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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레위지파의 의미 (민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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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육학자가 학교 운동장에서 울타리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두지 않고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울타리를 없애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운동장 가운데로 몰려서 놀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울타리를 치자 그제야 흩어져서 놀았다. 왜인가? 울타리가 없어지자 아이들은 불안을 느낀 것이었다. 울타리가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사람은 이처럼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을 때 안정감을 얻게 된다. 사람마다 소속의 욕구가 있다. 그래서 학교, 고향, 가문 등을 따지고 내세우는 것이다. 그런 것에 소속되어 있으면 안전하게 살 수 있고 위험한 때에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떤 위험을 당해도 보호받을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해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께 속해 있을 때에만 평안할 수 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에만 참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발견할 때에 행복할 수 있고 인생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목적을 따라 살 때 참된 행복이 있다.

이스라엘은 열 두 지파로 되어 있다. 야곱의 열 두 아들이 열 두 지파가 된 것이다. 그런데 2장의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를 보면 레위 지파는 빠져 있고 요셉 지파가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로 나뉘어서 열 두 지파가 되었다. 그리고 레위지파는 성막을 섬기는 지파이므로 계산에 넣지 않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요셉지파가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로 나뉜 것은 요셉의 믿음 때문이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죽은 줄로만 알았다가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을 만나러 애굽으로 왔다. 그리고 요셉이 낳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보자 그 둘은 자기 아들이라고 하면서 다른 아들들처럼 상속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창세기 48: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그리고 이들 뒤에 낳은 아들들이 요셉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여호수아 17장을 보면 요셉 지파는 두 몫의 땅을 요구했고 여호수아는 이를 허락한다. 즉 요셉 지파는 다른 지파와 달리 가나안땅에서 두 몫의 기업을 받은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요셉이 하나님이 주신 꿈과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기 때문이다. 어려움과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꿈과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은 반드시 약속대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남들보다 더 많은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하나는 믿음의 사람이 진정한 장자라는 사실이다.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 장자는 르우벤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어머니 레아의 첩인 빌하와 정을 통하는 패륜죄를 범해서 장자의 특권과 축복을 빼앗겼다. 그래서 실제적인 장자 역할은 유다가 했고 그러므로 메시야가 유다 지파를 통해서 오신다고 했다. 그리고 장자가 받는 복은 요셉이 받았다. 그래서 다른 지파보다 두 배의 기업을 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혈통의 장자라고 해서 무조건 다 장자로 인정하고 복을 주시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장자들이 믿음이 좋지 않았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잃어버리곤 했다. 가인도 그랬고 에서도 그랬고 르우벤도 그랬다. 요셉의 두 아들의 경우도 야곱이 형 므낫세보다 동생 에브라임을 더 축복했다. 중요한 것은 육신의 혈통이 아니라 그가 가진 믿음이다. 그 믿음에 따라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영적인 진정한 믿음의 장자가 되라. 

둘째, 레위 지파가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직분을 받은 것은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특별한 헌신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때에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보였고 하나님의 일에 기꺼이 헌신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죄를 범했을 때에 모세가 하나님 편에 있는 자는 오라고 부를 때에 레위 자손들이 일어나서 모세 편에 섰던 것이다.

출애급기 32: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명 가량이 죽인바 된지라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본래 시므온과 레위는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축복을 받지 못했다. 그들이 피를 흘린 죄 때문이었다. 창세기 34장을 보면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족속의 축제를 구경하러 갔다가 추장의 아들에게 욕을 당하게 된다. 세겜 추장의 아들은 야곱을 찾아와 디나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디나의 오라버니인 시므온과 레위는 그들이 모두 할례를 받아야만 통혼할 수 있으니 할례를 받으라고 했고, 그들이 할례를 받고 상처가 낫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기습을 해서 그들을 진멸했다. 야곱은 그들을 책망했고 죽기 전에 유언을 하면서 그들이 형제들 중에 흩어져 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께 헌신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셨고 화가 변해서 복이 되었다. 그들은 특별한 족속으로 거룩하게 구별되어 성막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지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직분을 받은 것이다.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피하거나 숨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라. 그러면 화가 변해서 복이 되게 해주신다. 주의 거룩한 일에 쓰임 받게 해주신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책임져 주시고 나의 기업이 되어주신다.

