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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창 37: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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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창 37:18-24)


지난주일 이 시간에도 같은 본문, 같은 제목의 말씀을 드렸는데 시간 관계상 다 드리지 못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꿈 즉 소망은 생명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 큰 문제입니다. 왜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절망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소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시고,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삶의 철학이 있습니다. 그들이 잠언처럼 여기는 철학은 이주 단순합니다.“앞이 막혔느냐? 그러면 뒤를 봐라. 뒤가 막혔느냐? 그러면 옆을 봐라. 옆도 막혔느냐? 그러면 위를 봐라." 사방이 다 막혀 있어도 하늘은 뚫려 있으므로 위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방이 가로막혔어도 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누가 이 광대한 하늘을 막겠습니까? 그러므로 위를 바라보기만 하면 어떤 고난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은 어떤 역경이라 할지라도 능히 축복으로 바꾸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유대인 출신인 바울사도는 고린도후서 4장 8절에 고백하기를“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은 바울사도 혼자만의 신앙고백이 아니라 유대인의 전통적인 삶의 철학입니다.

지난 시간 드렸던 말씀을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첫째, 꿈을 이루는 사람은 요셉처럼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꿈을 꾸고 꿈을 이루는 사람은 요셉처럼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고 이지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꿈을 꾸고 꿈을 이루는 사람은 하나님과 끊임없이 기도로 교통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에게 흘러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기도를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소중한 것을 흘러 보내는 것입니다. 
꿈의 성취를 위해 여기에 몇 가지 더 추가해야할 삶의 덕목이 있습니다. 

넷째, 꿈을 이루는 사람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꿈을 갖되 막연히 기대하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그 꿈은 공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꿈을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 앞에서 자식의 도리에 최선을 다하므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가 애굽의 고관 보디발의 집안 노예가 되었지만 종으로서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주인의 총애를 받아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노예의 신분이 변하여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또다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때에도 신세한탄만 한 것이 아니라 죄수로서 최선을 다해 모범수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은 감옥내의 자유인으로 살았습니다. 감옥에서의 요셉의 삶을 창세기 39:22~23에 기록하시기를“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내리셔서 형통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요셉을 들어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총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도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요셉은 공과 사를 철저히 구별하여 공무에 임했습니다. 창세기 43:16 말씀을 통해 성실한 요셉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요셉이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오정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후 20년이 넘은 때였습니다. 

그 지역에 큰 흉년이 들어 각 나라마다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애굽에는 지혜로운 총리 요셉이 미리 양식을 비축했으므로 풍족했습니다. 애굽에는 양식이 많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요셉의 형들도 양식을 구하고자 애굽으로 내려왔습니다. 10명의 형들은 요셉의 이복형제로서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긴 원수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막내 동생인 베냐민은 요셉의 친동생이었습니다. 어머니 라헬이 동생 베냐민을 해산하다가 산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이 어린동생 베냐민은 또 얼마나 박대했겠습니까? 또한 요셉의 마음속에 그 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 동생이 지금 자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양식을 구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베냐민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는 형 요셉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내려가서“내가 너 형 요셉이란다.”라고 말하며 그를 얼싸 안고 반기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그 정을 억제하고 정오에 만나겠다는 것입니다. 공무 시간을 피해 점심시간을 이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공과 사가 분명했습니다. 

몇 년 전 미국의 일간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실린 기사에 이러한 내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한국인의 1인당 연간 근로 시간은 미국, 일본보다 많지만 생산성은 미국에 비해 62%, 일본보다는 45%나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 신문은 국제노동기구의 자료를 인용, 평균 근로시간은 한국이 2474시간, 미국이 1979시간, 일본이 1859시간이며, 시간당 생산성은 미국이 31.97달러, 캐나다가 25.73달러, 일본이 20,81달러인데 비해 한국은 11.78달러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한국인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와 관련해서 이 신문은“한국인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10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평일 근무시간에 자고, 먹고,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며, 인터넷 쇼핑이나 주식 거래, 카드 게임을 하는 일이 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요셉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꿈은 맡겨진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다섯째, 꿈을 이루는 사람은 고난에 인내합니다.
꿈의 사람 요셉은 그의 꿈대로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요셉의 꿈은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37:6~9에 기록하기를“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장차 형들을 다스릴 높은 권세의 자리에 앉는다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꿈 때문에 형들로부터 시기와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요셉은 노예의 모진 멸시와 천대에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낙심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굳게 지켰습니다. 

