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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향한 주님의 명령과 약속 (사 4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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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한 주님의 명령과 약속 (사 41:8-14)

구약성경 중에 아주 특이하게 구성되어 있는 성경책이 이사야입니다. 

신구약 성경이 전부 66권입니다. 구약이 39권, 신약이 27권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성경은 전반부가 1장부터 39장이고 후반부가 40장부터 66장까지입니다. 그러니까 전반부 39장 후반부 27장입니다. 

그 전반부는 구약성경처럼 죄에 대한 심판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신약성경처럼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복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냥 유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참으로 묘한 데가 있습니다. 

특히 구약은 열국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하고 특히 유다 나라도 망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40장에 딱 들어서면서 하나님의 위로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주의 길을 평탄케 된다고 선포하면서 메시야가 도래 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중에 오늘 우리가 봉독한 41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이 주어집니다. 

이 명령과 약속은 과거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그때 그 백성에게 주셨던 말씀은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인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하고 무엇을 약속하고 계시나요? 


1.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에서 수없이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컴퓨터로 성경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두려워 말라”는 문장이 몇 개나 되나 조사를 해 보았더니 366번이 나왔습니다. 1년 365일입니다. 그러니 매일매일 두려움 없이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번이 추가된 것은 4년마다 찾아오는 윤년 때문이라 생각해 봅니다. 

문제는 두려워 말려면 그 두려움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가장 큰 원인은 죄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 때문에 두려워하고 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를 해결 받으면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그 죄로부터 우리에게 찾아오는 두려움은 여러종류입니다. 

구체적으로 현대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실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누구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갑니다. 

남들에게 지는 것은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팀이 일본에게 졌습니다. 실패한 것입니다. 대학에서 떨어지는 것도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이 망하는 것도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패치 않으려고 죽을 고생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시각에서는 실패란 없습니다. 인간의 눈으로보면 실패처럼 보이나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요셉이 애굽으로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실패처럼 보이죠?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총무로 있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이것도 실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패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쓰기 위해 연단하고 훈련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의 실패는 그냥 실패가 아닌 하나님의 연단의 과정입니다. 

유명한 상담학자 ‘앤 랜더즈’는 말하기를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4대 요소가 있답니다. 그 네 가지가 뭐냐 하면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그중에 믿음, 소망, 사랑은 긍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인간을 부정적으로 움직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깊이 생각해 보세요. 이 두려움은 언제 만들어질까요? 믿음이 없을 때 생깁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을 때 생깁니다. 더 나아기서 사랑이 없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약속을 믿으면 모든 두려움은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가 외국에 정복당하여 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걱정 근심이 생기고 그래서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두려움이 찾아오게 하여 숨게 만들고 그것을 감추게 만듭니다. 

사단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주는 두 가지의 무서운 선물이 있습니다.
하나는 의심이고 또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결국 이 둘은 하나입니다. 왜냐면 의심이 발전되어 두려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건강이 의심스러우니까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대변을 보는데 피가 나옵니다. 건강에 의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두려워 떱니다. 또 아내가 의심스러우니까 의처증이 생기고, 남편이 의심스러우니까 의부증이 생깁니다.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스러우니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의심스러우니까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물리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모든 인간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여 단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오늘 저녁 무슨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불안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망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온 백성들이 두려움이 발발 떨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난 몇 달동안 이러다가 전쟁 나는 것 아닌가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나라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언제 그만두게 될지, 자녀들에게 무슨 사고가 날지, 늘 남이야기처럼 들리는 암병이 내게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합니다. 또 자식이 징그럽게 공부를 안하는데 저렇게 해서 대학이나 가게 될지 걱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앞날을 모르나 하나님은 우리 앞날을 아십니다. 그러니 우리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시기를 축원합니다. 
 

3)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자기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큰소리치던 나폴레옹에게 어떤 부하가 질문을 했습니다. 
“장군님! 장군님께서는 어느 때가 가장 무서운 때였나요?” 

그러자 나폴레옹은 뜻밖의 대답을 하더랍니다. 
“그것은 일주일에 한 번씩 이발사를 불러다 면도를 할 때가 제일 무섭다네.” 

이발사가 면도칼로 목 줄기를 면도하는데 그때가 제일 두려웠답니다. 그래서 부하를 시켜 이발사를 데려올 때는 그의 아들 하나를 끌어다 놓고 이발을 했답니다. 이발사가 내 목을 베는 날에는 그놈도 그 아들 녀석도 목을 쳐 죽이려 했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뿐만 아닙니다. 진시황제도 죽음이 두려워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50도 못되어 죽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목사님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하는 사람도 실상 죽음이 눈앞에 닥치면 두려워 벌벌 떱니다. 왜 질병이 무섭나요? 죽을까 해서 그렇습니다. 


