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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 합시다 (욥 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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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 합시다 (욥 33:26) 
 
(욥 33:26)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도미니칸 수도회에 속했던 평신도 로렌스 형제는「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연습」이라는 책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생활 중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계속 느끼며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시지 않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을 잠시 생각하고, 경배하며, 그분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를 하며, 슬픔을 그분께 내려놓고, 슬픔 가운데서도 주시며 이미 주신 은총들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산다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힘든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되도록 자주 하나님과 함께 슬픔을 위로하기 원하십니다. 식사할 때든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라도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십시오. 잠시잠깐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것입니다. 크게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더 가까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인도 여호와여 도우소서(시 12:1)라고 합니다. 이는 여호와여 구원하소서라고도 번역될 수 있는 말로 여호와 하나님의 즉각적인 개입을 요청하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시 12:5)하십니다. 이는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제'라는 표현은 이전의 상황이 역전됨을 암시하는 말로서 더 이상 악인에 대한 심판을 지체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형벌하시고 가련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구체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겠다는 표현입니다(Calvin, Buber). 가련하고 궁핍한 자를 구원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불변하시며 신실하셔서 고통 중에 경건을 고수하는 자들에게 큰 힘과 소망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진실한 삶을 살피시며 악한 세대 속에서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견고한 망대이시므로 의인은 그곳에서 안전을 얻을 수 있으며(잠 18:10),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에게는 어떤 경우에라도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잠 29:25).

우리도 다윗과 같이 기도해야 함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갈 수 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현장으로 오시도록 기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자의 신앙을 강화합니다. 그것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악한 세대에서 기도로써 자신을 무장하고 악의 세력을 극복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무기입니다. 능력입니다. 확신입니다.

신앙의 방향은 말씀에 의하여 인도하며, 신앙의 능력은 기도에 의하여 강화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일곱 번 단련한 은과 같이 전혀 거짓이 없는 하나님의 약속(말씀)에 의존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한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반드시 실천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밝히 조명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악한 이웃들로 인해 고통 받을 때에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그 상황을 아뢰며 기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으로 우리를 단련시키시며, 우리를 영원히 보호하실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이 말씀을 믿고 우리는 고통 중에도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성숙하게 하실 것입니다. 

  
먼저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들에게는 삶의 모든 것이 기도 제목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기도 제목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자신의 평안하고 건강하며 안락한 삶을 위한 기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성도들은 많아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기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성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성도들은 기도해야 한다고 역설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기도하는 일은 하나님께 지음 받은 성도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기도를 자기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면 이는 주객이 전도된 그릇된 인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들의 의식주보다 선행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래 인간이 지어진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함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하고 희생을 한다 해도 실제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기여할 바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눅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서 드러내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서도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 대신 다른 무언가로 기여하고 있다고 내심 주장하지만 그것을 커다란 오해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섭리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간구해야만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기도야말로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모범 기도입니다.

성도의 모든 기도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 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골4:11)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지상에서의 하나님 섭리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이 또 가정이 직장이 그리고 민족이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게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라는 기도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모범적인 기도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어서 재림하셔서 그 나라를 완성시켜 주실 것을 간절하게 원해야 합니다.

(롬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특히 성도들은 그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선한 싸움에 승리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를 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나아가 지혜와 명철을 구하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솔로몬 왕은 올바른 하나님의 종으로서 맡겨주신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왕상 3:10-13)

인도해 주시는, 그리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에 민첩한 지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빼신 백성 가운데 있는 '작은 아이'와 같은 그를 강건케 해주고 슬기롭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철저히 고백한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는 왕으로서의 의무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지혜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당시의 통치자들은 병력과 권세와 부로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하였으며, 이를 위해서는 장수가 필수적인 요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솔로몬도 자신의 왕위를 견고히 하기 위한 여러 요구 조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서 통치하길 원했습니다. 이 지혜야말로 가장 완벽한 통치 수단임을 솔로몬은 깊이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다윗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보았기에 다윗을 이어 나라를 다스리려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와 인도가 필요하리라고 그는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지혜와 명철을 달라는 솔로몬의 요청은 하나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요구한 것은 단순히 그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백성의 선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라고 헸습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엡1:17) 하나님께서 주셔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복음 진리 안에서 선물로 주신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깨닫기를 늘 기도했습니다( 엡1:18-2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 1:30)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필요의 근원을 택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우리 자신의 즐거움을 구하는 데만 이용하려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그릇된 것을 구하게 마련입니다(약 4:3). 우리의 기도는 그렇게 자기 이익에 대한 염려와 걱정만으로 꽉 차 있는 때가 많지 않습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고 합니다. 이 약속 믿고 지혜를 구하며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영육 간에 복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복은 누구나 받기를 원합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복은 원하는 것 이상의 더욱 절박한 필요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란에서의 20년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약속의 땅 가나안 곧 자기의 혈육이 있는 고향 땅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20년의 긴긴 세월 동안 원한의 칼날을 갈아 온 에서의 한 맺힌 칼날이 기다리고 있는 절대 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자 위기의 순간에 야곱은 하나님의 복이 절대로 필요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얍복 강변에서 홀로 있던 야곱은 자기 앞에 나타난 사람을 부여잡고 한밤중의 씨름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씨름은 야곱의 영혼 깊숙이 자리 잡은 갈망에 대한 결단의 기도였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피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야곱은 피할 수 없는 길목에서 한밤의 씨름 곧 결단의 기도로써 현실에 맞섰던 것입니다. 날이 밝아오면 야곱과 씨름하던 사람은 떠나야 했습니다. 밝아오는 날은 구원을 주거나 실망만을 안겨 주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야곱은 자신과 씨름하던 사람에게 복을 받으려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습니다. 환도 뼈가 어긋난 사람이 싸움을 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 버틸 수 없음을 깨달았고 따라서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어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외로운 고독 속에 고뇌하는 영혼들입니다. 수많은 일들이 우리로 하여금 고통과 두려움으로 고뇌하게 만듭니다. 이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 곧 야곱과 같은 결단의 기도에서 복을 얻는 길뿐입니다. 야곱의 기도는 자신이 목적한 바가 이루어질 때까지 간구하는 끈질긴 기도였습니다. 야곱의 기도는 자신이 목적한 바가 이루어질 때까지 간구하는 끈질긴 기도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결단의 기도도 그 목적이 이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쉬지 말고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은 복을 받아 야곱이란 인위적인 사람에게 이스라엘이란 복을 받은 사람으로 변화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 32:26-28)고 합니다.

