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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요한 자의 실상 (계 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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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요한 자의 실상
(계2:8-11)


초등학생에게 시험 문제지를 돌렸습니다. 

문제의 빈칸을 채우시오. 
[□□ 내가 돈은 없지만 마음은 부자라네] 

정답은 '비록'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록'이라 썼습니다. 

똑같은 문제를 대학생에게 돌렸습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빈칸에 'C8'이라는 글자로 채웠습니다. 

“내가 'C8' 돈은 없지만 마음은 부자라네”

말이 대학생이지 초등학생만 못한 욕쟁이입니다. 
대학생이 'C8' 이 뭡니까? C8이 뭐냐구요? 
이런 대학생을 보고 네가 대학생 맞아? 해야겠고, 
초등학생을 보고 실상은 '네가 대학생이다'라고 해야겠습니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누가 실제로 부요한 자일까? 
 
  
󰊱 궁핍해도 부요하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9절) 내가 비록 궁핍하나 마음은 부자라면 실상은 부요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해 “나는 너의 궁핍함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은 네가 부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2:5)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을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옛날 미국의 흑인 중에 모세라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틈만 나면 늘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 목사님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는데, 그가 어느날 주인에게 찾아와 “오늘 밤 우리 집에서 가장 부자를 하나님이 데려가신다”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주인은 밤새도록 잠을 못 잤습니다. 부자인 자기가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모세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로 부자는 농장 주인이 아니라 그 집 노예 모세였습니다.
  
실상은 부자 아닌 부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살쪄서 기름덩이 같고(시119:70),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교만하게 말합니다(시73:6-8).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택하시어 믿음으로 부요하게 하십니다. 자식 많은 부자도 있고 
돈 많은 부자도 있습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3-24) 
  
왜 그럴까? 돈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믿는 것입니다. 재물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재물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재물을 얻는 일에만 힘쓰다보니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자에게 특별한 죄가 발견되지 않습니다. 부자가 죄라면 다만 부자라는 것입니다. 그는 돈은 많았으나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돈이 많아서 지옥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어서 지옥 간 것입니다. 그는 가난한 나사로에게 베풀 줄을 몰랐습니다. 병든 거지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주워먹고 그의 상처를 개가 핥게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는 실상은 부자가 아닙니다. 
  
부자이면서도 부요치 못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풍년이 들어 많은 곡식을 거두게 됩니다. 곶간이 적어 크게 짓고 곡식을 쌓아두고 “내 영혼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는 재물은 많았으나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궁핍해도 부요한 자가 있고 부유해도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으로 부요한 자 되십시다. 

  
󰊲 비방을 물리친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9절) 

비방하는 자는 살인자보다 나쁘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비방자, 그 이름은 개의 철학자”라고 비난했습니다. 비방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자칭 유대인”입니다. 자칭 애국자는 애국자가 아니듯이,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라 자칭 유대인이요 사탄의 무리입니다.    비방은 비겁한 짓입니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뒤에서 중상모략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비방하는 자들의 정체를 이렇게 밝힙니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에 가득한 자요, 수근 수근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롬1:28-30) 
  
비방하는 자는 하나님이 없는 자입니다. 비방은 합당한 일이 아닙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모세를 비방했다가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약4:11).
  
비방은 악의에서 나옵니다. 악독이 가득한 자가 비방합니다. 분쟁을 일삼으며 즐거워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미워하십니다. 없는 것을 말했느냐?고 하지만 작은 것을 크게 확대하고 없는 것도 말합니다. 
  
악을 보고 악에 대해서 말하는 습관이 들게 되면, 그는 얼마 안 가서 편벽 된 시야를 갖게 되어 선은 안보이고 악만 보이는 외눈박이가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그의 영혼이  망가집니다. 그의 영혼이 뒤틀려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욥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을 두둔하셨습니다. 남을 비방하는 것은 상대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거지를 비방하지 않거든요. 사탄이 욥을 비방한 것은 욥이 지극히 선하고 경건했기 때문입니다. 욥은 흠이 없고 정직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거짓이 진실을, 가짜가 진짜를 비방합니다. 연기가 다이아몬드를 덮어도 연기는 다이아몬드를 숯덩이로 바꿀 수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입니다. 
  
감이 열린 나무가 돌을 맞습니다. 열매 없는 나무에 누가 돌을 던집니까?
욥도 모세도 비방을 받았습니다. 비방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새들이 가장 좋은 열매를 쪼아먹듯이 의로운 사람을 가장 많은 입으로 쪼아 상처를 입힙니다. 그러나 부요한 자는 비방을 무시하거나 물리칩니다. 다윗은 비방을 받을 때 두려움에 감싸였으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고 외쳤습니다(시31:13-15). 우리가 비방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위로 받고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우리는 부요한 자의 실상입니다.

  
󰊳 고난을 두려워 않는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삼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10절)
  
부요한 자의 실상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시험과 환난을 당해도 거기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부요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재감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자라는 자존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는 것이 부요한 자의 실상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약5:13) 고난은 열성적으로 기도하게 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담대하게 됩니다. 고난은 생명의 원리입니다.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인생과 고난은 분리할 수 없는 양면입니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은 외치기를 “나는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마취제를 쓰지 않겠다. 아프다는 것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싶다. 고통은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라고 했습니다.
  
키에르케골은 “내가 고통 한다. 그러므로 내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을 인내를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의 자리에서 장래의 영광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외침입니다. 환난은 고통인데도 즐거워하는 것은 믿음으로 부요하기 때문입니다. 
  
키케로는 고난이 크면 영광도 크다고 했습니다. 고난을 당했을 때가 그 사람의 진가를 알아보는 때입니다. 불에 타는 것과 불에도 안타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페스탈로치는 “고난과 눈물이 나를 높은 예지로 이끌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 속에서 죽지만, 어떤 사람은 고통 속에서 강해집니다. 부요한 자는 고난, 환난 속에서 더 강해집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칠레 광부 33명이 700미터 지하에 갇혔다가 68일만에 구조되어 살아 나온 생명의 환희가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그들도 한 때는 혼란과 동요가 있었고 몸싸움까지 있었으나 뭉쳐야 산다는 생각의 단결로 살아 나왔습니다. 그들이 살아 나올 수 있는 생존비법이 공개되었습니다. 첨단 장비가 동원되고, 과학적인 접근이 있었습니다만 그들을 생환하게 한 것은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의지와 희망”이었습니다. 환난을 당해도 담대한 사람이 부요한 자의 실상입니다.
  
부요한 자는 궁핍해도 부요합니다. 물질 때문에 기죽어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도움 받고 살아야 한다면 받는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은 자입니다.
  
비방문화는 사탄 문화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공정하신 눈과 귀를 믿습니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사51:7) 하나님이 알고 계시다고 믿어 비방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누가 나를 비방해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부요한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자칭한 용어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예수 믿는 자를 비웃으며 불러준 이름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 승리하기 바랍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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