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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새 한 마리 (마 10: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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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같은 성경말씀인데 누가복음 12장 6절에는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새에 대한 교훈이 아니라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교훈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직업을 버리고 떠났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에서 살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는 많은 장애물과 위협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삶의 염려로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염려와 두려움은 우리 삶의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6장 25-27절에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말씀했습니다. 염려한다고 해결되지 않기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고, 공중의 새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돌보시는데 하물며 참새보다 귀한 우리를 돌보시기에 염려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여기서 참새의 값을 계산해 봅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한 앗사리온에 두 마리의 참새를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 의하면 두 앗사리온에 참새 다섯 마리를 산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두 앗사리온에 해당되는 네 마리에 덤으로 주는 한 마리를 더한 것입니다. 한 앗사리온은 가장 작은 동전(페니-penny)의 단위입니다. 한 앗사리온은 노동자 임금의 1/16 데나리온에 해당됩니다. 여기서 두 앗사리온에 다섯 마리를 주는 참새는 덤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보잘 것 없는 참새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참새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성경은 365번이나 반복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1년이 365일이므로 매일 매일 날마다 염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심리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우리가 염려하는 일들의 40%는 쓸데없는 염려입니다. 또 나머지 30%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염려입니다. 나머지 10%의 염려는 미래의 가상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나머지 12%는 자신과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가지고 공연히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의학에서의 통계를 보면 위장병의 80% 신경성이라고 합니다. 또 한센씨병의 60%가 신경성으로 생겨난다고 하며 신경성 류마치스 60%가 역시 신경성으로 발병이 된다고 합니다. 염려하면 건강도 헤치게 되는 것입니다. 염려라는 단어를 헬라어로는 메림나오(merimnao)라고 하는데 이것은 나누다(merice)는 말과 마음(nous)라는 말이 합성된 말입니다. 즉 염려는 마음이 나누어지는 것이고 마음이 둘로 나뉘어 지니까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한자에 ‘근심할 환(患)’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그 생긴 모양을 보면 마음이 둘로 나뉘어 지는 모양입니다. 마음이 나뉘어 지니까 어지러워지는 것입니다. 염려를 영어로는 ‘Worry’라고 하는 데 이것은 ‘물어뜯다, 목 졸라 질식시키다’라는 뜻인데 이것은 염려가 느린 형태의 자살행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살하고 싶으면 염려하면 됩니다. 서서히 자신의 목을 졸라 질식되기 때문입니다.
성경 베드로전서 5장 7절에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맡겨버린다”는 것은 “던져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걱정이나 염려를 멀리 던져버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69편 19절에는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고 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주에 가면 'Royal gorge(로얄고지)'라는 곳이 있습니다. 2년전 안식년에 그곳에 간적이 있습니다. 두 산 사이에 큰 계곡이 나 있는 곳인데 계곡의 깊이가 800m 정도가 되는 곳인데 그 계곡사이로 코로라도 강이 흐르고 강 옆으로는 기차가 지나가는 곳입니다. 또 양쪽 계곡사이에 출렁다리가 있는데 자동차가 한 대씩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져 있습니다. 빼어난 경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400년 된 거목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14번이나 벼락을 맞았는데도 끄떡없었던 나무였답니다. 또 그곳에는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려서 눈사태가 많이 일어나는데 눈사태에도 잘 견뎠습니다. 그러던 아름드리나무가 넘어진 것입니다. 알고 보니 딱정벌레가 속을 갈아먹기 시작하여 쓰러진 것입니다. 저는 이 나무를 보면서 근심과 걱정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거목을 한순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00마트나 00아울렛 같은 할인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미국에 가면 JC 페니백화점이라는 체인점이 있습니다. J.C.페니가 세운 백화점이며 그는 백화점 왕이란 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여 재정난으로 자살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는 정신질환으로 미시간주에 있는 베틀클릭 격리병원에 입원할 정도였습니다. 어느날 그는 병원 어디선가 들려오는 찬송소리에 끌려 그곳에 가보니 조그마한 교회에서 찬송가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는 찬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찬송에 힘을 얻어 마비된 심령에 새로운 빛을 얻게 되었고 새 출발하여 백화점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지켜 주시니 근심하지 말고 염려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요즈음은 결혼식 시즌입니다. 결혼에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결혼식 청첩장을 받고 바빠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여 축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전화국에 요한일서 4장 18절의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라는 말씀으로 축전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배달된 축전은 요한일서가 아닌 요한복음 4장 18절 말씀으로 배달이 되었는데 그 말씀은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라는 성경구절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집사님이 자녀 결혼식 날짜를 정해놓고 좋은 날씨를 위해 걱정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당일 날 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축하 하객들이 더 많이 왔습니다. 알고 보니 비가 와서 다른 약속들을 취소하고 왔다는 것입니다. 공연한 근심 걱정을 한 것입니다. 성경은 염려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근심 걱정을 믿음으로 맡기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의 근심걱정의 99%를 하나님께 맡기고 1%는 내가 가지고 근심하면 이것은 믿음의 삶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맡겼으면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웨슬레는 신자를 두 종류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것은 Almost Christian (99% 크리스챤)과 Altogether Christian (100% 크리스챤)입니다. 우리가 근심걱정을 100% 하나님께 맡기고 살 때 우리는 100%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100% 근심걱정을 맡기고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두려움도 염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우리 삶의 장애물이나 위협 요소들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워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삶이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막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결재 없으면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서고 앉은 것과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66장 2절에는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권고하려니와’라는 말의 뜻은 “높여 주려니와”라는 뜻입니다. 에스라 10장 3절에는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첫째 하나님과 둘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두려움의 대상을 바꾸십시오. 던(Dun)이라는 신학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4장 38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풍랑을 극복하려고 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두려워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님은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한 후에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하고 믿음이 없음을 책망했습니다. 제자들은 만 왕의 왕 되신 주님이 배 안에 계시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었고 믿음이 실종되었던 것입니다. 믿음만 가지면 물 위로 오라할 때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볼 때 바람과 바다를 바라보던 베드로도 두려워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지금은 모든 조건들이 걱정할 상황입니다. 매일같이 중소기업들은 무너지고 있고, 가게를 경영하던 사람들은 가게를 정리하고 문을 닫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코르헨티나(아르헨티나)가 된다고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헤쳐 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끝(that's it)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친구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에 헌신예배 설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수요일에 주보 원고를 받기 위해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의 감이 멀어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시편 23편 1-6절을 말했고 상대로 잘 알아들었습니다. 제목을 말할 때 감이 더욱 안 좋았습니다. 제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하니 잘 들리지 않아 세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그 다음은요? 할 때 “그것이면 끝 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 저녁에 설교를 하러 갔더니 유난히 제목이 길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그것이면 끝 입니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끝입니다.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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