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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의 축복! (시 4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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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의 축복! (시 48:1-14)

성지순례를 가서 은혜를 받습니다. 갈릴리 호수, 광야, 십자가의 길, 그곳에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경치는 별로 볼 것이 없습니다. 가기도 너무 힘듭니다. 그런데 성지는 왜 감동이 있습니까? 주님이 그곳에 계셨었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입니다. 

시편 48편을 읽을 때, 성지순례를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시편 48편은 예루살렘 성과 시온 산을 노래하는 시편인데, 읽는 중에 예루살렘 성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성이고 시온 산은 가장 아름다운 산인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1절 ...하나님의 성에서 그의 거룩한 산에서
2절 우뚝 솟은 아름다운 봉우리, 온 누리의 기쁨이로구나. 자폰 산의 봉우리 같은 시온 산은, 위대한 왕의 도성, 

4-5절 보아라, 이방 왕들이 함께 모여 맹렬히 쳐들어 왔다가 시온 산을 보자 마자 넋을 잃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12-13절 너희는 시온 성을 돌면서, 그 성을 둘러보고, 그 망대를 세어 보아라. 너희는 그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 궁궐을 찾아가 살펴보고, 그 영광을 전해 주어라. 

그러나 세상이 볼 때에 예루살렘 성과 시온 산 보다 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과 산이 많습니다. 그러나 유독 예루살렘 성과 시온 산이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8절 우리가 들은 바 그대로, 우리는 만군의 주님께서 계신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시편 48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어떤 역사가 있는지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큰 기쁨이 임합니다.

2절 우뚝 솟은 아름다운 봉우리, 온 누리의 기쁨이로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원수의 공격에서 안전합니다.

4-5절 보아라, 이방 왕들이 함께 모여 맹렬히 쳐들어 왔다가 시온 산을 보자 마자 넋을 잃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사랑이 믿어집니다.
9절 하나님,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어떻게 믿는 것이 바른 믿음일까요? “하나님은 누구를 가장 사랑하시나?” 주저함 없이 “나예요!” 할 수 있으면 하나님을 바로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10절 하나님, 주님의 명성에 어울리게,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도 땅 끝까지 퍼졌습니다.
11절 주님, 주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시온 산이 즐거워하고, 유다의 딸들이 기뻐서 외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고 전도자가 됩니다.
13절 너희는 그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 궁궐을 찾아가 살펴보고, 그 영광을 전해 주어라.

하나님의 자녀된 가장 큰 축복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입니다. 
14절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영원토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신다" 

우리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이, 하나님께서 나같은 자와도 함께 하실까요?”

그래서 믿어도 성경을 읽고 성경적인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을까요? 그들이 대단한 백성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작은 백성이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종이었던 민족입니다.

신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그러므로 어느 민족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민족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나를 택하시고 나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까?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었을 때였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전 1: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받은 복이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복입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한 때 주님이 계셨었다는 그 한 가지만 가지고도 그 많은 경비를 쓰면서 성지순례를 가고, 가서는 그렇게 감동한다면, 하나님이 지금 함께 하신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감동이 되고 귀한 것이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 엄청난 복을 주셔도 안 믿으면 누릴 수 없습니다.

고후 13: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엡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

그러므로 우리는 눈이 뜨여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가장 큰 복, 가장 감사할 제목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우리 가정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내 일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그것이 감사한 일이고 놀라운 일이고 그것 때문에 희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을 뿐 아니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임재의 축복을 잃어 버릴 수 있습니다.

영광스럽다고 찬양을 받았던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시온 산이 이방인들에게 점령당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전 자리에 회교 성전이 서 있습니다. 중동의 화약고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자랑만 했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축복은 지식이나 교리가 아닙니다. 한번 얻으면 영원히 소유하는 자격증이나 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관계입니다. 믿음과 감사와 환영과 순종, 사랑함으로 지속되고 깊어지는 관계라는 말입니다. 
관계는 깨어질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관계로 법적인 관계로 그칠 수 있습니다.
부모를 잃은 고아, 사랑이 식은 부부 같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마음에 모시기를 원하십니까? 
안타깝게도 성경은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롬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

고위 공직자나 유명인, 심지어 목회자들까지 말하기도 부끄러운 성추문에 휩싸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밀한 자리의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이렇게 드러날 줄 알았다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하나님의 존재가 싫은 것입니다.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위대한 知性'으로 추앙받는 철학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하는 반 기독교 책을 썼습니다. 무모할 정도의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 책에서 기독교 여러 교리의 모순됨을 일일이 지적하였습니다. 얼핏보면 그가 상당한 연구를 한 결과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 진실한 사람이었다면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왜 그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을까요? 그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니, 그가 '호색한'이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는 평생 네 번 결혼하고 틈틈이 혼외정사를 즐긴 바람둥이였다는 것입니다. 

