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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엠마오의 영적 유턴 (눅 24: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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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의 영적 유턴(누가복음 24:13-33)

예수님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절망가운데 있던 두 사람이 희망을 되찾게 되는 놀라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망과 절망으로 돌아선 제자들

제자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약 12km 떨어진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눅 24:13-15)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던 그날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실망과 절망과 깨어진 꿈을 안고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걸어가시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참 감사한 것은 이들이 선교를 작정하고 선교지로 갈 때만 예수님께서 함께 가신 것이 아니라 소망을 잃고 걸어갈 때에도 가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를 외치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게 살아갈 때에도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지만 반대로 낙망하고 절망하고 깨어진 꿈을 안고 혼자 울고 있을 때도 예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실 때 두 사람의 상태는 어땠습니까?
첫째, 영적으로 무지했습니다.(16절)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어느 한 곳을 바라보면 다른 곳을 보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무덤은 보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신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본 십자가, 무덤만을 생각하다가 살아계셔서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둘째, 감정이 깨어졌습니다.(17절) 열정이 사라지고, 에너지가 떨어졌습니다. 제자들은 슬픈 기색으로 그냥 걷고 있었습니다. 상실감, 허탈감, 허전함, 자포자기, 불안한 마음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행동하셨습니까? 정말 감동적인 예수님의 두 가지 행동이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

첫째, 예수님께서는 그들 곁에서 말씀하셨습니다.(17절)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무지하고 감정이 상한 제자들에게 다가가셨고 그들의 대화에 관심을 가져 주셨습니다. 지금도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은 한순간도 빠짐없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 기도할 때, 큐티할 때, 찬양할 때 등 예수님은 끝없이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한 말을 보면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말하지 않고 예언자라고 합니다.(19절) 그리고 그분이 이스라엘을 구속해 주실 분이라고 바라고 있었다고 합니다.(21절) 현재시제가 아니라 ‘과거에 그랬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부활 소식에 놀랐다고 했습니다.(22절) 믿지는 못하고 그냥 놀라기만 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천사들이 예수께서 살아 계신다고 말했다’는 식으로 그저 제 삼자의 입장에서 말을 합니다.(23절)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핵심적인 말씀이 25-26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리석고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게 믿는 사람들이여! 그리스도께서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리석고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게 믿는 사람들이여!’라고 하시며 제자들의 믿음이 없음을 꼭 짚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속 깊이 숨어있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때때로 그것이 아픕니다. 우리에게는 ‘제가 헌금도 하고 봉사도 다 할 테니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말씀하지 마십시오’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설교를 듣거나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할 때마다 그것을 건드리십니다. 정확하게 짚어서 말씀하십니다. 때때로 죄의 문제, 헌신의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선교사로 나가는 것을 말씀하실 때도 있고, 헌금의 문제를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용서의 문제, 관계의 문제, 정직의 문제에 대해서도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픕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아프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복과 새로운 세계의 은혜를 나눠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친구가 되셔서 품어주시는 예수님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걸으시며 절망하고 낙망할 때도 가까이 계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기도해. 나를 믿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주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빵을 주셨습니다. (27-30절) 따뜻한 마음으로 친구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빵을 잘라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따뜻하게 품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낙망하고 절망할 때면 언제나 사람을 보내주시던지 직접 환상가운데 나타나셔서 품어주십니다.

어떤 분이 하루는 교회에 오시면서 마음이 무거워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 같다. 하용조 목사님과 악수 한 번 하면 주님이 날 사랑하는 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그 날 하 목사님께서 늘 가시던 길을 가시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그분 앞으로 오시면서 ‘안녕하세요’ 라며 악수를 하셨다고 합니다.

이렇게도 주님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기적으로, 때로는 먹을 것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옆에 계신 주님을 모를 때에도 주님은 늘 우리 곁에 계셔서 말을 걸어오십니다. 그리고 동역자를 통해, 리더를 통해, 식구들을 통해, 친구를 통해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주시고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주님께서는 “절망 중에라도 다시 한 번 어깨를 펴고 희망가운데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빵을 주셨을 때 제자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제자들의 영적 유턴

첫째, 눈이 열렸습니다.(31절)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영혼의 눈이 열려 예수님의 능력이 얼마나 강한지,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얼마나 위대한지, 예수님께서 내게 주시는 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지금껏 내가 알지 못하던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함께 계셨고 지금도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영성입니다. 병중에서도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서도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보십시오. 이전에는 죽음과 무덤과 십자가와 절망만을 바라보았지만 이제는 그 상황을 넘어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32절) 이것은 다시 말해 열정, 에너지, 감정이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뜨거워지면 고열로 죽고, 가슴이 냉랭하면 심장마비로 죽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은 가슴이 뜨거워야 합니다. 위대하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열정과 에너지가 생깁니다. 저는 오늘 나이와 상관없이 여러분에게 하늘의 에너지, 뜨거운 감정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셋째, 결단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됩니다.(33절) 제자들은 즉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머뭇거림도 불순종임을 기억하십시오. 제자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 돌아갔습니다. 저는 오늘 즉시 순종하는 영적 유턴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은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울 때도 떠나지 않고 사람, 환상, 기적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따뜻하게 감싸며 함께 하십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영혼의 눈이 열려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이전에 행동하지 못하던 것을 결단하고,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운데 주님을 만나 영적 유턴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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