흔히들 인복(人福)이 있어야 잘된다고 하는데 요셉의 생애에는 인복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요셉은 돈 많은 아버지를 두었으나 아버지 덕을 보지 못했습니다. 형들이 10명이나 있었지만 그 형들은 도리어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겼으므로 형제 덕도 보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이웃 덕도 보지 못했습니다. 믿고 충성하며 섬겼던 주인의 음해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어느 곳 하나 의지할 언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포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가지가지의 연단의 시간이 끝나자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종교개혁자인 존 칼빈의 좌우명이 히브리어로“코람데오”즉“하나님 면전에서”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사정 다 아시니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으므로 진실하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요셉의 삶이 곧“코람데오”였습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하여 고난이 없기를 기대하거나 고난이 없기를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 가운데“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대목이 있습니다.“시험이 없게 하옵시고”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것은 고난과 역경에 넘어져 하나님을 원망하며 낙심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파도처럼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자기 자녀를 위한 기도문가운데 이러한 대목이 있습니다.“저의 자식을 이러한 인간이 되게 하소서.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할 줄 알게 하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알며...”라고 했습니다. 

만사형통케 하시기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지혜로운 기도를 드렸습니다. 순금은 반드시 용광로를 거친 후 순금이 됩니다. 운동선수의 화려한 승리의 영광 뒤에는 피나는 연습이 있었습니다. 그 연습이란 곧 연단이요 고난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욥은 극심한 고난 중에 말하기를“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수금 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고 했습니다. 이처럼 꿈을 가진 사람들은 고난을 연단의 기회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꿈을 지닌 사람은 고난에 인내해야 합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며 낙심하여 방황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꿈을 바라보며 고난에 인내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꿈대로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1:12에 말씀하시기를“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초고속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빨라지고 있습니다. 식탁에는 인스턴트식품이 75%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에서 살고 있기에 목사의 설교도 20분 이내에 끝내야 좋은 목사로 인정해 준다고 합니다. 한 시간 안에 예배를 끝내지 못하는 목사는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 입니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조급하지 않습니다.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영적생활의 필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큰 복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다리기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을 대비하여 방주를 예비하며 100년을 기다렸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얻기까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 20년을 기다렸습니다. 본문의 요셉은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모진 고난을 겪으면서도 13년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 해방의 꿈을 안고 40년을 기다렸습니다. 이처럼 모두가 기다리며 인내하는 일에 익숙했습니다. 만사에 때가 있고 이룰 기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기한과 때에 대하여 전도서 3:1~8에 말씀하시기를“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이 꿈을 가진 사람의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고보서 5:7~8에 말씀하시기를“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하셨습니다. 

그런데 소망의 뿌리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의 어떤 힘이나, 자신의 능력에 두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시편 125:1에“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33에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세계초초의 현수교(懸垂橋)는 뉴욕 브룩클린에서 맨하탄을 연결하는 브룩클린 다리는 극심한 낙망을 딛고 끈질긴 소망 속에 완성된 눈물겨운 사연이 서려있는 구조물이라고 합니다. 140여 년 전인 1870년 건축가 로우블링(Roebling)이 뉴욕의 동쪽 강을 가로질러 공중에 매어다는 다리를 놓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사람들은 이룰 수 없는 일이라며 극심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확신과 주장을 끊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다리 공사를 차공한지 얼마 되지 않아 로우블링은 뜻밖의 교통사고로 다리를 못쓰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어 집안에 갇혀 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리 공사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공사현장을 맡기고, 자신은 아파트에서 망원경을 통해 현장을 지휘했습니다. 그리하여 1883년 브록클린 다리는 착공하지 14년 만에 뉴욕의 명물 브록클린 다리의 준공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브록클린 다리는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았던 로우블링의 꿈을 이루리라는 불굴의 의지의 산물입니다. 

