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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신 30: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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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신 30:15-20)

 
요즈음 가을철 심방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각 가정을 심방하면서 아주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우리 교회에 아빠 엄마가 된 젊은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각 가정에 어린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을 양육하는 부모들의 태도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부모도 아이를 함부로 기르지 않습니다. 정도와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아이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습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잘 되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목표가 분명해야 하기 때문에 묻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잘 되는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많이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장래를 생각해서 그 중에서 준수한 이스라엘 청년 몇 명을 택했습니다. 잘 훈련시켜서 자기 나라의 인재로 쓰려고... 그런데 바벨론 왕은 그 청년들에게 특별히 왕이 먹는 음식과 포도주를 줄 것을 명령했습니다. 다니엘은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왕의 명령에 순종할 것 같으면 술을 마셔야 하고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먹지 않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단 1:8)
그 선택이 다니엘로 하여금 역사에 남는 위대한 인물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또 한 사람 롯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에게 양이 심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양을 먹이는 문제를 놓고 다툼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8~9)
마음대로 좋은 곳을 택하라고 했습니다. 롯이 동쪽을 보니 물이 넉넉하여 양을 먹이기 좋게 보여서 거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당시 죄악이 극심했던 소돔과 고모라 부근이었습니다. 당장 눈에 좋게 보이는 곳을 선택했지만 그 잘못된 선택 때문에 결국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을 때에 롯은 아내도 잃고 겨우 목숨만 부지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어찌 보면 인간의 역사는 선택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합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옷을 입을까?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어떤 길로 갈까? 더 큰 문제도 있습니다. 어떤 전공을 택할까? 어떤 직업을 가질까? 결혼을 할 때에 어떤 사람을 고를까? 그렇습니다! 삶 자체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 아닙니까? 그렇다면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저주가 아니라 복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소한 결정에 있어서는 조금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것, 결정적인 것은 결코 실수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복과 생명을 선택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먼저 믿음으로 선택할 때 복과 생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첫 번 단추를 바르게 끼워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인 복과 생명을 다른 말로 구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주 쉬운 까닭은 바로 그 일을 주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히브리 노예들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에 홍해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뒤에서는 애굽의 병거들이 무섭게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출 14:10)
히브리 노예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다만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모세는 달랐습니다. 그가 뭐라고 했습니까?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모세는 믿었기 때문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오늘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보라!"
무슨 말입니까?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처럼 주목해서 보라는 말입니다. 먼저 지난 40년 동안 하나님이 인도하신 그들의 여정을 돌이켜 보라고 합니다.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셨습니다. 마라에서 쓴 물을 달게 하여 마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40년 동안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 주셨습니다. 수많은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선택할 때에 오늘 우리도 복과 생명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복과 생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능력입니다. 그 능력의 말씀이 어리석고 미련한 우리 인간을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 30:16)
성경은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 30:20)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에 우리도 복과 생명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끝으로 저주와 죽음을 멀리함으로써 복과 생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바보처럼 누가 저주와 죽음을 택할 것인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실제로 저주와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그렇게 말했습니까? 괜히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15)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광야 생활 40년 동안 그 누구보다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그는 광야 생활 40년 동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그는 그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땅을 눈앞에 두고 그는 모압 평지에서 유언과도 같은 말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백성들에게 복과 생명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힘들게 보이기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을 망설이게 됩니다. 대신에 세상의 욕망을 따라서 사는 길은 쉽고 넓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좁은 길이 아닌 넓은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자손들도 반드시 살아야 합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기 위하여 과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결코 저주와 죽음을 선택하면 아니 됩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결코 죽음을 선택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구원의 주님만 믿고 사랑하며 그 주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지금 여기서부터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마음껏 누리는 참으로 복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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