셋째, 하나님이 레위 지파를 따로 부르신 이유는 유월절 사건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레위인을 따로 부르신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12절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13 처음 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히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왕 바로는 하나님이 보내신 모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표적을 보이기도 하고 아홉 가지 재앙을 내리기도 했지만 바로는 재앙을 당할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겠다고 약속을 했다가 재앙이 그치면 다시 변덕을 부리고 말을 바꾸고 고집을 부렸다. 할 수 없이 하나님은 마지막 재앙을 내리시기로 했다. 그것은 애굽의 모든 장자와 가축의 첫 새끼를 죽이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지방에 바르라고 하셨고 재앙의 천사들은 양의 피가 묻어 있는 집은 들어가지 않고 지나갔던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맏아들과 가축의 첫 새끼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죽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모든 맏아들과 가축의 첫 새끼는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셨다. 그들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셨다. 출애굽기 13: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맏아들 대신 레위인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축 대신 레위인의 가축을 하나님의 것으로 받으시겠다고 하셨다. 4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45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인을 취하고 또 그들의 가축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 레위인은 내 것이라 나는 여호와니라.” 그러므로 레위인을 따로 세우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속한 존재라는 표시였다.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죽어야 할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의 죽음 때문에 죄를 용서받아 멸망을 당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레위인처럼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들로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사야 43:1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7절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고린도전서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어야 한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나를 구원하신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 나를 드리며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 살며 하나님을 위해 일하며 사는 것이다.

미국에 아직 노예제도가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노예시장을 지나가다가 충격을 받았다. 30세 정도의 젊은 여자노예가 막 젖을 뗀 어린 딸과 따로 팔려가면서 생이별을 하는 것이었다. 엄마와 딸의 울부짖는 소리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서 사업을 위해 준비한 돈을 털어서 두 노예를 샀고 노예증서를 찢어버리고 자유를 주었다. 그런데 이 여자노예가 계속 이 사람을 따라오는 것이었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자유의 몸이니까 가서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라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전에는 강제로 팔려서 억지로 노예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나에게 자유를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해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스스로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4절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고 무자하였고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 아비 아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원래 제단과 분향단에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리신 불이 계속 꺼지지 않고 타올라야 했다. 그 불이 꺼지지 않게 계속 제물을 드리거나 계속 향을 드리는 것이 제사장의 직무였다. 그런데 아론의 아들들로 제사장인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내리신 불이 아닌 다른 불로 향에 불을 붙여서 향로에 담아서 하나님께 나아왔다가 죽은 것이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지만 오늘 본문과 연결해서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부르신 직분과 목적을 따라 살지 않고 다른 것을 따라 살려다가 죽은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불 즉 하나님이 주신 꿈이 아닌 다른 꿈을 따라 살려다가 죽은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불이 아닌 다른 불, 즉 자신을 위한 불, 자신이 피운 불, 자신을 위한 불을 피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은 것이다.

내 가슴에 어떤 불이 붙어 있는가? 어떤 일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흥분되고 열정이 생기는가? 어떤 일에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고 내 마음이 끌리는가? 내 가슴에서 어떤 불이 타오르고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불인가 아니면 세상이 주는 불인가?

저는 청년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불이 붙는 것 같다. 선교를 생각하면 흥분이 된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주를 위한 일, 영혼 구원을 위한 일이라면 모든 것을 바치고 싶다.

고린도후서 5: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를 믿으면 주를 위해 사는 새 사람으로 변화된다.

그리고 이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 들어갈 때에 레위인은 다른 지파들처럼 땅을 기업으로 주지 않았다. 그러나 성전에 드려지는 헌물, 십일조, 예물로 먹고 살았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어 주셨다. 신명기 18:1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찌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2 그들이 그 형제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은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라.” 레위인은 다른 지파들처럼 자신의 육신의 삶을 위해 농사를 짓거나 양을 기르며 일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면 먹고 살게 되어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주를 위해 살면 하나님이 그 삶을 책임져 주신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시편 16: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그러나 사명을 떠나면 굶어죽는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 삶을 책임져 주시지 않는다. 레위인이 직분과 사명을 떠나는 것은 마치 농부가 농사를 포기하고 농토를 떠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신앙이 떨어질 때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지 않아서 레위인들이 먹고 살기 위해 성전을 떠나야 했다.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하나님이 “너는 내것이라”고 하신 것은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시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신 존재요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하시고 지키시고 돌보시고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게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의 약속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사명을 떠나지 말라. 자신만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을 살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하며 살라.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레위인은 그 한계가 있었다. 레위인 중에서 아론과 그의 후손들만 제사장이 될 수 있고 레위인들은 제사장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되어 있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돕고 섬기는 사명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사명에 충성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사용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

요셉처럼 고난 중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서 두 몫의 기업을 받는 믿음이 되라.
레위자손처럼 하나님의 편에 서서 그래서 화가 복이 되게 하는 믿음이 되라.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살라고 부름 받은 존재임을 깨닫고 사명을 위해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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