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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빌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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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빌 4:8-9)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성경말씀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들었습니까?   그렇다면 그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많이 배우고 보고 들어 머리만 커지고 손발은 아직 작은 것이 문제입니다.   지식으로만 알고 행함으로 실천하지 못함이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는 알지만 차가운 나의 마음이 열리지 않음이 문제입니다.  참 믿음은 행함으로 그 열매를 나타내 보입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4-15) 하였습니다.   어려서는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 배웠고 자라서는 바울에게 하나님 말씀을 배워 확실히 믿는 그 믿음대로 살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명령형으로 말한 내용들을 돌이켜 생각해보십시오. 그동안 빌립보서를 읽으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마음을 같이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  무슨 일을 할 때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라.  나보다 다른 사람을 높여주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라.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  나를 본 받으라.’  

그리고 지난 주일에 나눈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이제 오늘 읽은 본문의 명령형 문장들을 살펴보십시다. ‘이것들을 생각하라’  생각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요?   앞에 열거된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있어야 할  여러가지 덕목들입니다.  ‘참된 것과 경건한 것과 옳은 것과 정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과 칭찬할 만한 것, 덕스러운 것과 존경받을 만한 것들입니다.  이것들을 생각하십시오’  생각하라는 말을 마음에 품으라는 말로 바꾸어 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성도는 이런 것들을 늘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생각만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나에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합니다.   바울이 하고픈 말은 여기에 있습니다.   좋은 것들을 생각하고 배운 것들을 그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마음에 품은 것들이 입술로 표현되고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몇 주에 걸쳐 빌립보서를 읽으며 바울에게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있다면 그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고 했습니다.   설교 시간에, 성경공부 시간에 듣고 깨달은 말씀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꼭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믿음이 제대로 자랍니다.  주일예배 때 들은 말씀을 주중에 묵상하는 습관을 가져봅시다.  그리고 깨달은 말씀 한 가지라도 실행하려고 힘씁시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그리고 그 말씀 중에 단 한 가지라도 결단한 것이 있으면 삶에 적용하려고 힘써봅시다.  그래야 내 영혼이 건강해지고 내 삶이 말씀의 인도를 받습니다.  

저는 지난 7월 마지막 주간에 목회자 부부 몇 가정과 함께 웨일즈 부흥의 현장을 탐방하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웨일즈 지방의 기독교 부흥 역사 현장을 돌아보고 해가 저무는 저녁에 야영장에 도착하여 텐트를 세웠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이슬에 젖어 축축한 텐트를 다시 거두고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일을 3박4일간 반복하는 강행군을 하였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면 텐트 치고 야영하는 일이 낭만이라도 있었을텐데 이제는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텐트 자락소리에 신경이 쓰여 선잠을 잡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텐트 안에 있는 옷이며 물건들이 습기를 잔뜩 머금어 눅눅한 것이 비에 젖은 옷을 입는 기분입니다.  찬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로 온몸이 찌뿌둥하고 개운치 않은 상태로 일어났지만 그래도 캠핑장 샤워룸에서 뜨거운 물로 아침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충분히 위로가 되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이른 아침을 챙겨먹은 다음 짐을 꾸리고 또 다른 마을을 향해 떠납니다.   4일 동안 600여 마일 웨일즈 시골 골짜기와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그래도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이 있어 이번 웨일즈 탐방여행은 보람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또 기회가 된다면, 그리고 우리 교우들 중에 그런 고생쯤 즐거움으로 여길 수 있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과 함께 또 다시 가서 신앙부흥의 유적들을 보여주고픈 마음이 들만큼 보람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역사의 현장과 흔적들을 살피며 얻은 감동들과 깨달음이 배움의 보람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살다 가신 어른들의 열정적인 신앙과 삶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도전과 자극이 됩니다.    
  
17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약 200여 년동안 웨일즈로부터 시작하여 영국 전역에 불었던 성령의 역사 현장을 돌아보며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한편으로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뜨거웠던 교회와 교인들이 모두 어디로 가고 지금은 저렇게 맥없이 주저앉아 있다는 말인가?   부흥했던 옛날을 회고하며 우리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는 추억만 가지고 과연 영국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을까?   서글픈 모습입니다.   

영국교회의 현실은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가 사용하는 URC 교인들을 보면 오늘을 볼 수 있고 내일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작년 12월 영국교회 50주년 기념예배를 함께 드릴 때 그들의 추억과 현재 상황을 어느 정도 느꼈으리라 믿습니다.   50년 전에 이 자리를 가득 메웠던 교인들 중에 노인들은 하늘나라로 가셨고 젊은 세대는 갈수록 교회를 찾아오지 않아 지금은 희미한 불씨만 남아 꺼져가는 모닥불 같습니다.  아침 9시30분에 시작하는 주일예배에 노인들과 어린이, 젊은이들이 참석하기 어려워 30분 늦춰 오전 10시에 시작해야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배울 것이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고 있음을 역사로부터 배운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지난 역사를 거울로 삼아 교훈을 받아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영국교회의 근대 역사를 보며 우리가 배워야 할 좋은 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뜨거웠던 신앙의 열정입니다.   영국에 복음의 물결이 출렁이던 그 시대 사람들은 죄악의 더러움과 그 죄의 댓가를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와야 죄를 씻음받고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믿고 나왔었습니다.   

