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구원받은 성도의 삶 (롬 12:1-2)

  • 잡초 잡초
  • 712
  • 0

첨부 1


구원받은 성도의 삶 (롬 12:1-2)


제가 어렸을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일년중에 아주 즐겁고 기다려지는 날이 몇일 있었는데 그중에 하루가 학교 운동회입니다. 초등학교때 운동회만 되면 참 기쁜날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새 유니폼을 입고 청군 백군 구별된 모자를 쓰고 달릴 수 있기 때문에 또 그날은 수업이 없기 때문에 좋습니다. 또 잘 달리면 상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대가 됩니다. 

그러나 더더욱 기다려지는 것은 점심시간입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형제들이 많기 때문에 몇학년 몇반앞에 모여라그러면 다 모여서 어머님이 준비해오신 김밥을 먹던지 아니면 음식을 펴놓고 나누게 됩니다. 혹 어머니가 바쁠때는 국밥사먹자 그러면 그날은 학교 운동장가에 간이 포장마차가 설치됩니다. 큰 솥이 놓여지고 장작을 때서 국밥을 끓입니다. 소고기국을 끓이는 겁니다. 소뼈를 삶아서 국물을 만들고 밥을 얹어서 주면 국밥입니다. 그때는 그게 참 맛있었습니다. 기억이 생생한데 그게 국밥이었습니다. 그래서 운동회만 되면 국밥생각이 나곤합니다. 

언젠가 대구에 갔더니 거기에는 식당메뉴에 따로 국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따로국밥은 뭔가하고 들어가 봤더니 국따로 밥따로 주는게 따로 국밥입니다. 자기 취향대로 먹는겁니다. 

대구에 가면 따로국밥이 유명하지만 우리 신앙은 따로 국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국따로 밥따로 매우 편리합니다. 그러나 구원따로 행동따로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신앙따로 삶따로, 교회에서의 삶따로 직장에서의 삶따로 안되는 겁니다. 말씀따로 순종따로 이것이 이율배반적인 분리적인 삶이요 기독교의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새가족들에게 공통적으로 물어보면 제일 큰 이유로 말하는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교회에서의 교인의 모습과 세상에서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기독교의 진리는 옳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다 옳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말씀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실망감을 느껴서 교회를 떠나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1절을 보니까 그러므로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므로는 앞의 문장들을 받는 단어입니다. 로마서를 생각해보면 로마서는 16장까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는 구원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느냐.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보혈로 죄씻음을 받을 때 우리는 구원받고 자녀가 되는 진리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것이다라는 구원의 교리들을 묵상을 했습니다. 

특별히 9장에서 11장까지는 개인구원이 아닌 인류의 구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1장부터 8장까지는 개인이 어떻게 구원받느냐 9장부터 11장까지는 인류가 어떻게 구원받느냐. 그래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온전히 구원받을 때 구원이 완성되는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여튼 1장부터 11장까지는 구원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 12장부터 16장까지는 무엇이냐. 그것은 실천편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것이냐.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느냐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1절말씀은 구원받은 사람들은 온전한 예배자가 되어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의 첫 번째 삶은 온전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 합당한 예배자가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배에는 두종류가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드리는 공예배가 있습니다. 온교우들이 주일에 모여서 함께드리는 공예배입니다. 우린 이것을 첫 번째 예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예배가 참 중요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드리는 공예배를 잘 드릴때 우리는 한주간의 삶에도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일 예배를 잘 드릴 수 있을까? 비결이 있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려면 정해진 예배시간보다 조금 일찍 오셔야 합니다. 한 10분전쯤 오셔서 준비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 예배를 통해 큰 은혜 받게 하옵소서. 설교하시는 목사님에게도 은혜를 주시고 그 말씀이 내게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준비기도를 하고 예배에 참여하는 것 하고 준비기도 없이 예배를 참여하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또 우리가 기도할 때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한주간 살아가면 허물된것이나 범죄한 것이 없는가. 생각해시고 생각나는 죄가 있으면 회개하셔야 합니다. 

산상수훈에도 그렇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러 왔다가 혹 누구에게 원망들을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그 제물을 재단에 두고 그 형제와 화해하고 와서 하나님앞에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마음속에 원망들을 만한 것들 허물되는 것들을 고백하고 씻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 준비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가 시작되면 순서에 따라 우리는 움직이게 됩니다. 