야고보서 5:7~8에 인내에 관해 말씀하시기를“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하셨습니다. 모든 꿈은 고난 뒤에 숨겨져 있습니다. 농부의 가슴에 품은 풍년의 꿈은 뜨거운 여름날 비지땀을 흘릴 뿐만 아니라, 타들어가는 가뭄에도 휩쓸고 지나가는 장마와 태풍에도 인내 후에 오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40:1~2에고 말씀하시기를“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여섯째, 꿈을 이루는 사람은 자신의 꿈을 입술로 시인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꿈을 입으로 말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그리스도인의 가장 고귀한 소망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의 원리에 대하여 로마서 10:9~10에 말씀하시기를“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만이 아니라 믿는 것을 입으로 말을 해야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말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며, 우리가 하는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시편 139:4에“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4:28 말씀에는“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말을 다 듣고 계시면서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민수기 14:36~38에 말씀하시기를“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이루시고자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약속을 믿는 사람, 그리고 그 믿음을 입으로 말하는 사람만 들어갔습니다.“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민수기 14:36)라고 했습니다. 

열 정탐꾼은 말하기를“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수기 13:33)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말한 대로 메뚜기처럼 아무 힘없이 광야에서 모두 다 죽었습니다.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원인이 무엇입니까? 스스로가 말한 대로 안 된다는 말의 결과였습니다. 

잠언 6:2 말씀에도“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잠언 18:20~21에 말씀하시기를“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누에가 자기 입에서 뿜어내는 실로 누에의 집 고치를 짓듯, 사람은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로 인해 행복의 집도 짓고, 불행의 집도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약하다. 나는 안 된다. 나는 못한다는 마음으로 포기하려는 유혹만큼 우리를 쉽게 넘어뜨리는 것은 없습니다.

영국의 정신병 학자인 하드필드가 이러한 실험을 했습니다. 그가 밝힌 실험의 결과는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정신적 암시가 육체의 힘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세 사람의 남자에게 보통의 상태에서 힘껏 압력계를 쥐게 했을 때 그들의 평균 압력은 101파운드였는데 그들에게“당신은 참으로 약하다.”고 암시를 준 후 다시 재보았더니 겨우 29파운드로 평상시 힘의 1/3이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번에는“당신은 강하다.”는 암시를 준 후 재보았더니 무려 142파운드에 달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 실험은 나는 강하다는 적극적인 정신이 가득해지자, 체력이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을 때보다 무려 5배나 증가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말은 행동을 지배하기 전에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혼돈스럽고 어두울 때, 긍정적이고 복된 말을 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빛나게 되고 나아가 우리의 삶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이 발견한 것 중의 하나가 인체의 모든 신경은 중추신경의 지배를 받고, 그 중추신경은 언어신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수 천 년 전 이미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10~11에“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하셨습니다. 좋은 날을 보려면 입술의 말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변호사처럼 달변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매사에 긍정적인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말은 단순한 소리로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말대로 되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유명가수들의 인생은 대게 자신의 히트한 노랫말처럼 된다고 합니다. 
6,70년대에 초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 배호 씨의 노래는“누가 울어, 울고 싶어, 0시의 이별, 조용한 이별, 아쉬운 이별,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공원, 파란 낙엽”등 하나같이 그의 노랫말에는“비, 이별, 눈물”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29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역시 60년대의 인기가수인 차중락 씨의 경우, 그의 히트곡은“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입니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 고이간직 하렸더니 
아~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그는 결국 그의 노랫말처럼 1968년 11월 28세 젊은 나이에 낙엽 따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한“산장의 여인”으로 잘 알려진 가수 권혜경 씨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 채곡 떨어져 쌓여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러진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그는 자신의 노랫말처럼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충복 청주의 시골마을 농가에서 홀로 투병하다가 쓸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말의 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잠언 18:20~21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하시기를“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꿈의 실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역경이 닥쳐와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꿈을 믿음의 말로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꿈을 지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그 꿈을 성취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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