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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폭풍 속에서 누리는 평안 (막 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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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에서 누리는 평안 (막 4:35-41)

한 17년 쯤 됐으니 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제가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아주 부끄러운 일을 경험했는데 교회 장로 한 다서여섯 분, 그리고 청년들해서 한 이삼십명이 중국으로 비전트립, 선교여행을 떠났습니다. 월요일 출발해서 토요일까지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토요일 아침 비행기로 한국에 들어오는 여정이었습니다. 

중국의 심양의 공항이었습니다. 도착을 했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해요. 그래서 비행기 표를 놓고 자석을 얻으려고 하니까 이미 그 비행기가 한 시간 전에 떠났다는 거예요. 이 너무너무 황당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이거 어떻게 하면 좋으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 여행사에서 이 모든 여행의 일정을 보내줬는데 그 시간과 실제 비행기의 티켓을 끊은 시간이 달라요. 한 시간 정도 빨라졌는데 여행사에서 연락을 안해주었기 때문에 그걸 모르고 여행 일정만 보고 갔다가 그런 낭패를 당한거죠. 아시아나 대한항공을 다 알아봐도 휴가철이기 때문에 비행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토요일이고 내일이 주일이기 때문에 주일예배를 인도해야 하는데 이 너무너무 황다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럴 때 거기 참석하셨던 장로님들의 얼굴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점잖던 분들도 얼굴에 노기가 다 띄었습니다. 왜 목사님이 그런걸 해가지고 본 곳에서는 선교사님들이 안내를 하니까 굳이 가이드가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제가 여정을 맡아서 했는데 티켓시간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죠. 그래서 막 거기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으신 거예요. 

그런데 그 중에 한 낙천적인 장로님이 한 분 계셨어요. 그 분은 “목사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돌이킬 수도 없는데 우리 그러지 말고 버스 하나 빌려서 관광이나 더 합시다.” 그래가지고 어차피 그날은 못 오는 거니까 그래서 버스를 빌려서 관광을 떠난적이 있습니다. 

저는 도저히 제가 잘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관광을 갈 수가 없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호텔방에서 하루 종일 회개를 했습니다. 자 이제 주일에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안내했던 선교사님께 연락을 했더니 선교사님이 오셔서 북경으로 가는 기차표를 구했는데 한 열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북경까지 가서 거기서 1박 2일을 보내고 이제 계획에도 없던 북경에 천안문 광장 또 만리장성도 보고 월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들어왔던 적이 있습니다. 뭐 비행경비는 어떻게 했느냐. 여행사에서 자기들이 착각으로 잘못했기 때문에 여행경비 상당한 부분을 물어줘서 마무리가 잘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고없는 갑작스럽게 당황스러운 일을 만났을 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어떤 표정을 취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젊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가 미국에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여러 가지 일로 스캔들을 일으키고 선교에 실패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그가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배를 탔는데 태평양을 건너오게 됩니다. 

그런데 태평양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배가 무슨 일엽편주처럼 휘청거리는데 견딜수가 없어요. 목사이지만 두려워서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가 갑판 선상에 올라왔더니 놀랍게도 그 풍랑 가운데 너무나도 평화로운 모습으로 찬양을 부르는 사람들을 보게 됐어요. 아니 저들은 누구인가. 목사인 나는 지금 두려워 죽을 지경인데 저들은 저들은 평화로운 모습으로 태연하게 찬양을 하고 있어요. 그들은 바로 모라비안 교도들이었습니다. 

존 웨슬레는 그 때 마음에 감동을 받습니다. 도대체 저들이 믿는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은 다른 하나님인가!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평안할 수가 있고 담대할 수 있는가. 그 때부터 그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회의에 빠집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그가 성경을 연구할 때 영국 어느 교회 집회에 참석했다가 거듭남이라는 놀라운 영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리교에 창시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인생에도 당황스러운 일을 만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럴 때 그 사람의 신앙의 진면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정말 믿음이 좋아 보이는데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하면 막 당황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앙이 주저앉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그저 늘 봐도 그 모습이 그 모습 같은데 정말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강하고 담대해지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 차이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주일 저녁은 조금 릴렉스하게 지냅니다. 뭐 월요일 새벽기도를 인도할 때도 있지만은 그래도 한두 시간 정도는 조금 평안히 보내려고 합니다. 왜 주일에 너무 긴장하고 설교준비를 하느라고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좀 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일 저녁에 교역자 회의 끝나고 한 7시 8시에 가면은 꼭 그 때 조금 있다 나오는 TV프로가 개그콘서트입니다. 

