연회장이 감동할 때 흐뭇하게 웃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기적을 베푸셨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포도주 맛을 본 사람은 큰 일을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의 현장을 경험한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분명히 자기 손으로 맹물을 떠다 주었는데 그것이 포도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본인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힘이 없는 것은 체험적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믿음이 체험적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실제를 경험하고 내 삶의 본질이 변화되는 경험이 힘이고 능력이며, 감격이며 이것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어떤 위기와 어떤 고난에서도 승리하게 하는 힘이 이 거듭남의 비밀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세상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을 봅니다. 세상사람들의 관계는 처음에는 다 좋다가 나중에는 싸우고 비참하게 헤어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 구원받은 사람들의 관계는 처음에는 서먹하지만 나중에는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더 깊은 사랑과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날이 갈수록 깊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가나의 혼인잔치 사건을 보면서 괜히 좋고 행복합니다. 시적이고 낭만적이고 감동적인 마음을 갖게 해줍니다.

포도주가 모자란 것을 본 마리아의 안타까움과 갈등을 상상해봅니다. 이것은 인간 삶의 현주소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시간의 의미, 기적을 베풀기 위한 믿음과 순종의 비밀, 물이 변해 포도주가 된 기적과 축복,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의 감동. 크리스천이 가는 곳에 이와 같은 감동과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 포도주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알지 못하지만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여유가 생깁니다. 물떠온 하인들만 아는 미소와 기쁨이 한데 어울려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세 가지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처음 표적을 가나에서 베풀었을 때 가장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연회장과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두번째는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예수님이 영광을 받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세번째는 제자들이 그를 믿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믿음이 생겼습니다.

삶에 계속되는 기쁨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의 삶에 날마다 이런 기적이 계속되기를 축원합니다. 미래는 내가 막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막지 않습니다. 나의 과거의 상처와 패배와 절망의 생각이 언제나 미래를 향하는 나를 막는 것입니다. ‘넌 해봐야 안돼. 이번에도 너는 망할꺼야’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만들어서 좋은 머리와 은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를 단절하십시오.
‘나와 함께 가자’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다시 사업하면 성공할꺼야, 다시 일어나면 회복될 수 있어’ 예수님은 미래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고 그런 축복을 우리의 믿음을 통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은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나이를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돈이 없어서, 병들어서 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전과 믿음이 없어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미래는 우리의 것이며 하나님의 것입니다.우리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모든 사람에게 축복을 나누어 주는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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