우리도 영육간 복에 대한 열망과 믿음 그리고 성결한 생활로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커다란 복의 상속자가 됩시다. 그리하여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요삼 1:2)는 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영육 간에 강건 하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6).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착하게 살고자 했던 히스기야도 병명을 알 수 없는 중병에 걸려 죽음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죽음의 선고를 받은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여호와여 구하노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3 절)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에게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사 38:5)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도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막 2:17)고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마 8:16)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하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막 9:28-29)고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약 5:15)하시니 영육 간에 강건함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더욱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딤전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모세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치겠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32:32)라고 합니다. 

모세는 그가 율법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한 기도에서, 그의 생명을 담보를 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범죄한 그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의 개인적인 구원을 포기하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희생이며 헌신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는 가장 고상하며 거룩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제자들을 위탁하며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그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 안에서 그들과 하나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만물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고 거기에 귀속됩니다(고전3:22,23).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는 개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인류와 만물의 구원을 위해 필요 불가결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것과, 그러한 능력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로 믿지 않는 자들을 회개하게 합니다.

오순절에 베드로가 행한 설교에 의해 3000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는 베드로의 설교는 가까운 원인이요, 다른 원인은 120문도의 마가 다락방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120문도의 기도 응답으로 주어진 성령강림이 강팍한 유대인들의 마음을 열게 했기 때문에 베드로의 설교가 효과를 볼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어느 교회의 장로님이 산부인과 의사신데 철야기도회에서 기도시간에 10분만 기도하면 더 기도할 것이 없었다합니다. "나와 아내 건강하게 해 주십시오""우리 아들 딸, 잘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병원 잘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의료 사고 없게 해 주십시오" "우리 교회, 부흥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끝이었다 합니다. 

그리고는 무료해져서 기도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그 때는 밤 열두 시에서 새벽 네 시까지는 통행금지 시간이어서 철야기도회를 새벽 네 시까지 했다합니다. 하품이 나오고 졸립니다. 그런데 철야기도 시간마다 자기 옆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기도하는 장애인 청년이 있었다합니다. 땀 냄새를 풍기며 시간을 아껴가면서 열심히 기도하는데 '무엇을 가지고 열심히 저렇게 열심히 기도하나?', 궁금해졌다 합니다. 

하루는 자기는 기도하지 않고 그 청년의 기도를 들어보다가 대단히 큰 감명을 받았다합니다. 세계평화를 위해,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데 자기를 위한 기도가 별로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한 기도로 네 시간을 채우드라는 것입니다. 

장로님은 큰 도전을 받았고 그 장애인의 후원자가 되었고 자신도 관심과 사랑의 대상을 넓혀 가는 훈련을 하기 시작하여 자신의 신앙성숙에 너무나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고통당하는 자가 하나님께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회개의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호의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서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될 것임을 밝히며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가 교제하며 지극히 영광스러운 복을 누리게 되고 의가 회복된다고 말씀합니다. 

브릭스(Briggs)가 매사추세츠 주의 지사로 있을 때 그의 친구 중 몇 사람이 성지를 방문하러 갔다고 합니다. 그들은 갈보리 언덕을 방문하자, 자신들과 함께 오지 못한 지사를 생각해 내고는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선물로 줄 지팡이를 만들었다합니다. 

그 후 여행을 끝마치고 보스턴으로 돌아오자 그들은 지사에게 지팡이를 주면서 '우리는 갈보리 언덕에 올라가서 지사님을 생각하면서 이 선물을 준비했습니다.'라고 말했다합니다. 그때 지사는 자신을 생각하고 선물을 준비해 준 그들에게 고맙다고 하며, 덧붙여 말하기를 '그러나 더욱 감사할 일은 예수님이 갈보리 언덕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면서 나를 생각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 위해서 기도 하였고 지금도 보좌 우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며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허락하시겠다고 악속 하셨습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교회 설립 80주년 주신 은혜에 감사하되 기도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는 달입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하신 말씀 믿고 기도하며 응답의 역사를 체험하aun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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