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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애녹의 생애 (창 5: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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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녹의 생애 (창 5:21-27)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창5;21-27)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14-15)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과학의 시대입니다. 얼마나 많은 지식이 홍수처럼 쏟아지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새로운 논문들이 매일 쏟아집니다. 이런 21세기 과학 문명이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유전자 연구를 통한 복제기술’ 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여 생명을 창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전자연구를 통해,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여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장수하면서 살 것인지에 관한 연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사실 21세기인 지금에 와서 새롭게 시작 된 것이 아닙니다.  인류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 중국, 인도문명의 고대 문헌을 조사해 보면 하나님을 떠난 인류는 죄와 죽음, 질병의 문제를 극복해 보려고, 신전, 성전, 사찰을 세워놓고 우상숭배를 합니다. 우상숭배를 통해 이루려던 건강과 장수의 꿈이 이제는 과학을 통해 이루려는 것으로 모양만 바뀐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의 영혼을 괴롭히는 죄와 죽음의 문제는 하나님을 떠난 인류에게는 일종의 운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오늘도 전 세계적으로 2초당 한 사람씩 죽어가고 있으며, 하루에 죽는 인구가 120만 명이 더 된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는 죄와 죽음, 질병의 문제를 극복해 보려고 무수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을 하였지만, 그 결괴는 여전히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5;24절에서는 아담의 7세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고,(Walking with God) 그 결과 그는 아담 이래 모든 인류가 하지 못한 죄와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고, 아담이 닫은 천국의 문을 활짝 열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갔다는 것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에녹은 아담의 운명 “네가 정녕 죽으리라”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죄(罪)로 인한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을 극복하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비록 에녹이 당대에 장수한 믿음의 사람들 보다 가장 적은 나이에 이 세상에서의 삶을 중지하였지만, 그는 장수자체가 영광스러운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그 삶의 질이 매우 중요하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남긴 인물입니다. 
 
성도여러분, 에녹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의 나라로 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주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사십일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모든 제자들이 보는 데서 하늘로 올라가신 것처럼... 에녹은 당대의 모든 족장들이 보는 데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옮김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에녹이 어디에 있냐고 그 당대의 사람들에게 질문하면 그들은 한결 같이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서 하나님이 친히 그를 영원한 나라로 데려갔다고 우리에게 말할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이 친히 데려가셨으므로 더 이상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인생이 남겨 놓은 죄의 흔적인 ‘무덤’을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아담 이후 모든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죽음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 곧 바로 하나님의 나라로 가버렸습니다. 이 에녹은 장차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들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옮김을 받는 다는 증거를 남겼으며, 그 첫 번째 모델로서, 대표자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현존하심을 확실히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신약 히브리서의 기자는 에녹의 생애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11;5)  

성도여러분, 에녹의 생애가 주는 주된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은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도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에녹이 그 사실을 만방에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 창세기에는 에녹이 2명이 나옵니다.  창4-5장을 보면 가인계통의 에녹과(4;17) 셋 계열의 에녹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을 비교하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는데요,  가인계의 에녹은 이 땅에 자신의 이름을 위해 성(城)을 쌓는데 일생을 투자 하였지만, 셋계의 에녹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동경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별한 것은 ①가인계의 후예들은 그들이 이 땅에서 살았던 나이에 대하여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셋계의 후예들은 나이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가인의 후예들의 이 땅에서 아무리 탁원한 문화(목축업, 예술, 기계문명)를 발달시켜도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무것도 아니며 기록할 가치가 없는 (Nothing) ‘무익한 헛된 생애’를 살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의 후예들의 탁원한 문화업적에 비하면, 셋계열의 후예들은 이 땅에서 문화적, 기술적인 가치 있는 것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그 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26)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간 하루, 일 년의 시간은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 있는 삶의 햇수가 성경에 정확히  기록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살아온 햇수가 하나님의 책에 선명하게 기록이 되는 삶이되기를 소망합니다.  
 
또 하나 에녹의 생애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것은 ②에녹은 그의 아들 므두셀라를 낳기 전 65년 동안은 하나님과 동행을 했던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가 므두셀라를 낳은 후(後)에야 비로소 300년 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을 합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고 무슨 커다란 일이 그에게 일어났는지 우리는 잘 모르지만 그는 므두셀라를  낳고 스스로 의미 있는 결정을 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20대 청년시절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다가 40~50대에 가서 영성이 완전히 식어버려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또 한 때는 영적인 은사를 받아서 하나님의 교회를 열심히 섬기다가 데마처럼 이 세상이 너무 좋아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가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딤후4;10)  

그러나 성경은 평범한 사람인 에녹이 하루, 이틀, 10년, 20년이 아닌 300년간을 하나님과 동행을 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그의 영성은 300년간 시들거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깊어갔고,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선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인생의 최대의 기쁨이요 행복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즐거움을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배 에녹을 통해 몇 가지 도전을 받게 됩니다.    
    