요즘 프로가 하나 추가 된게 어눌한 목소리로 나와서 왜 그런거 있죠. 고객님 많이 놀라셨죠. 얼마나 당황하셨습니까. 그 왜 보이스 피싱하는 거 있죠. 연변사투리로 나오는 거. 허당만 치는 거. 그걸 보면 너무 우스워요. 그래서 그것을 보면서 저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고객님 얼마나 당황하셨습니까. 놀라셨죠. 그러는데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당황할 만한 일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갑자기 풍랑이 몰려올 때입니다. 

경제적인 풍랑이, 사업이 풍랑이, 은퇴의 풍랑이, 질병의 풍랑이, 때로는 전쟁의 풍랑이 우리에게 달려 올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어제는 7월 27일, 1954년 7월 27일은 종전 6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전쟁이 중단된 날이 바로 이 정전 기념일이죠. 그래서 국가에서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만은 이 전쟁의 광풍이 밀려올 때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에서 갈릴리의 예고 없는 풍랑으로 제자들과 예수님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이 갈릴리는 기상이 좀 특이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기온이 좀 이상 기온 아닙니까. 열대성 기후로 변해가지고 이 장마가 46일 동안 지속되서 지금 역대 최고의 장마 기록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치 제가 코나에서 경험했던 아열대성 기후가 우리 나라에 나타납니다. 밤에는 막 폭우가 쏟아지고 낮에는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태양 쨍쨍 내리 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갈릴리의 기상이 그렇습니다. 

저도 갈릴리에 한 두 번정도 가봤는데 처음에 갔을 때는 배도 못타고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왜, 풍랑이 일어서. 그래서 두 번째 갔을 때 세 번째 갔을 때 이제 배를 타고 갈릴리 여정을 돌아본 적이 있는데 갈릴리 기후는 예측 불가능하다. 그건 왜 그러냐, 갈릴리 앞에 보면 헬몬산이라는 큰 높은 산이 있는데 2760m의 높은 산입니다. 여름에도 거기에는 얼음이 있어요 눈이 덮여 있어요. 거기서 찬물이 녹아 내려오고, 이 갈릴리의 뜨거운 물이 만나면 그것이 이 찬 공기와 뜨거운 공기가 만나면서 풍랑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갈릴리의 풍랑의 예고가 불가능하다고 그래요. 예측이 불가능한 거죠. 바로 오늘 제자들과 예수님이 탄 배도 갈리리에서 큰 고통을 당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분명히 예수님이 우리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자고 말씀하셨어요. 또 예수님이 그 배에 계신데도 불구하고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에게도 인생의 풍랑은 다가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고난이 오고 우리에게도 질병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분명히 아셔야 되요. 

그러나 우리는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죠. 오늘 예수님이 배에서 주무시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큰 풍랑이 일어나서 그들은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믿는 너희들도 제자들도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환란을 당하면 담대하라. 내가 이미 세상을 승리했다. 너희도 고난을 이기고 승리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고난이 있고 질병의 풍랑이 다가 올 수 있다는 것이에요. 

특별히 제자들은 이 메가톤급 엄청난 큰 풍랑가운데에서 속수무책이었어요. 사실 제자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들은 다 갈릴리 바다에서 이 잔뼈가 굵은 사람들입니다. 뭐 그 정도 풍랑쯤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힘으로도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거대한 파도였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서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주무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주여 우리가 다 죽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좀 해보세요” 하면서 예수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주무시던 예수님은 일어나십니다. 그리고 바다와 바람을 향해서 꾸짖으셨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바다야 잔잔하라, 풍랑아 고요하라”라고 말씀하셨더니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풍랑이 멈추고 바다가 평온해 졌는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요. 

