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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는 내 것이라 (사 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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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것이라 (사 43:1-7)


동양의 성자라고 불리는 일본의 하천풍언(賀川豊彦) 목사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러 갔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을 하면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찬양하였습니다. 곁에 있던 백인 목사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천풍언은 ‘나이아가라 폭포 주인의 아들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가 “그것이 무슨 말이요?” 반문하였습니다. 하천풍언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요 나는 그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그 분의 자녀요”라고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이 말에 감동을 받은 백인 목사는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에 하천풍언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나이아가라 폭포 주인의 아들이 와서 설교를 합니다’ 광고하였습니다.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 가득찬 성도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설교시간이 되자 성도들은 나이아가라 폭포 주인의 아들이 누구인가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조그마한 동양의 황인종이 등단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실망을 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습니다. 그 때 하천풍언은 당당하게 설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인이실 뿐만 아니라 나이아가라 폭포의 주인이시고, 나는 그 분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나이아가라 폭포도 나의 것이고, 온 우주가 다 나의 것입니다.” 그때서야 성도들도 아멘하면서 자신들도 나이아가라 폭포 주인의 자녀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 까닭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시고 ‘너는 내 것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생활의 고통스런 상황을 바라보며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시키실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도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처럼 절망적인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고통의 시간은 부족한 모습들이 온전하게 빚어지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고통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하지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는 내 것이라’고 선언하시며 희망이 없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망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복음성가 ‘나의 안에 거하라’ 다같이 부릅니다.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난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 말라 네 손 잡아 주리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를 특별히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내 것이라’ 하시며 보배롭고 존귀히 여기노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내 것이라’ 의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함께하리라

기독교가 핍박받던 시절, 유대의 헤릿그스가 군사들을 피해 동굴로 숨었습니다. 군사들은 산속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그가 숨어있는 동굴 앞에서 군사들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번 들어가 볼까?” “여긴 없는 것 같아. 이 거미줄 좀 봐! 사람이 숨었다면 거미줄이 이대로 있을 리가 없질 않나! 꽤나 오래된 것 같은데” “어서 가세” 잠시 후, 군사들이 동굴을 떠나 산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거미줄이라는 말을 이상히 여긴 헤릿그스는 동굴 입구로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가 동굴로 들어올 때까지 없었던 거미줄이 겹겹이 쳐져 있어서 동굴 입구를 막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꿇어앉은 헤릿그스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헤릿그스가 세월이 지나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아니하신다면 튼튼한 방벽도 거미줄과 같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은 거미줄도 철옹성 같더라.” 하나님의 소유된 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누구라도 해하지 못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여기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은 나의 사정을 빠짐없이 다 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앉고 서는 것, 내가 생각하는 나의 마음 속, 입술의 말까지도 잊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자를 도우시려고 항상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은 물과 불속에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물과 불을 우리 힘으로 벗어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고 물과 불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유된 자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구원하리라

영국의 어느 마을에 목사가 새로 부임을 하여 설교를 하였습니다. “바닷가 마을에 어머니를 여윈 소년과 소년을 목숨보다 사랑하는 등대지기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년은 친구와 배를 타고 나갔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위기에 처한 아들을 구하려 아버지는 보트를 몰고 갔지만 아들이 탔던 배가 파도에 휩쓸려 가버렸습니다. 보트에는 한 명 밖에 더 태울 수 없었습니다. 둘을 다 태운다면 배가 뒤집어져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순간 아버지는 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손을 거두었습니다. 아들이 놀란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그러자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집니다. ‘미안하다. 너는 예수를 믿으니 죽어도 천국에 갈수 있지 않니? 그러나 네 친구는 아직 예수를 안 믿는 것 같구나’ 아들은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아빠. 천국에서 만나요’ 아버지는 아들의 친구를 태우고 눈물을 흘리며 육지까지 노를 저어왔습니다.” 설교는 끝이 났고 목사의 눈은 젖어 있었습니다. 

찬송이 시작 될 무렵 교회 뒤쪽에 앉은 이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어떻게 저런 이야기 있을 수 있어. 지어낸 거잖아. 누가 믿어.’ 그때 뒤쪽에서 머리가 하얀 노인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렇지 않다네. 내가 그 아버지이고, 저기 서 있는 목사가 바로 그 아들대신 구한 친구라네.” 예수께서 십자가에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 까닭에 우리는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여기의 '애굽, 구스, 스바'는 홍해가 갈라질 때 죽은 애굽 군대입니다. 당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혔던 애굽 군대 속에 구스도 있었고 스바도 있었습니다. 구스와 스바는 영적인 악한 세력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가진 것이 없고, 할 줄 아는 것이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속량물로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상의 누구보다 우리를 존귀하게 인정하시며 ‘너는 내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보잘 것이 없다 해도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구원하사 존귀하게 여겨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사랑하리라

1982년 10월 뉴욕 데일리 뉴스지에 실린 감동적인 기사입니다. 17세 소년 마이크 뷰캐넌(Mike Bchanan)이 지붕 위에 올라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어머니는 가출했고 아버지는 심한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너무 많은 문제와 걱정 속에서 몇 해를 고민하다가 자살을 계획한 것입니다. 이 때 한 신사가 지붕으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소년에게 한 시간 반 동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네 아버지가 되겠다.” 

그는 윌리엄 폭스(William Fox)였습니다. 소년이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 말을 하였습니다. 결국 소년은 그를 따라 내려왔고, 그는 약속대로 소년을 아들로 입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함께 하십니다. 조건 없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존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본문 4절입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는 내 것이라’ 하시며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불쌍한 것은 잊혀진 이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결코 잊혀진 이름이 아닙니다. 아무리 어려운 자리에 있어도, 아무리 외로운 자리에 있어도, 홀로 밤을 지새우며 고민으로 얼룩진 밤에도 잊혀진 이름일 수 없는 까닭은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시련과 환난이 다가올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작품은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러기에 부족한 점이 있어도 하나님의 작품으로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명하여 불렀으며 대가를 지불하신 하나님의 소유된 존재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숲속에서 더럽고 지저분한 강아지가 발견되었습니다. 몹시 굶주렸으며 상처도 입었습니다. 경찰관이 지나가다가 강아지 목에 이름표가 달린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유심히 보니 밥스라는 이름인데 그 밑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강아지는 왕궁에 속한 강아지입니다.” 놀란 경찰관은 강아지를 목욕시키고 약도 발라주고 음식도 먹였습니다. 그리고 왕궁으로 강아지를 전해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국왕 부부가 에든버러에 휴가를 왔다가 강아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비록 더럽고 지저분해보여도 국왕의 개이기에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가치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한 가치는 반드시 그 가치를 되찾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버리지 않는다면 가장 소중한 가치임을 드러내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이미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자로 살아간다면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Madre Teresa)의 고백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몽당연필 일뿐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소유된 자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의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멋진 작품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토기장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아름답게 빚어지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순간에도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십니다. 동시에 ‘너는 내 것이라’ 선언하시며 하나님의 것으로 여겨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사랑하여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하나님의 소유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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