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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솔로몬의 추락 (왕상 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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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추락 (왕상 11:1-13)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한결같은 마음은 복을 주시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복 주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번성하게 되고 저 하늘로 ‘비상’(飛上)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 6:14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 40:31에서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들은 독수리처럼 비상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비록 지금은 보잘 것 없어도 장차 번성케 해 주십니다. 비록 지금은 바닥을 기고 있을지라도 장차 저 높은 곳을 향해 비상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도 계속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이런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았어도 도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그 복을 다 잃게 됩니다. 

마치 비행기가 비행 도중 연료가 떨어지면 더 이상 비상하지 못하고 추락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연료가 없으니 더 이상 하늘 높이 오르지 못하고 서서히 하강하게 됩니다. 그러나 끝내는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복을 받아 비상하던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더 이상 하늘 높이 오르지 못하고 서서히 추락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 이런 예가 여럿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대표적인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솔로몬의 이야기입니다.
열왕기 상을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왕이 되기 힘든 상황 속에 왕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 가운데 정적들의 저항을 잠재우고, 왕권을 확립하게 됩니다. 그가 일천번제로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리면서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복을 받습니다. 그야말로 비상을 거듭하게 됩니다.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이로써 더욱 큰 비상을 하게 됩니다. 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세워가고 태평성대를 열어갑니다. 그리고 자신도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립니다.

그러나 그의 비상에 제동이 걸립니다. 나라가 쇠퇴하게 됩니다. 여기저기서 적들이 일어나 공격해 옵니다. 심지어 나라 안에 반역의 무리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비상하던 솔로몬이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추락을 거듭하는 중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 솔로몬의 그렇게 비상하다가 왜 추락을 하게 됐을까요? 특히 오늘 본문이 그 답을 보여줍니다.

1. 정욕

본문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우선 솔로몬은 정치 외교적인 목적으로 후궁들을 두었습니다. 왕상 3장을 보면 솔로몬은 즉위 초기에 애굽과 ‘결혼동맹’을 맺었습니다. 바로의 공주와 결혼하여 당시 최강대국 애굽과의 화친을 맺었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주변 크고 작은 여러 나라와 화친을 맺으면서 후궁을 셀 수 없이 많이 두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솔로몬의 자기의 부와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후궁은 물론이고 많은 첩들을 두었습니다. 당시 고대근동에서는 처첩들의 수에 따라 왕을 평가했습니다. 솔로몬은 주변국의 왕들보다 자기가 우월함을 나타나고자 그 많은 후궁과 첩들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1절에 나옵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그리고 3절 하반절에도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여기서 ‘사랑하였다’라고 번역한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어로 ‘다바크’(Dabak)라는 말입니다. 원 뜻은 ‘착 들러붙다’, ‘...에 매달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이 이런 이방 여인들에게 정신이 팔려 이들에게 매달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솔로몬이 이런 이방 여인들의 치마폭에 푹 빠져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3절을 보면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그 여인들에게 빠져들게 되면서 솔로몬의 마음이 돌아서게 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던 그의 마음이 우상을 향해 돌아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마음을 짐작해 보겠습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이 정욕에 넘어져서 하나님 앞에 큰 책망을 받은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 회개하느라고 아버지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아마 아버지로부터 직접 정욕을 조심하라는 당부를 들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정욕에 빠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의 말씀을 수없이 듣고 암송도 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신 7:3 이하의 말씀입니다. 곧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이방 여인을 아내로 며느리로 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신 17:17 말씀입니다. 곧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왕들이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이런 말씀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알면서도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피치 못한 일이라고 합리화 하며, 그 말씀을 거역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비록 이 말씀을 어겼지만 내가 마음만 흔들리지 않으면 될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 정욕의 늪에 빠졌고, 그 결과 추락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끝내 그 정욕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추락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기스틴의 [참회록]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어거스틴이 방탕한 생활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답니다. “하나님이 저를 이 정욕에서 건져주세요” 그런데 기도하면서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니까 또 다른 소원이 있더랍니다. “그러나 건져 주시더라도 아직은 건져주시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욕을 이겨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정욕의 유혹의 달콤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정욕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추락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비상하다가 추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정욕을 멀리해야 합니다. 마치 독감 예방을 위해 철저하게 손을 씻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처럼 정욕이 손짓하는 곳 근처에 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상시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2. 교만

본문 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솔로몬이 왕이 되어 비상하자 달라졌습니다.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 다윗은 왕이 되어 비상했지만 끝까지 여호와를 따랐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왕상 3장을 보면 그가 여호와께 일천번제를 드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받으시고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절 이하를 보면 이 때 솔로몬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니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 말씀 속에서 솔로몬은 자기는 ‘작은 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솔로몬은 이미 결혼하여 르호보암까지 낳은 때입니다. 20세가 넘은 성인이었습니다. 결코 작은 아이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자기를 작은 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은 왕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말입니다.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잘 모른다는 말입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겸손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9절을 보면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특히 왕으로서 재판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지혜를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 앞에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와 보면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솔로몬은 더 이상 자기를 작은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 능히 왕의 직무를 잘 감당할 뿐 아니라 아마도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백성을 재판하는 일도 자기 스스로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최고의 재판관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교만이 문제였습니다. 이제 간절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됐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 뜻대로 왕의 직무를 펼쳐 가는데 부담스러운 존재라고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저런 것을 하지 못하게 하기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고 만 것입니다.
솔로몬의 경우에서 보듯이 겸손과 교만은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겸손하다가도 교만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겸손과 교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어떨 때 겸손하다가 또 어떨 때 교만해 지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생각의 차이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먼저 생각합니다. 자신의 장점에 사로잡혀 있기에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도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잘 하지 못한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십계명을 대할 때 겸손한 사람은 ‘하라’고 명하신 말씀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과연 내가 안식일을 제대로 잘 지켰는가?’, ‘부모는 충실히 공경했는가?’, ‘이웃은 진심으로 사랑했는가?’를 돌아봅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잘한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십계명을 대할 때 교만한 사람은 ‘하지 말라’고 명하신 말씀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자기가 하지 않은 것을 손꼽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교만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없고 그래서 비상하지 못하고 추락하게 됩니다.
우리가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3. 영적 어둠

본문 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여기서 일찍이 두 번 솔로몬에게 직접 나타나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왕상을 보면  3:5-14과 9:2-9에 두 차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첫 번째 말씀하신 것은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린 후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3:14절을 보면 이렇게 권면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두 번째 말씀하신 것은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을 다 건축한 뒤 첫 번째 임하신 것처럼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9:6-7을 보면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분명히 솔로몬에게 앞으로 어떻게 왕으로 통치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면 어떻게 될 것을 두 차례 경고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 두 차례 이외에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잘못하는데도 당시 활동하던 선지자들이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11절에 마지막 통보식의 말씀이 전해 진 것이 전부입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40년 동안 왕으로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뒤 비상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전과 다르게 하나님의 전에 나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깊은 영적 어둠이 솔로몬을 뒤덮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왕이 된 뒤에도 늘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기도와 찬양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에 나단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결정적 실수를 했을 때 선지자가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영적인 어둠이 문제입니다. 영적 어둠 가운데 깊은 영적 잠을 자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과거에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잊게 됩니다. 말씀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지킬 수 없고 순종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복이 그치게 되고 추락이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독수리가 날개치며 오름같이 비상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행여라도 추락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솔로몬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정욕을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적 어둠에 빠지면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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