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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녀야 일어나라 (막 5: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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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야 일어나라 (막 5:35-41)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마가복음 5장 35∼41절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호수 서편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에게는 12살 난 어린 외동딸이 있었는데 이 사랑하는 어린 딸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이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옵니다.

1.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들

이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를 절망케 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순간순간 예기치 않게 크고 작은 문제들이 닥쳐옵니다. 개인의 문제, 자녀의 문제, 물질의 문제, 건강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가정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 사회와 국가의 문제 등 이러한 문제들이 닥쳐올 때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고 연약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보다도 참으로 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죽음의 문제입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철저히 자신의 나약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봐도 죽음의 문제만큼은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 죽음의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육신에 갇혀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절망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롬 7:24).
 
본문 말씀의 회당장 야이로도 죽음의 문제로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하나뿐인 어린 딸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야이로는 아마 딸을 고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약도, 그 어떤 의사도 그의 딸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야이로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매년 대학입시 시즌이 돌아오면 고3 학생이 성적이 나쁘게 나왔다고 비관하여 자살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또 결혼에 실패하고, 사업에 실패한 것으로 인해 인생을 포기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제가 일본 동경에서 사역할 때 일본인 노숙자 한 분이 전도를 받고 저희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분은 영어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분이었기에 노숙인이라는 것이 제가 보기에는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옛날에 조그마한 컴퓨터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사업이 파산되어 그 충격에 절망하여 집을 나왔고 가족들에게 미안하여 집으로 못 돌아가는 노숙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절망은 인생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어떤 문제가 다가와도 절대로 절망에 붙잡혀 살아가지 마십시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절망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어떻게 절망을 이길 수 있습니까? 절대희망 되신 예수 그리스도, 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와야 합니다.

2. 문제의 해결자 예수 그리스도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 문제의 해결자되신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와 겸손히 엎드렸습니다(막 5:22).
당시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세웠습니다. 회당은 오늘날 교회와 같은 곳으로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의 센터입니다. 회당장은 그 회당의 운영 책임자로서 건물 관리에서부터 예배 순서를 계획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랍비를 선정하고, 지역의 질서도 유지하고, 심지어 재판하는 일까지 감당했습니다. 그러므로 회당장 야이로는 유대인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고, 크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모세의 율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단자로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의 지도자급인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잘못하면 자신의 지위를 다 박탈당할 수도 있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회당장은 자신의 명예와 신분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나아와 겸손히 예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딸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마도 딸을 고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딸의 병세에 차도가 없었고 딸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마지막 소망을 예수님께 걸고 예수님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야이로는 체면도 버리고 자기 지위도 내려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외동딸을 위해 자존심도 버리고 교만도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라고 간곡히 구하였습니다(막 5:23).
그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거듭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얼마나 야이로가 간절하게 구했는지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아무런 정황도 묻지 않으시고 그 말씀을 들으시고 그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야이로는 죽어가는 딸을 살리겠다는 간절함을 가지고 간구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난제들 앞에서 어떤 반응을 하고 계십니까? 세상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원망하며 ‘왜 나만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해야 하냐’며 억울해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될 대로 되라!’고 자포자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 나아오십시오.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누구나 문제해결을 받습니다(마 11:28). “주님 나를 도와주소서. 나를 고쳐 주소서. 내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소서”라고 주님께 나와 부르짖으십시오. 예수님께서 절망적인 상황을 변화시켜 새로운 희망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삶을 철저하게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절망 속에 머물러 있지 말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방이 막히면 하늘이 뚫려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내 인생에 마지막 희망, 최후의 희망을 걸고 주 앞에 엎드릴 때 부활의 기적은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희망을 걸고 주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3. 우리를 살리는 주의 음성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을 가던 도중에 열두해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아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예수님을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습니다(막 5:35). 상황은 끝났으니 더 이상 예수님을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딸의 장례절차나 진행시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절대 절망의 보고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야이로의 마음에 두려움과 절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당해 주님 앞에 나아와 기도할 때 곧 우리의 신앙을 흔드는 일들이 생겨납니다. “이미 병이 깊어져서 기도해도 소용없다” “다 망한 사업인데 기도한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집나간 아이가 기도하는 것을 어떻게 알고 돌아오겠는가?” 이러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믿음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절대로 이 같은 부정적인 말을 듣고 낙심하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셨지만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5:36). 이미 딸이 죽었지만, 눈에는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졌지만,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믿음을 중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역사는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시니 사람들이 한편에서 울며 통곡하고 있었습니다(막 5:38). 예수님이 그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막 5:39∼40). 그러나 야이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서 떠들며 우는 무리들, 부정적 이야기를 하고 비웃는 자를 다 내보내셨습니다(막 5:40). 우리가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믿음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인 생각의 습성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 늘 원망, 불평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멀리해야 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워있는 야이로의 딸에게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즉시로 야이로의 딸은 살아나서 일어났습니다(막 5:41∼42). 야이로의 가정에 절망의 어둠을 물리치시고 새로운 빛을 주신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불가능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불신앙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의심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질병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우리에게 절망을 이길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절망의 때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더욱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의 위로가 임할 것이고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인해 절망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벼랑 끝에 있다고 할지라도, 나를 도와 줄 사람이 없다고 할지라도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문제 해결자이신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믿음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달리다굼’의 역사는 지금도 일어날 것입니다. ‘달리다굼’ 이 음성을 듣고 우리 모두 어둠의 절망 가운데서 새로운 빛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절망과 고통과 괴로움에 처해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문제를 주님의 은혜로 다 이기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밝은 내일을 향하여 전진해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영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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