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3) (롬 14:12)

첨부 1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3) (롬 14:12)

인간은 인간 본성의 전적타락과 무능력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계시록 3장 17절에 『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고 했습니다. 

불신자들은 인간 스스로 도덕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의 종 곧 사탄의 종입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비참한 인생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6절에 『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고 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자유나 도덕적 능력을 가르치지 않는 대신에 인간의 도덕적 무능력을 주장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능력을 행사하셔서 아담의 타락을 왜 막지 못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에덴동산에 두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따먹게 했는가에 대해 질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답은 간단합니다.

이 모두는 하나님이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하나님 자신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감안하면 아담의 죄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재물에 눈이 어두웠던 선지자 발람은 발락의 제안을 수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발람을 막았습니다. 

민수기 22장 38절에 『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임의로 말할 수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뜻의 좌절과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를 짓지 않도록 막으면서도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침해하지 않으십니다(요 8:36).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전달하실 때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단순한 기계로 전락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20-21절에 『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된 사람들은 그들의 도덕적 책임이 침해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들의 자유 또한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이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자신의 능력으로 지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거룩한 사람들 속에서 죄를 억제하시고 인간의 생각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억제하실 뿐만 아니라 육신의 생각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막으셨다고 해서 이들의 자유가 박탈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인 것입니다. 자유하다고 할 때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아무 명령이나 통제도 받지 않고 자기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가 아니고 차라리 속박입니다. 참 자유는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살아야 하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태평양 한 가운데 떠 있는 배가 마음대로 항해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목적지를 따라 순항하는 것이 진정한 지유인 것입니다.

아담 타락 이후에 진정한 자유를 누린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이 자신의 양식이었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자신이 누리는 자유함이었습니다. 

Ⅰ. 하나님은 죄인에게 아무런 능력이 없는데도 책임을 부여하시고 일을 다 하지 못했다고 정죄할 수 있습니다. 

1)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할 책임이 있습니다(신 6:5; 마 22:37). 
신명기 6장 5절에 『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2) 인간은 하나님을 순종할 책임이 있습니다(신 30:8; 행 5:29). 
신명기 30장 8절에 『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29절에 『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했습니다.

3) 인간은 하나님을 섬길 책임이 있습니다(신 6:13; 행 13:36; 살전 1:9; 히 12:28). 
시편 2편 11절에 『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절에 『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하리라 』고 했습니다.

4) 인간은 회개할 책임이 있습니다(시 7:12; 17:30; 계 2:5).
사도행전 3장 19절에 『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3장 19절에 『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고 했습니다.

5) 인간은 복음을 믿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요 2:22; 8:30; 행 15:7; 롬 1:16). 
마가복음 1장 15절에 『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눅 5:32; 딤후 2:25). 그래서 요한복음 6장 44절에 『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고 했습니다.
아무도 그리스도에게 나오기를 싫어합니다. 

요한복음 5장 40절에 『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6) 택자는 그리스도에게로 나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고 했습니다.

① 자신은 죽을 수 밖에 없는 버려진 존재임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② 자신의 의를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③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무조건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자연인은 그대로 두면 마음이 심히 부패하여 그리스도에게로 나오지 못합니다. 
여호수아 24장 19절에 『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43절에 『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줄 알지 못함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7-8절에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요 4:24). 하나님께로 온 영이라고 했습니다(고전 2:12).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라고 했습니다(롬 8:14). 영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계 22:6).
죄인이 할 능력이 없는 일을 하지 못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다 못한다는 말을 다음과 같은 의미로 수용해야 합니다. 자연적 무능력과 도덕적 무능력을 구분해야 합니다.

열왕기상 14장 4절에 『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 』고 했습니다.

요나서 1장 13절에 『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고 했습니다.

두 구절에서 『 못하더라 』와 『 못한지라 』는 말은 모두 자연적 무능력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창세기 37장 4절에 『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 불평하였더라 』는 말은 도덕적 무능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은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육체적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왜 이들이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고 한 것은 이들이 그를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8절에 『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8절에 『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4절에 『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고 했습니다.

이런 성경은 도덕적 무능력을 가리킵니다. 백치와 유아는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책임이 없습니다. 이들은 자연적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별력이 있고 양심작용이 있고 영원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정상인은 책임 있는 존재입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인간은 하나님에게 자기 일을 고백해야 합니다(롬 14:12). 