1739년 브리스톨 외곽 킹스우드 마을의 탄광 광부들이 죠지 휫필드의 설교를 들으려고  Hanham Mount라는 언덕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죠지 휫필드가 22살의 나이에 런던과 옥스포드 그리고 글로스터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고, 미국으로 건너가 복음을 전할 때 수많은 군중들이 그가 가는 곳마다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몰려들고 있을 때였습니다.  

깜깜한 굴속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들이 세상으로부터도 천대받으며 가난하고 소망없는 어둡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죠지 휫필드가 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 킹스우드 마을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술과 도박과 음란한 죄짓는 일만 즐기던 가난한 탄광의 광부들이 복음을 듣고 마음이 열렸습니다.  칠흙같이 깜깜하기만 하던 광부들의 삶 속으로 광명한 빛이 찾아왔습니다.

갱에서 나와 얼굴을 씻을 겨를도 없이 검댕이가 묻은 채로 언덕 위 야외 강단에서 외치는 죠지 휫필드의 설교를 들을 때 그들의 까만 얼굴에 두 줄기의 하얀 골이 파였습니다.   예수께서 나같이 추한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나같이 천하고 무식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씀에 감동하여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릴 때 광부들의 얼굴에 생긴 하얀 자국이었습니다.   이렇게 죠지 휫필드의 옥외설교로 시작된 웨일즈의 성령운동은 옥스포드대학 학창시절에 홀리 클럽에서 함께 활동했던 요한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형제가 동참함으로 그 불길이 더 거세게 타올랐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다니엘 로랜드 목사가 랑게이토(Llangeitho)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하여 모여든 군중들을 수용할 자리가 비좁아 1756년, 1760년 그리고 1764년에 걸쳐 무려 세번씩 예배실을 증축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로랜드 목사가 집례하는 성찬식 예배에 14,000명이 참여하여 한꺼번에 예배당에 들어올 수 없어 밖에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려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유명한 작곡가 헨델이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랑게이토에 왔다가 야외집회에 모인 군중들이 로랜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오라토리오 메시야에 나오는 ‘할렐루야’합창곡을 작곡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422장‘나그네와 같은 내가 힘이 부족하오니’와 451장 ‘전능하신 여호와여 나는 순례자이니’를 작시한 윌리암 윌리암스는 찬송시인으로 유명합니다.  웨일즈 Llandovery 출신으로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하였지만 순회 설교자로 웨일즈와 영국 전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고, 그가 쓴 찬송을 부르며 많은 사람들이 놀라운 심령부흥을 경험하였습니다.   이것이 1700년대 중반에 있었던 웨일즈 부흥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웨일즈 신앙부흥이 1700년대 후반에 활동을 시작한  크리스마스 에반스, 토마스 찰스, 그리고 존 엘리아스와 같은 설교자들로 이어져 웨일즈 부흥의 불길은 1800년대까지 계속 번져갔습니다.  특히 옥스포드대학 Jesus College 출신 토마스 찰스 목사는 작은 고향마을 발라(Bala)에서 성경공회를 조직하여 성경을 웨일즈 언어와 영어로 출판하여 보급함으로 사람들이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순회성경학교를 열어 교리교육에 힘썼고, 각자 자기 성경을 소지하고 성경을 읽고 쓰고 암송하도록 하였습니다.  발라에서 시작한 성경공회는 웨일즈는 물론 영국과 세계 성경공회로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주일학교를 처음으로 시작하여 소개하여 신앙부흥에 크게 기여한 사람도 토마스 찰스였습니다.  

1904년부터 2년동안 남웨일즈 러퍼(Loughor)의 모리아 장로교회에서 에반 로버츠 목사님이 복음을 선포할 때 수많은 군중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모리아 장로교회에서 6개월 동안 15만 명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통곡하며 새로운 삶을 결단하는 회개와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부흥의 열기가 지구 동쪽의 끝자락에 있는 우리 나라에까지 전해졌습니다.  