이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놀랍니다. 저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고 그 분이 바로 창조주셨습니다. 이 모든 우주와 자연과 풍랑은 바로 그 분의 지배하에 그분의 주권 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 다른 면모를 봅니다. 예수님의 평안과 제자들의 공포입니다. 예수님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평안히 주무시고 계십니다. 어떻게 그 풍랑 가운데 제자들이 아비규환을 하는데 예수님은 어떻게 평안히 주무실 수 있을까? 그런가하면 믿음 없는 제자들은 죽게 되었다고 소리 지르면서 공포와 극도의 불안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이 두 개의 모습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지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인생에 풍랑이 다가올 때 여러분은 예수님과 같은 평화로운 모습이냐? 아니면 제자들과 같은 공포와 극도의 불안 가운데 빠져 들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경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죠. 37절, 38절의 말씀입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 하시나이까 하니” 아멘 

오늘 예수님은 고물에서 풍랑 가운데 평안히 주무시고 계셨어요. 바로 예수님은 이 평안을 제자들에게 선물하시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뭐라고 하세요. “너희가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이 풍랑 가운데서 너희들도 나처럼 좀 평안할 수 없느냐?” 그런 얘기입니다.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떠느냐? 꼭 지구가 종말이 온 것처럼 난리 법석을 떠느냐? 좀 조용하라. 좀 평정심을 회복하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누리는 이 평안이 오늘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자막에 요한복음 14장 27절의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아멘 

오늘 예수님은 자신의 평안을 제자들에게 선물하시기를 원했습니다. 너희도 이 평안을 소유하라. 그리고 풍랑을 만나거든 두려워하지도 말고 근심하지도 말아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럼 우리가 예수님이 누리는 평안을 어떻게 우리도 소유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본문 속에서 또 성경 속에서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평안을 소유하려면 첫 째는 예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한 번 따라해보세요. 예수님을 신뢰하자! 그렇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 풍랑과 바다도 명령하실 수 있는 하나님으로 예수님을 신뢰해야 해요. 예수님은 나를 지켜주시고 나를 보호하시고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또한 내게 힘이 되어 주실 분으로 그 분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해요. 

신뢰라는 것을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나의 보호자가 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해요. 여러분 보호자가 있지 않습니까? 어린 아이들은 엄마 따라서 시장에 가면 엄마 손을 붙들고 가면 시장에 가서 이런 저런 사람 만나고 술 취한 사람 만나도 동네 개를 만나도 울지 않습니다. 왜요? 보호자 된 엄마가 옆에 있기 때문에! 든든한 아빠의 손을 잡고 있기 때문에!! 이게 바로 보호자예요. 예수님이 여러분의 인생에 보호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몇 년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중에 ‘도가니’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아주 불편한 이야기를 다른 영화죠. 광주에 한 장애인 학교에서 일어났던 아주 불미스러운 일을 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저런 지적 장애인들, 지체 장애인들이 있는데 그 학교에 교장과 교사 몇 명이 그 아이들 하나씩 아무도 없는 시간에 불러내서 성폭행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자기의 어려움을 잘 이야기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무책임하게 당하고 마는 거예요. 그런데 아주 교묘하고 은밀한 일은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왜? 그들은 주말에 집에 가거든요. 집에 가면 이르거든요. 그러니까 부모가 없는!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 삼촌이나 작은 아버지랑 있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만 골라서 폭행하는 거예요. 그 아이들은 어디 가서 이야기를 할 수 없어요. 자기를 보호해줄 사람이 없어요. 아주 잘못된 일이죠. 정말 그것을 본 모든 사람이 울분을 느꼈던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우리의 힘이 되어줄 보호자가 계신다면 얼마나 우리 인생이 든든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제자들의 보호자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너희는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내가 오늘 이 배에 너희와 함께 타고 있는데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고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주님이 나의 보호자가 되어주신다면 무엇이 두려울까요? 주님을 나의 보호자로 나의 구원자로 삼는 이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 것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찬송가 작가 중에 릴리아 모리스라는 여사가 계십니다. 이 분은 50세부터 눈에 이상이 왔습니다. 그가 52세가 되었을 때 드디어 시력을 잃게 됩니다.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믿음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많은 찬송가를 작시하고 작곡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묻습니다. ‘모리스 여사님! 너무 힘들지 않으세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염려하며 묻습니다. 그 때 이 모리스 부인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피곤하지 않습니다. 영원하신 주님의 팔이 저를 붙들고 계시는데 어찌 피곤할 수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주님의 팔이 영원하신 주님의 팔이 저를 붙들고 계시는데 어찌 힘들 수 있습니까?’ 그러면서 자기의 간증을 찬송시로 지었어요. 그게 바로 찬송가 406장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풍랑 일어도 안전한 포구’ 이런 찬양입니다.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풍랑 일어도 안전한 포구 
폭풍까지도 다스리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주의 영원하신 팔 함께 하사 항상 나를 붙드시니 
어느 곳에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함이라.’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풍랑이 일어도 주님이 폭풍까지 다스리기 때문에 주의 영원하신 팔에 의지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다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주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누리는 이 평안을 우리가 소유하려면 우리는 예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오늘 38절에 보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면서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보면 이것이 기도입니다. 오늘 제자들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이 풍랑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기도하는 자가 평안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의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너희가 하나님 앞에 아뢰면! 너희의 고통과 슬픔을 아뢰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생각과 너희 모든 것을 지킬 것이다. 하나님의 평안이 임하는 방법은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가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제자들은 주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그들은 풍랑이 잔잔케 되는 놀라운 일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시중에 ‘처음 마음’이라는 이찬수 목사의 책이 많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저도 사서 읽어보니 그 책에 아주 귀한 간증이 하나 소개되더라구요. 이찬수 목사의 교회에 한 자매가 공황 장애,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을 몇 번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살 시도까지 이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매와 상담하게 되었는데 그 자매는 자매의 말로 자긴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그가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라는 이 말씀을 듣고 새 힘을 얻고 안정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우울증도 치료받게 되었다고 그렇게 간증을 합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자기가 어릴 때에 성장 환경을 이야기 합니다. 자기가 아주 어릴 때 아빠와 엄마가 이혼을 했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가 새 엄마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이 새엄마가 우리가 말하는 너무너무 악마 같은 엄마예요. 화만 나면 이 초등학교 1학년을 너무 괴롭히는 거예요. 그래서 눕혀놓고 자기의 화가 풀릴 때까지 아이를 구박하고 아이를 때리는 거예요. 폭력을 휘두르는 거예요. 

