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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저절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3) (막 4: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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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3) (막 4:26-29)  

저절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는 지난 시간의 비유 내용과 많이 다르며 본 비유는 마가복음에서만 나오는 특별 비유다. 오늘 비유의 특징은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가 진행되어지는 그 중간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데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되어있다.

사람이 씨앗을 뿌리고 주야로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나는데 땅이 스스로 열매를 낸다. 처음에는 싹, 그 다음에는 이삭, 그 다음에는 곡식이 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익은 열매가 되면 낫을 대어 추수한다. 

이 비유를 읽으면서 우리는 먼저 비유의 배경을 알아야 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염려와 근심 속에 있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유대 지도자들의 예수님에 대한 공격은 거세다 못해 죽이려 하였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전도하심에는 권위가 있고 많은 사람을 움직여 갔지만 예수가 왕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염려와 의심 속에 있었다. 기적의 예수, 신유의 예수,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새롭게 먹이시고 고치시는 예수이지만 유대교 대제사장, 바리새인,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의 분위기는 예수를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반신반의 속에서 두려워하였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 다음을 말하고자 한다. 

씨앗이 심겨졌다. -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시작되었다. - 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믿기 어렵고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그 나라가 움직여 가고 있다.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씨가 자라나는 것을 농부가 조금도 도울 수 없듯이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멈추지 않고 저절로 저절로 움직여 가고 있다. 씨가 자라나는 것은 하나님의 소관이지 사람의 소관이 아니다.

또 막4:27의 말씀처럼 그 자라남은 알 수 없다. 볼 수 없고, 알 수 없지만 주야를 지나면서 씨는 싹으로, 싹은 곡식으로 자라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염려와 불안은 쓸모없는 일이다. 수탉 한 마리가 새벽마다 힘차게 울었다. 자기가 울고 나면 아침 해가 떠오르기에 계속 울었다. 자기가 울지 않으면 아침 해가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하고 울었다. 내가 만약에 울지 않아서 아침 해가 떠오르지 않으면 온 세상은 깜깜한 밤만 계속되고 땅에서 자라는 식물도 자라지 못하고 죽게 되고 동물도 다 죽게 된다고 생각하고 더욱 사명감을 다해 울었다. 내가 울어야 아침 해가 떠오른다. - 어느 날 닭은 늦잠을 잤다. - 깜짝 놀라 해가 뜨지 않았으면 어떡하나 보니 ? 해가 중천에 떠 있다. - 우리는 이 어리석은 닭처럼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자라도록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자라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바울도 고전3:6~7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람의 염려는 무용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못 하든지 무관하게 자라나고 있다.  

결국 이 비유에서 씨를 심은 사람이 할 일은 무엇인가? 

1. 일꾼이 되는 일이다.

씨가 싹이 나서 자라나는 것은 하나님의 할 일이지만 씨를 심는 것은 사람이다. 그 씨를 심은 사람의 역할은 열매를 모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열매를 모으는 추수를 위해 낫을 잘 갈고 타작 기계를 잘 준비하고 담을 수 있는 부대와 모아 두는 창고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희어져서 거두어 드릴 알곡을 모아들이는 일꾼이 되는 일이다. 

마9:37~38을 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농부가 되어 할 수 있는 일은 추수자로서 헌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추수자의 도구를 갖추려고 훈련 받는 추수의 열매를 하나라도 떨어뜨리지 않도록 곳간에 모아들이는 멋진 일꾼이 되기 위해 각종 훈련과 공부를 하는 것이다. 자라나는 것은 주님의 영역에 맡기고 추수의 일꾼으로서 갖추지 못한 것을 갖추어가는 사람이 되자. 
  

2.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일꾼이 되자.

사람들은 본래 여러 가지 불안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데도 제자들이 위협을 느낄 때마다 불안을 느낀 것처럼 사람들은 일어나지 않은 것조차도 일어날거라고 예측하며 불안해한다. 한 심리학자가 사람들의 염려, 걱정거리를 분석하여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① 40%는 아예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있다.