구한말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설움으로 지내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예배당으로 모였고 1907년 평양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나라 신앙의 선배들은 복음을 순전한 마음으로 받아 아멘으로 화답하며 죄를 회개하고 인생을 새롭게 바꾸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들은대로 순종하고 삶으로 실천하였던 순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파워 포인트 사진 참고)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이 편안해지며 생활이 넉넉해지기 시작하자 복음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점점 식어졌습니다.  100년전 수만의 군중들이 복음을 들으려고 몰려들었던 웨일즈의 신앙부흥 현장들은 이제 적막한 시골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업에 분주하고 자신들의 영혼이 잘되는 일보다는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와 개들의 복지를 위해 더 많은 관심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동네의 예배당들은 날이 갈수록 빈자리가 늘어납니다.   예배당 겉모습만 초라해지고 낡아지는 것이 아니라 예배당 안에 모인 사람들도 점점 노쇠해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찾지 아니하며 예배당에서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웃음소리를 더 이상 듣기 어려워졌습니다.     

동방의 끝자락에서 찾아온 한국인 기독교인들이 영국의 신앙부흥 유적을 방문하러 왔다는 말에 가는 곳마다 나이 드신 노인들이 반겨줍니다.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 시절, 부모님 시절, 그리고 자신들의 어린 시절의 신앙 부흥을 회상하며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많이 알려주고 보여주려고 열심히 설명을 하십니다.  지금은 비록 쇠락해지고 있지만 전에는 우리가 이런 신앙의 능력과 영향력을 가진 교회였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듯 힘써 강조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동양에서 온 키 작은 우리들에게 열심히 전하십니다.   

그래도 영국교회가 지금은 이렇게라도 교회를 지키고 과거를 회상하며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노인들이라도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저분들도 세상을 떠나시면 과연 누가 그 다음을 이어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 형편으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것이 역사를 통해 배울 줄 모르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불쌍한 모습입니다.  웨일즈의 현실만 아니라 영국 전역에 나타나는 교회들의 현주소입니다.  그래도 아직 남겨진 복음주의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쇠락해져가는 영국교회가 다시 일어나며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국교회를 보면서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우리가 영국에 온 이유들이 다양합니다.   자녀교육 때문에 고국을 떠나왔습니다.   아이들이 보다 좋은 교육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려고 부부가 생이별을 하며 왔고, 사업과 학업을 위하여 유럽의 땅끝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얼마나 얻었고 얼마나 성장하였는가 생각해봅시다.   공부, 공부하며 자녀 교육에 신경을 쓰는만큼 신앙교육도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까?   학문에 대한 열정과 언어습득의 열정만큼 신앙의 열정도 성장하고 있습니까?  하나는 얻었지만 더 소중한 영혼은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영국에 와서 사는 동안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좋은 점을 통해서도 배우지만 영국교회의 실패를 통해서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3박4일간 웨일즈 지역을 탐방하면서 잠도 편히 못자고 600여 마일을 자동차로 달리며 도시와 산골, 바닷가 시골 마을들을 찾아다닌 보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쓰러져가는 예배당 건물이나 낡아진 강단과 의자들 사진이나 찍고 죽은 사람 묘비나 둘러보는 것으로 그친다면 크게 배울 것이 없지만 과거와 오늘을 비교하면서 오늘 나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내일에 대한 교훈을 얻은 것이 배운 것입니다.   우리도 순식간에 영국교회를 닮을 수 있습니다.   화려한 교회 건물과 값비싼 시설들이 주인을 잃고 팔려가는 일들이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차세대가 없는 교회는 내일이 없다는 점을 배웁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다음 세대로 계승되어야 합니다.   부모님 세대에 뜨겁게 매달렸던 믿음의 집안이라면 그 다음 세대에서도 그 신앙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 바랍니다.  부모님의 신앙이 저절로 나의 믿음이 되고 나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부모님이 길잡이가 되실 수 있지만 나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예수를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나의 더럽고 추한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영국에 와서 신앙의 눈이 떠진 분이 있다면 그 믿음을 날마다 더 자라가게 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통하여 내 가족이 그리스도를 알고 믿음으로 온 가정이 구원에 이르는 복음의 개척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운전면허를 얻은 후 몇 년이 가도 실제로 운전하지 않는 사람의 면허를 장농면허라고 합니다.   면허 따고 사고 한 번 안낸 5년, 10년 무사고 운전자이지만 면허만 있지 운전대를 잡고 거리로 나가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식은 땀이 흐르는 죽은 면허입니다.  장농면허가 있다면 장농믿음은 없을까요?  세례증서도 있고 교회에서 받는 직분자 임명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배우고 듣고 보고 받은대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며 장농믿음입니다.   

야고보 선생님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하였습니다.   말씀이 없어서 배우지 못함이 아닙니다.   성경이 없어서 보고 듣고 읽지 못함이 아닙니다.   배우고 받고 듣고 보았는데 행동이 따르지 못함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당부합니다.  ‘이것들을 생각하라!  그리고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그리스도인들이 평안을 누리는 비결은 주의 말씀을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평안이 여러분 가운데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이 한 주간도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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