한때 도라라는 아내와 자신의 애인, 그리고 아내의 애인, 그리고 자기 자녀와 아내가 애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와 한 집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기준에서 볼 때도 충격적인 생활입니다. 그의 이런 생활 때문에 뉴욕 시립대학에 교수로 임용되었다가 면직되기도 했습니다. 
그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쓴 진정한 이유는 마음대로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기 싫었던 것입니다.

갈렙교회 장로님 한 분이 친한 친구 분이 보내준 카톡을 열다가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평소 참 신실하신 분으로 알았던 분인데, 카톡으로 동영상과 함께‘즐거운 시간 누리시라’는 문자도 보냈기에 별 생각 없이 열다가 완전 기절했던 것입니다.“야동”이었습니다. 헤괴망칙한 음란 동영상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이런 것을 나에게 보내실 턱이 없는데 생각하면서도 잠시 그 영상을 보다가 닫았습니다. 잠깐 본 영상이었지만 그 후 몇 시간 동안 주님 바라보는데 큰 어려움을 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그 분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실수로 장로님에게 잘못 갔다.’면서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평소에 그럴 분이 아니라 생각했던 분인데, 상당히 건전하신 분으로 알았던 분이 음란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청소년들 청년들은 어떤 형편이겠습니까?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는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는 지식이나 교리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실재입니다. 실제적인 관계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는 과정이고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 큰 축복입니다. 만약 하나님과 함께 하심이 분명히 믿어지면 모든 것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충분합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황금 송아지를 섬긴 이스라엘 백성을 3,000명을 죽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합니다.

출 32:34 이제 너는 가서, 내가 너에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여라. 보아라, 나의 천사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약속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주겠다. 그러나 나는 함께 하지 않겠다.’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에 모세가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습니다. 

출 33:15-17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면, 우리를 이 곳에서 떠나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이나 저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저 자신과 주님의 백성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과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잘 알고, 또 너에게 은총을 베풀어서, 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다 들어 주마.“

하나님이 제안한대로 하면 40년 광야 연단 없이 가나안 땅에 바로 들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토록 가고 싶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40년 연단받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안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위드지저스데이가 본당에서 열렸을 때, 영성일기를 통해 주님을 바라보며 살았던 간증자들을 통하여 계속 주 예수님이 증거되는 것을 보면서  제 마음에 특별한 감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해 올 때, 교회는 에배당 건축이 중단된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교회로 오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 알기 어려웠던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제게 큰 에배당을 건축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깨우쳐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큰 예배당을 건축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예배당 공사를 재개했을 때도 건축비가 있어서였기 보다 법적인 시한 때문이었습니다. 

에배당이 불법 건물로 성남시청의 골치거리가 되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예배당이 완공되었을 때, 저는 기뻤기 보다 이 건물의 크기에 눌려 있었습니다. 예배당 큰 것을 자랑하는 교회, 에배당 크다고 소문난 교회,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죽 하면 건물 자랑이나 할까! 그 때 마음에 깨달아지기를‘건물보다 교인들의 믿음이 더 큰 교회를 만들어야 하겠다!’그렇구나! 그러면 큰 에배당 건물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어떤 교인이 이 에배당 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진 교인일까요?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교인입니다.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며 그 예수님을 증거하는 교인이 이 에배당 보다 더 큰 교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난 목요일 저는 그런 교인을 많이 보았던 것입니다.
에배당이 작아 보일 정도였습니다.

지난 주간 새벽기도회는 제겐 아주 특별했습니다. 기도의 불이 뜨겁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뜨거웠던 것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기도회가 시작되고 30분 동안,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일을 기도로 올려드린 것입니다. 그 전에도 새벽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제목은 하나님 보다 우리 자신의 문제가 먼저였습니다.

그러나 요즘 새벽기도회는 달라졌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합니다. 그것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뜨겁게 기도합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새벽마다 주님이 이 에배당에 함께 하심을 느낍니다. 
이제 예배당 건물이 크냐 작으냐는 더 이상 관심도 없어졌습니다.
오직 관심은 지금 함께 하시는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계속 진행형입니다. 깊어져야 합니다. 

중부교회 길재준목사님은 어릴 때 아버지가 방에 액자를 달아주었답니다. 그 액자에 쓰여진 글이 시편 118편 6-7절 말씀이었습니다. 

시 118:6-7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보았던 그 말씀이 살아가면서 고비를 만날 때마다 믿음이 되고 힘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어떤 고생도 좋은 것입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집이 아니라 빌딩 사무실에 판자로 칸을 막고 지냈던 적도 있었고, 학교 교실 한칸을 빌어 사택으로 지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때가 더 그립습니다. 그 때 생각만 납니다. 아버님 어머님, 동생들과 함께 지냈기에 냄새나고 불편해도 고생이라 여겨지지 않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제게 많은 요청이 몰려옵니다. 집회 요청부터 재정 지원, 상담 요청까지, 감당할 수 없이 요청이 몰려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는데, 주님이 사도행전 3장 6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행 3:6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제가 뭘 도와드릴 힘이 있겠습니까? 오직 제 안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 드릴 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며 사시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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