2. 하나님과 나를 올바로 알라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는 두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1) 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누구신가요? 우리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 개인의 인생의 주관자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9절을 다시 봅시다.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택하신 분이고 나를 부르신 분입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나를 싫어 버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죽고 못 산다며 사랑하다가도 한번 싫어지면 매정하게 헤어져 버리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부모가 형편을 핑계대고 자식을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은 어떤 경우라도 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2) 내가 누군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세요. 우리는 누굽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존은 어떤 존재일까요? 오늘 본문 14절을 보세요.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우리는 버러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여기 ‘버러지’는 옛날 성경에서는 ‘지렁이’라 번역했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과거 신분이었습니다. 버려진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우리를 도우신다고 하십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상황이 마치 지렁이 같았습니다. 우상숭배하고 온갖 죄악을 범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하고 무기력한 존재였습니다. 정말 볼품없고 하잘 것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품으시고 그래서 변화시켜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 보세요. 대단한 실력자를 쓰신 분이 아닙니다. 똑똑하고 실력 있고 문벌 좋은 자를 쓰시질 않았습니다. 

고전1:26절 이하를 보세요.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세상은 능한 자를 찾습니다. 세상은 문벌 좋은 자, 즉 학벌이 좋은 자를 찾습니다. 그리고 강한 자를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실력도 능력도 학벌도 보지 않습니다. 강한 자 보다는 약한 자를 쓰십니다. 천한 자 멸시받는 자, 없는 자들을 들어 쓰십니다. 

왜죠? 그래야 하나님 앞에 자랑치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세요. 베드로같이 단순한 사람도 쓰셨습니다. 마태나 삭개오 같이 사람들에게 사람 취급 받지 못하던 세리도 쓰십니다. 사울같이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도 변화시켜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굽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주 예수를 믿어 죄 사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경은 내가 누군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8절~9절을 보세요.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 정말 눈물이 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누굽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나의 종’이라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택한 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분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능력이 있고 대단한 뭔가가 있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땅 끝에서부터 우리를 붙들고 있고, 땅 모퉁이에서부터 불렀습니다. 그리고 나를 하나님이 싫어 버리지 아니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아멘? 

이것이 우리입니다. 할렐루야! 


3. 도움의 약속을 믿으라 하십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찾아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입니다. 

본문 14절 하반부를 다시 보세요.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하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시121:1절 이하를 보세요.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 도움을 받기 위해 맡기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걱정근심거리가 생기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빌4: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그토록 무서워하던 자들이 수치를 당하게 되고 욕을 당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될 것이고 만나지도 못하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돕는다고 약속하십니다. 

10절을 보세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구절은 최목사의 인생을 변화시켜 주신 말씀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 절망과 좌절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제게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이 말씀으로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오늘 이 시간 여러분에게도 주시는 약속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도우신다고 약속을 하시나요? 

1)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임마누엘은 예수님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지금 이 시간,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이 힘들어 하고 두려워하며 벌벌 떨 때도 함께 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실패할까 두려워하지 마세요. 설사 실패 한다 해도 하나님에게는 실패가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기에 이 약속을 믿으란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신가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살아계심을 정말 믿으시나요? 그러면 왜 그렇게 풀아 죽어서 있냐고요? 왜 그렇게 오만상 찌그리고 있냐고요? 

제가 여러분이 교회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깨가 쳐지고 무거운 얼굴로 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남의 하나님처럼 믿어지는 것은 아닌가요? 

따라 하세요.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3) 굳세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분은 나를 굳세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참으로 나를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제가 등산을 할 때 누군가 손만 잡아줘도 힘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길 주님이 의로운 오른손으로 우리를 굳세게 잡아주시겠다 약속하십니다.  

♫ 주님여 이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그렇습니다. 우리 힘으로 가는 것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 이겨야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고 오른손으로 붙잡아 주실 때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뭔가요? 11~12절 이하를 보세요.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할렐루야!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도 한숨을 푹푹 쉽니다. 
조금만 아파도 죽을까 두려워합니다. 말로는 죽는 게 두렵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픈 것은 힘들어하고 절망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두려움을 벗어 버리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사탄은 우리를 죽음의 두려움으로 협박합니다. 너는 이제 망했다. 너는 이제 죽었다 협박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속지 마세요. 

주께서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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