첫째, 그가 사는 시대는 하나님과 동행하기 좋은 환경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가 사는 시대는 한마디로 말하면 ‘경건치 않은 시대, 곧 불의한 시대’ 였다고 4번이나 반복해서 성경은 말씀하신다.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15)   

에녹의 시대는 어쩌면 21세기의 지금보다 훨씬 더 악한 홍수심판 직전의 시대이며, 모든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항하는 시대요, 성적인 타락과 폭력이 난무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시대였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지은 인간이 범죄하여 점점 패역하고 악해지는 것을 보고 탄식하던 때이자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시대였습니다.  인류전체가 집단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의한 사회를 조성하는 이런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는 주변 환경으로 인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의롭게 살기는 매우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사실은 에녹은 극단적으로 암울한 시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따라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 에녹이 있기 때문에 불의한 주변 환경의 강한 악영향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말씀대로 의롭게 정직하게 살기가 어렵다고 핑계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 사는 이 사회도 경건치 않은 불의한 사회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회가 불의하기 때문에 진리에 서지 못하고, 불의와 타협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약한 자를 밟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자위하면서, 자신의 불의함을 세상의 탓으로 돌리고 합리화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근심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의한 사회가 우리에게 죄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성령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 세상의 거대한 악의 세력과 대항하여 능히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불의한 사회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기 어렵고 의롭게 살 수 없다는 것은 순전히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둘째, 에녹은 가족을 가지고 자녀를 기르면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에녹은 세상과 고립되어 세상을 등지고 수도원이나 기도원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기도하면서 일생을 보낸 것도 아니며, 사도바울처럼 독신으로 주를 섬긴 것도 아닙니다. 사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축복이요, 태의 열매는 하나님의 상급이지만... 배우자와 자녀 때문에 주를 섬기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고전7;32,33) 

또한 부모들은 자녀들이 속을 썩여서 고민하고 있고, 자녀들은 부모들의 탈선과 이중생활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에녹은 결코 세상과 가족을 등진 독신주의자가 아닙니다. 에녹은 직업을 가지고 모든 부모들처럼 가족을 부양해야 했고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녹은 300년 간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때 젊은 청년 시절에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 중에 나이가 들어 노년에 가서도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과 경건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속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에녹의 경건의 열정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이 데려갈 때까지 식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가정과 직업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면서도 300년간 그의 영성이 식지 않고 지속되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에녹은 우리에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과 동행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간 탁월한 신앙의 인물이었다. 

 
셋째로, 에녹은 경건치 않은 불의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복음의 전도자요 선지자 였습니다. 

유다서 14-15절을 보면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위경인 에녹1서 1장 9절, 인용】 에녹은 하나님을 떠난 가인과 셋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성도여러분, 경건하게 산 사람만이 불의한 사람에게 외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왜 불의한 세상, 경건치 못한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지 못하고 있는가요? 그리스도인들인 우리가 경건하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에녹과 같은 경건한 무리를 찾고 계시며, 불의한 세상을 향해 그들이 행여나 돌이킬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외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세속화되어서, 우리가 경건하지 못해서 외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외쳐봐야 ‘흥 너나 잘해’라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외치지 못하는 사람, 세상이 오히려 ‘그렇게 살지 말라’고 충고하는 사람은... 선지자가 아닙니다. 다가올 심판에서 아무사람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를 못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경건치 못한 세상을 향하여 크고 담대하게 ‘심판’을 외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넷째,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스스로 자유로운 선택을 하여 하나님과 지속적인 동행을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와 용기를 주는지 모릅니다. 즉 에녹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추정하건데 자기의 아들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중대한 사건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심판이 곧 임박했다는 계시를 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 이름인 므두셀라가 두 단어가 합성된 고유명사로서 ‘죽음’을 ‘보낸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므두셀라가 죽은 그해가 하나님의 심판인 노아의 대홍수가 임했습니다. 왜 므두셀라가 969세로 인류 중 최고 장수한 사람이 될까요? 하나님께서 므두셀라가 죽을 때까지 오래 참으심으로 심판을 연기해주신 것입니다.  에녹은 그의 아들을 낳은 기점을 시작으로 하나님의 심판 계시를 듣고 결심하여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결심했을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누구나 인생의 분기점(Turning Point)이 있다. 사람이 확 변합니다. 하나님을 친히 만나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성령의 강력한 능력을 체험하는 일이 그런 분기점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거나 혹은 성령의 강력한 능력을 직. 간접으로 경험한 사람이라고 모두 다 일생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의롭고 거룩하게 사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우리도 이제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경험 하였습니까? 그렇다고 확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것은 사탄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아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 계시를 받은 것을 놓치지 않고 일생 동안 하나님과 동행을 합니다.  그것이 에녹의 위대한 점입니다.  우리도 이제 남은 인생을 전부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끊임없이 위로 하늘을 쳐다보며 에녹처럼 경건의 훈련을 하기를 원합니다. 아는 것이 순종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원합니다.

성도여러분,  에녹은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동일한 성품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에녹은 모세처럼 강한 리더쉽을 가진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었고, 다니엘처럼 큰 정치가도 아니며, 가정을 가지고 직업을 가진 평범한 생애를 산 사람이었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각종 다양한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 그 시대를 리드해갔지만, 에녹은 어떤 특별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고, 가인처럼 좋은 성을 쌓은 것도 아니요, 라멕의 아들처럼 기술이나 음악의 대가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은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그의 인생의 최대의 비젼이요 목표였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우리의 걸음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고집이 죽어야 하며, 우리의 정욕이나 야망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하나님과 동행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초점을 그분에게 맞추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게 됩니다.  성경은 위대한 신앙의 영웅 중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성정을 뛰어넘는 특별한 위인은 아무도 없다고 기록을 합니다. (약5;17)“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에녹처럼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극복한 최초의 사람이며, 하루 이틀도 아닌 300년을 항상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으로, 불의한 시대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경건한 삶을 촉구하며 심판을 외친 한 집안의 가장입니다.  이러한 에녹의 삶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베푸신 것과 동일한 은혜를 우리에게도 베푸실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여러분들이 모두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바로 옮겨지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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