장로님이 기도할때는 마치 내가 그 기도에 동감하는 것처럼 아멘으로 응답하면서 그 장로님의 기도를 통해 나도 하나님앞에 기도를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성가대가 찬양을 할때 나는 찬양하지 않지만 동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앞에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봉헌하는 시간이 있지만 여러분이 들어오실 때  이미 감사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렸을 것입니다. 봉헌할 때 하나님앞에 우리의 몸과 마음과 감사한 예물을 드리는 그 심정으로 하나님앞에 예물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는 설교하기전에 서로 인사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분들은 옆에 누구앉았나보고 상냥하게 인사하는 분들이 있는가하면 어떤 분들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누가 내 옆에 앉던지 상관없다. 아닙니다.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요 형제와 자매입니다. 이왕이면 따뜻한 미소로 인사하고 다독거렸으면 좋겠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더 기뻐하신는 것입니다. 

자리에 앉는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교회는 좌석이 넉넉해서 아무데나 편하게 앉을 수 있는데 가능하면 안으로 들여 앉는것이 좋습니다. 어떤때 교인들이 많이 올때보면 꼭 옆지리부터 앉다보니까 가장자리에 앉아있으니까 중앙자리는 텅비어 보기가 싫습니다. 혹누가 늦게들어오면 자리에 앉을려고 하다가 빙 몇바퀴 돕니다. 왜 중앙은 비어있는데 가에는 다 차지하고 있으니까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런 첫 번째 예배를 잘 드리셔야 합니다. 예배가 축도를 마침으로 끝나지만 예배가 끝난것이 아닙니다. 오늘 3부예배 잘드렸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편안하게 일주일을 살아야겠다라고 마치 도장찍고 가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진째 두 번째 예배는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축도를 받고 대 예배실 문을 열고 목회자들고 인사를 하고 나가면서부터 그때부터 진정한 삶의 예배가 시작된다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 예배를 강조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보니까 너희몸이라고 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몸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 몸으로 드린다는 의미는 우리의 육신으로만 드린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육신도 포함하지만 우리의 마음과 정신과 시간과 우리의 모든 것을 가지고 드리는 예배를 두 번째 예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몸으로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몸은 여기있지만 마음은 딴데가면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예배를 마치고 예배당 무을 나서면서부터 두 번째 삶의 예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몸을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배는 거룩한 산 제물로 자신을 드리는 예배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었다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나가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사람들과는 뭔가 드라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우리는 매일매일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산 제물로 드리라. 옛날성경에는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구약의 제단을 보십시다. 구약에서는 짐승이나 소를 잡아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혹 고기를 불에 태우기도하고 피를 제단에 뿌리기도 합니다. 연기를 올려 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물은 어떳습니까? 살아있는채로 못드리고 죽여서 그것을 드립니다. 죽은 제물입니다. 

그런데 여기보니까 살아있는 제물입니다. 살아있는 제물을 드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삶의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살아있는 제물입니까? 죽은 제물입니까? 여러분은 살아있는 제물입니다. 구약에 제단에 드려진 제물은 말하지 못합니다.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말할 수 있습니다.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살게 될 한주간의 삶이 여러분이 올려드려야 될 여러분의 삶의 제단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은 그것을 이야기 합니다. 살아있는 예배. 삶의 예배를 온전히 하나님께 올려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 영적인 예배는 신비한 예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번역을 보면 그것이 올바른 예배다. 합당한 예배다. 합리적인 예배다 그런 의미입니다. 교회에서 1부예배도 중요하지만 세상에 나가드리는 2부예배 삶의 예배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예배를 바로드릴때 진정한 예배의 성공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여러분은 삶의 예배를 어떻게 드리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처럼, 직장에서 가정에서 바로 그런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통해서 예수님의 향기가 퍼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삶을 통해서 예수님이 증거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어야 합니다. 몸을 드리는 예배 그것이 진정한 삶의 예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오늘 우리 삶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을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그랬습니다. 

