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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선한 청지기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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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베드로전서 4:11).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가 본격화 될 즈음에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박해를 끝까지 인내하도록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격려의 서신’(The Epistle of Courage) 또는 ‘소망의 서신’(The Epistle of Hope)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성도가 그리스도처럼 고난 받을 각오로 영적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핍박이 가중되는 상황 가운데서도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성도가 육체의 고난을 받는 것은 그의 옛 사람이 죽어 선하고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세속주의입니다. 이 세속주의의 위협은 초대교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성도와 교회를 괴롭히는 무서운 독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미 죄와 인연을 끊고 사는 사람들인데, 아직도 과거에 즐기던 세상 문화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람의 정욕을 쫓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라는 것은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성도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또한 선한 청지기로서 가져야 할 삶의 자세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힘써야 할 사랑은 감정적으로 하는 일시적인 사랑이 아니라 의지의 결단을 하고 행동을 수반하는 아가페(Agape)적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상대의 허물을 덮어주고 불평 없이 나누는 사랑입니다.
 마지막으로 선한 청지기의 삶은 서로 섬기면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다양한 은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은사는 서로 비교되거나 자기의 유익과 자랑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오직 교회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봉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연약한 힘을 의지하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통해 겸손하게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봉사해야 하겠습니다.

「묵상 365일 김진홍목사의 하루를 여는 지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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