인간의 책임은 자연적 능력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책임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성작용과 함께 양심이라는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죄인이지만 책임 있는 피조물인 까닭은 이러한 자연적 능력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기소起訴되어 징벌이 확정되는 이유는 자신의 자연적 능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Ⅱ. 인간이 죄를 짓도록 하나님이 작정하셨어도 그 죄에 대해 인간에게 책임을 물어 인간을 징계할 수 있습니다. 

스가랴 11장 12절에 『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주 예수를 배반하도록 하나님이 영원 전에 작정하신 것이 확실합니다. 하나님은 장차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일어날 일을 알리실 때 하나님은 장차 일어나도록 자신이 작정해 놓으신 일을 계시하실 뿐입니다. 
유다는 자신도 모르게 실제로 하나님의 작정을 성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유다에게 하나님의 작정을 성취한다는 의식이나 사명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의 의도가 악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악행을 인정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절에 『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3절에 『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단순히 허용만 하신 것이 아니라 세세한 부분까지 작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았던 자들의 손이 악했던 이유는 그들의 의도가 악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도록 그들을 통제하시고 이끄시지만 그렇다고 그 어떤 피조물의 죄악된 성향도 만들어내지는 않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도 아니고 죄의 승인자도 아니십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거스틴은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인간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인간이 죄를 지을 때 이런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의 뜻에 따라 어둠을 나누시는 하나님의 능력에서 비롯된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잠언 16장 9절에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이 인간이 죄를 짓는 근본원인이 아니라 인간의 죄악된 행위에 대해 미리 정해진 행보입니다.

예컨대 예수님이 팔리도록 작정해 놓고 이것을 실행에 옮기셨고 유다라는 선한 사람을 통해 그 마음에 악한 갈망을 집어넣고 그가 끔직한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행동을 작정하셨고 이 행위를 실행에 옮길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악하게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4절에 『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70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행동을 간과(그냥 두고 봄)하셨을 뿐이며 유다는 악행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Ⅲ.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영접할 책임을 죄인에 게 돌리고 그리스도를 거부했다고 그에게 영벌을 내리실 수 있습니다. 

로마서 9장 22절에 『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택자들에게 회개하며 믿으라고 명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30절에 『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3절에 『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는 성경을 상고하는 것은 모든 죄인의 의무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확정하여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요압처럼 말할 수는 있습니다. 

역대상 19장 13절에 『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는 성경을 공개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성취하지 못할 요구를 하십니다. 
로마서 8장 3절에 『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 『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행할 능력도 없는 일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중대한 것입니다. 

① 하나님은 자신의 기준을 우리의 악하고 연약한 수준으로 끌어내리길 거부하시기 때문입니다. 
② 하나님께 부르짖어 은혜와 능력을 구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모든 죄인은 주님께 부르짖을 책임이 있습니다. 죄인은 혼자 힘으로 회개하지 못하며 믿지도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혼자 힘으로 주께 나오지도 못하며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죄인은 참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에게 부르짖는 것입니다(롬 10: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불위야是不爲也 비불능야非不能也" "이는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결국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을 불능不能이라고 했고 할 수 있으면서 하지 않는 것을 불위不爲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책임을 묻는 기준을 친히 제시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8절에 『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인간의 책임은 자연적 능력에 있고 양심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책임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성경)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책임은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25편 9절에 『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나의 길(운명)을 결정해 놓으셨습니다. 
사도행전 17장 26절에 『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욥 7:1; 14:15).

하나님은 바울과 한 배를 탄 모든 사람의 안전을 작정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2절에 『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 27장 31절에 『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작정한 것을 성취하실 수단까지 정해 놓으셨습니다. 열왕기하 22장에서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삶을 15년 연장해 주시기로 결정하셨는데도 히스기야는 무화과 반죽을 자신의 상처에 놓아야 했습니다. 

주님은 죽은 나사로 무덤 앞에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했는가하면(요 11:39) 살아난 나사로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했습니다(요 11:44).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손 안에서 영원히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요 10:28). 그러나 자신의 몸은 쳐 복종하게 했습니다(고전 9:27). 

사도 요한은 자신의 편지를 받는 자들에게 너희가 그 안에 거하라고 확증했는데도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요일 2:27-28)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각자가 받은 자연적 능력으로 우리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강구원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