여러분이 예배를 마치고 문을 나가는 순간부터 사랑의 예배 사랑의 삶을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래서 예배는 내 편한대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예배를 드려야하고 그런 삶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쉬운예를 들면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한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좋은식대로 효도할 수도 있지만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효도하면 가장 좋은 겁니다. 우리 부모님이 뭘 좋아하실까? 놀이공원가시는것을 좋아하시더라. 그럼 내가 시간을 내서 부모님 모시고 놀이공원가서 즐겁게 해드려야지. 오늘 점심을 먹는데 뭘 먹으면 좋을까 우리 부모님은 이가좋지 않으셔서 장어같은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시더라. 장어를 대접해야지. 아니야 오늘은 내가 특별히 갈비를 먹고싶어 에이 부모님이고 뭐고 갈비를 대접하자. 그건 내가 좋은대로 하는 것이죠. 

그러면 부모님은 식사시간동안 불편을 감수해야 하실 겁니다. 다시말하면 부모님이 기뻐하시는대로 우리 삶의 예배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그것이 바로 사랑의 삶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축복하고 세워주고 격려하고 나눠주는 것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그런삶을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이게 진정한 성공적인 예배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예배를 기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예배입니다. 그래서 말씀따로 삶 따로가 아닙니다. 신앙따로 행동따로가 아닌 것입니다. 교회생활이나 직장생활이나 구분됨이 없어야 합니다. 국과 밥이 하나로 섞이듯이 우리의 삶과 신앙이 하나가 될 때 진정한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올려드릴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특별히 우리가 오늘 오후에 큐티세미나를 5주동안 실시합니다. 큐티라는 것은 콰이트 타임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 묵상 세미나라고도 말하는데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내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위기라는 것이 말씀따로 신앙따로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라하면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용서하라하면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봉사하라하면 봉사하려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과 삶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큐티세미나를 잘 참석하시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걱정합니다. 목사님 나이가 70, 80이 됐는데 우리가 그런거 해서 이해가 되겠습니까. 걱정하시지 마십시오. 

오늘 강사로 오시는 강목사님께 물어봤더니 저희교회는 어른들이 많은데 괜찮겠습니까 전라도 어느 시골교회에 갔더니 그 교회 평균연령이 70대입니다. 시골 노인들에게 했는데 그렇게 이해를 잘하시더랍니다. 다 들으신 말씀인데 그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고 어떻게 실천하느냐 대화를 나누는데 너무나 간증들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큐티방법을 잘 배우고 실천할 때 우리삶에 놀라운 기적과 축복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오늘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섬기기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은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배운 신앙의 모습대로 세상에서 선행을 베풀고 구제하고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우리는 같은 식구니까 그런 고백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교회 화장실은 개방화장실입니다. 우리교회 간판 밑에 보면 화장실을 써놨는데 개방화장실을 써놨습니다. 무슨말이냐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라는 겁니다. 공중화장실과 같은 개념으로 누구든지 올수 있는 화장실입니다. 교회가 결의해서 지역사회를 위해 화장실을 개방했습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쓰다보니까 화장지도 구청에서 지원을 해 줍니다. 화장지를 공급받으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개방했습니다. 

그런데 하나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부터부터 보면 이 지역에도 희망근로로 일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동네마다 다니면서 휴지를 줍고 청소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일하시다가 아침을 드시고 좀 힘드시니까 대개 5-6분이 4층 휴게실에서 쉬십니다. 커피도 빼드시고 화장실도 이용하시고 그러십니다. 점심먹고 더우니까 휴게실에서 쉬고 나가서 또 일하시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퉁퉁한 여자분이 저를 붙들더니 울먹울먹하면서 사정을 합니다. 제가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나오는데 어떤분이 저를 붙들고 흥분하더라는 겁니다. 당신들 화장실 왜그렇게 자주 오느냐고 교회화장실을 왜 그렇게 자주 오느냐고 당신이 세낸 화장실이냐고 호통을 치더라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교회 화장실은 개방화장실이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인데 어떤 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저 사람은 화장실을 왜 매일 교회로 오나 이게 못마땅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겁니다. 교회는 세상을 섬기기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또 우리교회 화장실은 개방화장실이고 구청에서 화장지를 공급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그래서 잘 위로해 드렸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다음에 광고해서 그런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분 전도하려고 뜸을 드리고 있는데 누가 깨버렸습니다. 그러니 그분이 이제 교회오실수가 있겠습니까 참 안타깝습니다. 