② 30%는 이미 일어난 일들에 대한 걱정이다.

③ 22%는 극히 사소한 일에 대한 걱정이다. - 할 일이 없어 걱정한다는 뜻이다.

④ 4%는 자신이 전혀 손쓸 수 없는 일들을 걱정한다.

⑤ 4%만이 걱정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사람은 걱정할 일은 걱정하지 않고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공연한 것들을 걱정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오늘의 사람들이나 제자들의 걱정도 유사한 내용이다. 하나님 나라의 자라남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그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신뢰하면 된다. 나의 염려와 걱정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이루시는 분이다. 

성경의 무수한 약속들을 헤아리면 32,500가지라고 한다. 그 약속들이 다 성취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세상 그 무엇보다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자. 그러면 우리는 걱정, 염려, 불안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추수의 일꾼으로 당당하게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절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는 청중에게 선교적 사명, 추수의 사명을 알려주는 것이다. 너희는 씨앗을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고 거둬들이는 것뿐이다. 알지 못하는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일꾼이 되라.
  

3. 기다리며 인내하는 일꾼이 되자.

예수님은 서두르지 않으셨다. 그는 3년의 짧은 공생애를 사셨지만 30세가 될 때까지 무명의 예수님이셨다. 무명의 생활 30년을 보내시며 숨어 계시다가 때가 되어 나타나셨다. 그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때를 구하며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구하셨다. 즉 초조하게 서두르는 삶이 아니라 기다리는 모습이다. 

땅에 뿌려진 씨도 마찬가지다. 기다려야 할 일이다. 씨앗은 우리의 조급함과 상관없다. 조급해서 땅을 다시 일구고 호미로 씨앗을 건드려 보면 씨앗을 죽을 뿐이다. 우리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욥의 인내, 농부의 인내, 선지자들의 인내를 배워야 한다. 

사업도 ? 로또복권에 당첨되듯 일확천금으로 되지 않는다.

믿음도 ? 소나기 내리듯 한 순간에 되지 않는다.

친구도 ? 하룻 밤만에 우정을 쌓고 깊어지지 않는다.

결혼도 ? 만나자마자 웨딩마치로 행복을 획득하지 못한다.

인생에 이런 공식은 없다. 중요한 것일수록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한다. 

나는 오목천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소그룹별로 선교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변하는 것 같지 않다. 성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도 갖는다. 정말 변할 것인가?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향기가 나올 것인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움직이고 계시기에 보이지 않아도 기다려야 한다. 

다만 어떤 사람은 신앙이 싹을 낸 단계, 어떤 사람은 줄기가 나오고 이삭이 나온 단계, 그 다음에 또 어떤 사람은 열매 단계에 와 있다. 마치 아기의 신앙에서 아이로, 아이의 신앙에서 청년의 신앙으로, 청년의 신앙에서 장년의 신앙으로 자라나듯 각 단계별로 자라나고 있다. 어제 싹을 낸 단계의 성도에게 꽃이 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어찌 꽃을 피는 단계의 성도에게 어서 이삭이 솟아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각 자의 수준에서 성장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을 못한다면 초조하고 무력해지고 병들게 된다. 

내가 돌보는 속회원들을 보라. 속 썩이는 사람, 도움을 주는 사람 등 다양하다. 성장의 키가 다르고 아직 자라나고 있음을 알고 열매가 있는 그 때까지 기다리며 인내하자. 내가 염려하는 이 시간, 포기하고 싶은 이 시간도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고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다. 기다리면 된다.   

나는 요사이 기다리는 영성을 다시 배운다.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는 고요함으로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에서 온다. 기다림은 신앙의 색이고 사랑의 색이다. 또 기다림은 소망의 색이다. 지루하지만 기다려야 한다. 씨는 저절로 자란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다. 어떻게 씨가 싹이 나고 자라나 열매로 익어가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염려, 걱정, 실망을 다 내려놓고 믿음으로 기다리는 일꾼이 되자. 그리고 추수의 일꾼으로 추수의 도구를 준비하며 기다리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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