어느 날은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고 있는 아이를 두르려 패는 거예요. 자기의 화가 풀릴 때까지요. 아이는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아니! 엄마가 나를 왜 이렇게 미워하는 줄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러나 아빠에게 이야기 하지 못했어요. 왜? 아빠가 지금 새 엄마를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데 내가 이 얘기를 하면 또 아빠가 엄마와 헤어질까봐 차마 그 얘기를 못 했다는 거예요.

친구의 전도를 받고 교회 나가서 그는 기도를 배웠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드릴 때마다 그는 부르짖었어요. 하나님 왜 제가 가정에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해요. 제게 왜 이런 아픔이 있어야 해요? 새 엄마는 왜 이렇게 저를 미워해요. 그는 늘 하나님 앞에 기도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기도가 나와요. 하나님 제가 정말 좋은 남편을 만나게 해주세요. 제가 성장하면 저를 품어 줄 수 있고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인격적인 그런 믿음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해주세요. 

그런데 이 아이가 성장해서 결국 이렇게 좋은 남자를 만난 거예요. 정말 인격적인 사람 자기의 모든 아픔과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목사님께 와서 목사님 제 기도가 응답됐어요. 그는 이제 지옥 같은 가정에서 벗어나서 정말 자기를 배려해주는 남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결과입니다. 

그 어린 학생 앞에 닥쳐온 거친 파도 앞에서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는 기도했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거친 풍랑 앞에서 기도하고 부르 짖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예수님이 누리는 평안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예수님께 배운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배우고 듣고 본 대로 실천할 때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임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아멘. 

물론 사도 바울의 말씀이지만 너희가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이 말은 원어로 샬롬이에요. 평안, 평화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이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이 평화는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화에요.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운대로 실천하면 내 마음속에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화가 임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닮는 것은 주의 마음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455장에 보면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마음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찬양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험악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하늘의 평화가 그들에게 임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누리는 평안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현실 속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풍랑들이 몰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때로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담대해야 해요. 왜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온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고 그분은 인생의 풍랑도 잔잔케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제가 어떤 유머책을 보다보니까 무서워 시리즈가 있더라고요. 너무 무서우면 뭐라고 합니까? 무섭나? 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나는 자기 I를 말하는 거죠. 상대방이 무서워 할 때는 무서워유. 

YOU는 당신이죠. 남자는 들은 여자가 너무 무서울 때 뭐라고 합니까? 무서운걸. 여자들이 남자가 무서울 때는 무섭군. 그러면 하루가 다 무섭다고 할 때는 무섭 데이. 요즘처럼 비가 많이 와서 무서우면 뭐라고 해야 되요? 무섭지비. 그리고 모든게 다 무서우면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때문에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고 바람과 바다를 향해 명령하시는 우리의 창조주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린 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주시는 이 평화 평안을 너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오늘 이 평안을 주님의 선물을 마음에다 담으시고 거친 풍랑 앞에서도 담대하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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