우리교회가 건축을 잘하고나서 따르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이 더운날 오르내리는게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하1층에서 지상6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요. 우리교인들 잘사용합니다. 그러다보니 지역주민들도 사용을 합니다. 이 더운날이나 추울때 엘리베이터타면 편하니까요. 겨울에 눈이오고 미끄러우니 계단은 위험합니다. 그러니 시장보러 가면서 엘리베이터타고 오면서 엘리베이터타고 아이들도 학교갈 때 엘리베이터 타고 그럽니다. 또 방과후 교실 부모들, 어린이집 부모들 다 이용합니다.

그런데 처음에 엘리베이터 개설해놓고 참 동네사람들이 항의 많이 했습니다. 목사님 교회엘리베이터는 왜 이용할때마다 사람들이 그렇게 뭐라그럽니까. 교인들이 뭐라고 한다고 당신들 엘리베이터 왜 타냐고 계단으로 다니지 이용하면 안된다고 전기세가 얼마나 많이 드는줄 아느냐고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가 이용하는 것 개방해 놓으면 동네분들도 이용하는 것 맞습니다. 그런데 전기세 많이 든다고 호통을 친다는 것입니다. 여러사람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분들 이야기들으면 섭섭합니다. 

그럼 밖에 나가서 몇사람붙들고 이야기 하면 소문이 쫙퍼져서 우리교회는 인색하다 엘리베이터는 자기들만타고 외갓사람들이 타면 혼을내더라 이게 너무 안타까운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런 곤욕을 많이 치뤘는데 요즘은 그런이야기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듯이 우리도 세상을 위해서 교회가 존재하고 성도는 그런삶을 살아가야 되는 겁니다. 교회는 헌금을 모으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헌금하면 교회 경상비로 쓰고 건축상환도 하고 남는것은 세상을 위해 베풀고 선교하고 구제하는데 쓰는 겁니다. 교회가 돈을 자꾸 모아놓으면 은행도 아닌도 왜 자꾸 모아 놓습니까. 자꾸 나누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또 채워주시는 겁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세상을 섬기는 겁니다. 

부흥하는 교회들이나 유명한 교회들 가보면 지역주민들을 위해서 예배실을 개방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지역주민들 무리로 와서 우리교회를 사용하세요 결혼식도 올리시고 필요한 일에 쓰세요 개방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안오니까 교회로 초청하는 겁니다. 또 어떤 교회는 독서실을 만들어가지고 동네 아이들이 거기와서 공부하도록 마음대로 겨울에는 히터켜주고 여름에는 에어콘 켜주고 누구든지 와서 공부하게 하는 겁니다. 

또 어떤 교회는 카페를 잘만들어가지고 누구든지 와서 차마시고 사람들이 교회에 잘 안오니까 교회로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오는 분들 끌어드릴려고 문화교실도 하고 카페도 하고 하는데 오는분들을 내쫓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습니까. 우리교회 엘리베이터 이용해주면 얼마나 고마워요. 휴게실 이용해주면 얼마나 고마워요 지역주민들오면 환영해야 합니다. 그런데 혹 누가그러신지 모르지만 남자분인지 여자분인지도 잘 모르셔서 모르는게 낫다고 했습니다. 

내가 알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 집사님과 권사님한테 이것은 혹 여러분들중에 그런생각을 가지신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귀한 돈 헌금했는데 이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자꾸 사용하고 화장실 물한번 더내리고 휴지더 쓰면 이거 어떻게 되느냐.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해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 또 우리 삶이 그렇게 되어야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줄로 믿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져야 합니다. 오픈된교회 개방된 교회가 될 때 교회가 성장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 올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식을 고치셔야 합니다. 내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의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우리교회가 아닙니다. 지역 주민을 위한 교회입니다. 신길동 지역을 위한 교회이지 우리교회가 아닙니다. 착각하시면 안됩니다. 

교회는 그 지역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또 지역주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왜 우리 휴게실와서 전기쓰느냐 왜 우리 엘리베이터쓰느냐 왜 우리 화장실 물내리느냐 그런데 이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예배의 삶을 살아야하는데 그 예배라는 것은 교회에 와서 1부예배도 드리지만 동시에 세상에 나가서 드리는 2부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삶으로 예배를 잘드리는 분이 위대한 성도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그 예배를 바라시고 기뻐하시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그런 오해를 종종합니다. 어떤 사람은선교사로 나가서 사역을 하니까 선교사님은 매일 주님의 일만하고 얼마나 좋을까 복음전하고 이웃을 돕고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저는 직장에 매여서 선교도 못하고요 참 부끄러운 삶을 삽니다. 직장다니다보니 제대로 예배도 못나오고 주일이나 겨우 지키고 참 부끄럽습니다. 그런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직장에 가서 일해서 월급받아서 십일조 드리고 선교사님 후원하는 선교헌금드리면 그분도 선교사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사로 못가도 그 선교사를 위해 기도로 후원하면 그것도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선교사가 되는 겁니다. 또 물질 선교사가 되는 겁니다. 

어제는 안양에서 돌잔치가 있어서 부목사님과 같이가다가 중간에 권사님을 태워서 가게 되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시간이 있어서 권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 나눴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그럽니다. 연세가 많으신데 73살되셨습니다. 목사님 저는 직장다니느라고 교회봉사도 못하고 너무 죄송해요. 그래서 권사님 뭐가그리 바쁘신데요?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이 좀 바쁘셨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십니다. 그리고 4시에 집을 나갑니다. 버스타고 1시간정도가서 5시에 직장에 도착합니다. 5시부터 아무도 없는 빌딩에 청소를 하시는 겁니다. 언제까지냐면 오후 3시 30분까지입니다. 금요일 퇴근하면 구역예배도 드리고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저녁예배나 새벽예배는 나오실 수가 없습니다. 집도 멀지만 워낙 출근일 일찍하니까 그게 늘 죄송스럽습니다. 하시는 말씀이 그래도 주일예배만큼은 15년째 나와서 주일예배봉사하려고 안내를 서고 있습니다. 

일흔셋이시지만 지금도 젊게 꾸미시니까 참 보기도좋고 아름답습니다. 누구라고 말씀은 안드리겠습니다. 추측도하지마시고. 권사님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권사님이 그럽니다. 너무너무 감사하답니다. 일할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고 합니다. 건강한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분은 베개에 머리만 대면 주무신다고 합니다. 불면증이라는 것은 경험해본적이 없답니다. 하루종일 나가 일하시니까 집에 들어오시면 눕자마자 주무시는 겁니다. 그렇게해서 월급받으면 이나이에 월급받아서 교회에 십일조드리고 감사헌금드리고 선교헌금드리고 용돈으로쓰고 본인은 너무나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권사님을 보면서 그런말씀을 드렸습니다. 권사님은 주님의 일을 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 나가서 주님의 일을 하시고 계시는 겁니다. 권사님이 나가셔서 주님의 이름으로 가셔서 청소도 하시고 남을 도와주고 섬기는 것 이것이 바로 예배드리는 삶과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을 나가든 가정에서 일을 하든 사회에나가 일을하든 주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일할수 있다면 거기가 바로 여러분의 제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목사는 이 제단에서 설교합니다. 그럼 목사의 사역만 위대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이 일하는 현장 거기가 여러분의 제단입니다. 저는 설교하지만 여러분은 거기서 그리스도의 삶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뭘로? 여러분의 몸으로, 언어로,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삶이요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콘스탄틴노플감독을 지낸 요한 크리스토툼은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나가서 손으로 구제하고 입으로 이웃을 축복하고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 그것이 진정한 살아있는 제사입니다. 살아있는 제물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1부예배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분이 예배를 마치고 축도를 받으시고 대예배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진정한 2부예배 삶의 예배가 시작이 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거룩한 예배 성결된 예배 삶으로 드리는 예배 그 예배를 여러분이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의 예배 용서의 예배 격려의 예배 축복의 예배 그리고 이웃을 세워주고 그리고 함께 믿음안에 살아가는 이 아른다운 삶의 예배 주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그 예배를 통해서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온전히 드려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